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화.
신의 힘이란 그곳에 가만히만 있어도 흘러나오는 마나의 여파로 인간을 현혹한다. 신의 힘을 품고 있는 인간들은 그 자체로 신의 영향력을 퍼트리는 단말이 되며, 성물을 품고 있는 케나토 같은 경우는 그 최고봉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신에게 영향 받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들은 그것에 전염되어 물들고 마는 것이다.
“저, 건방진 인간이……!”
그러나 지금 전장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인간을 어질하게 만드는 신의 마나가 모두 한 인간에게 집중되고 있다면 어떨까.
“무슨, 어떻게……?”
그것은 용의 감각을 지닌 정시우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마나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라고 해도 한 번에 드나들 수 있는 마나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후우, 하아아…….”
도움이 된 것은 의외로 은신이었다. 은신은 자신의 체내 마나를 이용하여 외부 마나를 자극, 자신의 존재를 그 안에 파묻는 제법 고난이도의 스킬.
여기서 정시우는, 그렇다면 체내 마나의 활성화 정도와 방향에 따라 외부 마나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래. 마나를 퍼트려 외부 마나를 모두 자신의 체내를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마력 20을 영구적으로 소모하여 플레이어 스킬, 마나 드레인(액티브)을 익혔습니다. 1레벨 기준으로 외부 마나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드레인, 빨아내거나 소진시킨다는 뜻이다. 이제 막 발현시켰을 뿐이기에 타인의 마나를 직접적으로 갈취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외부로 흘러나온 신의 마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물론 그가 단순히 마나를 잘 다루는 인간이었을 뿐이라면 이런 스킬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그가 고유능력 강탈의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제법 괜찮은데. 이제야 외부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 깨달은 기분이야.”
“이런 스킬, 본 적도 없어요.”
대체 언제까지 그에게 놀라야만 하는 것일까. 은신에서 이런 스킬을 뽑아내는 정시우의 재능은 대체? 수아린은 이쯤에서 언제나 그래 왔듯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정시우는 전장에 팽배한 마나 중 신의 기척을 품은 것들만을 빨아들여 어렵지 않게 제 것으로 만들며, 그것으로 다시 크리티컬 불릿을 만들어 내어 사방으로 쏘아 냈다. 전장에서 광역으로 어그로 하나는 제대로 끌고 있는 것이다!
“놈이다. 놈이 뒤세느 님의 성물을 멋대로 가져간 자이다!”
“이럴 수가, 파에토 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놈의 짓이다! 놈이 우리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두통이…… 사라졌다.”
“맙소사, 저자는…….”
전장은 무척이나 방대하여, 제아무리 정시우가 대단하다 해도 이 전장을 가득 메운 신의 힘을 모두 단숨에 빨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신의 목소리에 괴로워하던 이들이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되었다.
“뭐해, 너희 다 내 뒤로 붙어!”
“이, 일단 저 사람 말에 따르자!”
“신의 힘을 모두 한 몸에 받아 내고 있어.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이 기회야!”
저항자들의 선도를 따라 수십만의 군세가 정시우의 뒤를 따라붙었다. 더는 그들 중에 신도로 화하는 자가 없었다. 홀로 두 명의 신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케나토마저 당황할 지경이었다.
“저놈…….”
한없이 당당하고 잘난 정시우의 모습은 그에게 문득 잊고 지냈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군단의 신을 따르기 이전, 신들의 침략으로부터 포투포우를 지키기 위해 인류를 이끌고 저항하던 시절을…….
지금 그는 신의 가장 충실한 아들이 되었다.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지만…… 자랑스러워야 할 터인데.
“뒤세느의 이름을…… 놈이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어.”
뒤세느는 위대하며 강하고, 절대적이다. 자신조차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거늘, 자신보다 모자란 놈이 그분을 거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자신이 직접 알려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당당하게 나섰으니 이제 더는 도망치지 않겠지!”
주위의 잡졸들을 단숨에 베어 죽인 후, 케나토는 큰 목소리로 외치며 정시우를 향해 돌진했다. 전신의 마나가 활성화, 증폭되며 그의 피부를 뚫고 나무줄기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넘실거렸다.
“뒤세느의 위대함을 몸에 새기게 해 주마!”
“저자는…… 나의 것이야, 케나토.”
“하!”
정시우를 향한 자격지심에 폭주하는 것은 케나토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그와 같은 펜타곤의 주축이었던 여자, 파이라가 어느덧 그의 옆에 와 있었던 것이다.
이 전장에서는 아직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다. 서로 마주하는 것은 대충 전쟁의 승패가 결정 났을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했던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네년에게 뒤세느 님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기다려라. 저자를 처리한 다음에 해 주마.”
“동감이야. 저, 존재만으로 역겨운 남자를 일단 눈에서 치운 후에 붙자고.”
본디 있을 수 없는 일. 서로 다른 신을 믿는 이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임시로 동료가 된 순간이었다.
[너는 갈 수 없다.]
“큭!?”
정시우의 눈앞에 도달하기 직전 파이라의 복부를 강하게 후려쳐 오는 대검! 미처 방비하지 못한 파이라는 거센 충격에 붕 뜬 채 뒤로 날아가다가는 전신을 화염으로 바꾸어 허공에 떴다.
물론 케나토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맹목적으로 정시우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파이라는 충격을 해소하려 애쓰며 자신을 가로막은 이, 드래곤나이트 케이나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너…… 너도 저자와 같은 부류구나?”
[저런 괴물과 같이 취급하지 마라.]
전신의 마나를 활성화하여 재차 파이라에게 돌격하며 케이나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우리 주인님보다는 조금 덜하니까.]
한편 파이라를 내버리고 돌진한 케나토는 곧 정시우와 맞붙을 수 있었다.
세상의 마나를 모두 감당하겠다는 듯 사정없이 사방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동시에 사방으로 크리티컬 불릿을 쏘아 내던 정시우, 그의 목을 노리고 한 점 어긋남 없이 뻗어 나가던 장검 옆면에 그가 쏘아 낸 크리티컬 불릿이 차례로 몇 발인가 박혀 빗나갔다.
“하찮은 재주를!”
“그건 당하는 쪽이 내뱉으면 제일 꼴사나운 대사 중 하나야, 읏차.”
장검은 빗나가게 할 수 있었지만 놈의 기세는 마탄만으로는 줄일 수 없다. 정시우는 놈과 정면으로 부딪히기 직전 인벤토리에서 마신의 징벌을 꺼내 들어 장검을 맞받았다. 케나토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네놈, 그것…….”
“으랏차!”
직후 해머헤드가 격렬한 진동을 일으켜 케나토를 허공으로 거세게 튕겨 냈다. 격돌 순간의 충격을 진동으로 바꾸어 상대에게 되돌려 버리는 사기적인 능력에 케나토는 뭔가 할 틈도 없이 튀어 올랐다.
“큭…… 역시 하찮은 재주뿐이군! 스킬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허공에서 충격을 해소하고 몸을 뒤집어 균형을 찾으며, 검극을 정시우에게로 향해 예리하게 가다듬어진 마나를 날렸다.
그것은 형태만 보아선 마탄과 검술의 중간쯤에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섬뜩했다. 무기와 육신의 일치, 그 너머에 있는 마나 운용! 극도로 압축된 마나는 무협 소설에서나 나오는 검강을 보는 것만 같았다.
“흡.”
용의 감각이 있어 마치 슬로우 모션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파악할 수야 있었지만, 극도로 활성화되고 증폭된 시간 감각에 비해 그의 몸은 아주 조금 둔하다. 피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시우는 지금 실시간으로 발현하고 있는 마나 드레인을 그 검날 형태의 마나에 적용했다. 놈의 몸에 완전히 갇혀 있는 마나라면 몰라도, 바깥으로 발출된 마나는 어떻게든 마나 드레인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것!
‘큭, 역시 최강자 자리를 노름으로 따진 않았네.’
그러나 놀랍게도 그리 많은 마나를 빨아들일 수는 없었다. 놈의 신체도, 무기도 아닌 무기에서 발출된 마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케나토에게 속박되어 있는 듯 강력하게 저항했던 탓이다.
물론 30% 이상의 마나를 흐트러트릴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정시우가 감당해야 했다. 그는 어떻게든 명중 직전 한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 냈다.
“크흑!”
“이것으로 일단 네 팔 하나는…… 음?”
바닥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공격의 결과물을 확인한 케나토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 순간 마나가 조금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어김없이 정시우에게 명중했을 터, 그런데 어째서 정시우가 저렇게 멀쩡히 버티고 있단 말인가. 그 해답은 곧 드러났다.
“아, 팔 저려.”
타격을 받은 그 순간부로 수아린의 치유가 거듭해 부여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얼얼한 것이 사라지질 않았다.
정시우는 완벽하게 아작 난 건틀렛 부스러기들을 털어 내 버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 사이로 검은 비늘에 촘촘하게 뒤덮인 그의 손이 드러났다.
“비늘……!? 신을 믿고 있는 것인가!”
“동질감 느끼지 마, 새끼야. 난 인간이다.”
카오스 스케일의 방어력은 과연 대단했다. 타격의 정도에 따라 방어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도 달라지긴 했지만 스톤스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방어스킬이었다.
“인간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을 수는…….”
“새끼 말 많네 진짜.”
정시우가 망치를 들어 케나토를 겨누었다. 그의 서늘하게 빛나는 눈이 재차 케나토를 자극했다.
“우리 어머니가 말했지, 좋은 주먹 놔두고 왜 입으로 싸우냐고. 쫑알거리지 말고 다시 덤벼, 병신아.”
“큭…… 크아아아아아!”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자신의 공격이 완벽하게 막힌 상황! 케나토가 고혈압 환자가 아니라 해도 흥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전신에 응축된 마나를 폭발시키듯 튕겨 내 돌진해 온 케나토가 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러 온다!
“애송이가아아!”
육체가 낼 수 있는 속도로만 따지면 아직 정시우는 놈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 높은 레벨과 그로 인한 마력에서 비롯되는 이동 계열, 전투 계열 스킬의 숙련도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반응속도만은 정시우가 월등히 앞서는 영역. 여유롭게든 한끝 차이로는 그것을 피해 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이쪽도 지지 않는 기세로 반격할 뿐이다.
“하!”
“크하아아아아!”
놈이 쏘아 낸 검격이 1초에도 수십 번씩 정시우의 전신을 난자할 기세로 날아든다. 그는 그것을 피해내며 어떻게든 놈에게 일격을 먹일 기회만 노렸다.
망치의 단점, 그것은 바로 자신보다 속도가 빠른 적을 상대할 때 조금 곤란해진다는 것. 1대 1 전투의 영역에서는 기술적으로 결코 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정시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무턱대고 힘만 센 놈들이 빠른 적을 이길 수 없으니까 되는 대로 가져다 붙인 개소리였다. 무슨 무기를 들건 잘만 다루면 어떤 적이든 꺾을 수 있다. 적어도 정시우는 그랬다.
“읍.”
그런데 쉼 없이 검격을 피해 몸을 놀리던 한순간, 놈이 다루는 검의 끝에서 피어난 마나가 이상한 기색을 보였다.
사방의 마나, 정확히는 놈이 여태까지 무수히 뻗어 낸 검격이 지나간 흔적에 머무르는 마나가 그것에 반응해 진동한다!
정시우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필시 아까의 그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는 공격이리라. 무수한 검격에 담아 쏘아 낸 마나의 선, 그 선 하나하나의 통제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여 순식간에 그를 공격하려는 것!
중간에 눈치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만큼 위력적인 스킬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뒈져라!”
“하.”
[마나 드레인 스킬이 Lv4가 되었습니다.]
스킬의 발현 순간, 놈의 의지에 반응해 정시우의 전신을 조여든 마나의 검격은 생각보다 훨씬 약했다. 카오스 스케일을 발현한 정시우의 몸에 실선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만큼.
그 이유도 단순했다. 놈이 통제한 마나보다 정시우가 빨아들인 마나의 양이 많았던 것이다.
“이 스킬을 익히지 못했으면 이번에야말로 피 조금은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다행이네.”
“이, 이 자식…… 크아아아아아아아!”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회심의 일격이 어처구니없이 실패하자, 케나토는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며 기어이 등 뒤로 수십 개의 나무줄기를 뻗어 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괴물 중에서도 가장 괴상한 녀석으로 거듭나 있었던 것!
촉수는 족히 수십 줄기가 넘었다. 그 모두가 정시우의 목덜미며 팔다리, 복부를 노리고 쏜살같이 날아들…….
“거대화!”
“카학!”
나무줄기고 자시고 정시우의 해머가 급속도로 거대화하며 나무줄기를 모조리 끊어 내고 케나토를 뒤로 쳐 날렸다! 마나를 멀리 쏘아 낼 수 없다면 망치를 쏘아 내면 그뿐인 것이다!
전투질주와 강타의 힘까지 가미되어 끝장나게 아픈 일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케나토는 순식간에 배경이 바뀔 만큼 빠른 속도로 뒤로 굴렀다.
“하아아아!”
그 뒤를 빠르게 쫓은 정시우가 어느덧 다시 크기를 줄인 망치로 놈을 추가 타격! 너덜너덜하게 끊어진 나무줄기들이 만들어 낸 방어막을 어렵지 않게 부수고 놈의 본체를 두들겨 피를 토해 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거세게 처박힌 케나토를 향해 재차 망치를 휘두르려던 정시우는 놈의 내부에서 발작적으로 솟구치는 기운을 느껴 그 즉시 뒤로 물러났다.
“크하아아아아아아아아!”
직후 그의 판단이 실로 현명했음이 드러났다. 바닥에 처박혀 있던 케나토의 전신으로부터 재차 나무줄기가 뻗어 나온 것이다.
끊겨도, 끊겨도 굴하지 않고 튀어나오는 나무줄기를 대체 언제까지 박살 내야 하는 것인가, 정시우는 슬슬 짜증이 났으나.
그것은 정시우가 아니라 전장에서 피 튀기게 싸우는 군단의 신의 종속들을 향해 뻗어, 그들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