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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84화 (184/260)

# 184

184화.

정시우가 카오스 윙의 힘으로 새로이 각성한 스킬, 카오스 크루얼 차지가 작렬한 현장은 참혹한 잔해만을 남겼다. 엘리트 몬스터의 비드만은 간신히 회수했지만 그 충돌에 휘말린 다른 몬스터들은 그 순간 산화하며 남긴 비드마저 증발해 버렸던 것이다.

정시우는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힘과, 그것에 더해진 힘이 만들어 낸 끔찍한 파괴력에 스스로도 전율했다. 카오스 윙, 바람의 질주. 속도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압도적인 힘 두 종류가 더해져 단순한 돌진기는 전설에 도전하는 위업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카오스 크루얼 차지라니…… 무턱대고 필살기 이름만 늘인다고 강해 보이는 게 아닌데 말이지.”

“알아듣지 못할 농담보단 이놈들을 어떻게든 해 주세욧!”

수아린이 어떻게든 그의 뒤로 돌아오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기력을 전부 잃어버린 케이나를 대신해 안간힘을 쓰며 팬텀바이크를 조종하고 있었다.

“응? 아…… 그래, 하긴.”

외핵은 확실하게 분쇄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것을 이루고 있던 몬스터들이 무리에서 물러나와 광분하며 정시우를 향해 미친 듯이 몰려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놈들의 돌격이 무서울 것도 없었고, 더욱이…….

“이젠 우리가 굳이 나설 것도 없어.”

“네?”

수아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던 그때, 훨씬 작아진 군집의 구체 내부에서 끔찍한 폭발음이 터졌다.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내핵을 완벽히 부수며 튕겨져 나왔다.

“지금이다!”

“비셋의 공격이 통했어! 틈을 벌려!”

“블러드 크로스!”

정시우가 직접 무너트린 것은 외부이지만 놈들이 내부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던 만큼, 적잖은 충격을 나누어 받아 헐거워진 틈을 플레이어들이 공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우!”

마리나의 목소리였다. 정시우는 해머를 중간 크기로 거대화시켜 주위 몬스터들을 적당히 걷어 내며 시야를 확보했다. 새하얀 깃털 날개를 벌새보다도 빠르게 펄럭이며 그에게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마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것처럼 보였다.

“시우!”

“크헉.”

설마 중간에 멈추어 설 줄 알았으나 마리나는 그대로 정시우의 품으로 돌진했다. 자신의 품에 얼굴을 폭 파묻는 그녀를 바로 떼어 내려던 정시우였으나 그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곤 그만두기로 했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 같은 표정, 도저히 떼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응.”

“크으으…….”

옆에서 수아린이 으르렁거리든 말든, 마리나는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가만히 매달려 움직이지 않았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그런다고 방금 전 일었던 폭발음의 주인공이 그녀라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 진짜 시우야.”

“이젠 살았다…….”

“미스터 정!”

“하늘성 던전에도 들어올 수 있었던 건가?”

“저것 봐, 날개가 있잖아!”

마리나가 뚫어 버린 틈으로 다른 플레이어들도 잽싸게 탈출했다. 비록 던전의 예상치 못했던 변화에 곤경을 겪기는 했어도 던전 공략의 최전선에 서 있던 이들의 경험이 어디 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물러서서 정비해! 몬스터들이 더 보충되기 전에 놈들을 완전히 흩트려 놓아야 한다!”

“모두 빠져나온 것이 맞겠지!? 미스터 정을 중심으로 뭉치자!”

플레이어들이 일사불란하게 정시우 주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럴수록 정시우는 더더욱 빨리 마리나를 떼어 놓고 싶어졌으나 녀석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처럼 꼼짝도 않고 있었다.

“시우야아아아.”

“시우 님…… 아.”

이서희와 세리아도 곧장 그에게 다가왔으나, 마리나가 그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자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놔두었다.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그녀들에게 요구했다.

“그런 이상한 표정만 짓고 있지 말고 데려가.”

“조금만 이해해 주시지요. 그녀는 언제나 자기 힘으로 모든 상황을 헤쳐 나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번엔…….”

과연, 지금 마리나는 정시우를 향한 반가움과 고마움, 부끄러움과 분함이 적절히 믹스되어 있는 상태라는 얘기다. 더욱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여 버렸으니, 이젠 떨어질 타이밍을 찾지 못해 계속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역시 정시우가 마리나 비셋과 약혼을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봐.”

“이강후만 헛물을 거하게 들이킨 셈이 됐네…… 풋.”

몬스터들과 전력으로 맞붙어도 모자랄 상황에, 포옹을 풀지 않는 정시우와 마리나의 모습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쑥덕거리는 플레이어들. 정시우는 이 자식들을 몬스터들과 함께 전부 쓸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스터 정…….”

“아…… 이강후.”

그때, 슬그머니 그의 근처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이제껏 정시우가 본 어떤 누구보다도 많은 양의 마석을 섭취한 것으로 보이는 플레이어, 다름 아닌 용성 길드의 수장 이강후였다.

“도움에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모두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겁니다.”

“너도 이 파티에 있었구나.”

“가끔은 가벼운 마음으로 파티에 참가하고 싶어서, 신분을 감추고…….”

“뭐, 됐어.”

이강후는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점잖은 척, 예의를 차리고 있었지만 놈은 필시 정시우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존 스미스를 보호하기 위해 마리나가 파티에 합류한 순간부터 말이다.

아마 다 같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니 지금은 잘 해 보자, 뭐 그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만…… 정시우는 굳이 연극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상대해 줄 테니 저리 찌그러져 있어.”

“미스터 정, 어째서 그렇게 기분이 불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못 알아들어? 넌 던전에서 나간 다음 처리해 줄 테니까, 지금은 닥치고 있으라고.”

공기가 얼어붙었다. 지금 정시우가 이강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가뜩이나 상황도 좋지 않은데 두 최강자가 반목을 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봐요,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좋지 않아요.”

“우리를 구하러 와 준 건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스터 정, 미스터 리가 없었다면 우리 중 많은 이가 죽었을 겁니다. 지금은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 두고…… 이런, 온다!”

더 이상은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마법진이 깨지자 엘리트 몬스터들이 제각기 몬스터들을 나누어 통솔하기 시작한 것이다.

던전의 기본적인 규칙 따윈 이미 어그러졌다. 던전을 이루고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엘리트 몬스터들의 부름에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실로 광범위한 포위망을 재차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은 함께 몬스터들을 상대합시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나중에 같이 이야기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하.”

이강후가 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정시우를 설득했다. 과연, 감탄할 법한 페르소나였다. 그러나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는 과거 특수 업적의 보상으로 진안 스킬을 획득, 용의 감각에 통합시킨 적이 있다. 용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뛰어난 적이 아닌 이상, 그에게 속내를 감출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강후는 말할 것도 없는 자격 미달이었다. 시커멓다 못해 썩어 문드러져 냄새가 나는 놈의 목소리는 더 듣고 있기도 싫었다.

“아주 제멋대로 지껄이는구나, 쓰레기가.”

“큭!?”

정시우는 작정하고 놈을 향해 용의 위엄을 뿜어냈다. 이강후가 짓고 있던 부드러운 미소에 금이 가기에 충분한 표정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도 나중에도 너와 나눌 얘기는 없어. 이미 반론도 변론도 의미가 없거든. 모두 결론이 났고, 남은 건 집행뿐이야.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단지 네가 처벌을 받게 되는 시간이 아주 조금 늦추고 있을 뿐이야.”

“…….”

“그리고 또 하나. 너는 ‘함께’라고 말했지만…….”

정시우가 해머를 인벤토리에 던져 넣고, 한 팔을 들어 그들에게 쇄도해 오는 몬스터 무리를 조준하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쿠하악!]

그 순간, 마룡의 완갑의 옵션 애시드 스트라이크가 그의 손바닥을 통해 발현되었다. 이미 카오스 스케일과 완벽하게 동화되었기에 뱀브레이스의 능력을 전신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녹색 산성의 마나가 그 궤적에 놓여 있던 모든 몬스터를 일소했다. 그 가운데에는 엘리트 몬스터도 한 마리 끼어 있었다.

“내가 이 던전을 처리하는 데에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

“…….”

이강후는 애시드 스트라이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산성의 역한 냄새를 맡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본능적인 공포감이 그의 머릿속을 깔끔하게 비워 버린 것이다. 마리나와 세리아에게 집적거리는 것도 생존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하.”

정시우는 놈이 제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며 팔을 거두고는 일행을 향해 돌아서며 확인했다.

“혹시나 무슨 짓은 안 당했지? 그냥 당할 너희는 아니지만…….”

“그는 평소부터 성급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짓은 하지 않았으니 그 부분은 그리 걱정하지 마시지요. 다만, 이번에는 조금 끈질길 정도로 마석의 섭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 우리를 설득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세리아의 보고였다. 그녀 역시 평소 마법과는 인연이 없던 정시우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의 마법을 보인 것에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지만 보고는 제대로 했다.

“신의 힘에 대적하기 위해선 마석의 섭취로 인간의 한계를 깨트리는 수밖에 없다는 논지였습니다. 우리뿐만 아닌 다른 랭커들에게도 그리 숨기려는 기색이 없었죠. 물론 우리는 그 행위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본인이 컨트롤을 잘 하는 모습을 보이니, 어쩌면 랭커 중 그의 주장에 넘어가는 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래, 지금은 그렇게 보이겠지. 이미 넘어간 놈도 있을 테고.”

한때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정시우는 뒷말을 생략했지만 세리아는 면목이 없다는 듯 볼을 붉혔다. 그때 옆에서 이서희가 끼어들었다.

“그보다 시우 너는 어떻게 된 거야? 그 날개 대체…….”

“기합으로 어떻게든 됐어.”

“그래, 그런 말 할 줄 알았어.”

“이게 다 너흴 구하려고 각성한 거잖아. 좀 더 순순히 고마워하면 될 텐데.”

“바보야, 엄청 고마워하고 있거든?”

이서희가 끝내 웃어 버렸다. 정시우는 그런 그녀에게 아직까지도 그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마리나를 억지로 떼어 내 맡겼다.

“이제 어리광 그만 부리고 너도 싸워. 이강후한테는 허세 제대로 부렸지만 실은 그리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냐.”

“시우라면 맨몸으로 부딪혀도 충분하면서…….”

“읏차.”

정시우의 말에 마리나는 토마토가 누님, 하고 따를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채로 꿍얼꿍얼 투덜거렸으나 이서희가 그녀를 받아 토닥여 주며 말했다.

“마리나, 투정은 나중에 부려. 자, 시우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씩씩한 모습 보여야지?”

“응, 알았어…….”

이서희가 마리나의 보모처럼 보인다면 착각일까.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세 사람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가만, 세 사람?

“아니 잠깐만, 존 스미스는?”

“전 여기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곳에서 작은 박쥐 날개를 단 존 스미스가 솟아났다. 상처를 입은 듯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정시우와 마리나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분노를 불태우던 수아린이 환자를 보고서야 제정신을 차렸는지 치유마법으로 그를 치료해 주었다. 그는 수아린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표하더니 정시우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비셋 양 일행을 보낸 것도 당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도와주는 사람을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역시 미스터 정의 아들답군요. ……그보다도,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음? 이 상황에서? 정시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에게 다가가자, 존 스미스가 은밀한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이강후와 함께 들어온 추종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본래 변장과 은신에 능숙한 자들이기는 하지만, 저도 경력이 있는지라 던전에 들어와서부터는 그들의 모습과 정체를 감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놓쳤다?”

“아무래도 던전의 변이와 함께 그들의 능력까지 단시간에 상승한 것 같습니다. 몬스터들과 대적하는 한편으로 계속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겁니다. 능력만 상승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존 스미스가 뒷말을 흐렸다. 정시우는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그가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몬스터 무리와 전투를 벌이는 플레이어들을, 특히 용맹하게 날뛰는 이강후의 뒷모습을 보며 정시우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크레센트 에이지로의 진입이라는 변수가 이 모든 사태를 제대로 꼬아 놓은 것이다.

“고마워요, 스미스. 지금부터 주의하죠. 숨어 버렸다는 그 추종자들도. ……그리고 이강후도.”

어쩌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놈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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