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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85화 (185/260)

# 185

185화.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던전의 격이 단숨에 몇 단계 이상 높아졌기에 1대 1로 몬스터를 상대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지만, 랭커들이 그들을 이끌고 외곽에서부터 차근차근 몬스터를 부수어 나가니 느릿느릿하게나마 비교적 안전하게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야, 플레이어들 진짜 약하네. 공격이 밀리미터 단위로 박히는 것 봐.”

“레벨 차이가 심해서 그렇습니다. 반면 스킬레벨이 동일하다 해도, 레벨이 10 정도 오르면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게 되죠. 그래서 플레이어들의 레벨링이 중요한 것입니다.”

레벨이란 격이며,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렇기에 레벨이 낮으면 아무리 강하고 좋은 스킬이라도 효과가 낮아지고, 레벨이 높으면 단순하고 약한 스킬이라도 효과가 좋아지는 것이다.

“여태 완전 몰랐는데…….”

“아마 앞으로도 너와는 별 연관이 없는 일일 테니까 신경 쓰지 마.”

UN본부 앞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서희가 아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얼굴이 붉은 채인 마리나가 조심스레 한 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격이 높은 이들을 물리쳤을 때의 보상도 달콤한 편이라, 이 던전 클리어하고 나면 이곳에 들어와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 그대로 랭커 진입할 거야. ……슈가 전부 해 먹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내가 안 나서면 해결이 안 될 걸……. 그리고 슈라고 부르지 마.”

일행의 안전을 확인한 정시우도 본격적으로 전투를 재개했다. 지금 몬스터의 해일은 정시우를 피해 우선 다른 플레이어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가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며 나아가자 그 무리가 순간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성적표와 마주하게 된 고등학생 같았다.

“검은 비늘 갑옷에 날개랑 꼬리까지 있으니까 완전 마왕 같아.”

“이제 머리에 뿔만 돋으면 완벽하겠다.”

“거기 조용히 해라.”

정시우는 천천히 호흡을 거듭하며 폐부로부터 마나를 끌어 올려 일대에 퍼트렸다. 그의 마나로 일대를 덮어,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전까지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는 있었던 일인데, 이번에 꾼 꿈과 새로이 얻게 된 카오스 윙의 마나 덕분에 비로소 완전한 실현이 가능하게 된 것!

“이건…… 미스터 정의?”

“맙소사, 대체 마나가 얼마나 많은 거지?”

“이걸 보고 마나가 많다고 하다니 아직 멀었구만…….”

물론 그가 꿈속의 용 본인이었더라면 이것보다 빠르고 완벽한 영역 확보가 가능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어디까지나 한 번에 생산해 낼 수 있는 마나가 제한된 인간에 불과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영역확보는 완료!

[피해라, 놈이 온다!]

[이레귤러…… 우리는 놈을 상대할 수 없어!]

[다른 인간들을 죽여! 방해자들을 죽여!]

“어딜.”

일단 일대 마나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제법 간단했다. 마나를 뿌리는 것 자체는 아무 스킬도 아니지만 그 상태에서 마나 드레인 스킬을 발휘하는 것으로 주위 마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기서 다시 반복재생 스킬을 구사하여 순간적인 영역 폭증을 노릴 수 있다는 것!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마나 컨트롤의 콤비네이션이었다.

“좋아, 너희는 도망 못 친다.”

[크학!]

[큭…… 드, 드래곤인가……!?]

그 결과 순식간에 늘어난 그의 영역 안에 갇힌 몬스터들은 자기 자신의 마나를 다루기도 힘들어 괴로워하게 된다. 반면 정시우는 그 안에서 보다 빠르게 이동하며 어렵지 않게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마법을 다룰 수 있다면 영역을 확보한 순간 게임을 끝낼 수 있지만 정시우도 그렇게까지 만능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읏차.”

[캬아아아악!]

[이건 헥토, 헥토의 힘이다! 으아아아아아아!]

해머를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수백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비드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정시우는 마나의 흡인력을 발휘해 비드를 전부 인벤토리로 빨아들이곤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마나의 구름이 그와 함께 이동하며 일대 마나를 빨아들이거나 밀어내 재차 영역을 확보했다.

처음은 제법 어색했으나, 갈수록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였다. 실시간으로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버린 것 같은데.”

[저래서야 정말 전설 속으로나 전해져 내려오는 드래곤의 모습 그 자체로군.]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적군만이 아니라 아군의 기까지 죽이는 정시우의 새로운 전투방식에 마리나는 완전히 의기소침해지고 말았으나 세리아는 그의 능력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들을 구하러 와 줬으니 이 이상 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따라와, 마리나. 시우 님의 손이 안 닿는 곳부터 시작하자.”

“응. ……알았어.”

“저도 거들죠.”

[기백이 있어서 좋군. 앞길은 내가 트겠다!]

“잠깐, 다들 축복은 받고 움직여야죠! 후우…… 나아가는 이에게 힘을, 그들의 손에 용기를!”

결국 전원이 다시 전장에 나섰다. 평소 정시우와 용세하 정도만 서포트하다가 실로 오랜만에 다섯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보조하게 된 수아린도 감회를 새로이 느끼며 축복을 발휘했다. 현역 플레이어였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플레이어로서 돌아온 건 아니지만…… 응, 역시 이쪽이 좋은걸.’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모든 신성 마법에 전투력 강화 효과를 부여하는 전장의 전투성녀! 스태프가 은근한 장밋빛을 머금은 찬란한 빛을 뿌려 내며 일행을 단숨에 휘감으며 축복을 부여했다.

그 순간, 정시우는 몰라도 그를 제외한 모두가 그녀의 축복을 받는 그 순간 전투력이 30% 가까이 상승했다. 아직 버프가 모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강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대로 전장으로 돌진하려던 존 스미스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역시 사제 랭킹 1위 후보다운 압도적인 실력이군요……!”

“그냥 템빨이니까 얼른 싸우기나 하세요!”

정시우 일행이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아슬아슬하던 전장의 균형이 단숨에 플레이어들 쪽으로 넘어왔다. 던전 안에 있던 모든 몬스터가 그들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날아들었지만 목적을 완수하는 놈은 없었다.

일차적으로 정시우의 영역을 거치며 무리가 낱낱이 분쇄되고, 랭커들의 치명적인 스킬들이 연달아 작렬하며 엘리트 몬스터들을 효과적으로 요격하니 숫자 우위로 인한 기세는 사라지고 혼란에 휩싸여, 지리멸렬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이야, 이쯤 되면 벌새의 낙원이 아니라 벌새의 지옥이네.”

[난동을 부리는 건 거기까지다. 네놈을 프루타 님께서…… 프루타 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무지막지한 위세를 떨치는 정시우를 가만히 놔둘 수 없었던 것일까? 정시우가 한창 몰이사냥을 하던 도중 전장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한 엘리트 몬스터가 그의 영역을 밀어내며 다가왔다.

“미안한데 그런 모습으로 말해도 하나도 안 무서워.”

[네놈……! 이 던전의 지배자와 마주하고도 그런 건방진 말을 할 수 있는지, 내가 그분의 곁으로 돌아가 똑똑히 지켜보겠다!]

놈은 바로 군집 내핵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엘리트였는데, 겉으로만 보아선 그리 크지 않은 조류 몬스터에 불과했으나 그 내부에 품고 있는 마나는 가공하리만치 많았다. 프루타의 축복을 직접 받은 것이겠지.

단, 내핵 파괴 순간 마리나의 집중 공격을 받는 바람에 지금은 그 위용이 한풀 꺾여 보이는 감이 있었다. 정시우는 놈을 보고는 히죽 웃으며 해머를 손아귀 힘만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원래 네가 보스 룸 앞을 지키던 수문장이지? 그러게 지켜야 할 자리를 비우니까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잖아. 차라리 부하들 안 보고 있을 때 당하는 쪽이 쪽은 덜 팔렸을 텐데.”

[수문장? 지켜야 할 자리? 웃기는 소리. 더 이상 그들이 마음대로 정해 놓은 던전의 규칙 따위에 얽매일 우리가 아니다. 초승달이 떠올랐으니, 언제고 다른 야수들도 헐거워진 족쇄를 벗어 던지고 본 모습을 찾을 것이다.]

“그건…… 앞으로는 다들 던전의 규칙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난장판을 칠 거라는 얘기냐?”

[크핫.]

놈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웃을 뿐이었지만, 묘하게 그 웃음이 띠꺼운 것이 정시우의 신경에 거슬렸다. 정말 그렇다면 큰일이다. 하늘성은 어디까지나 안전장치로 남아 있어, 플레이어들의 훈련과 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이 보잘것없는 안전 울타리가 언제까지고 유지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보다도 먼저, 네놈 인간들이 그들을 배신할 것이다.]

“뭐……?”

[보아라. 뭔가 잊은 것이 있지 않으냐?]

정시우는 놈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의 일행들도 다치지 않고 열심히 싸우고 있었으며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시우는 전장을 찬찬히 훑어보던 중 이내 놈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혹시 지금 마석을 삼킨 인간들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거냐? 지금 전장에서 모습을 감춘 놈들?”

[바로…… 그거다!]

놈이 정시우와 길게 말을 섞은 것은, 어떻게든 그의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정시우의 마나 영역이 느슨해지는 순간만을 기다려 왔던 엘리트가 순식간에 그에게 돌진해 오며 부리를 날카롭게 뻗었다. 그대로 그의 목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내뻗는 부리 끝에 강렬한 마나의 드릴이 형성되어 있었다.

[죽어라!]

“그런데 미안, 걔네가 사라졌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커헉!]

그러나 놈의 부리는 정시우가 내민 손아귀에 힘없이 잡혀 버리고 말았다. 10레벨에 이른 정시우의 괴력이 마력에 휩싸인 놈의 부리를 단숨에 비틀어, 부수어 버렸다. 허공으로 푸른 피가 터져 나왔다.

[크하아아아악!]

“그것보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걔네가 어떤 식으로 하늘성을 배신했다는 거냐? 마석을 먹으면 하늘성을 배신하는 거야?”

[컥, 커흑…….]

신체 부위에서 가장 단단한 내구도를 지니고 있는 부리에 필살의 스킬까지 덧씌웠거늘, 고작 손아귀 힘에 부러지다니. 엘리트는 처음부터 정시우가 자신을 갖고 놀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의 정시우였더라면 그래도 이것보다는 좋은 승부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놈과 정시우 사이에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아마 이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면 정시우의 시야에 놈은 들어오지도 않게 되리라.

정시우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지닌 힘을 정확히 파악하며 적응하고,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갈 길을 또 금방 찾아내 버린다는 것. 힘의 절대량이 성장하는 속도에 있어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쫄지 말고 말해 봐. 왜 배신이라는 거야?”

[이, 던전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 인간이 아닌 자는…… 이곳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던전을……. 시스, 템을…….]

“아.”

엘리트 몬스터는 그의 위압감에 눌려 그만 본능적으로 정보를 토해 내고 말았다. 그 말을 듣던 정시우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깨닫고는 놀라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것으로 깔끔하게 생명력을 소진한 엘리트가 소멸했다.

“아, 확실하게 오버킬해서 비드를 얻었어야 했는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석을 섭취하는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을 망가트린다고…….”

던전은 플레이어를 위한 것. 그런데 몬스터의 마나를 품은 플레이어가 던전에 들어오며 시스템에 과부하를 준다는 얘기였다. 더욱이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변이하기라도 한다면 일이 더욱 복잡해지겠지.

‘신의 영향력이 강해진 세상에서 하늘성이 사라져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 아냐, 이거?’

설마하니 지들 신세를 망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던전에까지 해를 입힌다니. 정시우는 이 짜증나는 소식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때 마침 저 뒤에서 플레이어들이 새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상해. 분명 리타이어하는 건 못 봤는데…… 플레이어 몇 명인가가 사라졌어!”

“네네, 그야 그러시겠죠.”

정시우는 힘없이 돌아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던전 공략 같은 건 정말 싫었다. 어서 이 개 같은 곳에서 탈출해서 수중던전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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