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59화 (159/260)

# 159

159화.

“구경?”

“응. 그리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고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아.”

정시우는 이서희의 말을 듣는 즉시 전장에 국한되어 있던 용의 감각을 크게 확장시켰다. 산에서 이어지는 계곡, 숲 속 공터, 바위 틈…… 그 안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의 숨결이 정말로 그에게도 느껴졌다. 단 그들에겐 신의 흔적이 아예 없었다.

“외래종을 물리치고 나니 이젠 토종이냐.”

“그런데 적의는 없는 것 같지 않아?”

“인간에게 적의가 없는 몬스터가 어디…… 잠깐.”

그러고 보면 있었다. 뿌이…… 세이락시아를 비롯한 심해관 일대의 결계 안에서 살고 있는 몬스터들은 인간과 직접적인 적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정시우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느껴져.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마리나가 첨언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녀석들이 누굴 두려워하는지는 뻔한 일. 다른 이들의 시선이 쏠리자 정시우는 쩝, 입맛을 다시며 해머를 어깨에 걸쳤다.

“접촉해 볼까?”

“어쩌면 바닷속 몬스터들처럼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우케이. 여기서 정리들 하고 있어.”

정시우가 홀로 결계 밖으로 나서자, 그의 감각권에 들어와 있던 모든 몬스터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려는 것이 보였다. 역시 놈들은 정시우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딜.”

이때 유효한 것이 바로 용의 위엄. 전신의 마나에 미약하게 위엄을 담아 퍼트리는 것으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굳어 버렸다.

[구, 구으으으…….]

“좋아…… 너.”

정시우는 개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몬스터를 붙잡았다. 이것도 인연일까, 놈은 녹색 비늘을 전신에 두른 도마뱀인간, 즉 리자드맨이었다. 숲속에 살고 있어 녹색 비늘인 것일까, 조금 웃겼다.

“한판하고 싶은 거면 달려와 붙든가, 왜 그렇게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어?”

[우리 말을 아는가!?]

“그래그래, 그렇다고 쳐.”

이젠 몬스터들이 그가 말을 알아듣는다며 놀라는 것도 식상했다. 정시우는 놈을 놔두고 몸을 놀려 근처에 숨어 있던 몇몇의 몬스터를 더 잡아 왔고, 그때마다 놈들은 벌벌 떨며 비명을 질렀다. 이렇게 심약한 몬스터는 처음이었다.

“자, 이제 말해 봐. 우리랑 싸우자는 거냐?”

[아, 아니다.]

[아니다아니다.]

[나는 내 목숨이 소중하다.]

몬스터들은 정시우의 괴력을 떠올리며 손사래를 쳤다. 적어도 힘의 상하관계를 따져 물러날 정도의 이성은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정시우는 혹시나 하여 질문했다.

“파에토가 불러낸 몬스터들과 싸우려던 거냐?”

[파에토…… 그것이 저 괴물들을 다스리는 자의 이름인가?]

“응.”

너희도 괴물이잖아, 라고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은 꾹 억눌러 두었다. 과연, 그의 말에 몬스터들은 약간 더 웅성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놈들 중 가장 눈이 반짝이는…… 다람쥐를 수십 배로 키워 놓은 듯한 설치류 몬스터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놈들은 우리를 괴롭힌다, 찌. 자꾸 이상한 놈을 믿으라고 강요한다, 찌.]

“그 어미는 어떻게 안 되냐, 찌?”

[안 된다, 찌.]

다람쥐는 정시우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신을 모시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데, 놈들은 저마다 믿는 신을 강요해 온다, 찌. 오늘 저놈들이 온다는 것을 알고 겁을 많이 먹고 있었는데, 당신이 다 물리쳤다, 찌.]

“믿는 신?”

정시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심해관의 몬스터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아직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하늘성과 같은 플레이어 양성소의 흔적이 남은 그곳을 신의 증거라며 모시던 제사장과 신의 대리자라 불리는 세이락시아까지…….

어쩌면 이들도.

[그렇다, 찌. ……당신도 당신이 믿는 신을 우리에게 강요할 거냐, 찌?]

“내가 믿는 건 나 자신뿐이야. 그리고 그걸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찌.”

[그렇다면 다행이다, 찌. 그럼 이제 우릴 놓아줘라, 찌.]

물론 놓아주란다고 순순히 정시우가 그들을 놓아줄 리는 없었다. 불과 방금 생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선 녀석들과 동행할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정시우는 다람쥐의 목덜미를 붙잡아 눈앞으로 들어 올리며 상냥하게 웃었다.

“너희들이 모신다는 신이 정말 궁금한데, 가르쳐 줄 거, 찌?”

[시, 싫다, 찌.]

정시우의 자애로운 미소가 다람쥐를 더욱 가까이서 비추었다.

“너희를 하나로 묶고 있는 구심점도 무척 궁금한데, 누군지 알려 줄 거, 찌?”

[시, 싫…….]

“그, 찌?”

[찌, 찌이…….]

그로부터 1분 후, 정시우는 한창 전리품을 수거하며 결계를 거두고 있는 일행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본거지로 안내해 주겠대!”

“역시 대화가 통하는 몬스터였구나! 시우는 대단해!”

마리나는 순진하게 기뻐했지만 그에게 붙잡혀 덜덜 떨고 있는 다람쥐 몬스터의 모습을 본 나머지 일행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저놈들한테는 파에토가 부리는 몬스터들보다 오빠가 더 무서울지도…….”

“형님께선 깨워선 안 될 재능을 자각해 버리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행은 다람쥐를 비롯해 일대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의 안내를 받아 깊은 산속을 걸었다. 산속을 걸으며 한두 마리씩 몬스터가 추가되었다. 그들이 함께하려 한 것이 아니라 정시우의 예리한 시선을 받고 알아서 기어 나온 것뿐이었지만.

“점점 공기가 맑아져.”

“공기가 아니라 아마 마나일 거야.”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숲일수록 마나의 밀도가 높은 경향이 있었고, 정시우는 어째서 김하룡이 거사 장소를 이런 산골로 정했는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곳이니만큼 지구산 토종 몬스터들의 삶의 터전도 많겠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마나다, 찌. 흔히 오해하는 것 같지만 우린 마나랑 일정량의 물리 에너지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어서, 마나도 별로 없는 인간은 잘 안 먹는다, 찌.]

“잘?”

[태,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찌.]

역시 다람쥐 녀석은 머리가 좋았다. 정시우에게 황급히 대답한 놈이 고개를 돌리며 눈을 부릅뜨자 다른 몬스터들도 다급히 한 마디씩 보탰다.

[나, 나도 먹어 본 적 없다! 인간은 분명 퍽퍽하고 질겨서 맛이 없을 거다!]

[풀이 좋다! 풀 만세다!]

“그래, 다들 그런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도록 하렴.”

일행은 태클을 걸지 않기로 했다.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태클의 의지를 어떻게든 눌러 참았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곧 뉴 에이지 진입 이전엔 없었던 거대한 폭포와 마주하게 되었다.

“음?”

그중 가장 인지능력이 뛰어난 정시우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이런 곳에 아공간…… 잠깐.”

이거 어째 심해관에 들어갈 때와 전개가 비슷하지 않은가. 혹시 개미굴 말고 또 다른 지상의 플레이어를 육성하는 장소라도 있었단 말인가!?

역시나 이놈들이 믿는 신이란 시스템의 신이었던가! 생각이 깊어지는 정시우였으나 마리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부정했다.

“그곳에 들어갈 때와는 느껴지는 마나의 패턴이 다르잖아. 게다가 듣자니 심해관은 던전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몬스터의 피난처가 된 곳이라면서? 이곳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으으음, 그렇겠지……?”

폭포수 너머의 아공간을 분석하며 정시우도 점차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아공간은 특별한 의도를 품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 에이지 과정에서 과도한 마나가 쏠린 일부 지역이 변이를 일으켜 생성된 자연적인 던전과 같은 것이었다.

작정하고 찾지 않는 한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라 해도 쉬이 이런 곳을 발견해 내지는 못할 터. 아마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만 그렇다고 마음에 걸리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마나의 집중만으로 아공간이 생성되기에는 아직 지구의 기록에 부족한 면이 있으니까. 중간에 하늘성이나 개미굴, 심해관과 관련된 시스템이 개입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겁먹었냐, 찌? 우리를 협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죽이지는 않았으니, 우리의 대장도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거다, 찌.]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아지트로 들어가며 조금씩 안도하는 몬스터들. 우두머리에 대한 신뢰가 어지간히도 깊은 모양이었다. 하긴, 이곳에도 뿌이와 같은 놈이 보스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면 저렇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도 납득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정시우는 이제 뿌이 두 마리가 동시에 덤빈다고 해도 꿀리지 않고 상대할 자신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곳이다, 찌.]

폭포수를 지나며 게이트를 통과할 때 특유의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은 그들은 이내 탁 트인 곳으로 빠져나왔다.

한라산 속의 아공간인 만큼 자연환경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보다 높은 언덕과 울창하게 뻗은 나무들이 가득한 그곳은 일행에게 지구보다 한층 더 마나가 발달한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도 그런데. 신들이 말했던 스테이지로 따지면 2.5스테이지 정도 되려나.”

“이건…….”

정시우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곳은 시스템에 영향을 받아 생성되었으나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는 않는 던전과 같은 곳이었다. 그 차이점이 이 공간을 몬스터들에게 있어 감옥이 아닌 은신처로 만든 것이다.

[이곳이다, 찌.]

“그래, 대충 알겠다.”

이제부턴 굳이 녀석에게 안내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 공간을 던전이라 인식한다면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도 대강은 답이 나오니까.

안으로 들어오자 저마다 안도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몬스터들을 굳이 붙잡지 않고 배웅한 정시우는 오직 한 마리, 다람쥐만을 집어 들고 일행을 이끌었다.

“이놈들의 보스라는 녀석도 딱히 우리에게 적의를 품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

“그것 참 다행이네.”

“혹시 모르니 서희는 결계 준비해 줘.”

“응.”

공간은 무척 넓었다. 어지간한 던전 100개 정도를 합쳐 놓은, 즉 이미 진즉 제주도의 영역은 뛰어넘은 넓이가 아닐까 싶었다. 정시우는 던전을 걷던 도중 뭔가를 깨닫고 히죽 웃었다.

“입구가 한 군데가 아니구만?”

[괴물이다, 찌.]

던전의 구조, 대기, 그 안을 채우는 몬스터들. 용의 감각은 점차로 확장되어 던전을 싹 훑고, 그들이 지나온 폭포수 통로를 제외하고도 바깥과 이어지는 몇 개인가의 통로를 탐색해 내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그것은…….

“그것도…… 제주도가 아니라 다른 곳이랑 이어지는구나. 그렇지?”

[뭐든 다 아는구나, 찌.]

“뭐든지 아는 건 아니야, 아는 것만.”

“글쎄 시도 때도 없이 그런 농담을…… 아니 잠깐만요, 오빠.”

정시우의 말을 듣고서야 던전이 품은 신비를 깨달은 일행이 경악하여 그에게 물었다.

“제주도가 아니라 다른 곳?”

“워프 게이트와 비슷한 건가요?”

정시우는 그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그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지 않았다. 워프 게이트는 어디까지나 이계의 마도공학. 그러나 그가 탐지한 갖가지 통로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 다르지. 뉴 에이지 진입 순간의 마나 유동, 그 탓에 고인 마나의 웅덩이…… 마지막으로 하늘성과 개미굴을 구축한 정체 모를 힘, 시스템이 거기에 간섭한 결과 탄생한 통로니까.”

[그렇다.]

그들에게 대답한 목소리는 다람쥐의 것이 아니었다. 보다 위에서 들려오는, 묵직하고 위엄이 서린 목소리였다. 정시우는 슬쩍 고개를 들어 놈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없는 것 아녔어?”

[나는 호랑이가 아니다, 인간. 또한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몸길이 15미터, 체고 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백색 털의 호랑이.

[에리우라고 불러다오, 인간의 왕이여.]

이 던전에서 가장 강한 힘을 품은 보스 몬스터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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