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AGD
[AGD(Analysis in Galaxy Data)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애플리케이션을 시작합니다.]
[사용자 확인을 진행합니다.]
[지문을 인식해 주세요.]
[인식률 0%…….]
뭐? AGD? 애널리…… 갤럭시 데이터?
집…… 아니, 방송사 근처 좁은 원룸이니 집이라기엔 너무 초라한가.
어쨌든 원룸에 도착해 괴상한 푸시를 터치하자, 수상한 이름의 앱이 실행되더니 지문 인식을 요구했다.
뭐지, 이거.
난 이런 걸 깐 적이 없는데?
이게 뭐 스미싱 앱인가 하는 그건가? 아님 해킹?
지문 인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의 고민 끝에.
[지문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결국, 호기심이 승리를 거두었다.
[사용자 ‘강대한’ 님 인증되었습니다.]
[첫 ‘확률 보기’ 사용을 훌륭하게 마치셨습니다.]
[사용 내역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N]
지문 인식이 완료되자 연거푸 메시지가 떴다.
다시 한 번 호기심이 승리를 따냈다. 나는 ‘Y’를 꾹 눌러 터치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면서 [마이 페이지]라는 글자가 눈에 보였다.
[사용 내역 : ‘서인하 부장 기준에 맞는 캐스팅 제의’]
이거…… 뭔데 서인하 부장 이름까지 적혀져 있지?
그때, 확률을 봤던 때가 떠올랐다.
분명…… 자세한 사항은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하라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스미싱이 아니라 그 확률하고 상관이 있는 건가?
좀 더 뒤져 보다가 앱에 대한 설명을 찾았다.
[AGD 애플리케이션 소개]
[안녕하세요! AGD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AGD 개발팀은 전 차원의 빅데이터를 공유하며, 아카식 레코드 접속 모듈을 기반으로 최적의 확률을 찾아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AGD와 함께 100% 성공하는 삶을 쟁취하세요!]
어, 그래. 다시 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일단 선택한 게 아니라 당하지 않았나?
뭐…… 그건 차치하고.
아카식 레코드라는 게 뭔지는 대충 안다. 세상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일종의 신적인 클라우드 서버 같은 것 아닌가?
그런데, 거기 모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확률을 알려 준다고……?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혹시 몰라 앱을 몇 번 더 뒤졌다.
다행히 아래쪽으로 상세한 소개와 함께 사용법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암만 봐도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지,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앱 사용자가 원하는 경우의 확률을 알려준다.
그 확률은 사용자가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 시점까지 보이며, 그 시점을 사용 완료 시점이라 한다.
사용 완료 시 사용 내역에 1회 기록된다.
저번에는 ‘100%’에 도달하여 서인하 부장에게 승인을 받자 확률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승인을 받은 시점에서 나는 확률을 볼 필요성이 없어졌고, 사용 완료 시점이 된 것이다.
확률은 상황의 변수에 따라 정확도가 실시간으로 바뀌는데, 정확도를 높이려면 사용자의 이해도가 중요하다는 모양이다.
내가 얼마나 상황을 연구하고 공부하느냐에 따라서 확률이 정확해진단 소리다.
앱을 좀 더 살폈다.
카테고리는 총 3개.
[앱 소개], [상점], [마이 페이지].
[마이 페이지]에는 오늘까지 사용한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앱 소개]는 눈이 빠질 만큼 읽어 댄 설명문.
“[상점]……은 안 들어가지네.”
[권한이 없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뜰 뿐이다.
거북목이 우려될 자세로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듯이 살펴봤지만, 얻어 낸 정보는 그게 다였다.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터치해 앱을 종료하려는데, 마치 배웅 인사라도 되는 양 메시지가 떴다.
[AGD는 강대한 님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올바른 사용법을 숙지하여 성공의 길을 걸으세요!]
이윽고 앱 종료와 동시에 메시지가 사라졌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결심했다.
“한번…… 사용해 볼까.”
이유도 정체도 모르겠지만, 내 손에 들어온 이 앱.
어쨌든 이 앱 덕분에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고, 그 결과 성공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지.”
앞으로 앱이 또 어떻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한번 도박을 걸어 보기로 했다.
* * *
파리행 비행기는 오전 10시.
출연진 집합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제작진은 최소 한 시간 전에는 공항에 모여 촬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샤워까지 마친 나는, 내일을 위해 알람까지 정확히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돌연 걸려온 전화가 내 잠을 깨웠다.
“여보세요?”
“아직 안 일어났냐? 미안한데 지금 깨서 편집실 좀 잡아야겠다.”
“예?”
박주영 선배였다.
혹시 몰라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5시가 맞았다. 그런데 지금 가라고?
“오늘 출국이잖아요? 그런데 편집실요?”
“너랑 나는 오늘 출국 안 해. 새 티저 편집 들어가야 하니까, 일단 빨리 가서 편집실부터 잡아. 우리 사무실 PC로는 속도가 딸려.”
나도 지금 바로 출발할 거야.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선배는 전화를 끊었다. 이해는 되었다. 선배 집은 일산이니까 DMC까지 오기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일단 대충 세수를 하고, 잡히는 대로 옷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방송사까지 뛰어가면 10분이 안 걸린다.
하지만 역시, 편집실은 이 시간에도 만원이었다.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편집실들을 확인하고서, 일단 관리 직원에게 사용 가능 시간을 물어 둔 다음 의자에 앉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박주영 선배도 표정에 헐레벌떡을 써 붙인 채로 나타났다.
“자리 없냐?”
“지금부터 30분쯤이면 자리 날 거래요. 일단 대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상을 구기며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기다리는 중에 자판기에서 뽑아 둔 커피를 그에게 건넸다.
“새벽부터 무슨 일이에요?”
“뭐긴 뭐야. 방 PD가 또 일정을 바꿔서 그렇지. 내일 새 1차 티저 쏘기로 했어. 그래서 첫 촬영분으로 티저 만들어서 컨펌받아야 해.”
박주영 선배가 그 역할을 하고, 나는 보조를 하는 식이었다.
“티저는 다음 주 아니었어요?”
“모레 <신유람기> 티저가 뜬다나 봐. 걔들보다 먼저 올려야 한다는 거지.”
<신유람기>는 라이벌 방송사라 할 수 있는 DVN의 주력 예능이다. 현재 시즌4 촬영이 끝나고 편집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티저가 뜨는 모양이었다.
“그건 좀 큰일이긴 하네요.”
“그래, 그래서 나도 이해는 한다만. 아오, 그래도 오늘 안에 티저 편집하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아니, 명색이 여행 예능이 여행도 안 간 채로 티저라니. 그것도 내가 권 선배 대신이라니.”
우리 <당잠사> 팀의 메인 서브는 권민헌 PD였고, 티저나 클립의 편집은 늘 그의 몫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현지 로케를 나간 상태라 박주영 선배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박주영 선배는 3년차 PD로, 3년 내내 방수정 PD나 권민헌 PD 밑에서 일해 왔다고 했다.
그런 만큼 믿고 맡기는 모양이다.
“어쩌겠어요. 까라면 까야지.”
“내가 그 소리를 제대하면 안 들을 줄 알았단 말이지. 어휴.”
박주영 선배는 끝까지 투덜대더니 커피를 원샷 하며 일어섰다.
“촬영 데이터 찾아올 테니까 자리 비는 대로 앉아 있어.”
그가 밑층으로 내려간 사이 팀 단톡방을 살폈다.
[방수정PD: 주영이랑 대한이는 티저 편집으로 국내 체류. 나머지는 기존대로 집합.]
[유수현작가: 작가진 중엔 민희가 남아서 자막 체크해 줘. 비행기는 하루 미루고.]
[이민희작가: 네.]
5시 조금 넘은 시점에 오간 메시지들이었다. 이 시간에 당연하다는 듯 깨어 있다니. 참으로 방송사 직원스럽다.
난 아직 멀었나?
아무튼.
안 읽은 메시지 중에는 이민희한테 온 것도 있었다.
[이민희작가: 편집실 나왔어요?]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답변했다.
[예. 빈 데가 없어서 아직 대기하고 있어요.]
[이민희작가: 사무실에서 자료 챙겨서 갈게요.]
그때, 편집실 하나의 문이 벌컥 열렸다. 한 시간만 놔두면 좀비가 될 것 같은 꼬질꼬질한 상태의 PD 한 명이 기듯이 나왔다.
“대기 중이에요?”
“예. 끝나신 건가요?”
“끝 안 내면 내가 끝나겠다 싶어서 끝냈어요. 쓰세요.”
와…… 말에 담긴 뼈가 보통 뼈가 아니네.
방송가의 격언이라 해도 믿을 명언을 남긴 채, 그는 하품을 쩍 하고 사라졌다.
편집실을 차지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가 차례로 도착했다.
“새벽부터 고생들이네요.”
“같은 처지에 동정은 사양하죠. 뭐.”
박주영 선배나 이민희나 나나, 다들 파리는 처음이었다. 촬영이라곤 해도 여간 설렌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세 명이 이렇게 편집실에 나란히 모이게 된 것이다.
슬픈데 웃겼다.
“방 PD님이 프랑스 도착하기 전까지 시안 보내라고 했으니까 한번 힘내 봅시다.”
“에휴. 네.”
좁은 편집실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는 첫 모임의 촬영본을 넘겨 보면서 티저로 삼을 부분을 찾았다.
이미 촬영하면서 방수정 PD가 티저로 쓰려고 골라 둔 몇 군데 지점이 있었다.
잘 차려진 한정식 식당에 둘러앉아서 출연진들이 서로의 근황을 묻고, 방수정 PD에게 여행의 콘셉트를 듣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출연진 간의 토크를 근간으로 한 첫 촬영인데, 방 PD는 유독 기존 출연자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어 했다.
“류준혁이라는 배우, 봐도 봐도 목소리 하나는 쩐단 말이야.”
“그쵸. 얼굴도 잘생겼지만, 여자 팬들이 많은 이유는 저 목소리 때문이죠.”
“여자들이 좋은 목소리에 사족을 못 쓰지.”
“어라, 여자가 그런 말 하면 몰라도 남자가 요새 그런 말 하면 문제 생길 수도 있어요.”
괜히 찔끔한 박주영 선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난 묵묵부답하기로 했다.
“시즌1 때도 반응이 좋았으니까, 류준혁을 첫 티저 중심으로 놓아도 괜찮긴 할 것 같은데요.”
외모로야 30대로 보이지만 벌써 40대에 접어든 류준혁은 제대로 출연한 첫 예능이 <당잠사>였다. 그의 출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방수정 PD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노력만큼 시즌1에서 그는 활약해 주었다. 원체 여성 팬들이 많았지만, <당잠사>에서 보인 그의 로맨틱한 언행을 보고 팬이 된 이들도 많았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같이 한 컷에 담기기만 해도, 케미가 폭발한다는 평을 괜히 듣는 게 아니다.
하지만.
촬영분을 한참 돌려본 다음에 나는 조금 의문을 느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괜찮긴 한데…… 좀 심심할 것도 같아서요.”
“그래?”
마우스 휠을 돌리면서 박주영 선배가 되물었다.
“시즌1에서 보여 준 모습의 연장선이니까, 팬들 아니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어필 못 할 것 같기도 해서요.”
“음…… 저도 그렇게는 생각해요.”
옆에서 이민희가 거들었다. 선배는 휠을 몇 번 더 감아서, 티저로 쓸 만한 부분들을 표시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그런 사고도 있었으니 안전하게는 가야지. 어쨌든 반응은 좋을 테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안정적인 장면이니까.
우선은 방수정 PD의 가안대로 티저를 만들기로 했다.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가 3분가량의 티저 콘티를 짜는 동안 나는 CG실로 내려갔다.
참 슬프게도, 이 이른 아침에도 CG실은 대낮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당직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묻자, 이미 연락을 받았다는 듯 나의 방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보자, 1시 정도까지 주시면 CG 작업에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직원이 일러 준 시간을 박주영 선배와 이민희에게 공유한 뒤, 우리 셋은 티저 편집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빡빡한데도 선배는 익숙하게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어 티저를 만들어 냈다.
그사이 단톡방에는 출국한다는 메시지가 떴고, 우리는 건조하게 인사말만 남겨 두었다.
“컵라면이나 먹을까.”
“제가 끓여 올게요.”
“그런 거 여자가 하게 놔두면 안 되죠.”
내가 농담처럼 받으며 그녀를 대신해 물을 받았다. 이윽고 컵라면을 모니터 앞에서 나란히 먹은 것이 10시 정도.
애매한 아점을 대충 치우는 사이 박주영 선배의 편집이 끝났다.
몇 차례 돌려서 확인한 다음 CG실에 연락하여 조금 이르게 자막 작업을 맡겼다.
“하나 더 만들자.”
방수정 PD가 골라 둔 장면을 티저 후보를 하나 더 만드는 중에 CG 작업이 끝난 영상이 도착했다.
새로 만든 두 번째 영상을 CG실에 다시 맡기고 그사이 자막을 확인했다.
그렇게 오후 4시까지 편집실에서 붙어사는 동안 티저 2개가 만들어졌다.
아니, 정확히 하면 티저의 티저.
“프랑스 도착이 언제였지?”
“우리 시각으로 4시 반이니까…… 30분 남았네요.”
선배가 팀 클라우드 서버에 2개의 영상을 올린 다음, 단톡방에 이를 알렸다.
“어차피 확인하는 덴 30분 더 걸릴 테니까 일단 좀 쉬자. 나 눈이 뻑뻑해서 숙직실에서 좀 누워 있다 올게. 두 사람도 좀 쉬어.”
“네.”
“쉬세요.”
우리 중 제일 고생한 것은 아무래도 선배였다.
그는 아침보다 더욱 초췌해진 얼굴로 편집실을 나갔고, 곧 이민희도 사무실에 체크할 게 있다고 내려갔다.
난 편집실에 남았다. 언제 도로 쓸지도 모르는데, 편집실은 잡아 두어야 했다.
“……한번 다시 살펴볼까.”
할 일도 없어서, 박주영 선배가 만든 2개의 티저를 돌려보았다.
둘 다 3분 내외의 영상.
방 PD의 의도대로 류준혁의 매력이 잘 살아났고, 시즌1에서도 합을 맞춘 출연진과의 케미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심심한데…….”
자막까지 올라간 완성본을 봐도 어쩐지 심심했다.
지난 시즌에 본 장면이 이번에도 반복될 뿐인 것 같은데. 정말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티저에는 최효명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비치지는 않고, 두어 마디 말을 한 것이 다였다.
본 촬영에서는 최효명이 꽤 활약했는데, 방 PD는 왜 티저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그 활약을 본방에서나 보여 줄 생각인 걸까?
“더 좋은 티저가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티저들이 나가서 대박 날 확률이 얼마나 되려나.”
그 순간,
[72%]
화면 위로 확률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