6화 티저 선정은 네가 맡아
서인하 부장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입사 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첫 면접 자리에서부터 냉철함을 그려놓은 듯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이마에 ‘흥분’이라는 글자를 써 놓은 것 같았다.
“티저 조회수가 24시간 만에 100만을 넘겼어. 시즌1 때보다 더 빠른 거라고!”
흥분하는 와중에도 기억력 하난 정확해 보였다. 역시 제작부장 자리가 아무나 앉는 자리는 아닌 모양이다.
좀 전에 단톡방에 24시간째의 조회수를 공유했다.
파리는 아직 새벽일 테니 반응이 오려면 조금 있어야…….
“어, 그래, 수정아! 조회수 봤냐?!”
뭐? 지금 시간에?
겨우 막 해가 떴을 시간인데.
모르긴 몰라도 방수정 PD도 초조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 방수정 PD와 통화를 하던 서인하 부장이 뭔가 손짓을 하고 바깥을 가리켰다.
흔히 있는 일이라 우린 노트북과 자료를 챙겨 들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이런 수치는 정말 기록적이라고 위에서도 난리가 났다. <신유람기> 1차 티저도 완전히 묻혔다니까? 다음 티저 언제 붙일 거냐고 난리야, 난리.”
아마 이사진이나 편성부장을 언급하는 모양이다.
“뭐? 3차 티저를 다음 주에? 야, 안 돼. 지금 분위기 좋은데, 하나 더 연속으로 나가 줘야 이 기세를 몰아붙이지! 티저가 부족해? 파리에서 찍은 건 어디다 써먹으려고?”
서인하 부장이 물고 늘어지는 걸 봐서는, 방 PD가 본방에서 내보낼 게 없어진다는 식으로 항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서인하 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책임지마. 본방에 낼 게 없으면 스페셜에서 추가 촬영이라도 더 잡아 줄 테니까, 일단 추가 티저 내보내.”
그러는 서인하 부장의 시선이 어쩐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도 느꼈던지, 눈이 마주치자 ‘설마?’ 하는 입 모양을 해 보였다.
서인하 부장은 그 뒤로도 방 PD를 뭐라고 또 들들 볶더니, 결국 원하는 대답을 받아 내고 전화를 끊었다.
“강대한.”
“예, 예.”
“앞으로 티저 선정은 네가 맡아.”
“네?”
헉 하는 심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서인하 부장은 이미 박주영 선배에게로 눈을 돌린 상태였다.
“주영아, 대한이가 편집 직접 할 수 있냐.”
“어…… 할 수야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가르칠 게 더 많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옆에 붙어. 이 작가, 너도 같이 콘티 짜고.”
이게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해져 눈만 끔뻑였다.
서인하 부장은 비슷한 표정인 우리를 한차례 둘러보고는, 어쩐지 장난기 섞인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한아, 이번 2차 티저는 네가 만든 거야. 과정이야 어찌 됐든 우리 방송국, 예능팀 이름을 걸고 나간 티저가 이렇게 대박이 났으니 네가 또 만든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 못할 거다.”
저기, 한 사람만은 뭐라고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그 이름이 서인하 부장의 입에서 먼저 언급되었다.
“수정이가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떻게 보면 수정이도 잠시 쉴 타이밍이 온 거야. 걔도 너무 달려왔으니까.”
어느새 웃음기와 함께 장난기가 사라진 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러니까, 그건 내 선에서 처리할 테니 대한이 너는 추가 티저나 잘 만들어 내.”
시선은 박주영 선배, 그리고 이민희에게로 옮겨 갔다.
“그리고 너희 두 사람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둘 다 경력이 대한이보다 훨씬 앞선다는 건 나도 알지만,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너희가 고생한 거 절대 안 잊을 테니까.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네, 그럴게요.”
“좋아.”
서인하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추가 티저 편성 받아 올 테니 잘 좀 처리해 줘라, 얘들아.”
그가 회의실을 나간 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두 분 다.”
“야, 왜 이래. 촌스럽게.”
“그래요, 미안하면 커피나 한턱 쏴요.”
“그치만, 선을 넘은 건데. 그래선 안 되는 건데…….”
“그럼 아까 거절을 했어야지.”
선배가 툭 내뱉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뼈가 있는 말이었지만, 표정 자체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웃는 얼굴로 그는 되물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하고 싶었지?”
“……네. 맞습니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그래서 서 부장님한테도 아무 말 안 한 거고. 민희, 너도 그렇지?”
“네, 맞아요.”
선배는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방 PD님의 티저 지시가 왔을 때, 나나 민희 씨는 결국 그 말 그대로 따랐어. 거부하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너는 좀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게 맞다는 걸 증명했지.”
“…….”
“후배든 뭐든 그런 관계를 떠나, 그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
선배의 꾸밈없는 그 말에 괜히 머쓱해졌다.
치기 어린 반항심으로 보였을 수도 있는 일인데, 아주 좋은 쪽으로만 해석해 주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게 우리 프로그램을 더 살리는 일이 됐어. 인터넷 반응, 모르지 않잖아?”
“좀 전에 보니까 최효명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거워요. 대한 씨의 티저 하나로 묻혔던 아이돌 하나가 빛을 볼지도 몰라요.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이민희도 옆에서 거든다.
어…… 음…… 어색한데.
그때, 선배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부장님이 오케이 했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우리도 거들 테니까, 더 대박을 내보자고. 알았냐?”
“……감사합니다. 잘 부탁할게요, 두 분 다.”
“오케이.”
“잘 도울게요.”
난 정말 좋은 선배들을 둔 것 같다. 어째 감동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울거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틈은 없었다.
아직 우리 일은 끝나지 않았고,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 * *
그 뒤, 연속으로 3차, 4차, 5차 티저를 만들었다.
스크립트, 콘티, 시안 등을 방수정 PD에게 보내 컨펌을 받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그녀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방수정 PD: 진행해.]
그런 건조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방 PD님, 계속 기분이 저기압이래요. 출연진들도 걱정한다는데요.”
단톡방 말고도 작가진끼리 대화방이 있는지 이민희가 그렇게 귀띔을 해 줬다.
“그러다 촬영 자체가 틀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렇진 않대요. 촬영 분위기 자체는 아주 괜찮다는 듯?”
하긴, 촬영본 파일을 받아 검토할 때마다 확실히 괜찮았다.
방송 콘셉트상 개개인의 캠과 전체 앵글 등등 아주 갖가지 촬영본들이 전달되어 오는데, 하나하나가 자막이 없어도 생생하고 분위기도 좋아 보였다.
초짜인 내가 봐도 좋으니 선배나 이민희 눈엔 더 잘 보이겠지.
일단 그것들을 훑어보고, 셋이서 회의를 통해 스크립트를 짜고, 후보군 중에서 정해서 콘티를 짜고, 영상을 편집한 뒤 CG실로 보낸다.
그 과정을 꼬박 3번 반복해 5차 티저까지 공개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티저만으로 선풍적인 인기!』
『‘당잠사’ 시즌2, 역시 방수정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박 냄새!』
『금주의 핫이슈: 티저는 당잠사처럼!』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갖가지 기사를 양산해 가면서 인터넷의 이슈를 끌었고, 그뿐만 아니었다.
『‘엑시트’ 명리더, 최효명! 실시간 검색어 1위!』
티저 공개에 맞추어서 출연진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기도 했는데, 최효명은 몇 시간 동안 1위를 지켰다.
―방송 언제냐ㅠㅠㅠ 티저를 나노 단위로 파는데, 파도파도 화수분이네ㅠㅠㅠ
―방송 존버 힘들다 진짜 제작진 밀당 쩌는 듯? 여러분 그냥 날짜 당깁시다 네?
―비주얼에다 목소리도 너무 쩌는데ㅎㄷㄷㄷ 이 기회에 신곡 좀 하나 내자 엑시트야!
―플래티넘 뭐하냐! 일해라 플래티넘!!!
2차 티저 이후로는 최효명만 부각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AGD 앱이 알려주는 확률이 높은 방향으로 수정을 짜고 완성했을 뿐인데도 5차 티저까지 대박을 친 건 최효명이었다.
한번 입소문이 난 최효명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오늘.
[100%]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6차 티저 후보군의 대박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4번째 100% 확률을 기록하였습니다.]
[적립된 포인트는 마이 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세요.]
6차 티저 완성본은 4번째로 ‘100%’를 기록했다.
“괜찮네…….”
편집을 도와준 박주영 선배가 중얼거리고,
“확실히 첫 촬영분이랑 자연스럽게 연계도 되고…… 좋은데요?”
이민희도 그렇게 평했다.
내 생각에도 괜찮게 만들어진 티저 같았다.
이번에 중점으로 삼은 것은 스토리 흐름이 첫 방송과 연계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가 그랬고, AGD도 그쪽이 확률이 높다고 하는 것 같아서 전력을 쏟았는데, 아주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방 PD에게 보내자 금방 컨펌이 돌아왔다.
[방수정 PD: 보내.]
여전히 짤막한 한마디. 이젠 익숙해서 허탈하지도 않았다.
금방 단톡방을 닫으려는데.
[방수정 PD: 괜찮네.]
어? 한마디가 더 왔다.
덧붙은 그 말이 묘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내가 멍하니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내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부장님께는 내가 보고할 테니, 서버에 올리고 정리하고 나와.”
“……예.”
그가 나가고, 편집실을 정리하는 중에 이민희가 말을 붙여 왔다.
“방 PD님도 인정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태까지 방수정 PD에게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6차 티저가 나가고, <신유람기>의 추가 티저를 다시 묻어 버린 그다음 날.
파리에서 제작진이 귀국했다.
우리는 시간을 맞추어서 공항에 나갔다.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돌아온 것 같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건강히 귀국하셔서 다행입니다. 자, 그럼 공식적으로, 촬영 끝! 해산합시다!”
서인하 부장도 같이 마중을 나왔는데, 선배 말로는 흔치 않은 일이라 했다.
촬영 종료를 선언한 서인하 부장이 출연진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인사하고, 방수정 PD 및 제작진의 노고를 달래 주는 동안.
미니버스에 짐을 싣는 제작진을 돕고 있던 내 어깨를 탁탁 치는 손길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최효명이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대뜸 내게 배꼽 인사를 해 왔다.
“어, 아니, 왜 이러세요.”
나는 놀라 황급히 그를 잡아 세웠다.
허리를 든 최효명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그런데도 매우 소년 같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참…… 답지 않게 눈물의 왕자네.
촬영분에서도 몇 번이나 눈물을 보인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이럴 줄 몰랐다.
“다 PD님 덕분입니다. PD님이 저를 밀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런 귀한 경험도 못 했을 거고, 또…….”
또라는 말을 끝으로 최효명은 기어코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뒤늦게 송일현 매니저가 달려와 설명해 주었다.
“그게 저…… 사실 엑시트 해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네? 해체…… 요?”
깜짝 놀랐다.
애매한 인기였다곤 하지만 그랬을 줄이야.
“그런데…… 이번에 이슈가 되면서, 회사에서 신곡을 내기로 했습니다. 바로 어제 결정된 거라 효명이가 강 PD님께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싶어 했는데…… 이 녀석이 참, 보다시피 눈물이 많은 녀석이라…….”
송일현이 익숙한 듯 최효명의 머리를 헝클어뜨리자, 눈물을 겨우겨우 닦아 낸 최효명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PD님…….”
그 뒤로도 최효명은 몇 번이나 인사를 더 하고서야, 송일현에게 끌려가듯 차로 돌아갔다.
그를 보내고 나서도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PD라는 위치가 새삼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도 느껴졌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기분이라서 오늘 퇴근하면 혼술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돌렸다가.
“…….”
저 멀리서 방수정 PD가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리는 걸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