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252화.
정시우는 에리우가 만들어 낸 초거대 장벽을 신들조차 감히 뚫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아주 든든해. 완벽해.”
[……아이야,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다른 신들은 아직까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부터가 다른 무수한 신들의 집합인 헤데아만은 에리우가 보이는 능력의 실체를 깨닫고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지. 어디까지 뻗어 갈 수 있는 것인지.
어째서 겉으로 보이는 격은 별 볼 일 없기만 한 정시우의 권속들이 무려 신을 상대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인지, 어째서 그들의 육신과 마력이 강화되어, 신들의 세상에서도 태연히 호흡할 수 있게 하는지.
그 모두가 그들이 정시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헤데아조차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없는 막대한 힘으로 그들의 격을 실시간으로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의 그 힘, 그것은 과연 필멸자를 초월자 위에 올려놓는 힘이다. 너뿐만 아닌 다른 필멸자들마저, 네 눈이 닿는 곳에 있기만 하다면 말이야. 그러나 그 힘은…… 본디 타인의 힘을 너에게로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더냐?]
“뭐, 확실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가 있었지.”
정시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락시아의 손을 놓았다. 세이락시아 역시 단단히 각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세이락시아는 지금부터 이 세상 전체를 조종하여 정시우의 목을 조르려 드는 헤데아의 힘을 막아 낼 것이다.
지구에서 운 좋게 고유능력을 품고 태어났을 뿐인 생물이나, 녀석은 정시우를 만나 그 능력을 감히 신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키워 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영 재미가 없어. 난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좋아.”
[지금 권속들의 힘을 이용해 나를 핍박하려 하는 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아, 오해하지 말아 줘. 딱히 다구리가 싫다는 건 아냐.”
오히려 상대에게 무차별적이며 무조건적인 무제한의 폭력을 가하는 건 상당히 좋아한다. 혼자서 패는 것보다 여럿이서 같이 패는 게 즐겁지 않은가! 단지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 천원돌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었다.
“게다가 네가 이 세상 바깥으로 나와 준다면 굳이 세이락시아의 힘을 빌릴 것도 없는데…… 어때, 조인? 내가 처리한 신들의 세상 있잖아, 제법 괜찮은 전장이 많아요. 우리 외의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특히.”
[……처음부터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던 것이로군.]
헤데아는 한숨을 쉬며 손을 들었다. 과거 크라켄이나 아르고스가 선보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밀집되는 것이 느껴졌다. 정시우가 1대1로 상대했던 그 어떤 신보다도 강력한 권능!
정시우의 눈에 별빛이 어렸다. 이거다. 자신은 이런 것들과 싸우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겪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막대한 폭력, 그 끝에 그것을 넘어섰을 때에 느낄 수 있는 쾌감!
“뿌이, 할 수 있겠지?”
“뿌이.”
세이락시아가 믿음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시우는 그런 녀석의 반응에 씩 웃고는…… 수중을 박차 헤데아에게 돌진했다.
“뒈져라!”
[상스러운!]
정시우가 내지른 해머를 물의 장벽이 맞받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을 세이락시아가 만들어 낸 물의 파도가 밀어 없앴다.
정시우는 재차 바람의 질주를 구사해 앞으로 나아가며 해머 끝에 불꽃을 피워 올렸다. 파에토 본인을 잡아먹고 만들어 낸 불꽃은 헤데아의 본신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터!
[너의 모습은 추악한 용을 닮았구나!]
“그래서 그거 다 떼어 내고 왔거든!”
헤데아가 양팔을 휘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일시에 뒤집히며, 정시우 일행과 다른 신들을 포함한 모두를 끝없는 무저갱으로 떨구고자 했다.
단순히 위아래가 뒤집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개념, 오감, 마지막으로 마력 감각까지도 뒤바꾸는, 실로 절대자의 위엄에 어울리는 스킬! 그것을 깨달은 순간, 정시우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그녀와 마주하고자 했다.
[무지는 용감 스킬이 Lv98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헤데아의 권능이 무효로 돌아갔다. 아마 적용은 느려도 그의 권속들까지도 케어해 줄 수 있으리라. 자신의 능력으로 권속을 보듬는 것, 그것이 지배의 능력이었으니까.
[후, 태연히 막아 낸 것만은 놀랐지만…… 잠시의 틈만은 너도 어쩔 수가 없구나.]
정시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스킬에 의지하는 바로 그 순간, 그런 그에게 사방에서 달려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물로 빚어진 거대 상어들의 톱니 같은 아가리! 처음부터 이 공격을 위해 세상을 뒤집기라도 한 것처럼, 어딜 보든 상어의 톱니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오감을 상실한 채 이것과 조우하고 있었더라면 정시우는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당했으리라.
‘아직 뿌이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테고…… 후우.’
상어들의 톱니가 일시에 그의 몸을 갈아 버리기 직전, 그의 전신을 감싸던 바람 위로 불꽃이 타올랐다. 바람의 질주의 운용에 해머의 옵션인 독염을 섞어 낸 것이다.
SSS랭크에 이른 독염이 상어들을 단숨에 녹여 버리고, 마나의 길을 타고 뻗어 가 헤데아의 본신마저 독으로 물들이고자 했다. 헤데아는 물의 힘으로 단숨에 그것을 정화하며 으르렁거렸다.
[그깟 삿된 힘으로 나를 어쩔 수 있으리라 여겼느냐!]
“하!”
정시우는 헤데아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독염이 헤데아에게 상처를 입히든 못 입히든 그가 할 일은 하나뿐인 것이다!
그는 상어들이 사라져 운신이 자유로워진 순간 재차 수중을 박차고 도약해 헤데아를 망치로 후려쳤다. 바로 그 순간 거신의 분노가 함께 발현되어, 망치의 사정거리 너머에 있던 헤데아의 본신에 마력과 불꽃으로 이루어진 망치의 일격이 적중했다.
물론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타격전이와 반복재생으로 이중, 삼중의 데미지를 입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크학!? 예, 예의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으니……!]
그렇다. 정시우는 자신이 유리할 땐 언제까지고 떠들 수 있는 재수 없는 놈이지만 상황에 집중해야 할 때는 상대가 말하는 틈까지도 이용하는 것이다!
정시우를 상대로 처음 유효타를 허용한 헤데아는 대체 몇 만 년 만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입은 것인지,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격통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죽어라.]
그러나 그 덕에 헤데아가 입을 열지 않고 전투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 즈음에는 제정신을 되찾은 세이락시아가 다시 전선에 복귀하여, 헤데아의 물을 무서워해야 할 필요는 별로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뿌이이이이이이!”
[큿, 귀찮은 것이……!]
헤데아는 자신이 힘을 발할 때마다 세이락시아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제대로 정시우를 공격할 수 없게 되자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세이락시아를 먼저 죽이고자 해도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어지간한 신에 버금가는 물의 지배력을 지닌 세이락시아와 씨름을 하는 동안 필시 정시우의 망치가 그녀의 전신을 두드릴 것이 뻔했다.
[이 헤데아를, 물의 기원을…… 얕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어이 폭발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필멸자를 상대로 목을 내어놓느니, 쉬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고만 것! 그것은 바로 육신의 용해였다. 그녀의 실로 거대한 육신이 세상 속으로 녹아드는 풍경을 보며 정시우는 아연해졌다.
“이거, 역시 세상 그 자체와 하나가 될 수도 있는…… 큽.”
치사하게 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정시우의 마신은 실제 육체와 같이 촘촘하지만, 실제 육체에도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지 않던가. 헤데아는 바로 그 모든 틈으로 스며들어 와 그를 죽이고자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정시우는 조금 안심했다. 그녀의 공격의 대상이 그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그 자체는 아냐. 이렇게나 강대한 마력을 다루는 것을 보면 나한테만 집중해야 하는 거겠지.’
그 증거로 정시우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헤데아의 공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당장 세이락시아만 해도 정시우를 해방시키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는 있었지만 그녀에게 당해 괴로워하는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뿌이, 뿌이이이이이이! 뿌뿌뿌이이이!”
그러나 소용이 없다. 헤데아 본인이 깃든 바다는 세이락시아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세이락시아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통제에서 벗어난 영역을 확보하여, 그것으로 다시 헤데아를 공격하는 것뿐!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게 할 줄은 몰랐구나. 나의 모습을 잃어야 하기에, 어지간히도 망설이던 수단이거늘…….]
“나 때문만은 아니잖아. 뒤세느를 비롯한 다른 신들까지 있으니까 택한 수단이겠지.”
[…….]
정시우는 강하다. 그를 상대로 계속해서 본신의 힘을 소모하다가 다른 신들의 공격까지 받게 되면 그땐 정말로 끝장이 난다.
그러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전력으로 정시우를 해치우고, 신은 아니되 어지간한 신은 우습게 볼 만큼 높고 정순한 마력을 지닌 정시우의 영육을 확보하는 것이 헤데아에게 있어서도 가장 현명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네 생각처럼 쉽게는 안 될 거야.”
[과연 끈질기긴 하지만…… 과연 이 바다의 신 헤데아와 네놈 중 마나를 먼저 소모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도 다른 권속들에게 마나를 퍼 주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지금 정시우는 자신의 내장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바람의 질주와 독염을 섞어 필사적으로 헤데아의 침입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헤데아의 말이 맞았다. 이 힘 씨름에서 불리한 것은 정시우 본인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네 생각처럼 쉽게는 안 될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처음부터 정시우는 헤데아와 힘 씨름을 할 생각이 없었다. 공격 수단으로는 따로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정시우는 헤데아의 침입을 실시간으로 막아 내는 와중, 힘겹게 힘겹게 한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손아귀에 모이는 것은 지배 능력, 그리고 마스터 경지에 이른 드레인이었다.
[권능도, 하다못해 고유능력도 아닌 힘으로 대체 무엇을…… 음?]
과연 헤데아는 상위의 신답게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물론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 바로 반응이 왔으니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되었다.
[잠깐, 네놈 대체 무엇을…… 쿠헉!?]
방금, 아주 짧은 순간 들려온 목소리는 가냘픈 여성의 것이 아닌, 지극히 낮고 가래가 낀 늙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시우는 그것을 확인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헤데아의 의지는 여성체의 것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본디 물, 바다와 관련된 무수한 신들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집단. 그녀를 그녀로 정의할 수 있는 육체가 일시적으로 무너진 지금, 집단을 헤데아로 만드는 연결고리는 전에 비할 바 없이 연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다른 신들이라면 그것을 깨달은 시점에서 딱히 무엇을 할 수도 없겠지. 하지만…….’
그의 고유능력, 지배는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타인의 의지를 통합하여 스스로의 힘을 북돋는 능력, 반대로 자신과 함께 걷는 이들을 강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지배의 가장 순수한 특성은, 바로 다른 존재의 의지에 간섭하여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뒤세느만은 너를 상대할 수단을 갖고 있었지. 아마 그녀가 군단의 신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네가 혼자 남았다 해도 이렇게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거야.”
[뭣, 잠깐……!]
정시우의 말을 뒤세느는 듣지 못한다. 여전히 든든한 에리우의 장벽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아마 그 너머에서 일어난 일을 깨닫게 된다면 뒤세느는 땅을 치고 후회할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쪽이 더 뛰어나.”
[크학!]
지배 능력이 헤데아를 헤데아로 만드는 연결고리의 일부를 부수어버렸다. 집단이 붕괴되고 그 안에서 바다의 신 헤데아를 이루고 있던 이름 모를 나약한 신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정시우가 발하는 드레인의 힘에 의해 금세 그의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설마, 내가 형체를 무너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
“그러면.”
정시우는 헤데아의 목소리도, 그를 무너트리고자 맹렬히 진격해 오는 바닷물의 공습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붙잡혀 몸부림치던 남자의 목을 부러트렸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13 올랐습니다.]
[고유능력 지배가 Lv8이 되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과거 정시우가 겪었던 그 어떤 세상보다도 거대한 헤데아의 세상 속에서.
정시우는 세상을 통째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