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5화 (5/200)

5화 2번째 100%

제작부장인 그가 왜 이 시간에 있는가. 사실 그 점은 의문스럽게 생각할 것도 없다. <당잠사>가 비상인 만큼, 총괄 책임자인 그도 비상 대기 중이었을 거다.

하지만, 보통 편집실까지 직접 내려오는 경우는 잘 없었던 사람인데, 여기까지 직접 행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부, 부장님!”

“여, 여긴 어떻게…….”

서인하 부장은 마른 체형에 날카로운 인상이라서, 무표정하게 있으면 일단 매우 까칠하게 보인다. 지금처럼.

“나도 젊은 시절에는 편집실에서 눌러살았었지. 딱 주영이 너 정도 때 말이야.”

아, 이게 그건가.

라떼는 말이야…… 라는 거?

이제 일장연설이 시작되나 싶어 각오를 다지는데.

“뭐, 그건 그거고. 일단 방금 티저, 다시 틀어보라고.”

서인하 부장은 매우 담백하게 이야기를 전환했다.

……다행이다.

“아, 그, 부장님. 방금 티저는 그냥 저희가 기다리던 중에 만져 본 거라서 확인하지 않으셔도…….”

“티, 티저는 따로 수정까지 해 두었어요.”

이민희와 선배가 나서서 변명하는데, 서인하 부장은 손을 내저으며 문 옆 벽에 기대섰다.

“그 단톡방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건 알지? 나도 대화방에서 봐서 어떤 티저인지는 알아. 그러니까 방금 그 티저 한번 보자니까?”

쉽게 물러설 것 같지는 않았다.

박주영 선배가 내 눈치를 본다. 어쨌든 수정을 한 것은 너 아니냐 하는 눈빛.

나 보고 결정하라는 건가.

……선배, 이게 1년도 안 된 후배한테 떠넘길 일입니까.

한숨을 쉬다가 어차피 저지른 것,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영 선배도 마찬가지 얼굴로, 티저를 처음부터 재생했다.

티저의 길이는 3분 30초가량. 방 PD의 티저는 3분가량인데, 나는 거기에 최효명의 분량을 좀 더 살리려다 보니 더 늘어났다.

노래 한 곡 정도의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나는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재생이 끝나자마자 서인하 부장을 돌아보았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짓했다.

“방 PD가 수정하라고 한 티저, 틀어 봐.”

“어…….”

수정은 다 끝냈으니 방 PD에게서 최종 컨펌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전에 더 윗선인 서인하 부장에게 보여 주게 생겼다.

하하, 이거. 뭐 된 거 같은데…….

박주영 선배는 아주 샛노래진 낯빛으로 티저를 재생했다.

3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그렇군.”

서인하 부장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이거 아직 수정이한테는 컨펌 안 나온 거지?”

“예. 이제 보내고 받을 예정이라서…….”

“이 수정 방향은 누가 정한 거지? 주영이 너냐?”

“아, 그…….”

선배가 반사적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가, 말을 끊었다.

셋 중에는 어쨌든 본인이 가장 선배.

후배인 내 제안으로 수정한 거라지만, 이 일까지 내게 떠넘기는 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저래서 나도 선배가 좋다.

그렇기에 난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제가 제안했습니다. 최종안 나오기 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수정을 해 보고 싶다고 밀어붙였습니다. 박주영 선배는 그걸 받아들여 줬을 뿐입니다.”

“강대한, 네 의견이라고?”

서인하 부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에는 어쩐지 놀란 속내가 담겨 있었다.

“왜 수정을 하고 싶었지?”

“본래 티저가…… 프로그램의 현재 이슈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현재 이슈가 뭔데?”

“좋든 싫든 한차례 출연진의 교체가 있었고, 시청자들은 새로 합류한 출연자를 궁금해할 겁니다. 하지만 현 티저는 그 궁금함에 전혀 응답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궁금함을 본방까지 끌었다가 한 번에 터뜨리려는 게 방 PD의 의도 아닐까?”

물론 그럴 순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범한 티저의 수준에 그치는 것 같았습니다.”

티저가 제 기능을 하려면, 본방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티저를 본 시청자가 본방을 챙겨보게끔 매력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티저는 이도 저도 아니다. 그저 전 시즌의 연장선에서, 전 티저를 답습할 뿐.

첫 번째 티저도 결국 익숙한 매력만 전달하고 말았는데, 2차 티저까지 그러면 안 된다.

확률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라이벌 예능이 곧 시작하는데, 좀 더 흥미를 돋우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판단은 그러했다.

AGD 앱의 판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65%’와 ‘94%’.

무려 30%나 차이가 나는 수치.

하나는 자막 작업도 하지 못한 미완성본임에도 그렇다.

말하던 중에도 남아 있던 약간의 망설임도 결국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 이야기를 전혀 태클 걸지 않고 들어주는 서인하 부장의 반응도 그 확신에 한몫했다.

그는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톡톡 두들기다가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금 촬영 어떻게 되고 있지?”

“좀 전에 점심 촬영하고, 다음 촬영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대답을 듣더니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우리 셋은 문 너머로 고개만 살짝 내밀어서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만 지켜봤다.

“어, 그래. 수정아. 나다.”

계단으로 돌아 사라지기 직전, 서인하 부장의 목소리가 잔향을 만들며 남았다.

“헉, 지금 방 PD님한테 전화 거신 거예요? 티저 때문에?”

이민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그 대답을 우리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리 대박 사고 친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나는 뒤늦게 불안해졌다. 박주영 선배는 한숨을 푹 쉬더니, 출력해 둔 스크립트들을 둥글게 말아 내 머리를 내려치는 시늉을 하면서 투덜댔다.

“넌 인마. 진짜, 아오! 며칠 전에도 그러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간이 커졌냐? 뭐 잘못 먹었어?”

그러더니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다.

선배가 이렇게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오, 서인하 부장님은 방 PD 직속 선배라고! 방 PD의 티저를 그렇게 대놓고 까는데, 선배 되시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기분이 좋겠어?”

그건 나도 알지만.

난 다시 한번 복도를 슬쩍 내다본 뒤, 말했다.

“그래도…… 화를 내는 건 같진 않았는데요?”

“그건 맞아요……. 오히려 다 수긍해 주시는 것 같았는데.”

이민희도 동의했다. 선배는 그녀도 노려보았다.

“수긍해 주시면 뭐? 설사 티저를 바꾼다고 치더라도, 방 PD가 가만히 있겠어? 입봉도 안 한 새끼 PD들이 자기 티저를 깐 건데?”

그건 그렇네…….

새삼 나도 뭔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다 저지르고 난 다음에야, 이제야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어머니, 다음 달 용돈 못 드릴 것 같은데 어쩌죠…….

그러나 그 불안함은 매우 이른 것이었다.

10분 정도 지난 뒤.

편집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로 서인하 부장이 돌아왔다.

“대한이 네가 수정한 그 티저, 자막 작업 완료해서 수정이한테 보내.”

나보다 박주영 선배가 먼저 놀랐다.

“예?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내 지시로 수정했다고 일단 해 놨으니까 수정이도 별말 없을 거야. 컨펌은 받고, 내일 바로 내보낸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나도 놀란 마음으로 그를 다시 보았다.

“내일은 <신유람기> 티저가 뜬다고…….”

“그래.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완료해야겠지?”

그는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지시를 내려놓곤 다시 스마트폰을 들고 사라졌다. 이번엔 편성부장이었다.

그가 사라진 후에도 우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눈만 끔뻑이다가,

“어…… 일단, 넘기시죠.”

“자, 자막 짜야지.”

“CG 구성도.”

부리나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CG실에 연락했더니 몇 번 투덜거림을 들었다.

하지만, 서인하 부장 찬스로 무마했다. 제작부장의 특별 지시라는데 뭐 어쩌랴.

그제야 얌전하게 작업 스케줄을 받아낼 수 있었다.

몇 부분은 좀 더 만진 후에 자막까지 전부 입혀서 방수정 PD에게 보냈다.

[방수정 PD: 내보내.]

아주 짤막하게 오케이가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영상 위의 확률이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100%]

지잉― 하고 스마트폰이 울었다. 나는 선배나 이민희 모르게 화면을 확인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2차 티저 후보군의 대박 확률’의 100%를 달성하였습니다.]

[2번째 100% 확률을 기록하였습니다.]

[100%를 달성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입니다. 포인트는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 적립을 꾸준히 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눈앞에서 확률이 사라졌다.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나도 편성부에 연락해 티저를 넘긴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

“근데 있잖아요.”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또 티저를 보고 있던 이민희가 툭 내뱉었다.

“재밌는 것 같아요. 티저.”

“예?”

“대한 씨가 만든 이 티저, 잘 만든 것 같다고요.”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박주영 선배도 거기에 동의했다.

“내가 도운 덕인 것 같지만…… 대한이 너, 센스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빨리 편집 좀 늘어라.”

내 일 좀 다 넘기고 꿀 좀 빨자. 그렇게 덧붙이는 박주영 선배는 오히려 본인이 뿌듯해 보였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긁었다.

“뭘요. 아직 공개도 안 됐는데요.”

“야, 잘되겠지. 이 난리를 피워 놓고 잘못되면, 너나 나나 다 죽는 거야. 그럼 너는 내 손에 죽는 거고. 알았어?”

그럼 뭘 해도 죽는다는 거 아닌가?

“100만 조회수감이에요. 자신감을 가져요, 대한 씨.”

박주영 선배나 이민희나 농담을 잔뜩 늘어놓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 마음 한편에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파리 편! 2차 티저, 깜짝 공개!]

우리 회사 정규 티저 공개 시간 9시를 지나서, 오후 1시.

변칙적인 시간을 배정받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티저는 대중에 공개됐고, 남은 것은 반응뿐이었다.

공개 직후 1시간 동안은 조용했다. 우리가 뿌린 보도자료에 따른 기사가 몇 개 떴을 뿐이었다.

그다음 1시간은 파리에서 방수정 PD가 보내온 일거리들이 쌓이기 시작해서 정신없이 보냈다.

실시간으로 편집본으로 만들고, 현지 로케지 건으로 대사관에 연락을 하고, 그렇게 바쁘게 보내자 어느새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어가 있었다.

“아, 티저.”

제대로 반응 모니터링도 못 했다.

겨우 한숨 돌린 이민희와 눈을 마주치고, SNS와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헐. 대한 씨, 이거 봐요.”

이민희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다. 미투브에 올라간 2차 티저 영상이었다.

그런데,

“……조회수 한 자리 틀린 거 아니에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조회수: 100,945]

3시간여 만에 10만 조회수를 찍었다.

첫 티저도 아직 10만 근처를 못 찍었는데, 2차 티저가 단숨에 10만을 찍은 것이다.

댓글도 400개는 이미 넘겼고, 좋아요는 5천을 넘겼다.

이민희와 나누어서 댓글을 살폈다.

“엑시트 팬들이 아직 화력이 좋은가 본데요? 좋은 평은 거의 엑시트 팬인 것 같아요.”

“팬이 아닌 사람들 평도 많아요. 네이버 메인에 기사가 걸렸어요! 댓글 반응 한번 볼게요.”

무려! 기사가 메인에 노출되다니! 다행히 댓글도 호평이 많았다.

대부분은 새롭게 투입된 최효명에 대한 평들이었다.

―쟤 걔 아니냐. 어디 리더라고 했는데? 이름이 뭐더라.

―출구 아니냐 출구?

―ㄴ비상구

―ㄴ비상구나 출구나... 어휴

―효명아! 효명아아!!!ㅠㅠㅠㅠ 내가 너 이렇게 뜰 줄 알고 아직 주식 안 팔았다ㅠㅠㅠㅠ

―우리 효명느님께서 오셨다!

―불어 발음 쩐다. 저 정도면 네이티브 아님?

―ㄴ효명맘 등판ㅋㅋㅋ 그 정돈 아닌뎈ㅋㅋㅋ

―최효명이 누군가 했더니 엑시트의 그 존잘이었네?

회사가 대형이기라도 했으면 알바라도 풀었나 했을 텐데, 플래티넘은 그 정도 규모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 의견들이란 소리.

팬들도 그렇고 일반 시청자들도 그렇고 최효명이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는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웠던 박주영 선배가 스마트폰을 든 채 후다닥 달려온 것이 그때였다.

“야! 기사 봤냐?! 터졌어! 터졌다고!”

그러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을 늘어놓는다.

“이거 우리가 보도자료도 뿌린 거 아니고! 이 기자는 아이돌, 예능 덕후로 유명한 사람이란 말이지! 야, 이거 어디서 대박 냄새가 나지 않냐?”

“네. 봤어요.”

무미건조하게 대꾸하며 같은 기사가 떠 있는 내 스마트폰을 보여 주었다.

“…….”

선배가 한숨을 쉰다.

이어서 이민희까지 같은 창을 보여 준다.

“…….”

말하는 법을 잊은 듯했다.

아무튼, 우리 셋의 시선을 끌어당긴 인터넷 기사는 댓글뿐 아니라 본문 자체도 티저에 대한 호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파리 편 2차 티저 공개’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시즌2로 시청자들에게 돌아온다. NBS는 금일 오후 1시, 시즌2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시즌1 모나코 편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로맨틱함의 상징 파리에서의 여행기가 담길 예정이다.

촬영을 막 시작한 시점에서 불미스러운 사고로 캐스팅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던 제작진이었지만,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번 2차 티저에는 교체된 멤버 최효명의 활약이 예고되었고, 가히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팬들 사이에서 ‘명리더’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최효명은 중학교 시절부터 갈고닦아 온 프랑스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선배들이 즐비한 멤버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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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명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현재 2차 티저는 3시간 만에 10만 조회수를 넘기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아직 촬영도 다 마치지 않은 이 시점에,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파리 편은 벌써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박 조짐을 내뿜고 있다.』

다시금 기사를 읽고 있자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AGD 앱이 보여 준 대박 100%의 확률 덕분이라지만, 내 노력을 기울인 결과기도 했다.

티저 영상에 내 이름이 붙어 나가는 것도 아니건만, 왠지 뿌듯했다.

그날.

6시가 되어 <신유람기>의 티저가 풀렸다.

하지만 <당잠사> 2차 티저의 화제성은 넘기지 못했다.

2차 티저는 SNS, 커뮤니티를 넘나들며 화제가 되었고, 최효명의 재발견이라면서 또다시 시너지 효과를 받고 승승장구했다.

티저 공개 24시간을 기점으로, 서인하 부장이 팀 사무실로 내려왔다.

그는 평소의 냉철한 표정을 집어 던지고, 우리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야.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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