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62화 (162/260)

# 162

162화.

[위험도 ? 매우 낮음]

휴식처로 돌아와 곧장 던전에 입장하려던 정시우는 통합 던전 생성을 마음먹은 순간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침묵했다. 선택 가능한 난이도가 하나뿐이지 않은가.

“어…….”

“적어도 강함이 레벨만으로 산출되지는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네요. 처음 오빠가 들어갔던 던전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오빠의 능력을 제대로 재고나 있는 건지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수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생각해 보면 정시우가 처음 지하 플레이어가 되었을 무렵에는 아직 보통 위험도나 조금 낮음 위험도의 던전도 제법 있었더랬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결국 모두 파아아아아국이었던 것이다.

정시우는 쩝, 입맛을 다시며 하나밖에 없는 난이도 선택을 마쳤다. 그의 눈앞으로 일련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위험도 ? 매우 낮음’에 해당하는 개미굴 던전은 현재 지구상에 44,106개 남아 있습니다.]

[최소 2개부터 최대 44,106개의 던전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몇 개의 던전을 통합하시겠습니까?]

“전부.”

[남은 비드의 0.05%를 소모하여 던전을 생성합니다.]

[‘위험도 ? 조금 낮음’의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역시 남은 개수가 얼마 없어서 그랬던 건가.”

“그 누가 이 시스템에 관여했든 통합 던전을 이용해 단 두 번만에 지구상의 개미굴 던전을 쓸어버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용의 감각에 익숙해지고, 거기에 더해 괴력의 계속적인 발현을 거듭해 오면서 정시우가 얼마나 강해졌으면 개미굴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도 위험도 보통으로 올라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동안 던전이 더 생기길 바랐던 정시우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었으나……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던전으로의 입장을 선택했다.

“이제 플레이어들도 높은 단계의 던전으로 진입하고 있으니, 지구를 잘 뒤져 보면 거기서 리타이어한 애들로 만들어진 던전과도 조우할 수 있게 되겠지.”

“플레이어가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건 좀 그렇지만요.”

수아린이 끝까지 태클을 거는 가운데, 일행은 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히고 새로운 던전으로 입성했다. 순식간에 주위 풍경이 바뀌고, 익숙한 동굴의 정경이 일행을 맞이했다.

[개미굴 Extra 2. 강자의 동굴에 입장했습니다.]

[클리어 제한 시간 ? 1달]

“던전 개수가 적어서 그런지 제한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네.”

“하지만 던전 규모로만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특히나 흥미로운 것은 괴형정원이라는, 메티모아의 특성을 그대로 갖다 박은 듯한 이전의 던전 이름과는 달리 이번엔 제법 있어 보이는 이름의 던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정시우는 무척 기대하며…….

“자, 일단 너희 전원 집합.”

[컥, 저 사람 우릴 본다.]

[왠지 저 인간 말에 따라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건 대체 뭐지……!?]

언제나처럼 넓은 공동에 한가득 모여 있는 유령들을 불러 모았다. 7레벨에 이른 소울 포스 탓에 유령들은 그에게서 위압감과 경외감을 느꼈고, 그 결과 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순히 그의 눈앞으로 나란히 정렬하게 되었다.

[32,154번, 번호 끝!]

“좋아, 수고했어. 약 3만 2천 명인가…… 어처구니없이 많은데.”

그는 공동 안에 모인 유령들의 숫자를 파악하고는 무척이나 놀라 중얼거렸다. 다른 일행도 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보통 9분의, 10분의 1까지도 떨어지잖아요. 실제로 저번 통합 던전은 37만 개가 넘는 던전이 통합되었는데도 유령 상태로 나타난 플레이어의 숫자는 4만에 지나지 않았고…….”

“그런데 지금은 비율로만 따져 72% 이상입니다. 이건 굉장히 이상한데요.”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 뭘까. 일단 던전의 평균 위험도. 정시우가 지금보다 수준이 낮았을 때 이미 [매우 낮음] 위험도의 통합 던전을 쓸어버린 적이 있으니, 당연히 지금 통합 던전의 모태가 된 던전들의 평균 난이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플레이어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들이 죽고 남은 유령들 또한 풍부한 마나와 기록을 갖고 있어 자신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경향이 있었다.

“지구가 품은 마나도 그동안 더욱 풍부해졌고…….”

이전과 비해 자신의 소울 포스도 성장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게 영향을 끼치진 못했겠지. 정시우는 순간 떠오른 생각을 속으로 접어 버리며 납득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모두 듣고 있겠지? 그럼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가지 하지.”

“앗, 오빠가 이전에 비해 노골적으로…….”

[유령 군단은 무척 쓸모가 많으니 말이다.]

케이나의 말이 맞았다. 신의 힘이다 몬스터다 해서 정시우가 고개를 들이밀어야 할 일이 점차로 많아져가는 지금, 그가 부릴 수 있는 유령의 숫자가 늘어나서 나쁠 일은 없었으니까.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유령 몇 명을 불러내어 보여 주곤 유령들에게 짧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 그리고 그들이 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너희 존재의 자락이라도 유지하고 싶거든 순순히 나를 따르면 된다.”

[…….]

[히익.]

“아, 역시 아무래도 좋은 걸까요.”

[설마 주인님은 지금 저 말을 설득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수아린과 케이나는 단박에 아득한 눈이 되었으나 정시우는 개의치 않았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솔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진심이 유령들에게 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따, 따르겠습니다.]

[나는 나로서 생애의 의미를 찾고 싶어.]

“통하잖아!?”

“훗.”

무려 90%를 넘는 숫자의 유령들이 정시우를 따를 것을 천명했다! 정시우는 자신의 웅변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물론 그것은 아니었다.

그의 소울 포스 스킬 레벨이 높아져 영체들을 대상으로 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의 격이 상승하여 자신보다 격이 낮은 이들에게서 본능적인 경외를 받아 낼 수 있게 된 까닭도 컸다.

[예전부터 팬이었습니다! 설마 정시우 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되다니…….]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에 죽은 플레이어들은 정시우의 활약을 바로 옆에서든 TV를 통해서든 확인하고 그에게 같은 플레이어로서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들은 어차피 죽은 거 정시우의 곁에서 그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기도 했다. 그 모든 원인이 이렇게 압도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것!

“헷, 간단하읍.”

“오빠, 들려요. 들려요.”

수아린의 필사적인 디펜스로 정시우의 사악한 속내가 새어 나가지 않고 끝났다. 정시우는 퉤퉤 소리를 내며 입을 헹구고는 지금이라도 그의 명을 따를 기세로 만만인 유령들에게 짧게 선언해 두었다.

“너희는 지금 이 통합 던전을 지탱하는 마법의 핵심이야. 그전에 내게 속하게 되면 던전이 무너져 이 많은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해방될 테니, 지금은 일단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던전을 클리어한 후에 너희를 모두 거두어 주지.”

[알겠습니다!]

제법 멋들어지게 경례를 하는 대표 유령. 레벨도 200이 넘어 정시우를 흡족하게 했다. 이 정도면 던전의 내용물은 둘째 치고 여기서 건진 유령들만으로도 풍작, 압도적인 풍작이다!

[그런데 주인님.]

유령 중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정시우를 불렀다. 정시우가 고개를 까딱이자 녀석이 무척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던전이 생성된 순간, 우리와 함께 이 공동으로 소환된 유령 중 하나가 쏜살같이 던전 안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

이건 또 뭔 얘기란 말인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일행을 돌아보는 정시우였으나 그들이라고 해서 알 리가 없었다.

정시우는 다른 유령들에게도 물어보았으나 다른 이들은 그마저도 보지 못한 모양. 알고 보니 그에게 보고를 한 이가 유독 눈이 좋은 저격수 출신이었다.

“넌 부대장 발탁이다.”

[영광입니다!]

신상필벌을 확실히 처리한 정시우는 유령이 어째서 던전 안으로 날아간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신의 축복을 받고 죽은 플레이어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곳에도 신의 파편이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하긴 수만 개나 되는 던전이 합쳐졌는데 그 가운데 신의 흔적이 안 남아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조금이라도 던전의 난이도가 높아진다면 대환영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위험도가 조금 낮음에서 보통으로 높아집니다.]

“조오아써.”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변화에 기뻐하는 사람은 우리 오빠밖에 없을 거야.”

“그렇게 변화되어도 보통 위험도에 그친다는 게 실로 어이가 없군요.”

정시우는 인벤토리로부터 팬텀바이크를 꺼내어 케이나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오르면서도 정시우에게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 왔다.

[주는 건가?]

“미쳤냐. 일단 이걸 타고 네가 앞을 뚫어. 그럼 내가 초토화를 내고, 세하가 남은 놈들을 정리한다. 완벽하지?”

“대규모 공대에서나 쓸 법한 전술을 세 명이서 하려고 든다는 점이 참 난폭하네요.”

하지만 지금의 정시우라면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무서웠다. 케이나는 마신의 징벌을 꺼내어 드는 정시우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검을 꺼내어 쥐었다.

[좋다. 빠르게 가지. 용세하, 나와 주인님의 속도에 잘 맞추어야 할 것이다.]

“나도 폼으로 날개를 달고 있는 건, 흐억!”

용세하를 도발하는 말에 그가 날개를 펄럭이며 대꾸하려는 그 순간 발진하는 바이크! 팬텀바이크에 이런 기능이 숨어 있었나 싶을 만큼 폭발적인 가속력이었다!

“좋아, 가 볼까!”

“따르겠습니다!”

정시우도 다급히 해머를 쥔 채 전투질주를 활성화하여 그 뒤를 따랐다. 랜스를 꼬나 쥔 용세하가 가장 늦게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수아린은 여전히 정시우의 품 안을 차지하고 앉아, 그들이 돌진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유령들에게 쓴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런 던전 공략은 처음 보겠죠, 이해해요.”

직후 쾅! 하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케이나는 정말로 정시우의 명령에 충실하게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뚫어 버리고 지나갔고, 두 번째 방에 무슨 함정이 있건 장애물이나 몬스터가 있건 휑하게 구멍이 뚫려 내부를 드러낸 꼴이 되었다.

[주인님, 죽지 않은 몬스터가 제법 있다!]

“내 눈에도 보여!”

두 번째 방을 뚫고 그대로 세 번째 방으로 넘어가며 외치는 케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시우는 용의 감각을 돋워 사방을 파악했다.

그에게 있어선 이미 전신이 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에, 용의 감각만 활성화한다면 굳이 시선을 돌릴 필요도 없이 던전 내부의 정경을 360도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곳은 신전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음…….”

[큭…… 왔는가!]

정확히는 폐허가 된 신전이었다. 누가 폐허로 만들었는지는 저기서 바이크와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고 있는 케이나만이 답해 줄 수 있으리라.

그 안에서 넝마와 비슷한 꼴이 되어 한두 명씩 일어나는 몬스터들이 정시우를 향해 울부짖었다.

[설마 승부를 회피하고 신전만 전부 박살 내놓고 갈 줄은 몰랐다. 저년은 네놈의 동료렷다!]

“내 부하야. 내가 박살 내라고 시켰어.”

[아주 당당하기도 하구나! 강자끼리의 신성한 결투의 장을 이렇게 더럽혀 놓다니……!]

새삼스럽지만 케이나는 강하다. 엄청나게 강하다.

고위 전투 기술과 상위 마나 기술의 정점에 있어야만 구사할 수 있는 오러를 잔뜩 담아낸 대검을 쥐고, 팬텀스티드의 속도를 극에 가깝게 끌어 올린 돌진으로 방 전체를 후려치고 갔으니 몬스터고 기둥이고 무너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홀로 오롯이 위대한 분, 헥토께서 네놈들을 결코 용서치 않으시리라!]

설령 그것이 세트나크에 비할 만큼 강력한 신의 힘을 응축해 담아낸 신전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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