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75화 (175/260)

# 175

175화.

세계 마석 거래소의 소장으로 있다 보면 자연히 마석의 거래 규모와 그 용처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고 전 인류의 자산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마석이 오용되거나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도 정시환의 일이었는데, 그는 마석의 거래 흐름을 분석하던 도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몇 번인가의 거래를 거쳐 한 장소에 모인 마석이 연구에 사용되지도, 다시 거래소에 매물로 나오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큰 기업체이기에, 처음 세탁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다른 기업체와의 경쟁 관계 때문에 기술 개발을 숨기기라도 하는 줄 알았지.”

차가 코너를 돌았다. 영국에서 아버지가 머무르는 숙소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 정시우에게 존 스미스가 영국 마석 거래소 본부로 가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정시우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는 정시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게 어딘데?”

“용화.”

“그것 참 공교롭네…….”

용화,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으로 그 3대 회장인 이강후는 동시에 중국 최대의 길드인 용성의 수장이기도 했다. 최근 마리나와 세리아에게 지긋지긋하게 듣고 있는 이름이었기에 정시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얘기를 계속하마. 여러 곳에서 세탁을 거쳐 최종적으로 마석이 모두 용화에 흘러든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존의 도움을 받아 여러모로 조사를 해 봤단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비밀리에 세운 연구소라든가, 공장이라도 발견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것도.”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발견한 거지.”

아버지가 손을 뻗어 정시우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었다. 마석이 있었고, 그것을 섭취하는 이가 있었다. 정시우는 짧게 신음했다.

“용케도 이 순간을.”

“이미 마석 섭취가 상습적으로, 또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지. 더욱이 존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거든. 그들은 존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저는 몰래 움직이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안타깝게도 공격적인 능력이 부족해서요. 더욱이 이 일을 많은 이에게 알리는 것도 곤란하고, 인간의 마석 섭취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도 아직까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서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때 우리 아들이 생각난 거지.”

결국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 부른 게 맞았다. 정시우는 아버지의 뒤통수를 가만히 째려보다가는 이내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아직 일은 안 벌어진 거지?”

“그래.”

“그럼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겠네.”

“그런 기운 빠지는 소리 말고, 여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있으면 여기 좀 해다오.”

“음…….”

정시우 또한 마석을 섭취해 성장한 적이 있다. 지금 그가 마석을 먹지 않는 것은 단지 효율이 적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의 고유능력 강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저항력이 없는 인간이 마석을 꾸준히 섭취한다면…….’

그것에 대해선 이세계에서도, 그리고 요정상인 루타를 통해서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이미 그 결과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있다.

“단언해 두자면, 마석 섭취는 금기야. 요정상인들에게 들었는데, 몬스터와 비슷한 존재가 될 거야. 그보다도 마력을 다루는 이라면 본능적으로 그 행위가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있을 텐데, 이강후 이놈도 되게 용감하네.”

“그렇죠, 저도 마석을 본 순간 생각했습니다. 굉장히 이질적인 마나이며, 그것을 직접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겠다고…….”

존 스미스가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정시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몬스터와 비슷한 존재라…… 신의 힘과 같구나. 이거 심각한데.”

“신의 힘이 외부에서 공격해 오는 적이라면 마석을 섭취하는 인간들은 내부에서부터 갉아먹는 벌레인 셈이지. 하지만 이쪽은 신의 힘에 비해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인지라…… 지금 당장 마석을 먹지 말라는 발표를 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제대로 듣지도 않을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시우는 사실 별로 심각하지 않게 생각했다.

“피해가 나오면 사람들도 알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일단 경고는 해 두어야 할 테니까, 요정상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랭커들을 이용해서 금연 캠페인 비슷하게 하자.”

“되게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구나, 아들.”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정시우라고 용화…… 아니, 용성 길드에서 하는 짓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지들 신세 망치는 건 둘째 치고, 이제야 막 마도공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지구에서 이렇듯 마석을 쓸데없고 도움도 안 되는 곳에 소모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제 그 기세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걸. 용성 외에 다른 놈들도 그리 다르지 않을 테고.”

“음……?”

정시우가 자신만만한 투로 내던진 말에 정시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차가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미스터 정.”

“고맙네, 존. 일단 들어가자. 사무실에서 얘기를 좀 더 해 보자꾸나.”

차는 거대한 건물 뒤에 멈추었다.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틈에 내린 일행은 뒷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시우는 마나를 느끼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비밀 통로…… 마법인가?”

“비슷해. 인가받은 이만이 통로를 이용할 수 있지. 마리나 비셋 양만이 던전에서 마법 원리를 가지고 나오는 건 아니거든.”

거기서 왜 굳이 마리나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는 것인가. 정시우가 어깨를 으쓱하고 있자니 정시환이 묘한 눈으로 그를 째렸다.

“재주도 좋은 놈 같으니…… 그래서 둘 중에 누구냐?”

“없거든.”

“그럼 혹시 셋 이상인 거냐!?”

정시환의 말에 정시우 옆에 가만히 붙어 있던 수아린조차 귀를 쫑긋거리며 집중했다. 몇 년 만에 조우한 아버지를 대상으로 불효를 저질러야 하는가, 정시우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때 다행히도 정시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살짝 SF를 떠올리게 하는 근미래 풍 사무실이 조성되어 있었다.

“영국 거래소 소장은 모르는 시크릿 스페이스지. 자, 어서 와라.”

“붙잡혀서 벌이나 받아라. 주택 불법 마개조로.”

온갖 모니터로 가득한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일행이 모두 들어서자 존 스미스가 익숙한 모습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정시환은 우선적으로 그동안 들어온 보고서를 추려 빠르게 분석했다. 이내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몇 개 생겼다.

“용성 이놈들이 또 뭔가 했나. 아닌데, 그러기엔 변화가 너무 광범위한데…….”

“무슨 일인데?”

정시우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히죽히죽 재수 없게 웃으며 정시환에게 물었다.

“마석 거래량이 줄었어.”

“어느 정도로?”

“4분의 3 정도로. 하루 만에 이렇게 뚜렷하게 변화했다는 건 지금 뭔가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얘긴데.”

“흠, 그래도 내 생각보다 별로 안 줄었네.”

“그게 그렇지 않다, 아들아. 거대 길드 차원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마석을 자체적으로 소모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봐도,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마석의 4분의 1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지금 뭐라고?”

“후.”

정시우가 기다리던 반응이다. 그가 씩 웃으며 존을 가리켜 보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차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존, 내가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니 양해해 줘. 미안하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림처럼 깔끔하게 물러나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존 스미스. 그 모습은 솔직히 같은 남자가 봐도 멋졌다.

그에게서 풍기는 마나의 느낌으로는 아무리 낮게 쳐 줘도 지금 지구에서 랭킹 10위 안에는 가뿐히 들어갈 텐데, 그럼에도 저런 겸손한 자세라니. 정시우는 그가 완벽히 자취를 감추길 기다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남자랑은 계속 같이 다녀도 되겠어, 아버지. 느껴지는 마나도 깨끗하고, 괜찮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네가 전 세계 마석 거래량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다는 거냐?”

마침 때가 되었다. 하루에 한 번 있는 때가. 정시우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그들의 눈앞으로 한 명의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님.]

전 엠퍼러 길드 멤버였으며, 지금은 정시우가 부리는 유령 가운데 257레벨로 가장 높은 레벨을 자랑하는 유령이었다.

[오늘 수거한 마석을 모두 모았습니다. 인원이 대거 확충되어 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병력을 육성하고 마석을 얻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고생했어. 레벨이 낮은 녀석들부터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줘.”

[물론입니다.]

유령은 정시우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를 전달하고는 다시 허공에 모습을 감추었다. 잠을 잘 필요가 없는 유령에게는 전투로 인한 레벨 업이야말로 가장 큰 환희의 순간! 그들은 정시우가 명령하는 그 순간까지 전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령이잖아.”

놈이 나타난 순간부터 사라지기까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정시환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시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실은 아버지한테도 두 명 붙어 있어. 레벨 업이 정체되면 안 되니까 로테이션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실은 저 사람이 아버지 경호를 맡고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어.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제법 집중하지 않으면 그곳의 상황을 비디오 보듯 파악할 수는 없다. 이제 몇 만이 넘는 유령을 부리는 입장이 되었으니 유령이 향한 곳마다 세세한 주변 상황을 파악해서는 뇌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네가 그 비슷한 힘을 다룬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 아니아니, 그래도 아들아. 전 세계 거래량의 4분의 1이란 말이다.”

정시우가 무표정하게 주머니를 뒤집었다. 그 안에서 마석이 굴러떨어져 나왔다. 몇 개나 나오려나 정시환이 지켜보고 있자니, 100개를 넘어 200개, 300개…… 정말이지 끝도 없이 나왔다.

“대체…….”

“이게 아공간 주머니라는 거야. 쩔지?”

“……내 아들이지만 어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정시환은 으스대는 아들을 보며 허,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 그사이 정시우는 마석을 다시 주머니에 회수하여(아공간 주머니의 옵션이었다.) 인벤토리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플레이어들이 죽고 남은 잔재…… 유령들을 내가 많이 부리게 됐어. 앞으로 유령들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거래소로 들어가는 마석의 숫자는 줄어들겠지.”

실은 그 외에도 또 있다. 지상 토종 몬스터들의 수장인 엘이 그들을 훌륭히 통합하여 외래종 몬스터들을 토벌하게 되면 자연히 인간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 것이다.

정시우는 그것을 부추기는 입장이고, 사실 정시환과는 반대가 되는 지점에 서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용성 길드와 이강후도 안간힘을 쓰고 있을 테니, 그놈들은 특히 조심해. 아버지가 마석 거래소장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혹여나 딴짓을 해 올 가능성도 있어.”

“그 마석을 너는 다 어디에 쓰는 거냐? 설마 먹고 있다고는 얘기하지 않겠지.”

“나는 또 날 위해 물건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거든.”

“……하. 힘만 센 줄 알았던 우리 아들이 어느새.”

아들이 훌륭한,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방식의 플레이어가 되어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도록 많은 것을 알고, 또 감추고 있는 정시우와 재회한 지금, 그는 자신의 아들이 어쩌면 이 모든 사태의 핵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품게 되었다.

“시우야, 너 내 아들 맞지?”

“그거 예전부터 자주 물어보던 거 아냐?”

“뭐? ……하, 그도 그렇구나.”

정시우의 말에 끝내 정시환은 웃어 버리고 말았다.

“하긴 우리 아들이 원래부터 대단했지. 내가 그걸 잠깐 잊어 먹고 있었구나.”

그는 보고서를 자리에 내려 두고는 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늘 일은 텄다. 소주나 한잔하자.”

“그거 좋지.”

“저도 끼어도 되겠습니까?”

“웰컴이다, 세하야.”

그렇게 남자 셋이 의기투합하여 앉은 자리에서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곧 전화를 받고 안주를 사 들고 돌아온 존 스미스까지 거기에 합류하자, 수아린은 잠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으나…….

“에라, 모르겠다. 아버님, 한 잔 따라 드릴게요.”

“아니, 아린아! 내가 먼저 따라 주마!”

끝내 자신도 참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수아린은 정시환에게 며느리로 낙점 받을 만큼 점수를 따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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