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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57화 (157/260)

# 157

157화.

팬텀바이크만 있으면 뉴욕에서 애리조나까지도 1시간 반이다.

하물며 전투질주를 상시 발동하며 그것을 팬텀바이크에까지 어렵지 않게 적용할 수 있는 지금의 정시우가, 대한민국의 어디에서든 제주도까지 5분이 안 되어 도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전투질주 스킬이 Lv67이 되었습니다.]

“기초스킬들은 역시 레벨 업이 빨라서 좋다니까.”

“물론 스킬의 습득 난이도와 수련 난이도에 따라 레벨 업 속도가 달라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1년도 안 되어서 67레벨을 찍는 건 명백히 비정상적인 속도거든요.”

정시우는 수아린의 말을 가만히 듣다 말고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100레벨도 있냐?”

“없어요.”

그녀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정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수아린이 아주 살짝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야 상급 스킬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기초스킬은 저도 제법 숙련했거든요. 다른 클래스는 잘 몰라도 제가 익힌 스킬들은 100레벨에 이르는 것과 동시에 상급 스킬로 진화했어요.”

“그래?”

“네, 대표적으로 제가 다루는 치유와 축복은 원래 하급 치유와 하급 축복이었어요.”

“흐음…….”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생각해 보면 수아린은 하늘성이 생겨난 그 순간 플레이어로 선택된 퍼스트 플레이어이며, 사제의 랭킹만 따지면 누구나가 서슴없이 1위로 거론하던 능력자다. 그녀의 스킬 수준이 높은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케이나는?”

[쌓아 온 세월이 있는 만큼 나도 대부분의 스킬은 진화시켰다, 만…… 스킬이란 결국 쓰는 자 나름. 상황에 맞는 운용이 중요하지, 레벨의 고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철저하게 실전적인 접근이었다. 하긴 케이나는 스킬보다는 자신의 육체와 마나 운용에 주력하는 면이 있으니……. 하지만 정시우는 강해지기 위해선 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진화, 진화라…….”

“오빠라면 앞으로 1년 안에 스킬을 진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스킬을 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스킬레벨 100 말고도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아.”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던 수아린이 이내 스스로 깨닫고 감탄사를 발했다. 그렇다. 이미 정시우는 진화된 스킬을 여럿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스킬들을.

“그렇네요, 크리티컬 불릿은 스킬레벨을 높일 것도 없이 마탄을 개량해 진화시킨 경우고, 소울 포스 스킬은 외부로부터 들인 세트나크의 힘으로, 마지막으로 용의 감각은 여러 개의 필수 재료를 모아서…….”

“치유 스킬이 일반 진화라면 크리티컬 불릿은 문장 진화, 소울 포스 스킬은 캡슐 진화, 용의 감각은 합체 진화로군요!”

“그 비유는 그만둬라.”

용세하의 머리에 딱밤을 날릴 때쯤 정시우는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푸른 밤, 소음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정차한 팬텀바이크와 정시우 일행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팬텀바이크의 은신 기능은 정시우의 은신 스킬이 성장함에 따라 덩달아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쪽도 만만치 않게 잘 숨은 것 같은걸요…….”

“아니, 나한테는 보여.”

대부분의 적이 정시우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그렇게나 터무니없는 힘을 품고 있으니 감은 그것에 비해 떨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이란 단순한 무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언제 어디에 써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을 때에 나오는 것이다. 그의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예민하게 발달해 왔으며 용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지금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놈이 정확히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정시우에게는 뻔히 보였다.

“과연, 신의 침략 방식을 잘 알겠다.”

확실히 여태껏 놈을 놔둔 것은 정시우의 실책이었다. 신의 힘으로 인해 인간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에서 끝장을 냈어야 했다. 좋은 교훈을 하나 얻은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리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진한다, 꽉 잡아라.”

“네…… 흐익!?”

수아린이 기겁하며 그의 옷깃을 붙들었다. 팬텀바이크가 수직으로 기울어지며 유성처럼 하강했다. 프론트펜더가 정시우의 마나에 의해 한껏 강화되어 날카로운 전류를 흘려 냈다.

“크하!?”

별이 땅에 떨어지는 그 순간, 정시우는 프론트펜더로 정확히 김하룡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그 직전까지 은신이 유지되었던 탓에 김하룡은 자신이 무엇에 얻어맞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 안 죽었네. 역시 인간은 벗어났구나.”

“정시우……!”

정시우는 크루얼 차지로 그대로 놈을 죽여 버릴 생각이었으나, 머리통이 절반 이상 움푹 파였음에도 김하룡은 곧장 뒤를 돌아보며 정시우를 향해 검을 휘둘러 왔다.

화염으로 완벽하게 물든 검이 정시우를 태워 버릴 기세로 날아들어, 그가 꺼내 든 망치에 허무하게 막혀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해머에 깃든 독염은 화염의 신의 힘을 흡수하여 무려 A+랭크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네 불꽃 너무 약한데.”

“이, 자식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한데, 네가 여태까지 살아 있었던 건 내가 널 살려 뒀기 때문이야. 알지?”

“오빠, 그 말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요…… 진짜 악역 같아요.”

정시우는 팬텀바이크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망치를 휘휘 휘두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대는 사람 몇 명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를 것만 같은 깊은 산속.

“하, 네놈 따위가 나를 살려 둬……?”

“응. 지금 네 꼬라지를 보면, 그치.”

“으득…….”

한라산의 이름 모를 산자락에서, 김하룡은 자신의 몸을 재료로 삼아 허공에 게이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화염의 신이 다스리는 이들을 지구로 끌어오기 위한 매개체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없이 엑스트라에 가까운 그 역할에 한때 세계 랭킹을 노리던 김하룡은 만족하고 있을까, 물론 정시우가 알 바는 아니었다. 정시우는 히죽 웃으며 가볍게 그를 도발했다.

“그래, 신의 파편 박고 나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냐?”

“흐!”

그래도 주절주절 떠들던 이전보다는 좀 정신상태가 나아진 것일까. 기합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놈이 돌격해 왔다.

두 거대한 힘이 충돌하기 직전, 놈의 두 눈에서 불꽃이 레이저처럼 뿜어져 나와 정시우를 노리는가 싶더니 수아린이 만들어 낸 실드에 막혀 허무하게 사라졌다. 수아린이 재차 방어막을 만들어 내며 정시우에게 경고했다.

“눈뿐만이 아니에요, 오빠.”

“그래, 알고 있어.”

“큭, 네가 순진한 아린이를……!”

“하.”

어떻게 된 게 입을 열기만 하면 곧장 싸구려 대사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정시우는 이젠 거의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하룡은 수아린이 정시우에게 조종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 세상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인간인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만…….”

“아니 그건 나쁘죠!?”

당연히 자신이 정시우를 베어 버릴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저 표정, 이전에 비해 거대해지기는 했지만 단지 신의 힘을 받아들여 키웠을 뿐, 기술적으로는 전혀 진보하지 않은 흔들리는 불꽃의 대검.

괴력을 쓸 것도 없이, 심지어 스킬을 쓸 것도 없이 저 따위 조잡한 불꽃은 흩어 버릴 자신이 있다. 놈의 존재마저도.

“물론, 저놈은 나쁘지.”

김하룡의 그것처럼 강렬한 에고는 자신이 세상 위에 진정으로 설 수 있을 때에야 간신히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김하룡의 세상은, 지금 끝나는 것이다!

“뒈져!”

[그렇겐 안 되지!]

그러나 정시우가 그려내는 망치의 궤적과 김하룡의 돌진의 궤적이 완전히 겹쳐진 그 순간, 이제 막 허공에 열린 게이트에서 튀어나오던 거대한 팔뚝이 정시우의 망치를 막아섰다.

[기껏 지구로 가는 문이 열렸는데…….]

김하룡에게 심은 힘을 유도제로 이용하여 만든 파에토의 점령지 직행 게이트. 파에토의 종속 가운데 지구가 아슬아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엘리트 몬스터가 지금, 제주도로 넘어온 것이다!

[그 누구도 파에토 님의 길을 막을 수는 없다!]

“있지롱!”

그러나 정시우는 어떤 놈이 자신을 막건 말건 개의치 않고 그대로 망치를 내려쳤다. 끔찍한 위력을 머금은 망치가 그것을 기세 좋게 막으려던 팔뚝을 완벽히 부숴 버리곤 그대로 김하룡까지 찍어 눌렀다!

“꾸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놈들은 한 방에는 죽지 않았다. 하긴 파이라를 죽인 케이나도 화염의 신의 종속들은 생명력이 끈질기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더 강하게 내려치면 될 뿐!

“강타!”

정시우는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며 게이트 바깥으로 굴러떨어지는 거대한 몬스터까지 함께 궤적에 담아 재차 망치를 찍었다.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빠른 속도와 정확한 타겟팅! 반격의 봉화를 울릴 시간도 없었다.

“이, 럴……. 말…….”

[크륵…….]

한 번, 두 번, 세 번! 놈들은 도무지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뭐가 눈에나 보여야 피하지 않겠는가. 빠르고 강하다는 말을 하기에도 민망했다. 그저 신이 직접 벼락을 떨구면 이와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 마무리!”

정신없는 구타의 향연. 주위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무아지경 속에서 망치를 내지르던 어느 한순간 정시우의 망막 위로 짤막하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두 놈 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경험치가 두 번에 나눠서 들어왔으니 둘 다 죽은 것이 확실하리라.

“후우.”

정시우는 개운하게 한숨을 내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열린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케이나와 용세하가 놈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역시 동료란 중요하다. 짜증나게 적을 놓칠 뻔한 상황에서 다른 놈들 신경 쓰지 않고 확실하게 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 앞으로 다시는 김하룡 이름 석 자를 듣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속까지 개운했다.

“좋아, 해결.”

정시우는 쥐포가 된 김하룡의 사체를 망치로 한 번 더 눌러 놈이 품고 있던 화염의 신의 파편을 고스란히 망치에 흡수시켰고, 그 결과 이전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던 독염 속성이 재차 강화되어 A++에 이르렀다.

반면 김하룡을 보호하려는 듯이 튀어나왔던 거대 몬스터…… 아마도 불꽃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 가죽을 지닌 포유류 몬스터는 딱히 특별한 것은 품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석만은 제법 커서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이게 뭐라고 어려워야 되냐.”

“그러게요…… 그렇네요.”

수아린은 김하룡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이내 정시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애초에 정시우는 김하룡을 높게 평가한 적 따위 없었고, 놈이 인류의 반대편으로 돌아섰다는 확증이 서기만을 침착하게, 마냥 기다렸다. 타지 않는 쓰레기 버리는 날을 기다리듯이. 그리고 때가 되어 정리했다. 트럭에 쓰레기봉투 싣듯이.

“제가 너무 신경을 썼네요.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알았으면 됐어. 다른 중요한 것 신경 쓰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인데 이런 구더기까지 일일이 기억해 둘 필요 없잖아.”

신의 힘을 적출한 후 남은 김하룡의 사체에서 건질 것이 없다는 판단을 완료한 정시우는 그것을 다시 망치로 내려쳐 가루를 내었다.

그것을 보며 수아린은 깔끔하게 김하룡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뇌에서 지웠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하지만 결코 그녀의 지금과 함께할 수는 없던 한 남자가 완벽하게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주인님, 매개를 죽이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사태를 어쩔 테냐!]

“지금 지구에 잘 없는 강한 적도 죽이고 좋잖아, 뭐 어때!”

지구를 아랫동네 공원쯤으로 여기고 놀러 온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밟아 주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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