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242화.
마신. 그것은 정시우가 다스리는 모든 혼과 육을 한자리에 모아 그를 일시적으로 거인으로 만들어 내는, 그야말로 루타가 바라던 용사에게 걸맞은 스킬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시우는 소울 포스를 발동하지도 않고, 당연히 엘이니 세이락시아니 하는 수하들을 불러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양옆에서 그를 붙잡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수아린과 용세하를 스킬에 포함시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마신을 구사한 것이다. 대체 뭘 믿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음……?]
“아무래도 오빠가 미친 것 같은데 어떡하죠, 용세하 씨.”
“젠장,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한 번 해 보는 건데…….”
“용세하 씨도 이미 글렀군요.”
애초에 마신 스킬의 존재도 모르던 라이아는 둘째 치고, 이미 스킬의 발동을 무수히 보아 왔던 수아린과 용세하도 아무 변화도 일지 않는 것을 보곤 정시우가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아까 휴식처에 남을걸, 사랑한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죽음을 결정한 자신도 미쳤지. 이제 와 누굴 탓하겠는가, 수아린은 얌전히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다.
“후우…….”
[무슨 말이라도 더 해 보거라, 정시우. 널 그냥 죽이기엔 너무나 재미가 없…… 음?]
정시우를 어떻게 죽여야 가장 짜릿하게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를 도발하던 라이아가 문득 이변을 느끼고는 말을 멈추었다. 어째, 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평범한 바람이 아니다.
[이 전장에서 마나의 바람이……?]
이곳, 화신의 전장은 지버스 에이지마저도 넘어 풀 에이지로 돌입한 세상에서 비로소 구축될 수 있다. 무수한 신들의 화신이 모여들면서 세상의 마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져, 결국 그들 이외의 존재는 이 세상에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끔 세상이 재구축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자가……?]
신의 화신이 출입하지 못하는 평범한 세상에서는 마음껏 날뛸 수 있을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가 바로 정시우였다.
그 몸에 품은 마나는 라이아의 화신에 비교하면 미약하기 그지없었고, 강인한 육체는 손가락 하나로 짓눌러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자가 이 세상에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신의 화신이…… 아니, 아냐.]
다른 화신은 이 일대에는 없다. 그 정도 기척도 느끼지 못할 만큼 나약하지는 않았다. 바람의 근원은 정시우였다. 바람이 그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너……?]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무수한 세월 신으로서 살아남아 온 그녀의 직감이 이 사태에 이상을 고하고 있었다. 손을 쓸까?
그러나 그것은 라이아에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가 일으키려는 일이 무서워 신의 번개를 발한다? 설령 그것으로 저 개미를 태워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족히 수만 년은 그 굴욕을 잊지 못할 터였다.
[좋아, 어디 마음껏 해 보거라. 개미의 최후의 발악, 내가 지켜봐 주겠다.]
“그거 고마운 말이네.”
사실 정시우는 라이아의 번개 같은 등장에 내심 마음이 철렁했다. 다른 화신이 오기 전에 자신의 깨달음을 확실히 체득해 두고 싶었는데. 그나마 저 녀석이 바보라서 다행이었다.
[마력이 104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했다. 당연한 일이다. 화신의 전장에 머무르는 압도적인 밀도의 마나를 지배를 구사해 받아들여, 그의 육신과 마력을 실시간으로 성장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라는 그릇이 품을 수 있는 능력에서 용을 덜어 낸 만큼, 비어 버린 부분을 지배 능력의 힘으로 채우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씩 웃으며 마나를 계속해서 자신에게로 받아들였다. 그의 망막 위로는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갱신되고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마나의 길 스킬이 Lv43이 되었습니다.]
[무지는 용감 스킬이 Lv49가 되었습니다.]
[마력이 58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51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마신 스킬을 다루는 데에 있어 육신과 영혼, 마력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과거 그가 다스리는 영혼들, 엘과 세이락시아를 비롯한 종속들을 아무런 구분 없이 자신에게로 끌어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마력이 138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근력이 91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드레인 스킬이 Lv77이 되었습니다.]
[마력이…….]
자, 그렇다면. 마신 스킬이 육신과 영혼, 마력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스킬이라면, 그 셋 중 하나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발현할 수 있을 터이다. 베이스가 되는 육신과 영혼은 자신의 것밖에는 없지만, 마력이라면 이 화신의 전장에 얼마든지 넘치게 있으므로.
[마나의 길 스킬이 Lv44가 되었습니다.]
[민첩이 102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73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무지는 용감 스킬이 Lv50이 되었습니다.]
[드레인 스킬이 Lv78이 되었습니다.]
정시우는 과거 자신의 지배 능력으로 그의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이를 끌어들여 마신을 완성했다.
당시의 정시우는 무슨 일이든 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이 신들의 그것과 비슷한 힘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그리고 그것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에 끝까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성과 본능의 충돌이었다.
그때에는 이성이 승리했고, 그로써 그는 마신을 얻고 한 발짝 나아갔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마력이 129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근력이 119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하지만 변한 건 없었어.’
그는 다른 무수한 이들의 힘을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미레타의 화신도 그 힘으로 넘어트렸다. 모두의 힘을 모아 이루어 낸 쾌거였다.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짜릿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아쉬움이 남았다. 순전히 그의 힘만으로 이루어 내고 싶었는데, 결국 혼자 힘으로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했으니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근력이 130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민첩이 175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마나의 길 스킬이 Lv47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으니 결국 그들의 힘도 자신의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그 힘은 지금 어디에 갔느냐 이 말이다. 그가 놓아 버리면 사라지는 덧없고 허무한 허상에 지나지 않지 않은가.
어린아이 같은 정시우는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확실하게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 아니면, 순수하고 완벽한 제 능력이 아니면! 타인과 함께해야만 대지 위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여태까지 그걸로 만족할 생각을 했을까!
[마력이 101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125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자신의 격으로 품을 수 있는 스테이터스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용의 흔적을 떼어 내며 함께 던져 냈던 스테이터스가, 그의 지배 능력으로 인해 고스란히…… 아니, 그 이상으로 돌아왔다.
당연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와 함께해 온 육신인 것이다. 뭐 하나 빼지도, 더하지도 않은 순수한 육신을, 순수한 그의 의지로 진화시킨다.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힘들었지만, 그 결과는 용의 것에 비해 떨어질 수가 없다.
“후우우.”
용의 힘을 품고 있었을 때와는 다른 방향성의 충만함이 온몸 가득 느껴졌다. 으음, 그는 역시 이쪽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육신은 굳이 용의 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화되고, 진화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스스로의 육신과 마력을 생생하게 느낀 적은 드물었다. 모두 샅샅이 파악하고 있으니 굳이 용의 감각을 필요로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부족했던 그릇을 완벽히 채웠으니, 지금부터가 진정한 마신 스킬의 발동이다. 지금까지는 애교에 불과했다는 듯 끔찍한 양의 마나가 태풍처럼 몰려와 정시우의 전신을 감쌌다. 신기한 것은 그 일부가 수아린과 용세하 또한 감쌌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정시우의 뜻이었다. 자신과는 별개로 두되, 그들을 강화하고 보호하려는 의지만은 충만했다. 그의 고유능력은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종속들을 강화시켰다.
[고유능력 지배가 Lv5가 되었습니다.]
[마신 스킬이 Lv29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다 해 왔거든.”
마신 스킬이 성공적으로 발동되었다. 세상의 마나가 정시우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가상의 육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금방이었다. 개미에 불과했던 정시우가 눈 깜박할 사이에 강아지로, 늑대로, 호랑이로, 끝에 거인으로 완성되었다.
[마신 스킬이 Lv33이 되었습니다.]
[…….]
라이아는 말을 잃고 자신의 정면을 주시했다. 자신의 시선보다도 약간 높은 위치에, 정시우의 얼굴이 있었다. 최소한 덩치의 우위만은 사라진 셈이다. 불과 몇 초 만에.
“이것도 만만치 않게 개운하네. 좋아, 기다려 줘서 고마워.”
[네, 놈…… 어떻, 게……?]
정시우는 그것을 제 몸인 양 태연하게…… 아니, 실제로 그것은 정시우의 육신이다. 평소부터 마력을 자연스럽게 다뤄 오던 정시우이니 마력과 정시우 자신의 육체로 이루어진 그 육신에 위화감을 품을 리가 없다.
“거봐, 얼마든지 되잖아. 혼자서는 못하긴 개뿔, 역시 다른 녀석들 도움은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니까.”
“오, 빠…….”
수아린은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그녀가 무엇에 놀라고 있느냐면, 그를 따라 자신과 용세하까지 커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와 완벽히 동일한 체구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정시우가 평범한 인간일 때의 미니 모드 정도?
손바닥에 올라갈 수도 있을 크기이지만, 지금 정시우가 어지간한 화신보다도 거대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아린과 용세하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지배 능력이 어떤 힘인지 알겠어?”
“퍽이나 알겠네요!”
“이렇게도, 가능한 것이었군요…….”
광룡은 과거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는 신들 모두를 이겨 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기에 그는 무수한 존재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자를 갈망했다. 정시우의 생각대로, 그는 용도 아니었을뿐더러 광룡의 환생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광룡이 원하던 능력을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을 이로서 선택되었다. 하지만 광룡이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정시우는 용도 아닌 주제에 어지간한 용보다도 더욱 용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의 힘을 모아야 했던 건, 그냥 내가 약해서였어. 지배력도 약했고, 마력도 없었고, 뭐 스킬도 부족했고. 한 마디로 허접이었다는 거지.”
정시우는 자연스럽게 마신의 징벌을 꺼내어 쥐었다. 무기는 주인의 손에 들려 마치 그와 한 몸이 된 것만 같은 일체감을 주었다. 그 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실로 찬란하다.
“하지만 이젠 아냐. 얼마든지 나 홀로 가능해.”
“지금 섭섭하게 저희 빼놓으시는 거예요? 같이 죽을 각오로 왔는데…….”
“좋아, 빼놓아서 미안했다. 그러면 아린이부터 돌격.”
“저, 뒤에서 열심히 치유할게요!”
“저도 열심히 깐죽거려 보겠습니다, 형님!”
서포터들의 든든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라이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눈앞에서 이루어진…… 필멸자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상위세계의 마나를 지배하는, 믿지 못할 기적에 얼어붙어 있었다. 번개의 신 주제에 말이다.
“그러면.”
해머가 들어 올려졌다. 거신의 분노가 발동하며, 해머를 세상 무엇보다도 무겁게 탈바꿈시켰다.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