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179화.
정시우는 중국답게 실로 으리으리한 규모로 지어진 용성 길드의 본부를 바이크 위에서 내려다보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나 때문에 우리 부모님까지 건드리는 사람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빠의 생각이 틀렸던 건 아니잖아요. 단지 아버님 본인이…….”
“그래, 그건 그렇지.”
설마 정시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가 맡고 있는 직위 때문에 그를 직접적으로 노리는 사람이 생겨날 줄이야.
아버지의 유능함에 대해선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세상이 바뀌어도 그 세상의 중심이 될 줄은 몰랐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사람 눈에 띄는 재능을 지닌 것만은 부자가 닮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재능은 있어도 재수는 없네요…….”
[주인님, 보라. 인기척이 별로 없는 것 같지 않은가.]
정시우는 새삼스레 길드 본부 건물을 살피며 케이나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이강후를 포함한 고위 능력자들은 귀신같이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 순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려고 일부러 지금 시간대에 던전 공략 스케줄을 잡은 건가.”
“동시에 오빠의 분노에서도 벗어날 수 있죠.”
[어쩌면 아까 주인님이 말했던, 마리나와 세리아를 보낸 그 던전에 같이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신분을 속여서 말이야.]
너무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다른 의미로 그의 표적인 마리나와 세리아가 던전으로 향했다는 소식에 마침 잘 됐으니 합류, 라는 가설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물론 그놈이 마리나와 세리아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서희를 같이 보내서 다행이네.”
“이서희 씨의 결계 능력은 확실히 특출하니까요.”
수아린이 툴툴거리면서도 동의했다. 정시우는 피식 웃으며 바이크를 하강시켰다. 그녀가 놀라 물었다.
“이강후도 없는데 어쩌시려고요?”
“정면으로 부숴 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그 대신 이렇게 하려고.”
정시우는 후우, 목을 가다듬은 후 두 개의 스킬을 발현했다. 정확히는 그가 지니고 있는 패시브 스킬 용의 위엄의 힘을, 마찬가지로 그가 지니고 있는 액티브 스킬 워 크라이에 담아 펼쳤다.
“전부 그 건물에서 꺼져!”
그가 내는 목소리에 일대의 모든 것이 침묵하고, 세상이 벌벌 떨었다. 단 한 명이 발한 의지가 일정 지대의 공기와 마나의 흐름을 일시에 동결시켰다. 미약하나마 그것은 절대자의 영역에 이른 존재감이었다!
[큭, 내 몸까지 저릿하군.]
그가 대놓고 기세를 집중하여 발산하니 케이나마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녀가 드래곤나이트로 재탄생했을 땐 마력과 육체능력 모두가 급상승하여 객관적인 수치로만 보면 정시우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이미 정시우가 아득히 그녀를 초월한 상태였다.
그 기점이 언제였을까. 물론 그의 능력이 다방면으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크게 두 가지를 따진다면 역시 카오스 스케일의 자각과 괴력의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된 시기일 것이라고 케이나는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님의 기원은 이제 막 눈을 떴을 뿐이다. 지금은 작은 점에 불과한 능력이 눈밭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금세 불어나 터무니없는 규모로 성장하겠지. 이것을 영광이라 여겨야 하는가, 두려워해야 하는가. 헥토가 주인님을 동포라고 불렀던 것이 새삼스레 신경 쓰이는구나…….’
케이나가 복잡한 생각에 빠진 것을 알기나 할까. 정시우는 자신이 이뤄 낸 결과에 뿌듯해할 뿐이었다.
“좋아, 다들 제대로 도망치고 있네. 용의 위엄은 전투에서 상대를 억누르는 것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전투와 살상을 줄여 주는 데에도 효과가 크단 말이지.”
“그야 그렇겠죠…….”
그의 절대적인 아군인 일행조차 떨리게 만드는 위엄이니 어련하겠는가. 정시우가 작정하고 집중해 발출한 기세는 길드 본부에 들어와 있던 모든 인물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만들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이들은 정시우가 친히 노는 유령 몇을 보내 직접 건물 밖으로 꺼내 주니, 그 친절함에 다시 경악하여 까무러칠 정도였다.
“후우, 됐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는 혹여나 애먼, 혹은 죗값이 적은 이가 그의 분풀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그들의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에게 수아린이 걱정 어린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데요? 이강후와 직접 담판을 짓는 거라면 몰라도, 그가 없는 자리에서 오빠의 존재를 먼저 드러내는 건 나중에 오빠의 약점이 될 수 있어요.”
“걱정 마.”
정시우는 수아린을 안심시킨 후 인벤토리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꺼내어 쥐며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케이나의 머리통만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
[내 기분이 무척 이상해지니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케이나, 뒤에서 단단히 받쳐 줘.”
정시우는 바이크 위에 탄 채 자세를 잡았다. 수아린은 설마,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죠, 오빠? 아니라고 말해 줘요.”
“준비하시고…….”
오, 수아린은 탄식과 함께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었다.
정시우가 쥔 평범한 돌멩이에 그의 폭력적인 마나가 가득 담겨, 그것을 지극히 일시적인 순간 이 지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강력한 물질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 돌멩이 대신 케이나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더라면 그 결과물은 더더욱 무시무시했으리라!
[부여 스킬이 Lv67이 되었습니다.]
“쏘세요!”
[큭!]
터무니없이 강력한 힘으로 돌멩이를 쏘아 낸 반동에 바이크가 허공에서 뒤로 마나의 궤적을 그리며 거세게 밀려났다.
“힉!”
“도망쳐! 유성이다!”
“대, 대체 무슨 마법인 거야……!”
그러나 그 결과물은 더욱 더 터무니가 없었다. 본부 건물 꼭대기를 향해 정확히 쇄도한 돌멩이가, 그 꼭대기에서부터 지하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일직선으로 내리그으며 건물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것이다!
[강타 스킬이 Lv66이 되었습니다.]
[크리티컬 불릿 스킬이 Lv35가 되었습니다.]
돌멩이는 그냥 건물을 부순 것이 아니었다. 이전 뼈저린 깨달음을 얻은 이후 정시우는 건물의 구조와 그것을 효과적으로 부수는 법을 공부했고, 그 결과 건물의 핵심축이 되는 기둥과 구조물들을 완벽하게 아작 내어 건물의 데미지를 최대로 끌어 올린 것이다!
“맙소사…….”
[돌멩이 하나로 잘도 이런 짓을…….]
일행은 기가 질려 중얼거렸다. 지금의 정시우가 세트나크의 73마성에 간다면 굳이 번거롭게 상층까지 뚫고 올라올 것 없이 짱돌 하나 던지면 모든 게 붕괴되고 끝나리라. 신의 흔적이든 뭐든 저 압도적인 힘 앞에 버틸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흠, 이거면 5스테이지 정도는 깰 수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10스테이지까지는 원코인으로 클리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빠……?”
정시우도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기는 하는지, 수아린과 농담조로 말을 나누고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돌아섰다. 마치 메테오가 떨어진 것처럼 건물의 잔해만이 남은 재앙의 현장을 보며 케이나는 기가 질려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경고로는 확실하겠군. 이강후도 두 번 다시는 큰 주인님에게 손을 대지 못하겠지.]
“미안하지만 난 경고로 끝낼 생각이 없어. 우리 아버지를 노린데다 수십 이상의 민간인 피해까지 났어. 경고로 끝날 시점은 이미 진즉 넘었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고 정시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아린이 케이나 대신 반문했다.
“하지만 이 이상 뭘 어쩌시려고요, 오빠……?”
“아직 이강후와 관련된 흔적이 이 지상에 많이 남아 있어. 그 어설픈 힘으로 감히 절대자 행세를 하려 했으니, 더 이상 이 땅에 마음 편히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지.”
그 말을 듣는 수아린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차라리 과장을 담은 허세라면 웃을 수 있겠지만 정시우는 이런 때 농담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래 봬도 내가 준비성이 제법 철저하단 말이지. 혹여 위험인물이 아닐까 해서 이강후랑 관련된 자료는 일단 다 뽑아 놨거든.”
이전부터 마리나가 계속 그에게 칭얼거렸었다. 이강후가 집적대서 피곤하고 짜증나니 위장약혼이라도 해 달라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마리나에게 그만한 감정은 없었기에 딱 잘라 거절했지만, 그는 마리나를 친한 친구 정도로는 여기고 있었다. 더욱이 그를 따르겠다고 선언한 세리아까지 불편을 호소하니 아무래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에게 살짝 부탁을 해 그에 관한 자료를 모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마리나를 좋아해서가 아니구요……?”
“프흐.”
그는 수아린의 질투 섞인 말에 픽 웃어 버리곤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아린은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리듯이 대꾸했다.
“아, 아님 됐고요……. 아니, 제가 오빠한테 이런 거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긴 한데요…….”
“괜찮아, 신경 쓰이면 얼마든지 물어봐.”
“오빠……?”
어라, 시원하게 힘을 발산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진 것일까? 어째 살짝 분위기가 좋지 않은가. 수아린은 갑작스레 다가온 찬스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정시우가 그녀에게서 손을 거두며 바이크의 스로틀을 당겼다.
“좋아, 그럼 또 부수러 가 볼까. 여기서 제일 가까운 건 개인 명의로 소유한 빌딩이네.”
“아아아, 지금 분위기 좋았는데 왜!”
[후, 위험했다. 용세하가 없으니 이 핑크빛 분위기에 태클을 걸어 줄 사람이 없군.]
“케이나 시끄러웟!”
정시우는 짱돌을 몇 개 주워 길을 서둘렀다. 일단 이강후의 명의로 된 건물, 그가 경영하는 회사와 관련된 건물을 모두 파악해 순서대로 방문한다.
그곳에 도착하면 일단 용의 위엄이 담긴 워 크라이를 내질러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 버린 다음, 혼신의 짱돌 투척으로 건물을 완벽하게 가라앉혀 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을 텐데요.”
“저 안에도 분명 이강후가 하고 있는 짓, 하려는 짓에 관계된 이들이 있을 텐데 목숨을 살려 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지.”
솔직한 심정으로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일단 중국을 일주한 후, 해외로 눈을 돌려 용화 길드의 공장, 이강후의 별장까지 싸그리 폭파했다.
은신을 유지하고 있어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범행수단은 오직 짱돌뿐이었으므로 현장에 그의 흔적이 남지도 않았다.
물론 현 지구상에 짱돌로 이만한 파괴공작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정시우뿐이라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리라. 놈 스스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도망쳤으니 자신이 저지른 방법 그대로 당하는 셈이었다.
“그래도 아직 끝이 아니란 말이지.”
“지상에 있는 건물은 모두 무너트린 것 같은데요.”
“아직 인공섬이 남았어.”
인공섬의 개발에 많은 부분을 관여한 길드와 기업은 섬에 그들만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지금 정시우는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지구의 마도공학의 산물이나 다름없는데, 그곳에서도 우리 정체를 감추는 게 가능할까요?”
“감추지 못한다면, 드러내면 될 뿐이지.”
정시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내가 후회할 일은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