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
258화.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마력이 36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소울 포스 스킬이 Lv95가 되었습니다.]
[크헉!?]
세트나크를 죽이고 성장한 것은 정시우인데 비명은 다른 곳…… 바로 케이나에게서 터져 나왔다. 정시우가 세트나크를 완벽하게 소멸시키고 그의 기록과 마나를 모두 흡수함에 따라 케이나에게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세트나크와 밀접하게 연관된 스킬인 소울 포스가 순식간에 수십 레벨 이상 성장함에 따라 군단장인 케이나의 무력이 급격히 상승한 것이고, 둘째는 세트나크 소멸의 순간, 과거 세트나크에 의해 탄생한 케이나가 그의 힘과 기록을 오롯이 흡수한 주인 정시우의 영향을 짙게 받아 다시 진화를 이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크후아아아아아!?]
“소리가 이상한데 혹시 죽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세욧.”
수아린이 정시우를 타박했다. 과연 케이나에게서 벌어지는 현상은 불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오며 동시에 순백의 광휘가 그녀를 뒤덮은 것!
정시우는 그것을 보며 저것은 혹시 성불이 아닌가 의심했으나 입 밖에 내면 또 맞을까 봐 조용히 하기로 했다.
[후…… 하아아아…….]
이내 케이나가 의식을 되찾은 듯 깊은 숨을 불어 냈다. 정시우는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동안에도 그녀의 힘이 급속도로 팽창해 가는 것을 느꼈다.
그 기세는 세트나크를 닮았다기보단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신 이상의 힘을 손에 넣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묘한 감회가 그를 찾았다.
“혼자 오긴 심심해서 끌고 온 거였는데…….”
[본심…… 흘리지 마라…….]
“그런데 하나둘 이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법 기쁜걸…….”
여태까지는 헥토와 맞서 싸우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헥토를 물리친 이후가 궁금해졌다. 이 녀석들이 옆에 있으면 그 후로도 제법 재밌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아.”
그러나 그가 흐뭇한 상상을 하고 있던 그때 세트나크의 세상을 강하게 두들기는 힘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사색이 되는 모습이 웃겼다.
“큭, 이게 뭐죠!?”
“분노의 땡깡.”
아무래도 헥토가 드디어 진상을 알게 된 모양이다.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다. 헥토를 상대로 기습은 의미도 없으니, 굳이 몰래 들어갈 필요도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나 보네.”
“이 세상으로 들어오려는 게 아니라요!? 그렇다는 건 그냥 제자리에서 발 한 번 굴렀다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고, 바닥을 굴러다닐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정말 어마어마한 힘의 소유자네요…….”
그야 그렇다. 여태껏 탐욕스레 얼마나 되는 신의 힘을 탐닉해 왔을지 차마 예상도 가지 않는 존재니까.
“그리고 오빠는 그런 놈과 싸우겠다고 나서시는 거구요.”
“그렇지?”
아마 이젠 저쪽에서도 정시우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하늘성의 지배권을 갖고 있으며, 많은 신들을 집어삼켜 무시 못할 힘을 품게 된 그이니 말이다.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아. 너희가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기다려 주고 싶지만…….”
“그럼 바로 가죠.”
“슈를 괴롭히는 빌어먹을 도마뱀은 내가 처단한다.”
[후우, 나도 완전히 회복했다. 주인님, 만상만화경을 작동시켜라.]
“슈를 위해서라면!”
“……어라.”
그동안 동료들도 정시우에게 충분히 적응해 버리고 말았다! 세트나크란 강적을 물리친 직후임에도 이렇게 씩씩한 모습이라니! 정시우는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가자. 차원이 다른 놈이니까 다들 안 맞도록 조심해. 아예 여기서 미리 결계를 걸어 두고 가자.”
“넵.”
수아린의 축복과 이서희의 결계가 정시우를 포함한 전원을 촘촘히 감쌌다. 정시우는 누구 하나 빠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배 스킬과 마신이 제대로 발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조금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어차피 곧 자유로워질 테고.
그는 만상만화경을 들었다. 목적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근원의 세상.”
하늘성이 시작된 곳, 광룡의 무덤. 무뢰배의 발에 짓밟힌 폐허. 이미 한 번 잡아냈던 적이 있는 만큼 만상만화경은 빠르게 반응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설마 직접 오다니.]
헥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시우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한없이 거대한 드래곤과 조우했다. 그다음으로는 자신의 마신이 풀렸는가를 확인했고,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헥토에게 물었다.
“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는 있냐?”
[나를 비웃는가?]
“어…… 응.”
정시우는 머릿속으로 그려 오던 헥토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드래곤에게는 폴리모프라는 수단을 통해 소설 속에서 멋진 미남이나 미녀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던가.
그는 당연히 헥토 또한 그럴듯한 왕좌에 걸터앉아 입에는 멋들어지게 파이프 담배를 빼어 문 미남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와는 달랐다.
“그야 이게 현실적인 드래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말이지…….”
거대한, 너무나 거대해 마신으로 어지간한 신들 이상의 덩치를 확보한 정시우의 두 눈으로도 한눈에 확인할 수 없는 덩치를 지닌 드래곤.
몸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머리만은 간신히 빼내 이쪽을 향하고 있으나, 과연 움직일 수는 있을까 의심이 갈 만큼 비대한 몸집에 짓눌려 있다. 날개는 어디에 있는지 대관절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너, 내가 떼어 낸 날개랑 꼬리 먹었구나.”
[용의 것이라면, 그것이 나의 것이다.]
세리아 또한 어째서 정시우와 연결 시도를 했던 차원 마법이 헥토와 통했는지 그 시점에서 깨닫게 되었다. 정시우의 것을 헥토가 섭취해 버렸으니, 용의 흔적을 아무리 찾아도 헥토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짜 크다.”
“돼지…….”
“돼지다.”
“라스트 보스가 돼지라니.”
정시우의 일행은 정시우를 닮아 하나같이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들을 쏟아 내는 집단이 되어 있었다. 그 누가 여태 감히 헥토를 향해 돼지란 말을 지껄일 수 있었겠는가! 헥토는 그런 그들을 귀엽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웃었다.
[나를 보자마자 공포감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게 되리라 생각했거늘, 배짱만은 두둑하구나. 그러나 기억하라, 필멸자들이여. 오만과 편견의 대가는 죽음이다.]
헥토의 손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그의 입장에선 인사와 같이 가벼운 힘의 발현이었으나 결과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대체 몇 종류의 힘이 섞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이고 거대한 힘이, 죽음의 돌풍이 되어 일행에게 휘몰아쳤다!
[죽음이라면 이미 실컷 겪고 왔다.]
그러나 그것이 일행에게 닿기 전 케이나가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힘껏 내밀었다. 그녀의 마력을 주입받은 방패가 삽시간에 거대해지며 헥토의 마법을 가볍게 막아 냈다. 자연히 헥토의 눈썹이 꿈틀했다. 고작 네까짓 것이? 하고 따지는 듯한 눈빛이었다.
[고작 네까짓 것이……?]
“이야, 이 새끼 대단히 무례한데?”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는 점만은 칭찬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시우는 코웃음을 치며 놈에게 물었다.
“네가 먼저 인사를 건넸으니…… 이쪽에서도 인사 겸 안부 좀 묻자. 요정상인들은 건강하냐?”
[호오, 역시 알고 있었는가. 그러나 아니, 그들은 모두 죽었다.]
생각도 못했던 대꾸가 돌아왔다.
[제대로 명을 수행하지 못한 벌레들에겐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지. 코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해 놓치다니 어리석은 것도 정도가 있다. 그렇기에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러냐…….”
[후후, 힘만은 나에게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지 모르나 정신은 여전히 연약하구나. 더 이상 동족이라 부를 수 없는 인간이여, 너는 그 하찮은 것들에게 준 정에 묶여 있는 것이냐? 그들이 네 등을 찌를 비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까지!]
“후우, 그 녀석들은 내가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정시우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헥토는 아직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정시우의 마인드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 그 녀석들 몫까지 너한테 풀면 되니까.”
[할 수 있으리라 믿느냐?]
“못할 건 또 뭐야.”
적은 거대한 도마뱀. 아마도 많은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겠지. 완력도 어마어마하겠지. 어쩌면 정신 계열 마법도 걸어올지 모른다. 모두 여태까지 정시우와 일행이 충분히 겪은 것들뿐이다.
[배짱만은 마음에 든다. 네가 용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나도 최후의 예의를 지켜 주었을 것을.]
“서로 죽이고 죽는 데에 예의가 어딨어. 땅 그만 파고 덤벼, 새끼야.”
[하!]
정시우의 저렴한 도발에 드디어 헥토가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 순간 일어나는 태풍은 바람의 신 프루타가 와서 형님! 하고 고개를 숙일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바람의 힘은 정시우 또한 지니고 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바람의 질주를 발동했다.
“지금부터 총공격 개시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이기겠다!]
“그래, 이젠 너희도 나와!”
정시우는 그 시점에 이르러 비로소 마신의 일부를 해제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여태까지 이물감을 느끼게 했던 원인. 유사시 써먹기 위해 마지막까지 아껴 두고 있던 카드!
[푸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이 난폭한 남자 같으니!]
[하필이면 헥토를 상대로 싸워야 하다니…….]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지. 죽는 것보단……!]
번개의 신 라이아, 무기의 신 에페티를 비롯해 수십에 달하는 신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들을 더 이상 신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들이 갖춘 격과 마력만은 여전했다.
정확히는 그 이상이었다. 그들 또한 정시우의 ‘고유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었으니까.
[아니, 잠깐…….]
헥토는 그의 눈앞에 드러난 현실을 믿지 못했다. 아무리 헥토라고 해도 납득하기 쉬운 현실은 아니었다. 그러나 힘의 신이라 불리는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힘이란 없었고, 끝내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신을……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엉.”
정시우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헥토를 납득시킬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하면 재미있기에 손가락을 내밀며 소리 질렀다.
“너로 정했다, 라이아! 억만 볼트!”
[크으으으으으으윽!]
라이아는 분하고 원통해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가 시킨 명령대로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량의 번개를 만들어 헥토에게 내던졌다! 그것은 헥토조차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다. 다급히 피부 위로 방어막을 만들어 내어 번개를 막아 내면서도 헥토는 경악했다.
[군단의 신 뒤세느마저 신들을 휘하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다의 신 헤데아마저 완벽한 통합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네가, 신도 용도 아닌 네가 신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응. 하도 싹싹 빌길래.”
시작은 물론 라이아였다. 잔뜩 기세를 높여 모든 신을 잡아먹자고 다짐하며 찾아간 라이아의 세상에서, 라이아가 그와 제대로 싸워 볼 생각도 안 하고 넙죽 그에게 엎드렸던 것이다.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말이다.
“사실 라이아는 인간들을 몬스터로 만들었다는 괘씸죄가 컸지만, 가장 인간들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만큼 그에게 쫄아 있었으니 공격을 하기도 망설여질 정도였다.
정시우는 어쩔 수 없이 라이아를 대상으로 지배를 발휘해 보았고, 그것이 먹혔다. 비록 라이아는 더 이상 독립된 개체가 아니게 되어 신의 위를 잃고 말았으나, 그녀의 힘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외에도 예의 바른 녀석들은 거두기로 했어. 뭣보다 그 많은 신들의 힘을 나랑 내 동료만으로 흡수하기는 벅찼고.”
그야 그렇다. 정시우가 지금까지 넘어트리고 온 신들의 숫자만 수백이 넘어가는 것이다.
헥토는 당연히 그가 소화하지 못한 마나는 세상으로 나뉘어 흡수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한 톨 낭비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기로 맹세한 신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것이다!
[지배…… 그것이 지배인가.]
당황도 잠깐, 이내 헥토의 거대한 노란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본능, 용의 근원!
[그 힘, 내가 갖고 싶구나.]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정시우가 히죽 웃었다. 그래, 역시 저런 표정을 지어 주지 않으면 섭섭하다.
“어디 네가 그렇게 자랑하는 용의 능력을 보여 줘 봐.”
[그래, 보여 주마.]
헥토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용으로 태어나 신으로 거듭난 자의 마나가 세상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