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성공할 확률 100%-2화 (2/200)

2화 동기화 완료

내가 회의실로 달려가 최효명 출연 확정을 알린 뒤로, 대책회의는 바람처럼 전개됐다.

“자, 일단 회의 끝! 빨리 빨리 전화들 돌려!”

그렇게 말한 서인하 부장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쥐어 잡고 회의실을 나가려다가 멈춰 서더니 내게 손짓을 했다.

뒤이어 맞선임인 박주영 선배도 불려왔다.

“강대한, 너랑 주영이, 둘이 가서 최효명 출연계약서 받아와.”

“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방수정 PD가 끼어들었지만, 서인하 부장이 눈을 부라렸다.

“가긴 어딜 가? 너랑 수현이는 나하고 올라가야지.”

이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냔 듯이 푸념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위쪽. 즉 편성부에 간다는 뜻이다.

예능 제작에 관해서는 서인하 제작부장의 권한이 남다를 수밖에 없지만, 방송국도 엄연한 회사. 편성부나 다른 부서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저질러 놓은 일도 있고 해서 방수정 PD와 유수현 작가는 별말 못하고 서인하 부장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방 PD는 박주영 선배에게 기어코 한마디를 남겼다.

“네 후배, 잘 챙겨.”

내게 들릴 만큼 노골적으로 큰 목소리다.

또 나서면 너부터 가만 안 둔다는 말이 뒤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박주영 선배는 언제나처럼 꾸벅 고개만 숙여 보였고, 방 PD는 마지막까지 나를 흘겨보면서 회의실을 나갔다.

“어휴, 무서워라.”

서글서글하게 생긴 선배가 금세 얼굴을 풀고 돌아보았다.

“대한아, 신경 쓰지 마라. 하루 이틀이냐.”

“그러게요. 그 자식 캐스팅하자고 고집 부린 건 방 PD님이면서 엉뚱한 데다 성을 낸다니까. 대한 씨, 신경 쓰지 마.”

유수현 메인 작가 밑에서 나랑 비슷한 처지인 서브 작가 이민희가 거들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건방지게 나선 건 맞잖아요.”

“하긴, 아까 나댈 땐 내가 다 쫄렸다니까? 다음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인마.”

이런 똘끼가 있는 줄은 몰랐다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선배는 그다지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랑 3살 정도 차이나는 그는 사람으로서도 선배로서도 정말 좋았다.

그래 봤자 몇 개월 전이지만, 신입 때부터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는데, 이번 <당잠사>부터는 현장도 같이 다니게 되어 더욱 돈독해졌다.

“그래도 뭐, 대한 씨 아니었으면 쳇바퀴 돌 듯이 회의 길어졌을걸요? 방 PD님은 원래 자기가 찍은 애 아니면 안 쓰려고 하잖아요.”

하긴, 나도 방수정 PD에 대한 소문은 입사 전부터 듣긴 했다.

캐스팅 권한을 간섭받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물론 ‘여행 예능의 마술사’란 별명이 붙을 만큼 그 캐스팅이 프로그램에서 빛을 발한다지만, 워낙 강성으로 밀어붙이는 탓에 본의 아니게 회사나 외적으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번 건은 사고다.

다만, 그 아이돌을 기용하려고 한 것은 방수정 PD이니 책임 소재에서 아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 방수정 PD와 몇 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게 유수현 작가인데, 그녀의 서브가 바로 이민희였다.

이민희는 나랑 나이는 같아도 경력이 훨씬 오래되었다. 더 많은 일을 겪었을 테니 더 많은 뒷이야기를 알고 있으리라.

방수정 PD에 대해서도 나보다 더 잘 알 수밖에.

“덕분에 대본이나 구성 다 뜯어고쳐야 하지만, 작업이라도 빨리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이민희는 싱긋 웃더니 새끼작가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갔다.

“우리도 움직이자, 대한아.”

“예.”

선배가 계약서를 출력하는 동안, 난 엑시트 매니저에게 다시 연락해 곧장 약속을 잡았다.

그쪽도 상황이 급박한 걸 알고 이미 최효명을 회사로 불러들인 상태였다.

우린 자료와 기재들을 챙긴 뒤 엑시트의 회사로 향했다.

* * *

다행히 NBS는 상암동 DMC에 있고, 엑시트 회사는 망원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강남이었으면 끔찍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차로 내달리기를 약 30분.

엑시트의 회사 플래티넘 1층에는 낯익은 얼굴의 매니저가 나와 있었다.

엑시트의 매니저 송일현이었다.

“어서 오세요! 먼 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는 저희가 해야죠.”

박주영 선배가 먼저 송일현과 인사를 하고, 나도 악수를 했다.

“직접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저희 엑시트를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사치레라지만, 서로 간에 제법 진심이 느껴졌다. 상부상조라는 게 이런 걸까.

안내를 받아 건물로 들어갔다.

플래티넘은 중소 규모의 회사라서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 건 아니었다. 2개 층을 쓰는데, 그중 5층에 회의실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거기에는 기다란 장신의 미청년이 앉아 있었다. 최효명이었다.

그는 우리를 발견하자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사실 최효명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워낙 TV 출연이 적다 보니 공연 영상을 몇 번 본 전부여서 더 낯선 것 같기도 하다.

이래서 인지도, 인지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잠시 앉아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자, 인지도와 사람 됨됨이가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리한 요구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라서…….”

“아니에요. 저로서는 좋은 일이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세도 반듯하고 눈빛이나 목소리도 맑다. 노래도 잘 부르는데 이런 사람이 왜 여태까지 대박을 못 터트린 건지.

뭐, 덕분에 내가 기회를 얻었지만.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숨김없이 그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효명도 다짐하듯 말하고, 우리는 회사 대 회사로 계약서를 나누었다.

“그럼…… 일단 인터뷰 영상 좀 따겠습니다.”

“아, 촬영 시작인가요?”

“예. 아무래도 여유가 없어서요.”

“이런 경험이 잘 없어서 참……. 어색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쑥스럽다는 듯 웃는 얼굴이, 남자인 내가 봐도 잘나 보였다. 이래서 잘생기고 봐야 하는 건가 보다.

나는 새삼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간단한 인터뷰 영상을 따고, 방송 콘셉트를 전달하는 영상도 찍었다.

길진 않지만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저녁쯤에야 정리가 끝났다.

“그럼 이틀 뒤에 알려 드린 식당으로 오시면 됩니다. 시간은 아시죠?”

“예. 6시였죠? 다른 출연자분들은 저희 효명이가 합류한다는 걸 아시나요?”

“저희 팀에서 아마 연락 다 돌렸을 겁니다.”

“그분들이 싫어하지 않으셔야 할 텐데…….”

1층까지 우리의 배웅을 나오면서, 송일현 매니저는 겸손한 투로 그렇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직업으로 선입견 가지실 만한 분들은 아니니까요. 효명 씨더러 열심히만 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이렇게 효명이 챙겨 주신 점, 이 은혜는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강 PD님.”

송일현은 우리가 떠날 때까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괜히 부담스럽네요.”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머쓱함을 느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감사를 받을 일을 한 건 아닌데 말이에요.”

“저쪽 입장에선 큰 힘을 받은 거지. <당잠사>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인지도가 미쳐 날뛸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 제 덕인가요? 본인이 잘한 건데.”

“새카만 후배 놈이 선배 건너뛰고 고맙단 소리 들었으면 ‘아, 감사한 일이다’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진지하냐? 그냥 편하게 가.”

말을 투덜대는 것 같았는데, 정작 그렇게 말하는 선배는 어딘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응? 아니, 뭐랄까. 그냥 감인데, 어쩐지 시즌2가 매우 잘될 것 같아서 말이야.”

“처음부터 이렇게 삐걱대는데요?”

“다 액땜이지, 액땜. 나중에 얼마나 잘되려고 벌써부터 이렇게 이슈가 많은가 싶어서. 원래 방송계엔 그런 징크스가 있거든.”

여태껏 처음 들어본 징크스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어가자.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눈에 확률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

그 확률 덕분에 일단 그 서인하 부장 앞에서 내 의견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과연 프로그램이 잘될 확률도 보일까?

“…….”

눈앞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지.”

“뭐라고?”

“아니요. 혼잣말입니다.”

난 괜한 생각을 머리를 저어 버리고서 앞을 보았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묘한 설렘과 기대감은 가슴에 남아 있었다.

* * *

준비 기간은 금방 지나갔다.

출연진들끼리의 첫 미팅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모두가 이미 아이돌의 사고를 알고 있었고, 대타로 합류하는 최효명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전달해 둔 상황.

물론 최효명의 인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그게 누구냐는 식으로 묻는 출연자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출연 자체에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최효명은 첫 촬영 때부터 출연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식집에서 이루어진 전체 미팅에서부터 낯가림 없이 출연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걸더니, 촬영을 마쳤을 때는 중견급 배우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서 다음에 보자며 인사할 정도였다.

하기야, 잘생긴 미청년이 싹싹하게 구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최효명 대단하네요.”

내 옆에 서 있던 이민희가 감탄을 했다.

“전에도 MC로서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여기서도 빠르게 적응할 줄은 몰랐어요.”

“최효명을 원래 알고 있었어?”

“제가 이래 봬도 다른 방송국에서 아이돌 프로그램 했었잖아요. 엑시트 신인 시절에 한번 본 적 있어요.”

“아, 그랬지?”

이민희와 박주영 선배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출연진들과 인사를 나눈 최효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내게 손을 내민다.

“아니, 제가 뭘. 저보다는 방 PD님에게 인사를 하셔야죠.”

“하하, 안 그래도 뵈려고 했는데 안 보이셔서요.”

“아마 저쪽 제작진 차량에…… 아, 저기 계시네요.”

방수정 PD는 역시 주요 출연자를 마크 중이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최효명은 냉큼 그쪽으로 가 싹싹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딱히 낯을 가리지 않는 것 같더니, 정말이지 인상 깊은 친화력이었다.

“효명이도 기합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웬 목소린가 싶었는데, 어느새 곁에 송일현 매니저가 와 있었다.

“원랜 저렇지 않은가요?”

“낯을 가린다거나 하진 않는데, 오늘은 특히 더 그런데요? 연예계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어제부터 이야기하더니, 각오가 대단하네요.”

그래서 그날 촬영은 최효명 덕분에 아주 성황리에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이틀 뒤의 파리 로케이션. 즉 본편이다.

출발하기 전, 우리 제작진에게 아주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체력 관리들 하고, 내일 오전에 만납시다.”

사실상 휴식이라기엔 너무도 짧은, 하루 전날 저녁부터의 짧은 휴식.

하지만 몇 달 내내 달려온 우리들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방수정 PD가 짐을 싸 들고 먼저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라는 시늉을 했다.

조심히 복도로 나가자 방수정 PD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최효명 체크 잘해. 부장님은 맘에 들어 하시는 것 같지만, 나나 수현이는 여전히 경계하고 있으니까. 어제 첫 촬영에서도 걔가 여기저기 끼어든 탓에 편집이 매우 귀찮아졌잖아. 그런 초보가 방송에서 사고 치면 더 한도 끝도 없다는 거, 모르진 않겠지?”

그녀가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툭 치며 끊어 말했다.

“걔가 사고 치면, 부장님이 가만히 있어도 내가 너에게 책임을 물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네.”

그녀는 곧 사무실을 나온 유수현 작가와 함께 먼저 퇴근했다.

내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박주영 선배가 슬그머니 손짓했다.

“까였냐? 한 잔, 콜?”

“아니요. 오늘은 들어가서 쉬겠습니다. 체력 관리해야죠.”

“쳇. 재미없기는.”

그래도 선배는 별말 없이 먼저 퇴근했다.

나는 퇴근길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며 방수정 PD의 말을 곱씹었다.

다른 제작진들 사이에선 최효명의 평이 좋았다. 태도도 좋았고 멘트 치는 센스도 괜찮았다.

방수정 PD는 왜 그렇게 맘에 들어하지 않는 걸까.

“……아니지, 내가 맘에 안 드는 건가.”

막내 PD 주제에, 자신의 역할을 빼앗아가서? 그런 생각을 하자, 어떤 감정이 치민다.

미안함? 아니다.

질투심에 대한 작은 반항심이었다.

나도 연속해서 히트작을 만들어 내는 방수정 PD를 존경했던 사람이다. 입사할 때도, 처음 이 팀에 합류했을 때도 동경심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밑에서 일하다 보니 보지 않아도 될 것들도 많이 보였다.

그녀는 감이 좋고 머리가 빠르지만,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독단적인 판단이 잘 맞아떨어졌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진즉에 퇴출당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평도 있었다.

물론 조직 사회인 만큼 그런 리더십이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내 처지에서는 작은 불만도 생긴단 말이지.

어쨌거나 처음 존경심은 이제 와 많이 희미해졌다.

이제 그녀를 대할 때면 존경심보다는 어떤 열망이 자리한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저 사람보다 더 성공하고 싶다.

아니, 비단 방수정 PD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성공하고 싶다.

여느 때처럼 피곤함에 푹 절은 퇴근길이, 오늘만큼은 마치 전투를 치를 예정인 병사처럼 한껏 고양되었다.

지잉―

그때,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꺼내 확인하자 웬 알람 푸시가 보였다.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AGD(Analysis in Galaxy Data)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용자 인증 후 정규 사용이 가능합니다.]

[AGD와 함께 100% 성공 가도를 달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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