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181화.
정시우는 팬텀바이크를 타고 그대로 하강했다. 인공섬을 벗어나, 바로 지척에 있는 하늘성을 무시하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난폭한 운전에 수아린은 비명을 질렀지만 케이나는 제법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상쾌하구나! 실로 망설임이 없는 움직임이 아닌가!]
“내가 하늘성에, 저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선.”
하늘성의 선택을 받아 등에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야말로 플레이어가 되는 조건이라고 다른 이들은 믿고 있지만, 이미 하늘성과 개미굴의 시스템이 동일하며, 그것이 시스템이 내리는 일종의 자격 부여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정시우에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하늘성에 들어가기 위한 진정한 조건은 단 하나. 정시우의 의지로 하늘성의 의지를 꺾는 것, 그뿐이다. 적어도 이전 그가 확인한 바로는 그랬다.
‘여태까지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하늘성이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부정한 결과일지도 몰라. 아직은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아직 지하에서조차 헤매는 자신이 하늘을 꿈꿀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던 거야.’
과거 팬텀바이크로 하늘성에 도달했을 때에는 맥없이 튕겨 나고 말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힘과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고유능력은 강탈이지 않은가. 만약 그가 그 능력을 발동하는 데 성공했다면, 던전의 생성 과정에 개입하여 자신이 원하는 던전을 만들어 냈던 헥토처럼 얼마든지 하늘성으로부터 플레이어의 권한을 얻어 낼 수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힘이라면, 충분히 하늘성의 의지를 꺾을 자신이 있다.’
그럼에도 바로 하늘성으로 향하지 않고 일단 한 번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늘성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지상의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를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다. 하늘성으로부터 억지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성장시켜야만 했다.
“수, 수면! 오빠, 수면이 보여요!”
“그래.”
하늘성은 태평양의 상공에 떠 있는 구조물. 그곳에서부터 수직으로 하강했으니 태평양에 이르는 것도 당연했다. 점차로 푸른 바다 표면이 눈앞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수아린은 날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본능적인 공포감을 느껴 정시우를 꽉 붙잡았다.
“읏차.”
“꺄악!”
그러나 이대로 조금만 더 하강하면 그대로 해수면에 처박힐 것처럼 보이던 그 한순간, 정시우는 능숙하게 바이크를 당기며 멈춰 세웠다. 바이크가 일으킨 풍압으로 인해 사방에서 물이 솟구쳤지만, 엔진을 끄고 가만히 있자 곧 다시 잠잠해졌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오빠…… 설마 다시 도전하시려는 거예요?”
“녀석들을 던전에 보낸 건 나니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정시우는 해수면에 냉동 포션 하나를 내던져 일대에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빙판을 만들어 냈다. 바이크에서 내려 빙판 위로 올라서며 짧게 한숨을 내쉬곤, 프루타의 파편을 강하게 쥐었다. 그제야 정시우의 자신감의 근원을 발견한 수아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헥토의 것 대신 얻은 신의 힘?”
“바람의 신의 힘이지. 놈은 어쩌면 이것까지 예상하고 이 힘을 내어준 것일지도 몰라.”
전투의 마지막 순간, 헥토는 정시우를 향해 막연한 살의가 아닌 흥미와 호감의 편린을 내비쳤다. 정시우가 자신의 ‘동포’라고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이 아닌 프루타의 힘을 내어준 것은, 어쩌면 그가 더욱 빨리 성장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냥 자기 힘의 근원을 내보이기 싫었을 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결국 놈의 모든 것이 정시우의 것이 될 테니까.
“후우…….”
신의 힘으로 스킬을 진화시킨 경험은 이미 지니고 있다. 세트나크의 힘으로 탄생한 스킬이 바로 소울 포스 스킬이지 않던가. 지금도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패시브와 액티브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지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시우는 과거 수련을 시작한 이래 전투질주를 단 한순간도 취소하지 않았고, 이제는 그의 체내를 순환하는 마나의 일부가 언제나 전투질주의 성질을 품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즉 그의 전투질주는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의 경계가 없어지는 영역에 이미 반쯤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분명 가능할 터였다. 가능해야만 했다.
‘모든 스킬을 이렇게 만들게 되면 그때에는 드디어 스킬과 육신의 합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되겠지. 종국엔 스킬 사이의 구분도 사라져, 굳이 힘의 형태를 나누어 구분할 필요도 없어지게 될 거야.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겠지.’
그게 가능해지면 비로소 신이 될 수 있겠지. 정시우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특정 영역을 담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신과는 일선을 긋는, 쉽게 말해 신 너머의 영역에 존재하는 힘이었으니…… 정시우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신을 뛰어넘을 각오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 프루타의 파편이…….”
[……아름다워라.]
끝나지 않는 상념 속에서 서서히 정시우의 고유능력이 발현되었다. 프루타의 파편이 눈부신 녹색의 빛을 뿜어내며 천천히 녹아내리는 모습에 수아린과 케이나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바람. 전투질주를 보다 강하게, 빠르게, 자유롭게 만들어 줄 힘.’
정시우는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마나 속으로 흡수시키되, 그 안에 깃든 기록과 속성을 고스란히 뽑아내 전투질주의 흐름 속에 녹여 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집중력과 마나 통제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나, 평상시 전투질주를 생활화한 보람이 있어 부담이 조금 덜어졌다.
‘바람. 무한한 잠재력과 자유로운 흐름을 지닌, 무엇보다도 빠른 힘.’
그는 프루타의 파편을 깊이 음미했다. 그 안의 개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프루타의 힘을 존중하여 받아들일 때였다.
모든 힘이 하나로 융합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태초의 힘이 여러 종류의 힘으로 분화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두 번째 고유능력의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남은 조건을 달성하여 자신의 것을 되찾으세요.]
[전투질주 스킬이 변이를 일으킵니다.]
“……후우.”
귓가에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에 맞추어 정시우는 깊은 숨을 토해 냈다. 그제야 비로소 스킬 진화가 성공하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분명 순간에 가까웠을 터이나 정시우에게는 영원과도 비슷했다. 워낙 집중하고 있어 순간 스치고 지나간 메시지도 캐치해 내지 못했지만, 분명 그것이 필요해지는 순간 다시 떠올려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빠 몸에서 미약하게 녹색의 빛이 나요.”
“앞으론 자주 보게 될 거야.”
스킬의 변이에 맞추어 전투질주의 마나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울 포스가 그렇듯, 신의 파편으로부터 충분한 양의 정보를 얻어 내어 정시우 본인이 전투질주 스킬로 신의 영역에 이른 권능의 일부를 사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이제 그는 전투질주로서 바람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전투질주 스킬이 바람의 질주 스킬로 진화합니다.]
[바람의 질주 스킬이 Lv5가 되었습니다.]
“이걸로 됐어.”
정시우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해냈다는 확신에 이어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것은 그를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제, 분명 그는 하늘성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오빠, 하지만…….”
수아린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다. 사실 그가 태평양으로 내려오기 전에 지적했어야 할 문제였다.
“아직 지구의 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설령 하늘성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해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도 38단계 던전에…….”
“새삼스레 무슨 소리야. 애초에 지금도 억지로 하늘성에 들어가려는 건데, 거기에 성공해 놓고 던전에도 들어가지 못해서 튕길 것 같아?”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네 패배다, 수아린. 포기해라.]
“끄응.”
케이나의 말이 실로 얄미웠지만 그게 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정시우는 처음부터 그랬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수아린을 받아 낸 것부터 생억지가 아닌가!
하늘성이 어떤 시스템으로 어떻게 돌아가든 알 바 아니고 난 저 사람을 살려야겠다, 그런 억지에서부터 정시우의 플레이어로서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그럼, 잘 따라와.”
“아, 알겠어요.”
빙판 위에 자세를 잡고 선 정시우가 평소 전투질주를 활성화시키듯 바람의 질주를 활성화시켰다. 물론 두 가지 스킬의 패턴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이 스킬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이미 충분히 숙달하고 있었다.
바람이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람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후…… 합!”
짧은 기합에 이은 도약! 중상급 포션에 의해 두께 1미터가 넘는 빙판이 완성되었었으나 그의 발구르기 한 번에 완벽하게 아작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정시우를 무사히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만은 다행이었다.
“어라?”
수아린은 로켓처럼 하늘 높이 일직선으로 솟구치는 정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을 비볐다. 실로 황당하게도 그의 모습은 이내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버, 벌써 안 보여!”
[터무니없이 빠른데…….]
“케이나, 시동! 시동 걸어!”
[좋아, 쫓아가 볼까!]
수아린과 케이나가 탄 팬텀바이크가 조금 늦게 정시우가 남긴 궤적을 따라 내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시우는 점점 더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공기보다도 가볍게, 바람보다도 빠르게. 태풍보다도 강렬하게! 그것이 바람을 다루는 신 프루타의 힘이다!
‘칫…… 아직 스킬 레벨이 낮아, 완전히 바람이 되어 움직이는 것은 무리인가.’
문제는 그 외에도 있었다. 하늘성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늘성이 발산하는 마나의 압력이 정시우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엇을 시도하려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의 억지를 더 이상은 들어줄 수 없다는 듯 그를 압박했다.
끊임없이 위로 솟구칠 것만 같았던 바람의 힘이 순간적으로 약해졌다. 점점 빨라지기만 하던 가속도가 점차 줄어들어, 끝내 속도가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흡!”
하지만 정시우에게는 아직 남은 수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익힌 스킬, 반복재생! 그 스킬을 발동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나를 억지로 붙잡아 다시 한 차례 스킬을 발동하는 사기적인 액티브 스킬!
강탈이라는 고유능력이 있었기에 비로소 개화시킬 수 있었던 스킬이자, 지금 이 순간 바람의 질주를 위해 준비된 스킬이기도 했다.
[반복재생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바람의 질주 스킬이 Lv6이 되었습니다.]
흐름이 반복되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정시우는 허공에서 다시 한 차례 도약을 하는 데 성공했다. 힘을 잃어 가던 바람이 뒤에서 불어온 보다 큰 바람에 떠밀려 추진력을 얻었다!
“크, 하아……!”
거대한 구조물이 두 개, 보였다. 인공섬과 하늘성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란에 휩싸여 있었지만 개중 눈이 좋은 이들은 맨몸으로 솟구쳐 오르는 정시우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압력이……!’
점점 더 세게, 점점 더 강하게. 정시우는 그를 억지로 인공섬 쪽으로 밀어내는 하늘성의 힘에 이를 악물며 저항했다. 점차 하늘성이 그의 두 눈에 크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뇌리에 절로 상념이 떠올랐다.
‘지상에서 얻은 힘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더 번잡한 일을 만들게 될 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애처럼 날뛰며, 가까스로 구축한 질서를 스스로 어그러트릴 셈인가.’
하늘성의 존재감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느낀 적이 있던가. 마치 태산을 보는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그를 깔아뭉개려는 듯,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
그때, 정시우의 전신에 검은 비늘이 돋아났다. 꼬리도 자연스레 솟아나 그를 받쳤다.
무게가 늘었으니 속도가 줄어도 모자랄 터인데 어째서인지 속도가 다시 빨라졌다. 비늘과 꼬리에 흐르는 마나마저 바람의 질주 스킬의 그것으로 치환되어 그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뭐가 어찌 되든 내가 알 바 아니지.”
정시우는 자신이 성질 급하고 무식하며 뭐든 다 자기 뜻대로 하려는 어린애 같은 폭군임을 아주 잘 알았다. 아마 자신이 어른이 되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금은 무리로라도 던전을 뜯어내고 그의 친구들의 얼굴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니 그만…… 나를 받아들여!”
용의 위엄이 발산되는 그 순간, 그의 전신에 가해지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막혀 있던 구멍이 뚫려 물이 분출되듯이, 정시우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지듯 솟구쳤다.
그 끝에, 드디어 그의 손이 하늘성의 끝자락에 닿았다.
[고유능력 강탈이 Lv3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고유능력을 해방하기 위한 조건이 추가로 달성됩니다.]
[하늘성의 플레이어 자격을 강탈합니다.]
[카오스 윙이 생성됩니다.]
지상에서 솟구친 이무기의 손에, 드디어 여의주가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