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205화 (205/260)

# 205

205화.

“그래서 대체 그 힘은 뭔가요, 오빠?”

거주지역을 통해 사막의 낙원으로 향하는 길, 수아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정시우를 다그쳤다. 무엇을 물어보는지는 뻔하다. 그가 아이들을 축복했던 순간 뿜어져 나온 힘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정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해 주었다.

“아마도 신성력?”

“역시나.”

수아린이 마음 편히 좌절했다. 크라켄을 만난 이래 느끼고 있던 회의감이 다시 한 차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오빠가 신성력까지 다루게 됐다니, 제 유일한 존재의의가아……!”

“네 힘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힘이야.”

그는 당초 수아린의 신성력을 따라하려고 힘을 가공했지만, 결국 그것은 정시우의 마력과 섞여 근본적인 변이를 일으키면서 단순한 치유나 축복을 위한 힘에서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마력은 이제 신을 배척하기 위한, 신을 거부하기 위한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억지로라도 따라하려면 따라할 수 있지만, 결국 정시우에게 어울리는 힘이 아닌지라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시우는 그렇게 설명하며 풀이 죽은 수아린을 다독여 주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네가 필요해.”

“……잠깐만, 그 부분 다시 한 번만 재생해 주세요.”

“그러니까 네 힘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힘이라고.”

“오빠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죠? 네?”

다른 이는 차마 범접하기 힘든 두 사람만의 결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며 사리테가 차게 식은 눈으로 용세하에게 물었다.

[얘네 맨날 이러냐, 찌?]

“요즘은 계속 이 모양이지, 찌.”

[짝이 정해졌으면 바로 짝짓기를 하면 될 텐데, 인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찌…….]

“너 그 말 선배님한테는 하지 마라, 찌.”

그러는 동안 거주지역을 지나 사막의 낙원에 무사히 진입했다. 정시우는 그 아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압도적인 규모를 파악하곤 헛숨을 들이켰다.

“이전에 왔을 때에 비하면 거의 다섯 배 이상 넓어졌는데.”

“에리우 님이 그만큼 강해지시기도 했고, 찌. 무엇보다도 에리우 님 아래로 지상의 모든 몬스터들이 모여들면서……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업?”

[그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지만, 찌. 어쨌든 뭔가가 바뀐 건 분명하다, 찌. 이 공간도, 에리우 님도, 찌.]

물론 직접 다른 몬스터를 쓰러트려 성장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성장의 기본이지만, 세력을 가진 이들의 성장은 또 다르다.

이세계의 신들이 자신의 신도를 늘려 스스로의 힘을 확장시키는 것처럼, 정시우나 에리우 또한 수하를 늘리고, 그 수하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본인 또한 그 기록의 공유를 통해 이제껏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을 이제 정시우도 알 수 있었다. 엘 역시 깨닫고 있을 것이다.

[슈!]

얼마 걷지 않았음에도 일행은 어느덧 백색 털의 호랑이, 에리우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들의 접근을 깨달은 엘이 자신의 능력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적어도 이 사막 안에서는 엘이 절대자의 위치에 있었다.

[어서 와라. 역시 슈에게서 직접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음, 그대만 와도 되었을 텐데.]

지금 정시우는 수아린에 용세하는 물론이고 어째선지 심해관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세이락시아까지 대동하고 있었다.

과외선생님이 일가족을 데리고 오면 확실히 어떤 학생이라도 지금의 엘과 같은 표정을 짓겠지. 사실 호랑이 표정이라서 잘 읽어 낼 수도 없었지만 대충 비슷할 것이다.

[특히 그 꼬맹이는 어째서…….]

“뿌이?”

[경쟁심을 태울 대상이 조금 이상하다, 찌.]

정시우의 소매를 앙증맞은 손으로 꼭 잡고 달라붙은 세이락시아를 보며 엘은 영 탐탁지 못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했다. 세이락시아는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할 뿐. 엘은 세이락시아를 계속 경계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머리가 좋지 못하다. 교육도 하루나 이틀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어떤가.]

“오빠, 얘 암컷 맞죠? 맞는 것 같아요. 분명해요.”

앗, 수아린까지 불이 붙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수아린은 엘에게서 눈을 떼지 않겠지. 정시우는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다 같이 가르쳐 주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어. 회화 연습도 할 겸 말이지.”

[으음…….]

세이락시아는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요……!”

“아린아, 뜨거우니까 등 뒤에서 타오르는 불꽃 지워라.”

“네…….”

머리가 좋지 않다는 엘의 선언과는 다르게 그녀는 상당히 빠르게 언어를 습득했다.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면 엘은 영어가 아니라 정시우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먼저 배우고 싶어 했다는 것인데, 사실 영어와 한국어는 문법이 완전히 다르기에 동시에 배울 만한 것이 도저히 못 되었다.

“좋아, 영어로 회화가 가능하게 되면 한국어도 가르쳐 줄게. 다만 우리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 언제까지고 너를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 알아듣겠지?”

[최대한 빨리 배우겠다.]

당초 정시우와 느긋이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언어를 배우려 했던 엘이었으나 작전이 첫 단추부터 어긋난 이상 수정이 불가피했다. 엘은 학습의 의지를 불태웠다. 효과는 굉장했다!

그로부터 고작 이틀이 흘러 엘은 영어로만 구성된 단어를 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너눈…… 잉가니다.”

“굉장히 귀여운 발음인걸.”

“나눈 호랑이, 하냔 털가 함깨하느.”

“여전히 발음이 이상한데다 무척 구글 번역기 같아졌지만 얼추 뜻은 통하고 있어.”

“으므으…….”

문제는 발음이었다. 다른 몬스터들은 인간과 확연히 다른 성대를 갖고도 인간의 말을 잘 내뱉곤 하던데, 엘은 유독 그런 면에 있어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얼추 비슷한 발음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굉장했지만 엘 본인은 납득하지 못했다.

“너눈…… 잉가니 대찌?”

“뿌이.”

[너는 어떻게 인간이 된 것이냐.]

처음엔 언어를 배우겠다는 의지만으로 가득해 보였던 엘은 결국 세이락시아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해 그렇게 물었다. 어쩌면 그것이 본제였을지도 모른다.

“뿌이?”

[그러니까……!]

뿌이는 녀석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것이 더더욱 엘을 자극했다.

[인간의 언어를 말하려면 나도 역시 인간이 되어야겠어. 그래,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인간이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굉장한 비약 같은데…….”

더욱이 이미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세이락시아는 인간의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엘은 이미 혼자서 결론을 내 버리고 말았다.

[너희는 계속 나에게 언어를 가르쳐다오. 나는 그것을 배우며, 동시에 인간인 너희를 탐구하겠다. 몬스터에서 인간으로 변화한 이 아이도…….]

“뿌이이.”

“괜찮아, 안 무서워.”

잡아먹을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 엘에게 겁을 먹은 세이락시아가 정시우의 품에 폭 안겼다. 그것을 바라보는 엘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지자 익히 그녀의 심정을 짐작한 사리테가 또다시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질투의 대상이 이상하다, 찌…….]

[넌 밭이나 매러 가라.]

[찌!?]

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며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시우 일행에게 있어서도 좋은 휴식이 되어 주었다.

정시우는 등에 날개가 돋아난 시점에서부터 단기간에 너무 많은 전투며 과업을 연달아 달성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무리를 했다. 물론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는 성장과 수면을 통해 충분히 풀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휴식, 치열하게 움직이기보다 느긋하게, 늘어져 있을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서포터들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정시우와 함께 크라켄에게 대적했던 세이락시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쩨 무법는 어느 정도 이킨 것 가따. 잉가니 되기만 하묜 대. 그로기망 하묜.”

“물론 네가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인간들도 경계심을 풀고 다가올 수 있게 되겠지만…….”

세이락시아를 수중 몬스터의 대표로 내세우려는 것도 그런 목적이 크다. 악의라곤 모르는 순진한 눈망울의 미소년이 ‘우리를 해치지 말아요!’ 하고 눈물을 글썽거린다면 적어도 인류의 절반은 단방에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물의 능력을 지닌 세이락시아처럼, 엘 또한 대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모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요즘은 보다 큰 돌멩이들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진 상태.

어쩌면 언젠가 정말로 대지를 지배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그것과 관련된 신의 힘을 섭취할 수 있다면.

“…….”

엘이 대지를 지배하는 광경을 떠올린 정시우는 문득, 아직 그의 품 안에 있는 대지의 신 유고의 파편을 매만졌다.

물론 이 파편은 그와 수아린, 용세하의 장비에 투자할 생각이지만, 정시우가 이 힘을 기억한 이상 추적자의 자물쇠를 사용하여 언제든 유고가 다스리는 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그렇게만 되면 지금 그의 품에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양과 질의 파편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을 정시우의 능력으로 가공하여 엘에게 투자한다면 녀석의 고유능력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 그가 이미 세이락시아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결국 엘을 조련해야 한다는 거지.’

정시우는 요정상인 루타의 말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의 능력을 키워 주고 싶으니까 그녀를 지배하겠다니, 단순히 제멋대로의 폭군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성향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 루타는 정말이지 아픈 부분을 찔렀다. 고유능력이 어째서 존재하는가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 그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은 무리였다.

“후…….”

힘, 무수한 형태로 존재하며, 저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힘. 정시우는 자신에게 있는 힘을 과시하는 것도 좋았을뿐더러 다른 사람이 품고 있는 힘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관측하는 것도 즐겼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정시우이기에 품게 된 특수한 기호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확신, 나아가 다른 이들과의 유대감을 갖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에게 타인의 잠재력을 자극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까지 그 힘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은 낭패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슈?]

두 번째 고유능력 지배를 얻고, 정시우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잠재된 가능성에 전율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다른 신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그저 새로운 신의 후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불안했다.

[슈! 왜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이지? 얼굴에 뭔가 묻었는가.]

“브아보, 오빠는 당신 얼굴 같은 거 안 봤거든요? 그런 전형적인 대사를 뱉을 시간이 있으면 단어라도 더 외우라고요! 오빠, 안 봤죠!”

[뭣, 슈가 방금 분명히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마의 왕(王)자라도 보고 있었겠죠!”

“아, 쫌.”

사람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왜 이 녀석은 하등 쓸데없는 일로 싸우고 있단 말인가!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고 말았다.

“공부나 계속하자.”

[넵.]

“넵.”

반론을 허락지 않는 정시우의 목소리에 엘과 수아린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수업은 그로부터 열흘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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