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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93화 (193/260)

# 193

193화.

일행이 수중던전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다섯 시간이 흘렀다. 도중에 식사를 하느라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것을 제외하면, 일행은 조금도 쉬지 않고 던전을 탐색하고 있었다.

[네놈들이 저지른 짓을 봐.]

레벨 200을 넘기는 인어 한 마리가 분노가 절절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중한 나의 동포들을…… 이렇게나 끔찍하게 짓밟다니!]

“뿌이, 삼켜!”

[뿌우우우우우!]

[꺄아아아악!]

그러나 뭐라 더 지껄이려던 인어가 세이락시아가 발한 흡입력에 이기지 못하고 끌려와 산 채로 집어삼켜졌다. 우득,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일행 중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좋아, 이 구역도 이걸로 클리어구나.”

정시우는 꼭꼭 씹어 먹으라며 녀석의 머리를 두드려 주고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물속 풍경도 처음 이곳에 들어온 때와 비교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푸른 에메랄드 같던 풍경에서부터 코발트블루, 프러시안블루에 가까운 어두운 배색의 풍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신의 영향력이 짙어. 이젠 레벨 200 이하의 몬스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니까.”

[뿌이.]

세이락시아가 나지막이 동조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몬스터를 통째로 집어삼켰음에도 녀석은 이제 막 오드블을 해치운 것처럼 다음 요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D-29구역이 정화되었습니다. 던전이 축소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던전의 틈새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인어를 해치우는 순간 깊은 바다로만 보이던 풍경 속 한구석이 일그러지며 공간의 틈새가 드러났다. 그러나 일행은 그것을 보고도 전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안 나갈 거죠?”

“당연하지.”

완전한 던전의 형태를 갖추고 몬스터들을 시스템 안에 단단히 가두어 놓는 하늘성과 개미굴의 던전과는 다르게, 수중던전은 그저 수중몬스터들이 지구의 바닷속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울타리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한 구역을 정리할 때마다 나타나는 저 출구 정도가 시스템의 발악 전부인 셈.

그렇기에 몬스터를 처리해도 비드를 얻을 수 없고, 제단도 볼 수 없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지상에서 몬스터를 해치울 때처럼 몬스터를 처리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경험치를 획득하며 몬스터의 사체를 확보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여태까지는 그것도 전부 세이락시아에게 투자되었지만 말이다.

“우리 일행은 이세계로 건너가면 질리게 레벨이 오를 테니, 지구로 침입해 온 자들로 인한 성장은 세이락시아에게 몰아주는 쪽이 좋겠지.”

[뿌우오오오오오오!]

“너도 이세계로 따라오고 싶다고? 그래, 조금 나중에 말이야.”

지구의 수중 몬스터 세력이 이세계의 수중 몬스터 세력을 완전히 압도하게 된다면, 그땐 세이락시아를 이계로 데려가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녀석에게 이계의 바다를 정복하게 만드는 것도 상당히 재미난 일이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일단은 이 던전의 끝을 보자.”

“그새 또 목표가 커졌어.”

다만 수아린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정시우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제 막 얻었을 뿐인 조련 스킬을 이용하여 세이락시아의 능력을 증폭시켜 수중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또 그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으니까.

“오빠는 일선을 완전히 넘어선 것 같네요.”

“또 마냥 그런 것만도 아냐. 새로운 능력을 얻는 순간 그것을 마스터에 가깝게 숙달하고 있다는 감각은 있지만.”

상식적으로 조련 스킬을 이제 막 얻고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세이락시아와 합을 맞춰 적을 향해 단체 공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조련 스킬 8레벨이 아니라 80레벨이라고 해도 납득할 법한 숙련도였다.

[뿌오오오오!]

“그래그래.”

자기 말하는 줄 알고 애교를 피우는 세이락시아를 쓰다듬어 주고 있자니 옆에서 수아린이 말해 왔다.

“어쩌면 세이락시아를 길들인 것처럼 지상 몬스터들도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유령들의 힘을 보태 줄 것도 없이 오빠의 힘을 보다 다이렉트하게 엘에게 더해 줄 수 있을 텐데.”

“엘이 그것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나와 대등한 입장에 있고 싶어 한다면 그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어.”

세이락시아는 처음부터 정시우를 아빠라도 따르는 것처럼 따랐으니 쉽게 조련을 적용시킬 수 있었지만, 지상 몬스터의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엘의 자존심은 세이락시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터였다.

“그걸 내 의지로 꺾어도 별로 좋은 꼴은 못 보겠지. 조련은 기본적으로 상대와 나 사이에 상하관계를 뚜렷이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것을 원치 않는 상대에게는, ‘굴욕감’이라는 무엇보다도 큰 디메리트가 있는 거지.”

“끄응…….”

정시우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수아린은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엘이 정시우에게 보이는 강자에 대한 경외와 순수한 호의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면…… 한창 그런 생각에 빠지던 그녀가 문득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혹시 내가 방금 복선을 하나 깐 것 아닐까!?”

[적어도 그런 말을 할 정도로는 여유로운 것 같아 다행이군. 전진하자. 아직 이 던전은 많이 남았으니 말이다.]

“케이나, 저쪽 그물 거둬라. 입질 온다.”

[그런 지시 방식은 그만둬라.]

그 뒤로 열다섯 시간이 더 흘렀다. 정시우는 한 명의 훌륭한 어부가 되어, 용세하와 케이나를 이리저리 움직여 인어와 몬스터들을 훌륭하게 몰이했다. 세이락시아는 무한하게 먹잇감들을 받아먹으며 미미한 성장을 거듭해, 기어이 1레벨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뿌오오오오오오옹!]

[괴물 고래가 우리의 본영에까지 쳐들어오다니!]

[저 인간 때문이야! 저 인간을 없애야 해!]

그러나 E구역의 초입에 들어섰을 즈음, 다른 인어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지능과 마력을 지닌 인어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덩치도 일반 인어에 비하면 컸고, 물리력도 상당했으며 물에 관한 마법까지 다루어 세이락시아가 다루는 물의 힘에 저항하기까지 했다.

[그 이상 흙발로 이곳을 더럽히게 놔둘 수는 없어!]

[더러운 존재들…… 물의 정화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헤데아 님께서 분노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분의 세례를 대신하리라!]

정시우는 이전부터 신을 따르는 몬스터들이 완벽하게 미쳤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헤데아의 이름을 부르짖는 인어들이 지니는 선민의식에는 경악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이세계의 바다를 침략하는 것을 정화라고 부르질 않나, 세례를 칭하며 공격을 해 오질 않나. 어쩌면 그것은 헤데아가 다른 신들보다 압도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세력이 거대해지면 그 신의 이름이 갖는 세뇌의 힘도 강해지는 것일지도.

[뿌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놈들이 보내 오는 독전파에 대항하여 세이락시아가 우렁찬 외침을 토해 냈다. 녀석의 등에서 솟아난 물줄기가 수백, 수천의 결정으로 화하는가 싶더니 전방으로 일제히 쇄도했다! 바다에서는 정말 이 녀석이 무적이지 않을까 싶은 압도적인 위용!

[크학!]

[저, 더러운 고래가……!]

[헤데아 님의 은총을 거부하다니!]

[뿌이이이이이!]

세이락시아가 몸집을 더욱 부풀리며 놈들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을 막지 못한 정시우는 다급히 카오스 윙을 펼치며, 녀석과 동화하여 바람의 질주에 이은 카오스 크루얼 차지를 발동했다. 마치 팬텀바이크에 탄 채 전투질주 스킬을 펼치듯, 세이락시아와 동화되어 질주 공격 스킬을 펼치는 것이다!

[조련 스킬이 Lv10이 되었습니다.]

검붉은 마나가 정시우는 물론이고 세이락시아의 전신을 감싸 마치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떨어지는 유성처럼 보이게 했다. 그들을 매도하던 인어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가라, 뿌이! 잡소리를 지껄이는 저 인어들을 모두 없애 버리렴!”

[뿌오오오오오오오오!]

“이런 것까지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에에에에에에에에에!”

함께 세이락시아 위에 올라타고 있던 바람에 질주에 휘말린 수아린이 기겁하며 정시우를 꽉 붙들었다.

세이락시아는 일직선으로 질주하며 그 궤도에 놓여 있던 모든 인어들을 문자 그대로 갈아 버렸는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녀석이 물의 힘을 이용하여 도망치려는 인어들을 전부 자신 앞으로 끌어왔다는 것이다!

[쿠하아아아악!]

[이, 이 마나…… 알았다, 이놈이야말로 우리의……!]

인어들은 어설픈 복선을 한두 마디씩 외치며 죽어 나갔다. 그 가운데에는 레벨 300에 근접하는 엘리트도 있었으나 잔뜩 분노한 세이락시아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수준!

이전 해상 전투에서도 느꼈지만, 물의 힘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녀석은 지구의 바다 그 자체를 대변하는 존재인 것만 같았다.

[뿌이!]

“그래, 나머지 정리하자.”

정시우는 기운차게 사체들을 빨아들이는 세이락시아를 토닥여 주며 멍하니 생각했다. 이런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을 따르는 것, 그 의미에 대해서.

거기서 또 조금 시간이 흘렀다.

[캬아아아아악!]

[뒤에서 온다, 주인님!]

[뿌오오오옹!]

E구역은 확실히 이전 D구역까지에선 볼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비단 강한 마법을 다루는 인어뿐만이 아니라, 거대 상어나 대왕오징어 같은 덩치류 몬스터에서부터 평범한 물뱀이 포X몬 세계에 들어가 네 단계 정도 진화를 하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괴물도 많았다.

인어들은 그 모두를 적극적으로 통솔하여 정시우 일행을 공격했으며, 정시우와 세이락시아에게 유독 강한 적의를 보였다.

[헤데아 님을 거부하는 자야.]

[저 괴물을 다스리는 인간……? 아니, 인간이 아니구나. 저자가 원흉이야!]

“오, 보다 직접적으로 복선을 흩뿌리기 시작했는데……?”

“그런 시답잖은 말 할 시간에 저 녀석들 마법이나 막아 봐욧.”

슬슬 단서가 하나둘 나올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며 인어들의 말을 조합해 보는 정시우를 놔두고 수아린이 방어막을 펼쳤다. 수아린과 정시우를 향해 날아오던 공격마법이 모두 그녀의 마법에 막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어라? 한 번 정도 깨질 줄 알았는데…….”

평소처럼 신성력을 발휘하여 방어막을 만들어 냈을 뿐인데 그녀의 생각보다 강한 방어막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아린은 깜짝 놀라 정시우를 돌아보았다.

“오빠 혹시 저도 조련하고 계세요!?”

“다 큰 여자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정시우가 카오스 윙을 얻으며 강화된 것이 이제야 수아린과 용세하에게까지 효과를 주는 모양이었다.

정시우는 수아린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세이락시아의 힘으로 이 무수한 몬스터를 잘도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수중던전이 구역으로 구분되어 한 번에 상대하는 몬스터의 숫자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헥토의 통합 던전이나 38단계 던전을 겪어 본 정시우는 언제까지고 이런 질서정연한 환경이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고…….

[헤데아 님께서 주신 힘을 사용할 때가 왔다……! 저 악적들은 이곳에서 막아 낸다!]

[소집령을 발동해! 저자의 속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자!]

그들이 지나온 영역보다도 더욱 어두운…… 인디고블루에 가까운 심해 영역에서부터 무수한 숫자의 괴물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중엔 비록 권능으로는 세이락시아에게 미치지 못한다 해도 덩치만으로는 녀석에게 지지 않는 거대 고래도 있었다.

[뿌오오오오오오오!]

“그래그래, 네가 더 귀여워.”

정시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해머를 거두었다. 저쯤 되면 이미 자신이 만들어 낸 해머의 충격파로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다.

해머를 거대화하여 직접 휘둘러 공격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겠지만, 솔직히 헤데아라는 신이 발휘하는 신의 압력과 기세는 정시우가 그 안에서 거대화한 해머를 마구 휘두르고 돌아다닐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저렇게나 많은 적을 상대로는.

“자, 데뷔 무대다.”

“우아아…….”

그렇기에 정시우는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한 무기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들었다.

그 무기의 이름은 바로 군멸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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