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235화 (235/260)

# 235

235화.

“후딱 끝내자, 얘들아.”

[크핫!?]

[저것은 뭐지, 마법인가!]

[아니, 마법이 아냐! 엄청 큰 망치다! 카학!]

정시우는 적당히 중 사이즈 정도로 거대화한 마신의 징벌을 휙휙 휘둘러 그들에게 쇄도해 오려는 오크들을 걷어 냈다.

오크라면 이미 지구에서도 질리도록 상대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히토이에서 군락을 형성하고 있던 대부분의 오크는 정시우의 지구에서의 주적이었던 기갑 오크에 비하면 한참은 뒤떨어지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갖는다!]

[욕망하라, 쟁취하리라!]

[구오오오오오오!]

“하, 진짜 떼거지로 몰려 나오네…… 음?”

다만 놈들만의 장점이 있다면 일단 던전 대여섯 개는 합쳐 놓은 수준의 숫자의 오크가 한 무리로 몰려다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놈들을 이끄는 오크 한 마리가 유독 강인하다는 점이었다.

[네놈들 모두 물러서라! 내가 저 남자를 처단하고 여자를 차지하겠다!]

[족장!]

족히 레벨 350을 넘기는 수준의, 철옹성 같은 방어력과 폭탄이 터지는 것만 같은 타격 공격을 가해 오는 엘리트 몬스터!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크흑, 쿨럭……!]

“좋아, 마무리.”

……라고 해도 이젠 1초 이상 정시우의 발걸음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이미 그는 일반적인 몬스터의 격으로는 감히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니까.

[조, 족장이 죽었다.]

[저렇게 간단하게 족장을 죽이다니, 놈은 다른 신의 종속이다!]

[헥토, 헥토의 종속이 분명하다!]

오크들은 용감하게 돌진하다 말고 기겁하여 멈추어 섰다. 욕망의 신 마그네를 신봉하는 오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바로 힘의 신 헥토!

정시우가 보여 준 터무니없는 규격의 힘은 실로 헥토의 그것에 어울렸기에, 오크들은 수아린을 향한 욕망마저 사그라질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정시우는 놈들이 멈추건 후진을 하건 신경 쓰지 않고 망치를 휘두를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그때 뒤에서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시우가 망치를 휘두르다 말고 힐끗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놀랍게도 아까 그들을 막아섰던 플레이어…… 여성 엘프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시우에게 외쳤다.

“어떻게, 그런…… 아니, 그것보다 오크와 적대관계였단 말이냐!?”

“진짜 엘프들은 끈질긴 것‘처럼’ 보이는 것만은 인정해 줘야겠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글쎄 그 ‘처럼’에 담긴 의미가 대체 뭐냐니까욧!?”

정시우와 용세하가 감탄하고 수아린이 태클을 걸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 오크들은 아리따운 엘프의 등장에 재차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직후 정시우의 망치에 깔끔하게 육포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이었다.

“좋아, 그러면 일단 파편 흡수하고…….”

“파, 파편? 잠깐만, 그건 신의 힘이다! 그걸 받아들였다간 당신도 저 오크처럼 되어 버려!”

엘프가 지극히 합당한 소리를 하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정시우는 가볍게 그것을 주먹으로 쥐었다. 그 순간 파편은 사라지고, 정시우의 힘은 강화되었다. 엘프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악!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쩝, 어떻게 잘 하면 지배나 조련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양이 부족하네.”

“그게 그렇게 이어지나요?”

욕망의 신 마그네는 생물의 근본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신! 한 가지 감정으로 뇌를 마비시켜 일시적인 힘의 폭증 또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이들을 이끌기에 적절한 능력이기도 했다.

“그리 좋은 힘은 아니지. 어찌 됐든 대상의 감정을 조작하는 거니까. 그만큼 강력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들으니까 조금 무서운걸요.”

“아니…… 뭐?”

금방이라도 몬스터로 변해 자신을 덮쳐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태연하게 동료들과 마그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시우의 모습을 보며 엘프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당신, 어떻게……? 신의 힘을 받아들인 이상 변이는 피할 수 없, 아아, 그래. 당신은 역시 마그네의 종속이구나! 그들의 힘을 거둬 스스로를 강화하기 위해 이 세상에 찾아온 거지!? 마그네의 종속 중에서도 랭크가 높은, 그만큼 시커먼 욕망을 지닌……!”

“망상력까지 풍부한 게 아주 완벽하네.”

정시우는 슬슬 엘프의 새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귀찮아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날개를 펼쳤다. 신의 파편을 수거했으니 남은 사체들에 볼일은 없는 것이다.

“용족, 전설로만 전해지는 용의 후예가 설마 욕망에 타락해 마그네의 휘하로 들어갔을 줄이야…… 당신이 그러고도 긍지 높은 용족, 아아앗, 어딜 도망가는 거냐!”

“좋아, 그럼 가자.”

“넵, 형님.”

“멈춰! 우리 엘프의 전력을 다해서 네놈의…… 큭! 기다려!”

엘프의 머릿속에서는 한층 장대한 대서사시가 완성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물론 정시우가 알 바 아니었다.

그는 다음 오크의 군락을 찾아 날갯짓했다. 엘프 또한 풀잎으로 만든 것만 같은 요정의 날개를 펄럭여 뒤를 쫓았지만, 당연히 금방 뒤쳐져 사라지고 말았다. 문제는 정시우가 전투를 벌이고 있으면 또 그녀가 그의 뒤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

“형님, 어떻게 하죠?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동안 저 여자가 계속 따라붙을 것 같은데……. 게다가 정말 귀찮게도 이동속도 하나는 끝내주게 빠르네요.”

“하지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죽일 수도 없잖아.”

그렇다고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리도 없다. 어차피 그녀가 정시우 일행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은 없으니 이대로 놔두면 되는 것.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지만 수아린은 어딘가 긴장이 되는 기색이었다.

“이러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저 엘프가 오빠한테 반해서 달라붙기라도 하면…….”

“만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아린아…….”

“하지만 오빠는 그만큼 멋진걸요!”

“그래그래, 너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

“꺅.”

“……케이나가 보고 싶어.”

그 후로는 과연 용세하가 예상했던 것과 비슷한 전개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마그네의 파편을 찾아가는 곳마다 거대한 오크의 군락이 있었고, 그것들을 부수고 있자면 어김없이 엘프가 그들을 쫓아와서 쫑알대는 것이다.

“너는 그렇게 위대한 용의 이름에 먹칠을 할 셈이냐? 욕망 따위 천박한 감정을 주관하는 신 따위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마!”

“아, 글쎄.”

물론 그녀 혼자서 정시우에게 덤벼 봤자 이길 턱이 없으니 더 이상 선제공격을 해 오는 일은 없었지만, 용족의 긍지에 부끄럽지도 않냐며 정시우에게 끊임없이 정신공격을 시도했다.

다섯 번째의 군락을 깨부수고 세 번째로 마그네의 파편을 획득하여 흡수를 완료한 정시우는 엘프의 끈질김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짧게나마 그녀의 의문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

“용족 아니거든.”

“그럼 무어란 말인가! 헛, 설마 용족이 아니라 드래곤……!?”

“인간이야. 덤으로 몬스터만 부수고 신의 파편만 회수하면 깔끔하게 너희 세상 뜰 테니까 그렇게 걱정하면서 따라다닐 필요 없어. 따라다녀도 소용없고.”

으으음, 조금만 더 하면 지배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아슬아슬한 부분에서 힘이 부족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있는 정시우를 향해 엘프가 반박했다.

“인간이라고……!? 거짓말, 그 날개는!”

“너희랑 비슷한 입장이야. 그 풀잎 날개 대신 용의 날개를 얻었을 뿐이지.”

“꼬리도 달려 있잖아!”

“좀 특별한 플레이어라서 그래. 자, 이제 그만 물어봐.”

“큭……!”

엘프에게 대답을 해 주면서도 정시우는 계속해서 신의 파편의 위치를 탐색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마그네의 파편을 좀 더 모았으면 했지만, 역시 하나의 세상에 파편이 세 개씩이나 있는 것도 기적이었던 것일까. 방금 정시우가 흡수한 것이 마지막인 모양이었다.

“야, 엘프. 이제 이 세상에는 오크 군락이 없냐?”

“나한테는 그만 물어보라고 면박을 준 주제에……! ……오크 군락은 물론 많다. 다만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군락은…… 이제 없어.”

엘프 입장에서는 무척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정시우가 몇 시간 날아다니며 가볍게 휘둘러 댄 거대 망치에 의해 이 세상 히토이를 지배하고 있던 마그네의 세력은 거의 절반 이상 날아가 있었다.

더욱이 오크 중의 절대 강자들이 전부 죽어 버렸으니, 잘 하면 엘프들이 오크를 상대로 세상의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 남자가 이대로 이 세상을 떠나 준다면 말이다.

“그자의 불결한 파편도 더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테고, 물론 성역에도…… 그, 그래서. 너는 이대로 갈 것이냐?”

“아니.”

기대와 약간의 불만을 담아 엘프가 묻는 말에 정시우는 순순히 고개를 젓고는 대꾸했다.

“이제 다른 신의 파편을 회수해야지.”

“뭣!? 너는 마그네의 종속인데 어떻게……!?”

“인간이라니까.”

이미 마그네의 힘이 크게 미쳐 있는 세상이었기에 다른 신의 파편을 찾기도 힘든 일이었지만, 정시우는 높은 산악 지대에 아주 작게 남아 있던 대지의 신 유고의 파편과, 바다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헤데아의 파편을 각각 하나씩 찾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지?”

끈질기게 정시우를 쫓아다닌 엘프는 정시우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마그네의 파편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의 힘까지 대수롭지 않게 흡수하는 모습을 보이자 경악하여 벌벌 떨며 물었다.

적어도 더 이상 용족이라느니 몬스터라느니 귀찮은 말은 하지 않았으니 잘 된 일이겠지. 정시우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신의 파편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는 다음 세상으로 가자고 마음먹으며 그녀에게 대꾸해 주었다.

“인간이라고 했잖아. 무수히 많은 다른 세상 가운데,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인간이 한 명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 그런가…… 정말 용족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용의 흔적과는 정말로 관련이 없단 말인가……?”

이해는 안 가는 일이지만 엘프는 그 말과 함께 조금 유감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로 만상만화경을 작동시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려던 정시우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려 멈추어 서고 말았다.

“용의 흔적?”

이러면 안 되는데, 녀석이 생각하는 대로 놀아나는 꼴인데……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엘프의 귀가 힘차게 펄럭였다. 낚시 인생 30년 만에 가장 큰 대어를 낚아 올린 낚시꾼도 저렇게 상쾌한 표정은 짓지 않을 것이다. 정시우가 참혹하게 인상을 구기고 있자니 엘프가 히죽 웃으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역시 넌 용족이었구나! 그렇게 막무가내로 신들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용족이어서 그런 거였어!”

“아니, 인간이라니까. 다만 용 하고 관련이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

“아아, 것봐요. 수작을 부려 올 줄 알았다니까요!”

“선배님, 일단 진정하시는 게…….”

서포터들이 쑥덕거리는 소리에 정시우는 성대한 한숨을 내쉬고는, 기대와 불안과 흥분이 적당히 섞인 표정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엘프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알고 있다는 용의 흔적이라는 게 뭔데? 안 가르쳐 줄 거였으면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겠지?”

“후후, 만약 네가 우리를 절대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가르쳐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어떠냐, 한 방 먹었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엘프였으나 애초에 이 세상의 인류에는 손을 댈 생각이 없던 정시우다. 의심도 많고 끈질긴 주제에 또 결정적인 부분에서 쉽게 넘어가는 것이 실로 엘프답구나, 하고 생각하며 정시우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너희가 날 먼저 적대하지 않는 이상은 공격할 생각 없으니까 안심하고 가르쳐 주기나 해.”

“좋다, 용족의 긍지를 믿어 보지. 그러면 따라와라.”

엘프가 풀잎 날개를 펼쳤다. 주도권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얼굴색이 조금 밝아져 있었다.

“이 세상의 최심부, 아직 나만이 알고 있는 세계로 안내해 주지.”

엘프와 오크가 대립하는 세상, 그곳에 남은 드래곤의 흔적.

실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정시우는 그녀를 따라 날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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