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39화.
[정시우]
[파괴자(Breaker)]
[Lv 415]
[근력 ? 2,125 민첩 ? 1,955 체력 ? 2,251 마력 ? 2,533]
[내성 ? 독 Lv45, 화염 Lv51, 저주 Lv53, 뇌전 Lv64, 빙결 Lv50, 바람 Lv51, 대지 Lv49, 침식 Lv55, 산성 Lv43]
[패시브 스킬 ? 용의 감각 Lv29, 용의 위엄 Lv51, 카오스 윙 Lv23, 카오스 테일 Lv21, 카오스 스케일 Lv22, 무지는 용감 Lv25, 소울 포스 Lv39, 헤비 웨폰 배틀 Lv85, 타격 전이 Lv87]
[액티브 스킬 ? 마신 Lv19, 괴력 Lv55, 마나의 길 Lv35, 거신의 분노 Lv24, 바람의 질주 Lv76, 크리티컬 불릿 Lv63, 워 크라이 Lv89, 카오스 크루얼 차지 Lv47, 긴급탈출 Lv75, 은신 Lv95, 부메랑 Lv71, 드레인 Lv68, 반복재생 Lv74, 조련 Lv65]
[고유능력 ? 강탈 Lv4, 지배 Lv3]
“하, 역시.”
정시우는 오랜만에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며 감탄사를 냈다. 스스로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사기적인 스테이터스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레벨은 둘째 치고 그가 지닌 스킬들은 강적과 조우할 때 더욱 빠르게 오르는 것이 사실인 만큼, 밑바닥의 세상부터 훑고 올라오면서는 그리 크게 성장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다만 그의 휴식처에 부속되어 있는 침실의 옵션이 워낙 강력하여, 근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만으로 모든 스킬들의 숙련도가 오르는 생활을 반복해 온 결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스킬들의 레벨을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버스 에이지로 돌입하고부터 스킬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어.”
“엄청 좋은 일이잖아요.”
“좋은 일이지. 처음부터 이쪽으로 건너올 걸 그랬어.”
길을 조금 돌아온 덕에 무수히 많은 신들의 파편을 골고루 흡수하여 마력도 탄탄하게 다지고, 본의 아니게 무수한 많은 세상의 위기를 구해 줄 수도 있었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었다. 그때 용세하가 그의 찝찝한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형님. 어차피 저들의 형세가 그리 금방 바뀌지도 않을 테고, 형님께서 성장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어째설까, 방금 네가 내뱉은 말이 날 엄청 불안하게 만드는데 말이지…….”
정시우가 이세계 순회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눈앞에서 신의 파편과 그 신의 추종자가 소멸하려는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다. 마냥 일을 느긋하게만 생각하던 정시우가 공략 속도를 무리해서 높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별로 그런 일이 없었죠.”
“아린이 너까지…… 아무 일도 없다는 걸 강조하니까 꼭 지금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잖아.”
정시우는 서포터들의 말에 한 줄기 불안감을 느끼며 만상만화경을 꺼내어 들었다. 그런데 그가 적당히 지금 세상과 마나 분포가 비슷한 다른 세상을 찾아 게이트를 열려던 바로 그 순간, 만상만화경 안에서 무수히 점멸하던 빛의 일부가 갑자기 사라졌다.
“…….”
“형님?”
“오빠,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정시우는 말없이 만상만화경을 들어 올려 코앞으로 가져왔다. 그 순간 재차 빛 알갱이의 집단 소멸이 일었다. 무려 구슬 안을 가득 채우던 빛의 10분의 1 가까이가 순식간에 소멸한 것이다.
“아니 이런 미친…….”
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타이밍이 기가 막힐 수가 있나! 혹시 내 서포터들이 예언 스킬이라도 스스로 깨우쳤단 말인가!? 혼란에 빠지면서도 정시우는 다급히 휴식처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서포터들을 잡아끌고 그 안으로 몸을 던지니, 예상했던 대로 곧장 그에게 달려오는 인영이 있었다.
“영주님, 영주니이이이이이이임!”
“그 정도로 소리 질러서 어디 내 고막이 깨지겠어? 좀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봐.”
“영주님!!!!!!!!”
정시우는 루타를 도발한 것을 후회했다. 정시우는 수아린의 치유 마법을 받으면서, 자신의 품에 매달려 오는 루타를 우선 적당히 집어 던졌다. 루타가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며 지상에 착지하더니 빽 소리 질렀다.
“너무해!”
“방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냐?”
“저야말로 영주님께 묻고 싶을 정도예요! 우리 요정상인들이 파견되어 나가 있던 모든 세상에서 갑자기, 정말로 놀랍도록 많은 신들의 수하가 힘을 잃었어요. 그 신들의 종복이 되어 움직이고 있던 인류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설마 해서…….”
“그럼 진짜냐…….”
가능하면 만상만화경이 일으킨 최초이자 최후의 에러이길 바랐는데, 아티팩트의 성능이 확실하다는 것만 재확인하고 말았다. 정시우는 이 초유의 사태에 감을 잡지 못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5천 년도 여유롭게 기다린다던 새끼들이 왜 갑자기.”
“혹시 그 때문일까요? 헥토가 오빠를 인식하는 바람에 모든 사태가 앞당겨진 것은…….”
“헥토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보다 많은 사람…… 아니, 신들이 엮여 있겠지.”
정시우는 침착하게 사태를 점검했다. 한 번에 단 한 명도 아니고 여럿의 신이 소멸했다는 사실은, 이 일이 화신의 전장조차 아닌 그보다 높은…… 정시우가 발을 들일 수 없는 차원의 전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었다.
“뉴 에이지니 크레센트 에이지니 하는 곳에서 여유 부리고 있었을 게 아니라 그냥 바로 화신의 전장으로 넘어갔어야 했나.”
“아니, 그랬으면 아무리 오빠라도 죽었죠……. 조급해지지 마세요, 오빠.”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에 암담해져 머리를 싸매는 정시우를 수아린이 침착하게 달랬다. 다행히도 그는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그래,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바로 화신의 전장으로 넘어가야지. 이제부터라도 화신들을 닥치는 대로 쓰러트리면서 성장하면…….”
“조급해지지 말라는 제 얘기는 어디로 들었어요? 네?”
“영주님, 한 말씀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때 수아린을 대신해 그에게 태클을 건 이는 다름 아닌 루타였다. 바로 화신들과 싸울 준비를 하던 정시우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그에게 만상만화경이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전의 모습, 추적자의 자물쇠와 비슷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그마한 손거울을 하나 내밀었다.
“드디어 저희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답니다! 영주님과 수하 분들께서 열심히 미레타를 사냥해 모아 오신 거울의 신의 힘으로 드디어! 우리 요정상인들의 힘이 닿는 영역 안에서 자신의 자격을 입증한 플레이어들이 자유로이 세상을 넘나들 수 있게 된 거예요!”
“너…….”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야 그녀들이 그런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세상과 세상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미레타의 힘을 기반으로 플레이어들의 힘을 모아 다른 세상의 위기를 타파하는 것.
그런 플레이어 상조 서비스가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래, 정시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이 자신과 연관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왜 하필 다른 일로 심란한 지금 그런 걸 내미냐. 나한테 미움 받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그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렇죠!”
“이게……?”
솔직히 아무리 많은 플레이어들을 모아도 정시우 스스로의 힘으로 짓누를 자신이 있었다. 아마 신들이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 그의 생각이 표면으로 드러났는지, 루타는 풋,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주님, 지금 화신의 전장에 가신다고 해도 무리예요. 조금 전에 죽은 신들, 그들의 힘이 어디로 향했을까요? 그들을 죽인 신들은 전보다 족히 두 배는 강하게 거듭났어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화신도 마찬가지죠. 재수 없어서 그놈들을 만나게 되면, 영주님께서 그곳에서 힘을 키워 보기도 전에 끝장날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
맞는 말이기에 반박할 수 없다. 정시우는 언제나 스스로 위험한 길을 헤쳐 나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잡아먹고 강화된 신들의 화신이 범람하는 화신의 전장은 여태까지 지나온 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험난한 길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화신의 전장에 들어가는 건 무리니까 그냥 허약한 몬스터들, 플레이어들이나 상대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영웅 놀이나 하라고?”
“영주님, 하늘성을 움직이는 에너지의 원천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또 뜬금없는 질문이 튀어나왔지만, 이제 더 이상 선문답에 어울려 주는 것도 질색이다. 그녀가 아무리 정시우를 협박해도 정시우는 스스럼없이 그 길로 나아갈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쟁취할 것이다!
정시우는 그녀에게 대꾸해 주지 않고 돌아섰다. 루타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건 그 세상과 구성원들 스스로의 의지예요! 침입자들을 배척하고자 하는 의지,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스스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 그런 의지를 기반으로 하늘성이 구동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뭐.”
“그런 하늘성의 최대의 적은 누굴까요?”
“신이겠지.”
“여기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는 걸 용서해 주세요, 영주님…… 그러면, 하늘성의 근본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정시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하늘성의 목표, 신을 배척하고 세상을 지켜 내는 것? 그녀는 그런 뻔한 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이미 그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물러설 순간을 파악한 루타가 침묵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문득 정시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원망은 필요 없다. 그 모두를 내가 떠받치리라. 삶도 죽음도, 가능성도. 과거와 미래마저.]
그 꿈을 꾼 것은 언제였던가. 당시는 그냥 용답게 중2병 넘치는 대사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설까, 지금은 그 안의 의미가 읽히는 듯하다. 용은 하늘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모두 바쳐 만들어 낸 하늘성을, 자신과 같은 취급하여.
[그러니 단언컨대.]
용에게는 미래를 읽는 능력 따위는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도, 물론 환생하는 능력도 없었다. 그는 이미 머나먼 과거에 죽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가 곧 하늘성이었다.
[반드시 내가 승리하리라.]
그리고 그의 목표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끝에 모든 신을 물어 죽이리.]
한때 하늘성의 목표를 세상의 방위 정도로 이해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광룡의 의지임을 알게 된 지금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헥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용이란 족속은 본디 일을 그리 평화롭게 해결하는 성격이 아니다. 철저하게 부딪쳐서 둘 중 어느 한쪽이 깨져야만 끝이 나는 것이다.
신의 힘을 택하여 세상들을 집어삼키리라 욕망한 헥토, 자신의 육신과 영혼마저 내바쳐 신들을 죽여 버리리라 욕망한 광룡. 둘은 과연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였다.
“하늘성의 목표는…….”
정시우는 스스로도 왜 이제 깨달았을까,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신의 절멸이지.”
“그렇습니다, 영주님.”
루타가 담담히 동의했다. 이어서 아직 그가 모르고 있는 퍼즐의 마지막 한 피스를 들어, 그의 심장에 맞추어 넣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 그것을 우리는 ‘용사’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죠. 바로 당신, 영주님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