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화.
[마룡의 완갑]
[랭크 ? S++]
[방어력 ? 4,750 ? 5,250]
[히스테릭 게이지 0/100](강력한 충격과 분노로 차오른다.)
[숙련도 ? 0/40,000]
[속성 ? 1. 저주 A+ 2. ???]
[옵션 ? 1. 히스테릭 게이지를 20 소모하여 ‘애시드 스트라이크’ 발현 2. ???]
[신으로 화한 마룡이 남긴 분노의 파편. 미지의 힘은 반드시, 주기적으로 폭주하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그를 압도하는 기원을 지닌 자뿐이다.]
그것은 흑과 은의 조화가 섬뜩하리만치 아름다운 금속의 완갑, 뱀브레이스였다. 흑룡의 비늘을 형상화한 듯 복잡하게 얽히는 비늘 형태의 방어구는 촘촘하고 단단하고 날카롭게 연결되어 흉흉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팔꿈치 위를 감싸는 어퍼 캐논(Upper Cannon)과 관절부를 감싸는 쿠터(Couter), 팔목을 감싸는 로어 캐논(Lower Cannon)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뱀브레이스가 두 개. 왼팔과 오른팔에 모두 착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티팩트의 능력은 또 어떤가? 마신의 징벌과 군룡포에 이어 정시우가 세 번째로 얻게 된 S랭크의 아티팩트, 그에 합당한 방어력은 물론이고 히스테릭 게이지라는 심상치 않은 옵션에 A랭크의 저주 속성까지!
헥토의 힘은 과연 확실히 발현되었다. 방어구로서의 원래 목적에도 충실하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공격성까지 띤 이 물건은 누구나가 탐낼 기물로 완성되었으니까!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아무나가 착용할 수 없다는 조건도 달려 있었지만, 정시우에게는 자신이 그것을 착용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만 문제가 한 가지 있다면.
“어정쩡해…….”
정시우는 실로 참담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어정쩡해!”
“진정해요, 저도 이해하니까.”
“하지만 이걸 착용해야 하는 건 나거든?”
정시우는 일단 뱀브레이스를 양팔에 착용해 보았다. 그의 팔뚝과 팔꿈치, 손목이 완전히 보호되었다. 물론 그 위아래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굉장히 허전할뿐더러 미관상 썩 좋지도 않았다.
“되게 이상한 놈처럼 보여…….”
“꼭 장비 풀세트 입었다가 장비창 잘못 눌러서 노출쇼 하게 된 게임 캐릭터 같아요.”
“왜 그렇게 묘사가 쓸데없이 구체적이냐?”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한숨을 내쉰 정시우였으나…… 이거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았다. 더욱이 타고난 랭크가 랭크인지라 방어력 하나는 확실하지 않은가!
정시우는 앞으로 팔뚝으로 적의 공격을 막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뱀브레이스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것이 희미한 빛을 발하며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힉!”
그것도 무척이나 어둡고 음침한 마나의 공명! 수아린이 기겁하여 신성 마법을 발현할 준비를 하며 정시우를 다그쳤다.
“혹시 그 방어구에 저주라도 걸려 있나요!?”
“저주 속성을 갖고 있긴 한데 그건 날 공격한 상대한테 해가 되는 능력으로 보여. 신성 마법은 필요 없어, 아린아. 이건…….”
공명의 대상은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지니고 있는 특정한 스킬, 바로 카오스 스케일. 어떤 이유로 공명이 일어나는지도…… 대충은 가늠할 수 있었다.
‘칫, 어울려 줄 수밖에 없겠지.’
정시우는 후우, 심호흡을 하고는 카오스 스케일을 발현했다. 그의 전신을 검붉은 비늘이 덮자, 그가 착용한 흑색의 뱀브레이스와 조화를 이루어 마치 방어구 한 세트를 갖추어 입은 것처럼 보였다.
“앗, 자, 잠깐.”
“후우…… 큭.”
그리고 정시우가 익히 예견했던 변화가 닥쳐왔다. 뱀브레이스가 보다 눈부시게 빛을 발하더니, 경계면부터 서서히 흐물흐물해져 녹아내리며 카오스 스케일과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행은 당황하며 달려들었지만 정시우는 이물감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담담히 그것을 참아 냈다.
[고유능력이 발동합니다.]
이내 익히 예상했던 문구가 망막 위로 나타났다. 이것이야말로 정시우가 이 뱀브레이스를 다룰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이유였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될 줄은 그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었지만 말이다.
[마룡의 완갑이 카오스 스케일과 동화됩니다. 카오스 스케일이 Lv6이 되었습니다. 카오스 테일이 영향을 받아 Lv5가 되었습니다. 전신의 비늘이 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워지며, 저주 속성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뱀브레이스가 완전히 카오스 스케일에 동화된 순간, 단숨에 카오스 스케일의 레벨이 2가 올랐다. 전신이 마룡의 완갑처럼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어도 이전보다 전체적인 방어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을 품을 수 없으리라!
카오스 스케일이 강화되었다고 해서 뱀브레이스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착용한 부위에 그대로, 카오스 스케일과 단단히 결합된 채 남아 있었다. 방어력은 오히려 증가하기까지 했다. 카오스 스케일과 뱀브레이스가 공명에 이은 동화로 서로의 능력을 끌어 올린 것이다.
“이거 이렇게 되면 혹시 다른 부위에 방어구를 착용해도 카오스 스케일이 흡수해 버리는 것 아닐까요?”
“합당한 격과 특성을 지닌 물건이라면, 아마 그럴지도 몰라. ……이거 꼭 갑옷 세트를 파츠별로 모으는 기분인데.”
정시우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팔을 휘휘 휘둘러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카오스 스케일과 뱀브레이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움직이는 것이 스스로 보아도 기가 막혔다. 카오스 스케일을 회수하면 뱀브레이스도 모습을 감추었고, 원하면 다시 드러낼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쁜 오산이 있다면, 바로 카오스 스케일뿐만 아니라 카오스 테일의 레벨까지 올랐다는 것. 마룡의 완갑의 영향으로 비늘이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을뿐더러 저주 속성까지 갖게 되었으니, 카오스 테일이 정말 무시무시한 무기로 재탄생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음?”
“오빠, 왜 그러세요?”
“이거, 변화가 아직…….”
정시우는 말을 잇다 말고 다급히 용의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며 체내를 관조했다. 그리고 이내 경악했다. 마룡의 완갑을 흡수하는 것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그의 마나가 체내를 순환하며 실시간으로 증폭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이렇게 되면 이거…….’
정시우는 강한 의념으로 마나의 흐름을 이끌며, 증폭된 마나가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통제했다. 얼결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래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곧 마나의 강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두 개의 별이 튀어나왔다. 하나는 이미 그가 지니고 있던 별에 흡수되어 크기를 키웠고, 하나는 체내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남은 마나는 격렬한 순환을 마치고 자연스레 그의 전신으로 흩어져, 도도한 흐름을 유지했다. 그것으로 드디어 모든 변화가 끝났다.
“후우우우.”
정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추가로 몇 줄인가의 메시지가 나타나 망막을 가득 채웠다.
[저주 내성이 Lv15가 되었습니다.]
[산성 내성을 익혔습니다. 산성 내성이 Lv10이 되었습니다.]
[마력이 113 상승합니다.]
카오스 스케일과 카오스 테일의 성장이 정시우의 표면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일어난 변화는 뱀브레이스와의 동화로 인해 그의 육신 내부에 일어난 강화였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저주 내성이 크게 상승하며 새로이 산성 내성을 얻고, 마력이 크게 성장하기까지! 아티팩트 하나로 일어난 변화라기엔 지나치게 대단했지만, 그것도 모두 이 자리에 있는 이가 정시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쩜 오빠는 아티팩트 하나만 얻어도 이런 난리가 나는 거죠.”
“앞으로 이런 난리 많이 볼 거다.”
예기치 못했던 일들뿐이었지만 이로서 정시우의 향후 목표도 확실해졌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결과물로서는 방어구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와 상성이 맞는 좋은 아티팩트를 얻는다면 방금 한 것처럼 고유능력으로 방어구를 완전히 흡수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터였다. 가능하다면 비늘을 가진 놈들이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이제 돌아가요. 당분간 개미굴은 얼씬도 하기 싫어요.”
“그래, 나도 그건 동감이야.”
“돌아가면 또 특훈을 해야겠군요…….”
[그래도 제법 늘지 않았는가. 기대해라. 수련 난이도를 한 단계 높여도 될 것 같아.]
“지금 케이나가 뭐라는 겁니까, 형님.”
“너 얘랑 말 통하게 된 지 한참 됐잖아. 현실을 외면하지 마라.”
일행은 제각기 너덜너덜해진 채로 게이트를 향해 발을 옮겼다. 그런데 그 뒤에서 그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주인님!]
[저희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아.”
정시우는 그제야 자신이 여태껏 던전 초입에 모여 있었던 유령들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어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헥토와 놈이 남긴 보상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유령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 전투가 격렬해서 너희를 잊고 있었어. 이제 곧…….”
뒤돌아 유령의 숫자를 파악하려던 정시우가 말을 잃었다.
[저희도 모두 당신을 따르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한 마리만 나타나도 끔찍한 몬스터들을 그리 가볍게 다루시고, 마지막엔 그, 그 무서운 놈까지!]
[그런 사악한 존재들과 맞서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으면 플레이어 시절에 찾아뵈었을 텐데!]
그곳에는 32,154명의 유령이 전부 모여 있었다.
물론 던전 안으로 진입하기 이전에 그들 중 90% 이상의 유령들로부터 그를 따를 것을 다짐받기는 했지만, 그들 중 이탈자가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그를 따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놈들까지도 전부 몰려온 것이다!
“어…… 너희 다? 진짜로?”
[주인님께서 다 따라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했다. 하지만 설마 유령에 대한 영향력이 늘어나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어도 설마 한 놈도 빠지지 않고 모여들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정시우는 보스 룸 너머 복도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유령의 모습을 확인하며 말을 잃고 말았다.
[주인님, 그러고 보니 새삼스레 걱정이 된다만…… 주인님의 능력으로 이 많은 숫자의 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모르겠어. 해 봐야 알겠는데.”
하지만 사나이 정시우 사전에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경외로 눈을 반짝이는 유령들(아마 그와 헥토의 강림체의 전투를 보았을 가능성이 컸다.)을 마주하며 고개를 굳게 끄덕이고는, 소울 포스의 각인이 자리 잡은 손등을 그들을 향해 내밀었다.
“좋아, 까짓거 전부 거둬 주지.”
각인이 음산한 빛을 뿌려 냈다. 손등에서부터 뻗어 나온 그 빛은 순식간에 확산되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령 무리를 뒤덮고, 그로부터 다시 전염되듯이 사방으로 퍼져 갔다. 그들 한 명 한 명과 정시우의 의식이 연결되고 있었다.
[아아, 점차로 희미해져 가던 내 존재가 순식간에 뚜렷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미친, 진짜 대단한 분이잖아. 주인님의 의식의 깊이를 느껴 보라고!]
유령들이 차례차례 정시우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의 정신력에 부담감이 오기 시작했다. 체력과 마력에 이어 이젠 영력까지, 정말 골고루 담금질하는 날이었다.
“끄응…… 후우우.”
“오빠, 힘드시면 당장 그만두세요. 그 힘의 부작용은 누구도 모르잖아요.”
“아니, 가능해……!”
레벨이 많이 오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헥토와 맞붙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정시우가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마력과 체력이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 중 일부를 포기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2만을 넘었다. 오히려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소울 포스 스킬이 성장하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흐아아아아압!”
정시우는 자신의 힘을 탐하는 자와 싸우는 과정에서 고유능력을 성장시켰고, 힘을 향한 보다 강한 탐욕을 각성했다. 그는 이제 눈앞에 놓인 힘을 두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부 어떻게든 꾸역꾸역 삼켜 소화시킬 뿐이다!
[소울 포스 스킬이 Lv10이 되었습니다. 영력을 보다 예리하고 날카롭게 가다듬어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유령의 군단장을 임명, 그에게 군단의 영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신의 ????가 ?????]
눈앞에 그런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정시우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었다.
순식간에 그의 한계에 가까운 숫자의 유령들을 받아들이느라 온 신경을 집중한 탓에 눈꺼풀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도 무리를 한 보람은 있어 소울 포스 스킬의 레벨도 한꺼번에 3이 올랐다.
“후, 힘들었다…….”
그는 일단 자신의 지배를 받게 되어 고양된 상태의 유령들을 전부 각인 안으로 불러들였다. 10레벨에 이르며 소울 포스 각인도 보다 화려한 문양으로 변화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소울 포스 스킬이 성장하며 이전에 한 번 봤었던 물음표로 가득한 문장이 또 나타났지만 그것도 알 바 아니었다.
“돌아가자.”
“넵.”
[던전의 붕괴 속도가 터무니없이 빠르다. 미안하지만 업겠다!]
케이나가 빠르게 정시우를 업고 보스 룸 너머 나타난 게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용세하와 수아린 역시 날개를 펼쳐 그 뒤를 따랐다.
번개처럼 움직여 그들이 모두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 유지력을 잃은 통합 던전이 완전히 붕괴되어 소실되었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 통합 던전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