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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33화 (233/260)

# 233

233화.

태초의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그것은 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것에 대해서만은 모두가 답을 알고 있었다.

다른 세상들의 마나와 기록이 일정한 영역에 이르렀을 때, 그 힘을 나누어 받아 탄생하는 것이다. 모든 세상, 뉴 에이지로의 진입을 마친 세상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발전한 세계…… 마지막으로 다른 신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까지도.

[그렇기에 우리는 끝없이 성장할 수 없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의지에 힘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 불합리를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 신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다른 신을 사냥하여 힘을 불리는 것이지. 그것만이 쇠락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영광된 미래를 위한 첫 걸음이 되리라.]

화신의 전장? 아니었다. 화신을 유지할 힘조차 잃고 자신의 세상으로 도망쳐 온 신을 철저한 포위망으로 구속하여, 끝내 진체의 목숨을 취하려 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 신의 적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어쩌면 그 뒤로는 더욱 많은 신이 있을지도 몰랐다.

[바보 같은…… 신들 사이의 동맹이라고? 결국 네놈들도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될 것이다.]

[아타헤, 그것은 우리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신 중 하나가 대상을 아타헤라고 부르며 거리를 좁혔다. 그 손에 강대한 에너지가 모여들어 마나의 창을 만들어 냈다. 그 신이 과거 얻고 익힌 아티팩트와 스킬들의 힘이 담긴 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느긋이 쇠락하기는 싫은 것이다. 변화, 그것이 진화의 시작이다.]

[어리석은 자, 그것은 파멸이다!]

[일부의 파멸이다. 너를 포함한 나약한 자들의 파멸!]

[칵!]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누군지 모를 이름의 신이 내지른 창이 아타헤의 몸을 잔혹하게 꿰뚫어, 그 신의 힘을 모두 오롯이 창을 통해 그에게로 옮겨 왔다. 그와 동시에 신이 다스리던 세상이 끔찍한 진동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자.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가지 못하면 제아무리 우리라도 제법 힘들어질 거야.]

[그래. 이 감미로운 승리를 만끽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니 아쉽군.]

[다음은 내 차례겠지.]

[신성한 동맹의 약속에 따라, 물론 그럴 거야.]

아타헤의 힘을 흡수한 신은 흡족한 얼굴로 그렇게 대꾸하고는,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깟 인간 하나 무서워서 5천 년씩이나 기다릴 수 있겠나. 지구뿐만이 아닌 다른 모든 세상을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앞으로 오백 년…… 아니, 잘하면 오십 년 안에도. 이 지긋지긋한 어릿광대 신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신을 칭하게 될 날이…….]

그러나 방금 무사히 한 명의 신을 잡아먹은 이름 모를 그 신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500년도 아니고 50년도 아니고 5년 안에 신들을 모두 잡아먹을 기세로 활동하고 있는 한 괴물의 존재를.

“대체 뭐야, 여기도 뉴 에이지밖에 안 됐잖아!”

정시우는 열일곱 번째로 찾은 세상(그들은 만상만화경으로 비춰 낼 수 있는 세상 중 마나 밀도가 낮은 세상부터 골라서 움직이고 있었다.)도 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분노하여 울부짖었다.

지구 시간 기준으로는 출정으로부터 사흘이 지나도록 레벨 업 한 번을 못했으니 그가 분노한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경험하고 지나가자고 말한 건 어디의 누구였죠.”

“아무리 그래도 이건 파편이 너무 기대가 안 되는데…….”

그의 분노를 대충 달래 주곤 날개를 펄럭이며 세상의 정경을 둘러보던 수아린이 태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구랑 제법 환경이 비슷하네요. 게다가 발전도 지구랑 비슷한 방식으로 해 왔나 봐요, 오빠. 봐요, 저기.”

정시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지상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늘로 뻗어 가는 아스팔트 도로가 보였다. 지구의 자동차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이세계의 자동차들이 그 도로를 내달리는 모습 또한 보였다.

“지구의 다른 버전 느낌이네. 하긴 모든 세상이 중세 판타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으면 그거야말로 코미디이긴 한데.”

“그래도 뉴 에이지의 여파가 있긴 있었군요. 공중도로가 중간에 끊겨 있는 지역도 보입니다.”

과연 시각 스킬의 각성자답게 수아린이 보지 못한 것을 캐치해 내는 용세하. 정시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다가 문득 생각했다.

‘새삼 생각해 보면 이상하단 말이지. 여태까지 내가 들른 세상들의 구조물들의 모습도 지구와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없었으니까. 어디에서 태어났든 사람들의 발상과 디자인은 비슷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딱히 설명할 방도가 없다. 물론 그것이 자신의 파괴 공작에 별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에, 정시우의 상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탐구자가 아니라 파괴자인 것이다.

“후딱 신의 파편들 수거해서 가자. 지금 하나 찾았다.”

“넵, 형님.”

“아, 저기 플레이어들이 우리 발견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이쪽 세상에서는 플레이어를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무시해, 무시해.”

명백히 강대한 기운을 지닌 이들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경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 정시우의 힘은 이제 뉴 에이지 정도로 강도가 취약한 세상에서는 극렬히 거부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만상만화경의 힘으로 개무시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반동이 얼마나 거칠겠는가! 제아무리 휴식처의 성능인 은신이 그에게 적용되어 있다 해도, 스킬 은신의 효과가 거기에 더해진다 해도, 세상에 진입할 때의 진통이 그들의 위치를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에게도 모두 알려 버리고 마는 것이다.

“큭, 저기 어마어마한 기운을 지닌…… 인간? 용인 타입의 몬스터인가!”

“안 돼, 이쪽에는 정부 시설이 있단 말이다. 목숨 걸고 사수해!”

아무래도 저 플레이어들 나름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날아오는 것 같았다. 정시우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피막의 날개를 크게 펼쳤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의 파편의 위치를 파악한 지 오래! 굳이 저들에게 길을 물어볼 것도 없이 그는 바로 도약했다!

한창 신의 파편(뉴 에이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굉장히 작고, 파수꾼들 또한 별 볼 일이 없었다.)을 회수하고 돌아다니던 정시우가 이변을 느낀 것은 마지막 신의 파편이 묻힌 언덕에 이르렀을 때였다.

“다른 세상에는 개미굴 같은 게 없으니까 말이지…… 하늘성에 의해 막혔던 파편이, 플레이어들의 죽음을 이용해 그대로 대지에 내리꽂히는 거야.”

“그래서 오빠, 여긴 얼마나 많이 파야 해요?”

“얘들아, 나와 봐라.”

“넵.”

정시우가 꼬리를 한 차례 들어 올렸다가는, 그 날카로운 끝에 힘을 잔뜩 집중하여 땅에 내리꽂았다.

그 순간 일대에 둔한 진동이 내달리는가 싶더니 정확히 그의 꼬리에 가격당한 곳이 거대한 드릴로 파 내려간 것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 아니, 플레이어들이라고 해도 족히 며칠은 걸릴 대공사를 일순 해치워 버린 것이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어쩌면 오빠의 꼬리는 처음부터 개미굴 던전을 찾는 것보다는 지하에 숨은 것들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용세하와 수아린이 멍하니 감상을 늘어놓고 있자니 정시우는 한 손에 가볍게 탱탱볼을 꺼내 쥐었다. 적당한 공격력과 상당한 내구력, 마나를 잘 받아들여 증폭시키는 성질까지 간단하게 써먹는 투척 무구에 이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파수꾼이 있어.”

[누구냐! 감히 아타헤 님의 성역을 침범하려는 무뢰배는!]

“흡.”

정시우는 적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탱탱볼을 내던졌다.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탱탱볼이 아니라 유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항시 발동되는 괴력으로 던져 낸 탱탱볼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려 파수꾼이라는 놈의 몸통을 관통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정시우는 놈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탄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뉴 에이지에서 구할 수 있는 파편치고는 상당하리라, 그런 결론을 내린 정시우는 바닥을 한 번 찍고 고스란히 하늘로 솟구친 탱탱볼을 받아 들고는 직접 몸을 내던졌다.

“아.”

꼬리 내려치기 한 번에 수백 미터 이상 파인 거대한 구덩이로 낙하하자 그의 눈에도 파수꾼과 그 녀석이 지키는 기이한 문양이 박힌 구조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탱탱볼 한 방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고 있는 괴물…… 아마도 곰을 닮은 녀석의 모습은 과연 정시우도 처음 보는 것. 아타헤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으니, 이번엔 완벽하게 새로운 신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조오아써, 그대로 흡수…… 음?”

그러나 하필 그 타이밍이었다. 파편을 지키던 수호자도, 그 수호자에 의해 지켜지던 파편도 일시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편은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일 만큼 크기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수호자의 몸에서는 생기가 빠져나갔다.

“미친, 밑장빼기냐!?”

“그럴 리가 없잖아요!?”

상황은 모르겠으나 눈앞에서 힘을 빼앗길 수는 없다! 정시우는 다급히 바닥에 착지하여 우선 파편을 확보했다.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두르고, 어떻게든 권리를 확보하여 흡수한다.

파편을 흡수하고 나서야 명확히 알게 된 것이었지만 아타헤는 곰의 신이었다. 어쩌면 그와 속성이 겹치는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만상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 신인 만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음, 역시 별 볼 일 없는 신이구나. 그럼 이건 그냥 괴력에 흡수시키고……. 그래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신의 힘을 이 세상에서 빼내기라도 하려는 거였더라면 수호자를 죽일 게 아니라 수호자가 파편을 들고 튀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크, 흑…….]

아타헤의 수족이자 엘리트 몬스터인 그놈이 갑자기 피를 한 바가지 토해 냈다. 탱탱볼로 입은 상처 때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아타헤, 님……?]

“이봐 너, 네가 섬기던 신한테 버려진 거냐. 죽기 전에 뭐라도 대답을 좀 해 봐. 원래 신들이면 그런 식으로 파편에서 힘을 빼낼 수도 있는 건가? 그러면 앞으로의 계획을 제법 수정해야 하게 되거든……?”

[차라리, 그랬더라면…… 아아, 아타헤 님……!]

몬스터가 목 놓아 울부짖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 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정시우는 녀석을 그대로 죽여 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의 주먹이 몬스터의 머리통을 터트린 순간.

[마나와 기록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허물을 쓰러트렸습니다.]

“음……?”

분명히 경험치와 기록, 마나는 흡수했다. 하지만 어째 망막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탐탁지 않았다.

마나와 기록이 빠져나가? 어째서? 신이 그 원천을 물렸기 때문에? 몬스터를 통해 정시우를 미리 감지하고 있기라도 하다가 종속을 포기하고 이 세계에서 힘을 모두 물리려 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구에 이어 다른 세계에서까지, 내가 나타난 것만으로 그렇게 호락호락 방을 빼려고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지…….”

“애초에 신이 항상 오빠를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때였다.

“여기다! 여기서 터무니없는 굉음이…… 아까 보고되었던 그 몬스터 아냐!?”

“아니, 하지만 그 몬스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기는커녕 험지만 골라서 휩쓸었다고 합니다. 뭔가 찾는 게 있는 이처럼…….”

“우리는 일단 저들을 구속하고 볼 뿐이다!”

아, 또 정시우가 모르는 장대한 대하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밀려오는 귀찮음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만상만화경을 꺼내어 들었다.

“잘 모르겠으니까 일단 이 아타헤라는 곰 녀석의 흔적을 쫓아가 볼까.”

“찬성입니다.”

그러나 기세 좋게 아타헤의 힘의 흔적을 드러내려던 정시우는 다음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그 신의 흔적이 남은 세상이, 차례차례 무너져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만상만화경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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