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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226화 (226/260)

# 226

226화.

정시우는 그린란드를 비롯해 북극점 일대, 여태껏 토종 몬스터의 손이 닿지 않았던 곳들을 무자비하게 점령해 나갔고, 마법적인 한기에 의해 영하 60도 아래까지 내려간 끔찍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몬스터들을 자신이 거느리는 몬스터들과 함께 문자 그대로 갈아 버렸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그의 돌진이 멈추었다. 더 이상 상대할 몬스터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독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지키고 있던 구역을 돌파한 결과 발견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찾았다.”

“이것…… 신전?”

수아린이 하얀 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들어 눈앞에 드러난 구조물을 살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틈이 드러난 작은 석조 건물. 얼핏 이전 일본의 오타루에서 발견했던 라이아의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아, 이제 저도 알겠어요. 이 힘은 확실히 이곳에 와서 많이 느껴 본 종류네요.”

“그렇지?”

“그런데…… 신의 흔적이 정말로 미약하게 느껴지는군요. 정말 이게 신전이 맞는 걸까요? 이 안에 모인 힘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자면 소신전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만…….”

용세하의 지적에도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 강한 신은 아닐지도 모르지. 어쩌면 본인의 힘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나도 확신은 없다니까. 자, 들어가 보자.”

아무리 비좁아 보여도 과연 신전은 신전, 정시우 일행이 모두 들어가고도 남음직한 공간이 있었다.

그 안은 기이할 정도로 깨끗했고 그 흔한 신상조차 없었는데, 단지 석벽에 둘러싸인 중앙의 제단 위에 작은 거울이 놓여 있었다. 신의 파편도 아니고 아티팩트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흔한 손거울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은?”

“우리가 바로 방금 죽였잖아.”

“신의 파편이라든가, 그런 건…….”

“모든 신전에 신의 파편이 있으려면 신들은 본체를 유지할 힘도 없겠다. 읏차.”

“……아!”

수아린이 허무하니 중얼거리는 말에 대꾸해 주며 제단으로 다가가 손거울을 집어 드는 정시우를 본 용세하가 돌연 깨달음의 탄성을 내질렀다.

“겨울의 신이 아니라 거울의 신이군요!?”

“빙고.”

정시우는 잠시 손거울을 살피다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부수어 버렸다. 그 순간 신전이 요동치며 끔찍한 마력을 발산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건물을 무너트려 정시우를 죽이려거든 태양 규모의 건축물이 아니고서야 무리였다.

“흣!”

정시우는 가볍게 해머를 휘둘러 신전을 쓸어버렸다. 해머에 맞닿은 건물 파편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하여, 금세 바깥 풍경이 드러났다. 정시우는 남은 구조물들을 꼼꼼히 눌러 부수고는 개운한 한숨을 토해 냈다.

“이쪽은 이걸로 끝인 것 같네. 그럼 이제 남극으로 가자.”

“남극에도 이 신의 흔적이 있을까요?”

“아마. 거울의 신이 위장하기에는 딱 좋잖아.”

겨울의 빙판 속에 몸을 감추고, 대지며 바람, 바다를 관장하는 신들의 힘을 흉내 내어 자신의 권속들을 위장시키는 신. 그것도 정시우를 제외한다면 신의 본체 정도는 나서야 감식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미묘한 차이였다.

그러니 과연 세상 속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기에는 거울의 신만큼 탁월한 재주를 지닌 놈도 없을 터다.

“하지만 나한테 걸려 버렸단 말이지.”

“오빠가 엄청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게 좋아!”

“선배님…….”

정시우는 북극해와 대륙에 주둔하며 영역을 확보할 수중 몬스터와 육상 몬스터를 선별하고, 나머지 녀석들은 게이트를 통해 모두 심해관과 사막의 낙원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좋아, 그럼 남극으로 가 볼까. 그곳에는 좀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좋겠네.”

“저 펭귄 보고 싶어요, 펭귄.”

“이 긴장감의 기역자도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 정말 참을 수가 없군요.”

정시우는 인간 모습으로 화한 세이락시아와 에리우를 대동하고 북극을 빠져나왔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스레, 아주 멀리서 그들을 포착하고 있는 카메라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이제 와 별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영상을 보며 팝콘을 집어 먹는 정도일 테니까.

“뭐하러 지켜보는 걸까. 아프리카도 포기해 놓고 이제 와 북극과 남극 대륙에 욕심이 나는 건 아닐 텐데.”

“슈, 이곳은 그리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나는 딱히 욕심이 없으니 인간들에게 나누어 줘도 좋다.”

“네가 살기 힘들다고 할 정도인데 일반인은 어떻겠냐.”

몬스터 소재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일반인들도 충분히 극악한 환경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의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고서야 무리였다. 그래도 B&Y를 시작으로 많은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50년 안에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정시우는 멍하니 생각하며 발을 놀렸다. 남극해와 남극대륙은 여러모로 북극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터, 아마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정시우의 상상을 초월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분명 거울의 신이라는 녀석의 자그마한 파편이라도 얻게 된다면, 정시우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들이 상당히 수월해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좋았어, 다들 잘 따라와라!”

[뿌우우이이이이이이이이이!]

[대리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추, 춥다…… 조금 더 밑으로 들어가자.]

[하지만 세이락시아가 저 위에 있는데…… 춥다.]

두 시간이 더 흘렀을 즈음 정시우 일행은 순조로이 남극해로 진입할 수 있었다.

뉴 에이지와 크레센트 에이지를 거치며 남극해 전체를 휘도는 해류는 거의 자연재해에 가까운 수준으로 증폭되어 있었는데, 침입자를 완강하게 거부하듯 강렬한 마나를 품고 휘도는 물의 흐름은 과연 어째서 인류가 뉴 에이지 이후 남극을 깔끔하게 포기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 몬스터보다 자연이 더 큰 적으로 부상할지도 모르겠어.”

“결국 이전에 보았던 그 세계처럼 되는 걸까요. 일반인들은 문명을 유지할 여력이 사라져 99% 이상 절멸하고, 끝내 플레이어들만이 그 세계의 주민으로 남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정시우와 합을 맞추는 데 제법 익숙해진 세이락시아가 자신의 권능을 퍼트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남극 대륙 전체를 감싸고 휘돌며 침입자를 거부하던 해류가 그에 저항하려는 듯하다가 이내 균열을 일으킨 것이다.

[뿌우이이.]

“완전히 해소하기는 힘들 거야. 이 정도면 됐어, 뿌이. 다들 여기로 나아가자! 안으로 들어가면 더 추워질 테니까 자신 없는 녀석들은 깊이 잠수해라.”

[여기서 더!?]

[어째서 놈들은 이렇게 추운 곳에서 살고 있는 거지? 바보인가?]

너무 춥고 힘든 나머지 적의 지능수준을 의심하기까지에 이른 물고기들. 정시우는 피식 웃곤 세이락시아를 이끌어 앞으로 나아갔다.

남극해 전체를 두르고 있는 극심한 해류는 바다 표면과 수중은 물론이고 해상 일정 영역에 자연적인 안개의 결계를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물론 정시우의 날갯짓에 덧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아…….”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건…… 북극과는 달라요.”

용세하가 긴장하여 자신의 랜스를 꽉 움켜쥐었다. 정시우 역시 제법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신의 흔적에 피식 웃어 버렸다.

“이미 자신의 정체가 들켰음을 인지하고 대대적으로 나서는 건가. 얼마든지 덤벼!”

[쿠아아아아아아!]

그것은 정말로 가슴 떨어지는 기습이었다. 정시우가 기세 좋게 날갯짓을 해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린 괴물이 정시우의 정수리를 향해 발톱을 그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생김새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어, 굳이 말한다면 몸에 슬라임을 발라 끈적이는 이족보행형 괴물의 몸통 이곳저곳에 거울 파편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과연, 이게 [정예]냐?”

정시우는 가볍게 꼬리를 휘둘러 놈을 꿰뚫었다. 그다음 순간, 어느 정도 정시우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놈의 모습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엘이 신음을 토했다.

“이 자식이 언제 나를……!?”

[키이이이이이이! 키히이이이이이이!]

정말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정시우를 짓쳐 들고 있었던 몬스터가 지금은 엘의 목을 조르는 것이 아닌가! 기습을 당해 깜짝 놀란 엘은 곧 정신을 차리고 놈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아 뽑아냈지만,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놈의 신형은 허공에서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신기루 몬스터인가요?”

“아니, 이건…….”

정시우는 용의 감각을 활성화하다 말고 잠깐 몸을 비틀거렸다. 그의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용의 감각으로 받아들인 시각 정보가 크게 불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거울의 신이라는 건가…….”

대충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남극 대륙에 만연한 특유의 마나, 그것에 거울의 신의 마나가 섞여 대지와 하늘, 바다의 모든 빛을 조종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상을 보는 이의 시야에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어…… 그러니까 형님, 지금 이건 블X치에 나오는 경화수월 같은 상황입니까?”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부터는 다들 내 곁으로 다가와 붙어. 내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도록.”

“네!”

“알겠다!”

“제법 긴급상황처럼 보이는데 두 분은 아주 신나셨군요……. 아, 슬슬 혼자서 태클을 걸기가 힘든데 어째서 케이나는 같이 오지 않은 거야!”

정시우는 날개를 크게 펼쳐 일행을 감싸고, 본격적으로 감각을 확장하여 수중과 본색을 드러낸 거울의 신의 힘은 분명 강력했다. 강력했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시우가 누구인가? 자신의 오감을 버리고 새롭고도 절대적인 감각의 영역을 개척해 내는 데 성공한 필멸자다.

그런 그를 속이려거든 신의 진체를 끌고 와도 힘들 터인데, 크레센트 에이지에 불과한 지구에 깃든 마나만을 이용해 그를 어떻게 해 보려고 했다니 코웃음이 나올 따름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좋은 수련이 되겠지. 내 육체와 용의 감각을 일치시키는 좋은 수련…… 이!”

돌연 정시우의 맨손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허공을 갈랐다. 그 끝에 분명한 감촉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주위에 머물고 있던 신의 마나가 이지러지며 정시우의 손아귀에 잡힌 채인 괴물의 모습이 드러났다.

[키히이이이이이이이! 미레타 님의 성역에 들어온 네놈들 모두에게 저주 있으라!]

정시우의 꼬리에 몸통이 아닌 팔을 꿰뚫리고, 엘의 완력에 목이 아닌 다리가 뽑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괴물. 타격 순간 드러난 모습조차 허상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물론 지금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

“일단 한 마리 처치하고.”

[푸익!]

놈의 사체에서는 아주 작은 신의 파편이 나왔다. 직접적으로 신의 파편을 품지 않고서는 정시우를 한순간이나마 속일 수도 없단 얘기다. 정시우는 우선 그것을 품에 집어넣고는 보다 감각을 확장했다.

“수중 몬스터 중에도 그런 녀석이 있을 수 있어. 맑은 가을 하늘이든, 얼어붙은 대지든, 투명한 물속이든…… 거울의 힘을 사용하기에는 이만큼 최적인 곳이 없으니까. 뿌이, 애들 보호해. 힘 아끼지 말고 전력투구하도록.”

[뿌이!]

“엘은 나를 보조해 줘. 대지의 힘을 빌려야겠어.”

“영광이다.”

놈의 등장은 전초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거울의 신이 정말로 지구에서 야욕을 드러낼 셈이라면 아직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방금 해치운 놈이 천 명 집합해 나타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여긴 혼자 왔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쉽게 됐네.”

“무서운 말씀 하지 마세요.”

인간은 언제나 미지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역시 정시우는 인간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아린이 합당한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주억이는 가운데, 정시우는 본격적으로 거울의 대지에서 자신의 기운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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