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260화.
정시우에게 있어 힘이란 자유를 위한 수단이며, 동시에 그의 목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강했던 그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추구하게 된 목적. 정말이지 무수히 많은 일을 겪었고, 개중 버릴 것과 취할 것을 택해 결국 그는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아마 정상이 맞을 것이다.
[주인을 잃은 세상은 천천히 영락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으으으음…… 아니,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걸.”
이제 그 누구도 정시우의 존재에, 그와 그의 지인들과 그를 알고 있는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에 태클을 걸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정시우는 지구로 돌아올 생각을 했다. 절대적인 힘을 취한 지금에야 비로소, 그는 힘에 대한 미련을 놓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한 가지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비단 헥토에게만 해 주어야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 먹을 거 다 먹고 정리할 거 다 정리했으면…… 끄윽, 이제 지구로 돌아가자.”
“배불러서 못 움직이겠어요, 오빠. 어부바.”
“갸아아아아악! 이 녀석 어리광 장난 아냐!”
물론 그의 존재감, 격, 마나가 지구를 아득히 초월한 지금 그것을 모두 그대로 이끌고 지구로 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가능해야 할 터였다. 그래서 정시우가 따로 고민하던 방법까지 있었다.
[고유능력 폭력이 발동합니다. 절대적인 힘은 그 누구도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짜잔! 절대란 없었다. 설마 했던 그의 새로운 고유능력이 세상 모든 힘에 관여하는 절대적인 에디터라는 사실을 깨달은 정시우는 그 힘을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속들을 대상으로도 발동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았고, 결과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잠깐만, 얘기가 다른 것 같은데! 왜 내가 이 무례한 인간을 따라가야 하는 건데!]
“자, 너도 이리 와. 인간으로 만들어 줄게.”
[누가, 누가 너 같은 존재로…….]
[라이아…… 너 조금 기뻐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거든!]
신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인간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을 분출했다. 그들의 근원에만 묶여 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며 비로소 과거 잃었던 여러 가지를 되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며 용세하가 감탄해 중얼거렸다.
“라이아는 굉장한 정통파 츤데레군요…… 그런데 대체 형님한테 뒈지게 맞았으면서 왜 저런 감정이……?”
“세하, 너는 아직 몰라도 되는 영역이다.”
“뭐야, 케이나. 왜 내 눈을 가리는 거야? 뭐야?”
세트나크에서 완벽히 벗어나, 그 누구도 정확히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존재…… 정시우만큼이나 자유로운 존재로 탈바꿈한 이래 케이나의 용세하에 대한 접근도 조금 노골적으로 변해 갔으나 정시우보다도 둔한 용세하는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시우가 빨리 휴식처를 찾아가 베토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다른 이들은 그것을 그저 흐뭇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는 이를 갈았지만.
“지구다.”
“지구다아!”
“어라, 하늘성이 그대로 있네.”
몇 년이 채 안 되어 돌아온 지구는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긴 정시우가 애초에 지구의 불안 요소들을 모두 정리하고 떠났으니 뭐가 크게 변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늘성이 붕 떠 보였다.
“없앨까, 통합할까.”
“지금 굉장히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언제나처럼 말이죠.”
“이제 신들의 이름을 따르는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겠지. 적어도 당분간은.”
정시우에게는 하늘성의 지배권이 고스란히 있다. 하늘성을 어떻게 하든 정시우 마음대로인 것이다. 그러나 신들이 사라진 이상 하늘성을 남겨 둘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정시우가 생각하고 있을 때 케이나가 태클을 걸었다.
“주인님, 비록 신이 없어도 몬스터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무척 적은 확률이지만 에리우나 세이락시아처럼 자연적으로 거대한 힘을 품은 몬스터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것을 하나의 세상의 힘으로 대적하기엔 제법 힘이 들 거야.”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세상에 군림하는 구도가 굳어질 텐데.”
“강자가 약자 위에 서는 것은 어떤 시대든, 어떤 세상이든 변함없다. 플레이어를 지워도 그 자리에 다른 누가 올라설 뿐이지.”
“뭐, 그도 그런가. 그러면 아예…….”
정시우는 그 자리에서 세리아의 도움을 받아 하늘성의 시스템을 조금 손보았다. 과거 요정상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만상만화경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하늘성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다른 세상의 하늘성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정한 것이다.
즉, 모든 플레이어가 차원용병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러면 그래도 제법 서로 견제가 되겠지.”
“더한 난장판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럼 더 재밌는 거고.”
아아, 틀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대자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 절대자가 되어 버렸다! 수아린은 절망했으나 그녀의 힘으로는 어쩔 수도 없었다.
모든 신이 사라지면서 하늘성 던전도 자연히 모두 사라졌지만, 이로써 지금 존재하는 플레이어들은 보다 수월하게 몬스터에게 대적하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이 플레이어가 탄생할 가능성 정도는 남겨 둘까. 그리고 또…… 던전이 아닌, 지상의 몬스터를 잡아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자. 이건 헥토의 능력을 응용하면 간단하지.”
“하늘성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네요.”
차라리 모든 세상의 인류를 플레이어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 하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절대자라고 해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모든 세상의 인류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이로써 많은 세상이 더욱 성장하며, 그렇게 해서 또 새로운 세상이 잉태될 터였다.
“아아, 결국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정시우, 너는 알고 있는가? 이 전쟁이 어째서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라이아의 말이었다. 정시우는 별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너희는 힘을 빼앗기기 싫었던 거잖아. 그래서 단 하나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
“단 하나, 그거 별로 재미없을걸.”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는 반복되고, 세상은 늘어나며, 따라서 당신의 힘마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당신은 힘을 빼앗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지. 헥토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다른 인간이나 몬스터들은 감히 끼어들지 못하는 문제였다. 수만 년 이상 그 문제로 골머리를 썩으며 고민하고, 다른 존재들과 투쟁해 온 신들이기에 할 수 있는 질문! 정시우는 그러나 그것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넌 네 자식한테 뭐 나눠 주는 게 아깝냐?”
“음……?”
“뭘 그렇게 어려워하고 그래. 세상의 힘이 불어나, 그 결과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 그건 완전히 세상이 새 자식을 낳는 거잖아.”
“음……!?”
정시우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전직 신…… 욕망의 신이었던 마그네에게 한심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거야말로 자연의 순리야. 우리 모두 새로 태어난 세상을 위한 돌반지를 하나씩 마련하는 것뿐이지. 아무리 욕심이 커도 남한테 빼앗기는 것과 자신이 기꺼이 내주는 것까지 헷갈리면 안 되지 않겠냐?”
“……그런가. 그것이 네가 낸 답인가?”
그와는 여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생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해 그를 보자마자 넙죽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던 놈 주제에 최종보스가 던질 법한 질문을 하고 있는 마그네. 정시우는 녀석을 비웃었다.
“우린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에, 우리 멋대로 문제를 만들고 답을 낼 필요도 없지.”
“아아, 과연. 너는 진정으로 초월했구나…….”
“아 글쎄, 초월이고 뭐고 모른다니까. 그것보다 너희 몸단장해라. 부모님 뵈러 갈 거니까.”
지구에 와서 해야 할 일까지 모두 깔끔하게 끝냈으니, 이젠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차례다. 그는 직접 신들의 옷을 점검하며 단정한지 여부를 체크했다.
“라이아, 치맛단 더 늘려라.”
“무례한 인간, 구세대적인 판단은 그만둬라.”
“그러면 최소한 팬티만 안 보이게 해라.”
“큭.”
“저 계집이 지금 감히 오빠를……!?”
“이젠 전직 신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군요, 선배님…….”
지구로 들어오면서 폭력의 힘으로 모두를 인간 크기로 만들었으니, 겉으로 보기엔 그냥 굉장히 다양한 머리와 눈동자 색을 지닌 미남미녀 집단일 뿐이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웠다.
“엄마, 나 왔어요.”
“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모험을 겪은 주제에,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듯 지극히 평범한 표정으로 평범하게 가정주택 문을 두드리는 정시우.
그 안에 있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그곳엔 과연 인간이기나 한 건지 의심이 가는 수십 명의 존재가 우글거리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아들 맞어.”
“으으으으음, 헉!”
그녀는 정시우의 뺨을 꼬집어 보았으나, 이제 나이 30을 넘었을 남자의 그것치고는 지나치게 탱탱한 피부의 감촉에 경악하고 말았다.
“진짜 우리 아들이 맞다면 이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피부의 비밀을 실토하렴.”
“엄마도 레벨 300까지만 올리면 이렇게 돼.”
“크흑.”
자신은 어째서 플레이어가 아닌가, 절망하면서도 아들과 그 일행을 위해 문을 열어 주는 어머니에게 정시우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플레이어로 만들어 줄까?”
“…….”
무수히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그 질문에 어머니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으나,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젓고 말았다.
“엄만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래, 다들 들어와요.”
“넵.”
정시우는 아버지에게도 일단 예의상 플레이어가 되겠는지 물어보았으나 아버지는 그 정보를 팔아도 되느냐고 반대로 물어봐 오랜만에 엄레이더의 등짝크러쉬를 얻어맞았다. 제법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러면 이 많은 아이들이 전부…… 후우. 며느리 앉아번호, 시작!”
“1!”
“2!”
“3…… 꺄악!”
“쿨럭…….”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정말 변하지 않는 가족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쉬이 진지해지지 못하는 것은 이 부모님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1번 며느리 수아린을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수아린이 콧김을 뿜으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것이 조금 웃겼지만 이젠 진짜 제대로 선언할 때가 됐다.
“아린이와 결혼할 거야. 마음먹은 지는 오래됐고 이제 진짜로 식 올릴 거야.”
“그야 아린이라면 만점이지만 말이지…….”
“제가 다른 여자 따위는 전부 잊도록 해 드릴게요, 어머님!”
“그건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할 대사가 아니란 것만 기억해 두렴, 새아가.”
그때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이아가 2번 며느리 마리나에게 몰래 물었다.
“원래 인간은 다 이런 방식으로 결혼하는 건가?”
“아니, 이제부터 아니게 될 거야.”
마리나가 위험한 눈빛과 함께 대답했다. 그녀가 발하는 은밀한 기세에, 뜻 있는 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둥글게 모였다. 용세하는 그것을 방해했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저 먼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그거 제법 마음에 드는걸.”
“그걸 위해선 일단 시우의 지위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겠지.”
3번 며느리 이서희가 한 손을 올리자 모두가 그 위로 손을 얹었다. 정시우 휘하 권속 일부가 은밀한 동맹을 결성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정시우는 그들의 목소리를 전부 듣고 있었지만…… 끝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말았다.
‘조만간 좋은 선 자리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지.’
완전한 평화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어도 그렇다. 그것이 자연이고, 아마도 순리이리라. 새로운 진리를 하나 깨달으며, 정시우는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