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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88화 (188/260)

# 188

188화.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를 밑에서 받아 낸 적은 있어도, 눈앞에서 이렇게 대량의 플레이어가 리타이어하는 것을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정시우가 손을 쓸 새도 없었다. 동시에 열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날개를 잃고 던전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실로 허무하면서도, 어딘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는 면이 있었다.

“아, 진짜 새끼들…… 그러게 사람이 말을 할 때 좀 귀담아 듣지.”

그러나 장관인 건 장관인 거고 미련한 건 미련한 거다. 하늘성의 최전선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대량으로 죽어 나갔으니 설령 여기서 살아 나가는 이들이 제아무리 많은 성장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인류 입장에서는 적자를 보게 생겼다.

정시우가 구제할 방도가 없는 인간들의 안쓰러운 말로에 이마를 짚으며 탄식하고 있자니 수아린과 케이나가 되도 않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저 망할 놈들은 오빠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말을 안 들은 거죠 뭐. 자업자득이네요.”

[물론 저런 머저리들의 죽음으로 곤란해질 일은 없겠지만.]

“아니, 방금 인류 전력 1%는 확실히 줄어든 것 같은데…….”

그들의 모습이 던전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랬다가는 정시우까지 이 던전에서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는 일행의 힘만으로 보스와 맞서 싸워야 했다.

정시우는 멋대로 행동하다 죽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마리나 일행을 포기하는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크핫. 쿡, 크하핫.]

날개 잃은 플레이어들이 천천히, 마나를 소진하며 던전 아래로, 심연으로 떨어져 간다. 참상 앞에 말을 잃은 인간들을 보며 보스 몬스터가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놈은 정시우를 비롯한 인간들보다 아주 조금 덩치가 큰 정도였는데, 실로 화려한 깃털이 달린 날개를 여섯 장, 등 뒤에 달고 있었으며 조금 반투명한 몸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 꼭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정령과 같은 모습이었다.

[뭐야, 너희들. 조금 전에는 왜 그렇게 무방비하게 달려든 거야? 너무 웃겨서 공격하는 것도 잊어 먹을 뻔했잖아!]

“어떻게, 분명 3초 동안 움직이지 못할 터인데…….”

간신히 놈의 공격을 피해 낸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경악해 중얼거렸다. 정시우와 함께 행동하는 집단을 제외한 전원이 보스에게 덤벼들어 그중 4할 이상이 사망했고, 다른 이들도 심각한 상처를 입어 당장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강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 던전을 지나오면서 대체 무얼 본 거야? 프루타 님을 따르는 자랑스러운 신도들의 용맹함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이미 우린 족쇄에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단 말인가!]

“크윽…….”

그때 이강후가 신음소리를 냈다. 정시우는 그가 또 무슨 개소리를 할지 기대되어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의 전신에서 회백색의 촉수가 수십 줄기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꺅!?”

“저거…… 케나토랑 싸울 때 본 것 같은데.”

놈의 상태가 인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과연 어떻게 변할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정시우가 완전히 관찰자의 입장으로 돌아서 흥미진진하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놈의 몸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아래로 뻗어 나가 추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사체를 휘감아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크그르르르크하아아악!]

“과연.”

정시우는 그제야 파악했다. 스스로는 자신의 이상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놈은 처음부터 연극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속내와 본성과 탐욕을 감추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그 순간까지.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는 순간을 노린 건가. 제법 공을 많이 들였구나.”

“시우 너도 참 냉정하다…….”

어떻게든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이강후의 전신이 물에 녹듯 사방으로 퍼지며, 혐오스러운 촉수를 전 방위로 뻗어 냈다. 사망한 플레이어들의 사체를 끌어들여 본체에 흡수할 때마다 그 촉수의 숫자가 늘어나기까지 했다.

겉보기만 파에토와 닮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지니고 있는 힘의 크기나 발현 방식도 그와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크가아아아…… 이걸론 부족해!]

“이런 미친!”

“이강후도 오염됐어, 당장 물러서!”

[도망칠 수 없어!]

이강후는 낙하하던 플레이어들의 사체를 모두 확보하여 흡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른 플레이어들까지 흡수하려 들었지만 그것까지는 정시우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마신의 징벌을 냅다 던져 이강후를 깔끔하게 쳐 날린 것!

[쿠헥!]

해머에 얻어맞은 이강후가 그대로 던전 끝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정시우는 허공을 날아 돌아온 해머를 쥐며 마나를 추가로 활성화했다. 영역 확보 자체는 보스 룸에 들어온 순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아직 보스 몬스터는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지금이다! 뒤로 물러나!”

“보스 몬스터보다 이강후가 더 위험해!”

이제야 사태 파악이 끝난 것일까. 이강후에게 당할 뻔한 플레이어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급히 정시우 뒤로 돌아왔다. 누가 보면 정시우가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보스 몬스터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재미난 꼴이구나. 지금 당장 네놈들을 끝장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친절을 베풀어, 네놈들의 내분이 정리될 때까지 친히 기다려 주도록 하지. 제법 볼만한 광경이기도 하고 말이야.]

보스 몬스터가 여섯 장의 날개를 느긋이 흔들며 말했다. 전투 개시와 동시에 전력의 4할 가까이를 쓸어버렸으니 기고만장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놈이 좀 더 폼을 잡고 있도록 놔두어도 괜찮겠지만…… 정시우는 벽에 파묻힌 채 빠져나오기 위해 촉수를 꿈틀거리고 있는 이강후를 일별하고는, 보스 몬스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래도 역시 너 먼저 처리하자.”

[으음? ……칫!]

정시우의 날개가 크게 펼쳐진 직후 그의 모습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보스 몬스터는 정시우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파악한 순간 혀를 차며 허공을 박찼다.

하지만 그것은 정시우를 잡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일행을 공격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의 속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와 직접 부딪히기 전에 팀의 전력을 줄여 놓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미련하게 곧장 그에게 덤비지 않는 것만으로도 칭찬해 줄 만한 판단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모든 계획은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에나 의미가 있는 법. 놈이 일행 앞에 다다르기 전, 허공에서 놈의 날개 한 짝이 찢겨 나갔다.

찢어진 편익을 붙잡고 나타난 정시우가 그것을 구겨 없애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 되게 귀찮은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어, 어떻…… 크학!]

“두 개. 세 개.”

[끄아아아아아악!]

놈의 의문에 정시우는 지체 없이 돌진하여 놈의 날개를 추가로 찢어 내는 것으로 답했다. 그럴 때마다 놈의 몸에 깃든 프루타의 힘이 눈에 띄게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금 상황을 게임에 빗대어 말하자면, 처음 본 보스의 약점을 곧장 파악해 공략해 버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네, 네놈! 그러고 보면 그 날개, 주위의 마나까지……! 설마 네놈은 용의 힘을!?]

“알아차리는 시점이 너무 늦은 거 아냐? 네 장.”

[크하아아!]

정시우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하긴 그는 헥토로부터 프루타의 힘을 얻어 사용하고 있을 뿐 프루타의 종속들과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저렇게 둔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나름 이해가 갔다.

“좋아, 그럼 나머지도 처리해 볼까.”

[이, 이건 뭔가 잘못됐어! 뭔가…… 말도!]

용의 감각이 정시우에게 보내 온 정보는 극히 간단했다. 프루타의 축복을 받아 놈이 발현한 바람의 날개 여섯 장, 이것은 놈에게 힘을 주는 수단이자 동시에 놈의 목숨을 지켜 주는 수단이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날개를 전부 없애기 전에는 놈에게 직접 데미지를 입힐 수가 없는 것! 한눈에 그것을 파악한 정시우는 그냥 깔끔하게 놈의 날개를 뽑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프, 프루타 님! 제 말을 듣고 계십니까, 이 세상은 이상합니다! 저의 능력만으론 이자를…… 끄악!]

순식간에 날개 네 장을 뜯겨 제대로 날지도 못하던 보스 몬스터는 별다른 저항 한 번 해 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정시우에게 나머지 날개까지 모두 뜯기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놈의 육신에 깃들었던 가호의 힘이 소멸하다시피 했고, 그것을 파악한 정시우는 지체하지 않고 놈의 골을 부숴 죽이곤 비드를 회수하여 돌아섰다.

“좋아, 끝.”

“……오빠가 뭘 하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대충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앗, 슈! 놈이 와!”

“슈라고 부르지 말라니…… 까!”

정시우가 보스 몬스터를 끝내기가 무섭게 이형의 날개를 발현한 이강후가 뒤에서 그를 덮쳤다! 그러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해머를 휘둘렀다.

[쿠흐이으게에에엑!]

해머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이강후가 독염에 휩싸여 다시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곧장 죽어 버리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끔찍한 충격! 케이나가 팬텀바이크를 몰아 달려 나가려다 말고 멈칫하며 그에게 물었다.

[주인님…… 혹시 일부러 안 죽이고 있는 것인가?]

“응.”

정시우는 케이나의 물음에 흔쾌히 긍정하며 날개를 펄럭여 이강후를 쫓았다. 놈은 정확히 아까 처박혔던 곳과 똑같은 장소에 처박혀 촉수를 부르르 떨고 있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놈의 얼굴이 표면에 떠올라 있어 그의 정체가 이강후라는 사실만은 어떻게든 알아볼 수가 있었다.

“이대로 던전 클리어가 떠 주면 좋겠는데, 설마 얘까지 던전 몬스터 취급되는 건…… 아, 됐다!”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4:23:51]

그때 무사히 던전이 클리어되었다! 설마 이 안에서 이강후를 죽이고 나가야 하는 것인가 걱정했던 정시우는 그 메시지가 떠오르자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앞으로 나머지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특수 업적 ‘바람 사냥꾼’ 달성!]

[추가 보상을 받아 바람 내성 스킬이 Lv12가 되었습니다.]

[클리어 랭크 ? SSS]

[추가 보상 ‘프루타의 파편’ 획득]

[경험치 정산 완료. 레벨이 11 올랐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한 던전 공략이었기에 클리어 랭크가 SSS에서 멈추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던전에 부여된 프루타의 힘의 흔적, 파편을 수거하기에는 충분한 활약을 한 모양이었다.

정시우가 녹색의 보석을 손에 쥐고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자니 옆으로 다가온 마리나가 툴툴거렸다.

“아, 그거 역시 시우에게 갔구나. 나는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장화밖에 못 얻었는데.”

“설마 아티팩트를 추가 보상으로 얻을 줄이야. 고꾸라져도 풀 한 포기는 붙잡고 일어나는구나, 마리나…….”

프루타의 파편을 얻은 것은 정시우뿐이고, 마리나를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바람 속성과 관련된 다른 보상을 받았다.

아마 그들 다음으로 던전에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은 프루타의 파편을 얻지 못하리라. 신의 힘은 던전의 재생 범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 물론 던전의 난이도도 그만큼 하락할 터였다.

[바람의 질주 스킬이 Lv15가 되었습니다. 마력이 70 증가합니다.]

“자, 할 거 다 했으니 저놈 정신 차리기 전에 제단에서 할 일까지 후딱 마무리하자고.”

“오빠…….”

정시우가 추가보상으로 얻은 프루타의 파편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흡수하여 바람의 질주 스킬을 강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수아린이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강후를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저거 공개처형하려고 그러세요?”

“응. 다들, 증인이 되어 줄 거지?”

정시우가 옅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일행이 아닌, 이곳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을 향해.

그 미소와 마주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벌벌 떨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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