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259화.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왜!]
[저 여자 엄청 시끄러운데, 역시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떠들 여유 있으면 공격해요, 공격!”
정시우와 그를 따르는 모든 이가 헥토에 맞서 싸우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라 표현할 법했다. 헥토의 권능이 일시에 폭주하며 그가 사역하는 모든 힘이 세상 곳곳에서 튀어나와, 정시우를 비롯한 이들을 매장시켜 버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이가 분주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죽어! 죽어라, 헥토! 따지고 보면 다 이 새끼 때문에 내가 그 고생을 겪은 거잖아!]
[맞아, 죽여 버려!]
본래 신들의 전쟁에 한발 걸치고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투쟁해 왔으나, 정시우라는 자연재해를 만나 집도 절도 잃고 그에게 귀속되고 만 신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헥토를 향해 폭발했다.
그들의 힘은 여태까지 무수한 신들과 싸우며 힘을 불려 온 다른 일행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 수준! 헥토는 세상 자체를 어그러트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신들의 힘은 그것을 깨부수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날뛰어라. 분노하며 폭주하라. 모두 내가 받아들여 주마!]
헥토의 능력은 약화된 대상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의 막대한 힘으로 전원의 진력을 소모시켜 놓고 용의 능력으로 집어삼키는 것! 그것이 헥토가 지금까지 성장해 온 배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정시우가 있었다.
“하, 어림 반 푼어치 없는 소릴.”
무수한 신들의 힘을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미 SSS랭크를 초월해, 아티팩트라 불러야 할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 불러야 할지 헷갈릴 만큼 성장한 마신의 징벌이 정시우의 명령에 따라 헥토의 몸통을 마구 두들겼다.
[크…… 하하하하하하! 오랜만의 고통, 반가운 고통이다! 이 힘도 내 것이 되리라!]
헥토는 한 방 한 방 세상을 무너트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해머의 공격을 웃음으로 받아 냈다. 그와 동시에 권능을 발휘하여 정시우의 마신을 침범했다. 정시우에게 지배되고 있는 마나를 강탈하려는 것!
[초월자여, 너의 힘은 어디를 향하는가? 너의 욕망이 향하는 길과 일치하는가!]
“그걸 내가 알 바야?”
모든 신은 자신의 욕망과 근원을 일치시키는 순간, 그것을 긍정하며 비로소 초월자로 거듭난다. 헥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용을 벗어나 신을 택한 그때, 헥토는 자신이 진정한 용이 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정시우는 아니었다. 물론 그가 지배라는 고유능력을 타고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 자신이 표현되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어떤 특정한 단어 따위에 얽매일 생각 또한 없었다.
“애초에 번개의 신이니 죽음의 신이니, 힘의 신이니 나대는 것부터가 병신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 이거야. 너한테 정말 그것밖에 없어? 너 스스로 너를 규정할 만큼 잘났어? 아니, 애초에 힘으로 너를 이길 놈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어?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는 길이 퍽이나 재미나겠다!”
[왜 이쪽으로 스플래시 데미지가 튀는 것이냐, 이 무례한 인간! 꺄악, 헥토의 비늘이 날아온다!]
그것은 아주 따분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다! 이가 갈리도록 진저리가 난다. 해머를 쥔 정시우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크게 들어갔다. 그 순간순간 발휘되는 마스터 레벨의 괴력이, 헥토의 상처 하나 없던 비늘을 처음으로 깨부수었다!
[큭, 그렇기에 네놈은 결국 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네놈은 결국 나를 넘어설 수 없는 거야!]
그럼에도 헥토는 기쁘게 웃었다. 정시우의 대답으로 확신했다는 투였다.
[진정한 초월자가 되기 위해선…… 인간의 인지 위에 올라서기 위해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힘을 떠올렸을 때 바로 이 헥토를 떠올릴 수 있게끔! 그리고 그것이 재차 나를 강하게 만든다!]
헥토의 강탈 능력이 정시우를 강하게 뒤흔들었다.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그 어떤 신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의 마신이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흔들렸다. 정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마신만 유일하게 마스터를 찍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 분명 아무 상관없겠지.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이다!]
“끄아아아아아악!”
헥토의 고유능력이 온 천지를 뒤흔들었다. 온 세상에 가득하던 마나가 일순 헥토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과거 신들이었던 이들조차 납득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한 의지였다.
[괴물 자식…… 무례한 인간, 어서 저 괴물을 쓰러트려 버려!]
[힘을 빨릴 줄은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격해. 놈을 무너트릴 찬스는 지금뿐이다!]
라이아의 번개가, 용세하의 랜스가, 케이나의 대검이, 마리나의 마탄이, 세리아의 마법이, 에리우의 토창이, 세이락시아의 물줄기가 헥토를 공격했다. 온갖 속성의 힘을 지닌 이들이 일시에 헥토를 공격하니 과연 그것은 온 세상이 헥토를 공격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그 모두가 나의 것이다!]
“이 괴물 새끼!”
그럼에도 그중 일부는 피격 순간 헥토에게 흡수되어 오히려 헥토를 살찌웠다. 모든 것을 자신의 것이라 단정 짓고, 실제로 그렇게 만든다. 정시우의 것에 버금가는 견고한 의지의 발현!
[알겠느냐, 인간. 네 것이 전부 내 것이 되어야만 함을, 이제 납득하겠느냐!]
“이 새끼가.”
정시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소유욕 강하기로는 정시우 또한 헥토 못지않다. 지금 이 순간도 그의 마신을 무너트리고 마나를 탈취하려는 사악한 마나의 손길을 느끼며 정시우의 분노가 임계치에 도달했다.
“한 가지밖에 고르지 못하니 모든 것을 뺏는다는 결론 한 가지만 간신히 남겨, 유세를 떠는 병신 주제에……!”
강탈은 빼앗는 힘. 용의 근원. 다만 빼앗아 온 것을 다루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광룡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헥토 또한 알고 있었으나 무시했다. 신이 되기 위해서다. 스스로를 신이라 규정하기 위해서.
“네가 다루는 힘은, 처음부터 맘에 든 게 하나도 없었어!”
정시우의 망치가 재차 거대해졌다. 그 시점에서 망치는 본연의 모습을 잃고 그저 거대한 에너지의 형태로만 남았으나, 헥토의 몸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강탈의 권능은 해머를 더 이상 건드리지 못했다.
그 자체로 정시우와 하나가 된 해머를 건드리는 순간, 오히려 강탈의 권능조차 지워졌다. 먹혔다고 보아야 할까? 아니……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고 보면 옳으리라.
[……!?]
헥토는 그 이변을 감지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으나 자신에게 불리한 징조라는 것만은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의 전신에 긴장이 내달렸다. 무거워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소, 소용없다. 너와 나의 차이를 아직 깨닫지 못하겠느냐? 네가 포기해, 여전히 내가 걷는 길. 그 길에는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길에는 너 외에도 네가 지켜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정시우를 건드리기가 무서우니 그의 권속들을 건드리겠다는 말을 빙 돌려 한 것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헥토의 촉수들이 일제히 정시우의 일행에게 쇄도하자 정시우의 표정이 재차 일그러졌다.
헥토는 그로써 자신의 선택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것은 썩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시우는 빼앗기는 것이 싫다. 아주 싫었다.
“전부…… 꺼져!”
바람이 불었다. 프루타의 바람도, 헥토의 바람도 아닌 정시우의 바람이었다. 헥토의 몸에서, 세상 곳곳에서 줄기줄기 솟아나던 강탈의 힘을 담은 촉수가 모조리 끊겨 나갔다. 다음 순간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화한 그것이 정시우에게로 날아들었다.
[고유능력 지배가 Lv10이 되었습니다.]
[뭣……?]
그 순간 모든 것이 일변했다. 헥토가 바깥으로 뻗어 냈던 모든 마나가 주인을 거스르고 정시우에게로 모여들었다. 헥토는 다급히 권능을 발현했으나 정시우의 명을 따르는 마나는 더 이상 전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신 스킬이 Lv100이 되어 괴력 스킬과 합성진화합니다.]
정시우가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스테이터스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즉 그 누가 정시우와 정시우의 것을 무어라 칭하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고유능력, 폭력을 얻었습니다. 절대의 힘은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으니, 오직 그 주인인 당신의 의지가 향하는 곳에 답이 있습니다.]
그가 지닌 힘이 합쳐져 어떻게 바뀌건, 그 결과 이름이 어떻게 바뀌건, 스킬이건 고유능력이건 아무 상관없다. 정시우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다. 그 자신의 격은 수치나 문자가 아닌 자신의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
결국 그 모두가 합쳐져 하나로 완성됨을, 정시우는 이미 알고 있다. 과거 신들이 이미 걸었으리라 생각한, 그러나 결국 광룡을 포함한 누구도 제대로 걷지 못했던 그 길 위에.
지금 자신이 올라서 있다.
[너, 방금, 아니, 그것도 또한, 나의……!]
헥토의 욕망은 과연 끝이 없어, 정시우가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것에도 욕망을 품고 본능적으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가 평생 저지른 실수 중 가장 커다란 것이었다.
“그냥 빼앗아 먹고 싶을 뿐인 돼지에게 줄 사료는 더는 없어.”
헥토에게서 뻗어 나온 힘의 줄기가 정시우의 전신에 푹푹 틀어박혔다. 그 순간 헥토는 자신이 더 이상 어떤 움직임도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의 힘을 빼앗아 와야 할 강탈의 힘은, 상대에게 복종하고 대신 자신의 힘을 상대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깨달을 수 있을 턱이 없다. 자신이 다루던 힘의 이치 또한 놈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이럴 수가,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스스로 힘을 칭한 순간, 자신은 힘이라는 이름의 세계 안에 갇혔다. 그 세계는 무척이나 넓고 깊어 그것이 무한인 줄 알았으나, 지금 정시우라는 보다 큰 힘이 나타나 세계를 산산이 부수어 버리고 있었다.
자신이 도달한 영역 너머에 진정한 힘이 있었음을 비로소 놈은 알게 되었다.
“지금 다들 뭐해?”
정시우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헥토를 내버려 둔 채 고개를 돌렸다. 단지 그곳에서 거대한 힘의 유동이 있었다는 사실만 파악했을 뿐, 정시우가 이기고 있는지 헥토가 이기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손을 멈추고 있던 그의 권속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돼지 잡아야지.”
[네게 들은 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구나!]
라이아가 활짝 웃으며 번개를 발했다. 다른 권속들도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들에게 남은 마나를 전부 쏟아부어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일격을 준비했다.
정시우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마신의 징벌이라고 해야 할지, 마신 그 자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지만…… 어쨌든 자신의 손에 들린 무언가에, 자신의 힘을 집중시켰다. 이것이 폭력인가? 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떻든 상관없었다.
[너, 는…… 무엇을, 하려느냐.]
헥토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어째 익숙하다 싶어 생각해 봤더니 게임 속 최종보스가 흔히 내뱉는 말이었다.
[이 이후에도, 결국…… 똑같은 일이, 벌어질…….]
“왜 이런 놈들은 끝까지 지 멋대로 온갖 지랄을 하는 주제에 마지막 순간만 되면 세계의 미래와 평화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지껄이는 걸까……?”
정시우는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본인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 주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어리석은, 역사를…… 되푸캬하아아아아악!]
“아디오스! 형님한테 안부 인사 전해 드려라!”
“뒈져!”
[공격! 총공격!]
[크호오오오오오오!]
정시우가 망치를 내려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권속들이 총공격으로 헥토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헥토가 지금까지 쌓은 마나가 워낙에 방대하여 한 방에는 죽일 수 없었으나, 그들의 전력 또한 우습지 않은 수준!
결국 5분 정도 오지도록 망치질을 한 끝에 비로소 놈의 생명반응을 완벽하게 소멸시킬 수 있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마력이 19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후우.”
정시우는 상쾌하게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돌아섰다. 일행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며 그의 얼굴에 제법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음, 역시 앞으로 뭘 할지 미리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바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그럼 이제 밥 먹자 얘들아!”
그날,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드래곤 만찬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