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티저 편집
잠시 멍청히 그것을 봤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생각해 보니 확률 보기가 있었지.
혹시 몰라 스마트폰을 꺼내자, 무음 설정으로 해 둔 AGD 앱 푸시가 도착해 있었다.
[‘확률 보기’ 정규 사용을 시작합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1차 티저 후보군의 대박 확률’을 표시합니다.]
아주 친절한 푸시였다.
“그럼…… 현재 이 티저 상태로 나가면 ‘72%’ 확률로 대박이 난다는 건가?”
대박의 기준은 뭐지?
대박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이라는 뜻인가?
그런 궁금증도 생겼지만 앱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혹시 몰라 두 번째 티저를 재생했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화면 위로 숫자가 떠올랐다.
[67%]
아까보다 확률이 낮다.
두 티저에는 무슨 차이가 나지?
내용상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실 퀄리티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막도 적절하고 내용이나 음성도 적절한데…….
영문을 모르겠어서 몇 번 두 티저를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보였다.
“첫 번째 티저에는 최효명이 있고, 두 번째 티저에는 없네.”
두 마디 정도 말하는 부분이 그나마 들어간 것이 첫 번째 티저.
두 번째 티저에는 최효명이 아예 없다.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에서나 한 번 보일까 말까.
“설마 이 차이인가…….”
어쨌든 이 확률로 알 수 있는 건 하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류준혁이다. 최효명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70% 근처의 확률로 대박이 날 거라는 소리지 않은가.
다만, 30%라는 확률로 묻힐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기도 하다.
<신유람기>의 티저에 대항하기 위한 건데, 그런 것치고는 대박 날 확률이 현저히 낮다는 건데…….
“……이거 이래도 되나.”
AGD라는 앱으로 보는 확률을 정말 100%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 있다.
“그래도…….”
그때였다.
지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단톡방이었다.
[방수정PD: 수고했어. 1번은 폐기. 2번 수정해서 넘겨.]
그 아래에는 몇 가지 수정점이 이어져 있었지만, 전체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수정은 아니었다.
즉, 지금 안 선에서 진행하라는 말이었다.
“컨펌 온 거 봤냐?”
박주영 선배가 냉큼 숙직실에서 돌아왔다. 정말 눈을 붙이긴 한 건지 부스스하고 눈알도 충혈되어 있었다.
옆에 있던 비타민 음료를 넘겨주자, 당연하다는 듯 원샷을 한다.
그가 모니터 앞에 다시 자리했다.
“수정할 게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빨랑 끝내고 가자. 새벽부터 나와 있었더니 죽겠다.”
“네…….”
마우스를 잡던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 왜 또 그러냐. 뭐가 맘에 안 든다는 투인데?”
“2번 티저로 가는 게 정말 맞을까 싶어서요.”
“방 PD님이 정한 거잖아. 사실 무슨 기준인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별 차이도 안 나잖냐. 그치?”
때마침 이민희도 단톡방을 확인하고 편집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을 번갈아보는데.
지잉―
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엑시트최효명: 피디님 현지 도착해서야 안 오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엑시트최효명: 같이 촬영하는 걸 기대했는데 안타깝네요!]
[엑시트최효명: 혹시 나중에라도 촬영 합류 하시면 인사드릴게요!]
[엑시트최효명: (덩실덩실)]
첫 만남 때부터 생각했지만…… 참 좋은 사람이다. 나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데 깍듯하게 대해 준다.
어릴 적부터 집안 교육 잘 받고 자란 듯한 느낌이 이럴까?
이런 사람이 빛을 못 보다니. 회사가 중소 규모라서 그런가?
실제로 팬들 사이에선 엑시트가 그동안 못 뜬 게 플래티넘이 제대로 매니지먼트를 못한 것 때문이라는 소리도 종종 있었다.
플래티넘도 이 바닥 물을 1, 2년 먹은 회사가 아니라지만, 주력이 엑시트밖에 없고 사장이 아이돌보단 배우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일로 투자를 많이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5년차 아이돌치고는 유명세가 없지만 의외로 팬층이 넓고 단단했다.
그룹 자체의 힘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바탕이 아마도 이런 주변 관리이지 않을까 싶다.
하, 이런 사람이 잘돼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계속.
좀 찌질한가?
그렇게 생각하다 선배에게 말했다.
“방 PD님에게 이야기해도 될까요?”
“뭘? 티저 바꾼다고? 아서라.”
“혼나지 않을까요. 자기 결정에 반론했다고…….”
이민희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하긴, 나도 방 PD는 원체 자기 결정에 반론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익히 안다.
“야, 어차피 큰 차이 안 나는데 그냥 대충 넘어가. 티저 이것만 푸는 것도 아니고, 3차까지 풀 거잖아. 의견 개진은 다음에 하라고.”
가장 선배인 그가 그렇게 결정을 내렸으니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묵묵히 있자, 그는 방수정 PD의 지시대로 티저를 수정했다.
[69%]
아주 소폭 확률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높진 않은 수치였다.
[방수정PD: ㅇㅋ 넘겨.]
최종 컨펌이 떨어졌다.
박주영은 마지막의 손질까지 끝낸 뒤 영상을 서버에 업로드했다.
“편성 확인은 내가 할 테니까, 정리하고 퇴근해. 혹시 모르니 모레도 편집실 잡아 놓고.”
“편집실은 잡아 두면 꼭 쓰게 된다던데.”
“거, 같은 처지에 재수 옴 붙을 소리 좀 하지 맙시다.”
장난처럼 투덜댄 박주영이 먼저 나간 다음, 이민희와 편집실을 정리하고 나왔다.
편집실도 하나 잡아 두고 나오는 길에 이민희가 툭 내뱉듯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도 좀 그렇긴 해요.”
“뭐가요?”
“티저가 영 심심하달까. 끄는 게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로서는 의미심장한 반응이었다.
“뭐,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럴까. 그래야 할 텐데.
아쉬움을 안고서, 나는 확률 보기가 틀리길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 * *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즌2 파리 편, 첫 티저 공개!]
이튿날 오전 9시.
급하게 제작한 첫 티저가 공개됐다.
파리행 강제 취소 파티인 우리 셋은 사무실에 모여 영상 댓글이나 기사 댓글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반응은 괜찮았다.
―더럽게 꼬였더니 그래도 재촬영 빨리 했네?
―헐 준혁이행니뮤ㅠㅠ 나 또 밤에 잠 다 잤다ㅠㅠㅠㅠ
―위의 분 이해합니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남자분들 얼마나 설레겠어요
―나 고등어 3년인데 내 동년배 다들 류준혁 좋아한다 형님 사랑합니다...
―어르신 쫌;;;;
―근데 새로 온 애는 누구길래 얼굴 한번 제대로 안 보여줌?? 신비컨셉??
티저 반응을 실시간 체크하며 단톡방에 올리는 중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민희가 말했다.
“준혁 씨는 남자들한테도 인기가 대단하네. 신기하다니까요?”
“요새 뭐 덕질할 때 성별 따지나요. 류준혁 씨는 남자가 봐도 멋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여자 팬이 더 많았는데, 당잠사 나온 뒤론 남자 팬도 확 늘어났달까.”
“뭐, 남녀 팬이 골고루 늘었죠.”
그렇게 평을 하던 때였다.
옆자리에서 피곤한 얼굴로 기사 체크를 하고 있던 박주영 선배가 툭 내뱉었다.
“음…… 근데 영 좀 그렇네. 대한이 네 말이 맞았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이에요?”
“반응이 나쁜 건 아닌데, 티저 조회수가 확 늘질 않아.”
그 말대로였다.
시즌1 티저가 나왔을 때는 1시간 만에 조회수가 만 자리를 가볍게 넘어섰었다.
아직 입사 전이었지만, 기사에서도 예능 티저치고는 말도 안 되는 수치라고 떠들어 댔었다.
근데 이번 시즌2는, 본의 아닌 사고로 인해 시작부터 화제성을 잡았음에도 티저 공개 3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조회수 1만을 찍지 못하고 있었다.
“평은 좋지만 폭발력은 없어……. 그렇다는 건 결국 신규 유입이 약하다는 거지.”
티저는 예고편으로서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 줘야 한다.
한데, 지금은 영 그렇질 못했다.
여기저기 공유되고 있긴 하지만, 그 확산력이 예상에 크게 못 미쳤다.
내 예상대로…… 아니, AGD 앱의 확률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방수정PD: 조회수가 잘 안 오르네. 2차 보도자료 돌리고 기사 올리라고 해.]
단톡방의 지시대로, 제작해 둔 2차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내고 연락을 돌렸다.
[박주영선배: 1시간 뒤에 기사 올라갈 겁니다.]
[방수정PD: ㅇ]
메마른 반응이 돌아왔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 주면 덧나나.
원래대로면 박주영 선배는 내일 티저 준비로 편집실에 감금될 예정이지만, 나랑 이민희는 내일 정도에 추가 출국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티저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해서, 일단 국내 대기하면서 추가 조치를 취하자는 식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파리 현지 촬영 인원이 부족해지긴 하겠지만, 이미 출국한 사람들끼리 좀 더 수고하자는 방향이 되었다.
방수정 PD나 유수현 작가도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반응을 체크하고 있는지, 지시가 틈틈이 떨어졌다.
숨 좀 돌릴까 싶으면 기가 막히게도 지시하는 게 몰카라도 달아 둔 솜씨였다.
메신저로 지시가 오면 메신저로 보고하고 컨펌을 받고, 그렇게 바삐 점심도 못 먹은 오후에,
[방수정 PD: 2차 티저 스크립트 보냈으니 제작해서 보고해.]
첫날 촬영분을 가편집한 영상과 함께 추가 지시가 날아왔다.
공항에서의 첫 만남, 파리 도착한 다음 미션 시작을 위한 간단한 게임 등의 자잘한 클립들이었다.
[박주영선배: 2차 티저 다음 주 아니었습니까?]
[방수정 PD: 첫 티저 반응이 영 그렇잖아. 추가로 해. 편성부랑 이야기해 놨으니까.]
“편집실 잡아 두면…….”
“아, 네. 죽을죄를 졌습니다. 죽여 주세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박주영 선배였다.
짬밥이 어디 가지 않는지 대처가 빠른 방수정 PD였고, 그런 그녀의 성미를 잘 아는 박주영 선배였다.
둘의 완벽한 합작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을 보자 저녁 9시.
“그래…… 이 시간에 보냈다는 건 퇴근할 생각 말고 지금부터 편집하라는 거지?”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난 다음이었지만, 언제는 뭐 안 그랬다고.
나나 이민희가 메마른 웃음을 보이는 사이, 선배는 한숨을 진득하게 내쉬고는 일어섰다.
“어쩐지, 편집실 하나 비어 있다고 아까 와서 귀띔해 주더라.”
“타이밍 죽여주네요. 누가 편집실을 잡으라고 한 거야, 대체?”
“니예니예.”
이민희와 나도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그렇게 편집실 감금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밤새 스크립트대로 3개의 티저 가안을 만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파리로 전송했다.
대답이 온 것은 그로부터 1시간 뒤였다.
[방수정 PD: 3번으로. 몇 부분 고치자.]
또 주르륵 수정 지시가 왔다.
“어…… 이거, 이 수정대로 하면 최효명 씨 나온 부분은 전부 잘리는 것 아니에요?”
3번 안은 파리에 도착하여 숙소에 입성하는 장면이었다.
숙소는 독채를 통으로 빌렸다. 그런 만큼 파리의 주택이라는 이국적인 감각을 살리는 게 2차 티저의 초안이었다.
당연히 3개의 후보군 모두 최효명의 활약이 담겨 있었다.
멤버 중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사용할 줄 아는 만큼, 숙소 주인과의 소통과 통역을 하는 장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수정 PD는 그 신 전부를 류준혁이나 다른 멤버들 신으로 교체하자고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악의가 있다고 봐야…….”
이민희조차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선배도 반론할 생각은 없는지, 인상을 구긴 채 단톡방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최효명이 그렇게 싫은가.
“이 정도면 심증이 아니고 확증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악의라곤 하지 말자. 방 PD님이 사심으로 방송 만드는 분은 아니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민희와 선배의 대화를 들으며, 난 모니터 속에 띄워 둔 3번 안을 보았다.
마우스를 잠깐 빌려 넘겨 가면서 다시 확인했지만, 역시 최효명을 전부 지우는 방향의 수정안이었다.
[66%]
모니터 위에 나만 보이는 확률이 떠 있었다.
이 티저대로 나갔다간 40% 확률로 묻힌다. 첫 티저와 별다를 것 없는 낮은 수치였다.
박주영 선배는 일단 방수정 PD가 시킨 대로 수정을 했다.
그가 티저를 건드릴 때마다 실시간으로 확률이 오르락내리락했다.
[67%]
[68%]
[66%]
그러나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
마지막 수정까지 마치고 CG 처리까지 마무리되었을 때는.
[65%]
도리어 처음보다 확률이 떨어진 채였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최종본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선배,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한번 고쳐 봐도 까요?”
“뭐? 미쳤어?”
선배가 눈을 부라렸다. 자칫 잘못하면 팀장인 방수정 PD에 대한 항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아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티저, 1차 때랑 별다르지 않은 반응일 거예요. 그때처럼 별 반응 없이 묻힐 거라고요.”
“…….”
“한 번만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한번 고쳐 보고, 그래도 별반 다르지 않다면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이 최종본대로 따르겠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최종 편집에 대한 권한은 없다. 권민헌 PD에게도 있을까 말까 한 권한이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참 고민하는 얼굴이던 박주영 선배에게, 가만히 듣고 있던 이민희가 이야기했다.
“그래요, 선배님. 이상하면 우리만 보고 넘기면 될 일이잖아요. 한번 해 봐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요.”
“……아, 나 젠장.”
선배가 욕을 씹어뱉고는 마우스를 잡았다.
“그래, 어떻게 해 줄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서, 나는 머릿속에만 굴려 둔 수정점들을 이야기했다.
최효명의 활약이 좀 더 두드러지는 방향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출연진을 아주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더니…….
[94%]
티저의 확률이 단숨에 상승했다.
‘94%’면, 대박이 안 나는 게 이상한 수치였다.
“어떻습니까?”
“훨씬…… 좋긴 한데.”
“화면도 다채로워지고…… 새 멤버의 매력도 더 사는 것 같아요.”
선배도 우리랑 의견이 같았다. 자막 작업도 안 된 어설픈 영상이었지만, 이 상태만으로도 방 PD의 티저보다 낫다는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큰 벽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걸 방 PD님에게 들이밀 수는 없잖아.”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문제가 있네요.”
방수정 PD의 고집을 어떻게 꺾느냐 하는 문제에 빠지고 만 것이다.
나도 티저를 고칠 줄만 알았지, 이 티저를 내보낼 대책은 없었으니까.
결국 우리끼리의 추억으로만 남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방금 티저, 다시 보지.”
불현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리가 전부 문을 돌아보았다.
서인하 부장이 거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