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150화.
케나토의 기세는 실로 강력했다. 그가 본래 저항자로서 이룩한 격도 상당할 터이나, 신의 힘, 그것도 부리는 신도가 많아질수록 강력해지는 군단의 신의 힘을 몸에 품은 지금은 저항자 시절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마력을 그 몸에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마력으로만 비교하자면 정시우의 2배를 아득히 뛰어넘는 상황. 그 생애가 그리 짧지도 않았을 터, 그가 익힌 스킬의 레벨에 있어서도 정시우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시우가 놈과 붙어 이길 수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군단의 세력이 줄어듦에 따라 실시간으로 증폭되었던 힘이 가라앉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력과 물리력의 조화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이른 정시우의 힘은 어떤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만들어 낼 변수였기 때문이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겠다, 야. 아, 혹시 진짜로 레이저 나오냐? 신의 힘을 받았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너……!”
그렇기에 단숨에 적의 수장과 1대1로 대치한 상황에서도 정시우는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상대를 열 받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지만, 이미 상대는 열이 끝까지 올라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큰 효과는 없었다.
“네가 가져간 것을 내놔라.”
“가져간 거? 뭐어?”
정시우는 능청스레 양손을 활짝 펼쳐 자신에게 왕관이 없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케나토는 그것을 보며 더욱 분노했다.
“인벤토리…… 넌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구나! 설마 화염의 신의 수족이 아니었다니……!”
“아, 너는 없구나 참.”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 인벤토리란 하늘성, 혹은 육성소, 혹은 개미굴, 심해관에 들어선 순간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신의 종속이 되어 날개와 저항자로서의 자격을 모두 잃은 그에게 인벤토리가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것.
“그분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잘도 일을 벌인 것은 그 용기를 인정해 줄 법 하지만…… 그 대가는 몸에 새겨야 할 거다.”
“누구 몸에?”
“그야 물론 네…… 큭!?”
바로 그 순간, 놈의 등 뒤에 나타난 장검이 성대하게 폭발했다. 케나토는 정시우의 뒤를 잡아 낼 만큼 실력이 뛰어난 전사인 만큼 그리 어렵지 않게 그것을 막아 냈지만, 직후 정시우의 모습을 찾은 그는 이미 그가 시야에서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놈이……!”
케나토는 상대에게 완벽히 놀아났음을 깨닫고 분노하여 사방으로 검을 휘둘러 스킬을 난사했으나 그것에 걸려들어 토막 나는 것들은 하나같이 잔챙이들뿐이었다.
잔뜩 분노하여 날뛰는 케나토의 활약으로 수백, 수천 명의 졸개들이 죽어 나갔으나, 그 가운데에는 자신이 휘하로 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분노에 눈이 뒤집힌 케나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부메랑 스킬이 Lv11이 되었습니다.]
[은신 스킬이 Lv38이 되었습니다.]
“이야, 이게 되네.”
한편, 기가 막힌 공격으로 놈의 주의를 돌리고 재차 은신하여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한 정시우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아린은 분명 칭찬해 줘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살짝 표정이 썩어 있었다.
“아, 어떻게 인트로만 들어도 벌써 재수가 없어요?”
“내가 쥔 무기를 통해 신체로만 발현하던 스킬을 적용시키는 것, 무기를 내 신체의 연장선에 놓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쉽게 성공시킬 줄이야…….”
그가 케나토를 공격한 방식은 이러했다. 일단 첫 수는 그의 눈앞에서 두 손바닥을 활짝 펼친 그 순간이었다. 그때 이미 그는 부메랑 스킬로 장검을 쏘아 날렸던 것!
단순히 장검을 던져 낼 뿐이라면 놈에게 들키기에, 이때 그는 장검을 대상으로 은신 스킬을 발동했다. 몸을 숨길 수 있다면, 그 연장선에 있는 무기를 숨기는 것도 가능하리라는 즉흥적인 발상에서 즉석 시도해 본 것인데 설마 그것이 단숨에 성공할 줄이야!
“투척 강타와는 또 다른 맛이 있네. 상태를 유지하는 거니까. 음음.”
“알았어요, 알았어. 저기 적 있네요.”
수아린은 자아도취에 빠진 정시우를 이끌어 다른 적을 공격하도록 했다. 케나토에게서 빠져나오느라 검을 하나 날려 먹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베토에게 받아온 양산형 장검은 아직도 그 수가 제법 남아 있었다.
“후우, 그러면…… 다시 해 보실까.”
케나토와 그 자리에서 붙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과 싸워 이긴다 해도 전장에 남은 떨거지들을 상대하는 것이 큰 문제다. 귀찮은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하는 법, 그렇기에 놈은 아직 좀 더 날뛰어 주어야 했다.
“화염의 신 쪽의 수장은 어떨까 모르겠네.”
“케나토보다는 처진다는 소문이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케나토가 군단의 장으로서 군림하고 있기 때문. 세력이 많이 줄어들게 되면 힘의 상하관계가 역전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가능하면 또 그전에 둘이 맞붙어 줬으면 좋겠는데…….”
“최악의 경우엔 오빠가 그 둘을 2대1로 상대해야 할 수도 있어요.”
“이쪽에도 세하와 케이나가 있어. ……그래, 세하는 다른 적을 상대하게 하자.”
정시우는 이래저래 계획을 설계하며 몸을 놀렸다. 한 손으로 장검을 휘두르며 나머지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크리티컬 불릿을 쏘아 내니, 이전보다도 더 신출귀몰하고 정신이 없는 활약이 가능했다.
그는 자제하지 않았다. 마나의 자연회복력이 허락하는 한 가장 정신 사납게 날뛰며 몬스터로 화해가는 인간들을 죽였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더 이상 인간을 죽여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정시우는 자신이 성장했든가 미쳤든가 둘 중 하나의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151이 되었다. 정시우 홀로 죽인 인간들의 숫자만 해도 벌써 수천을 넘어갔다. 그 수천이 일반 병졸이 아닌 준 엘리트 이상의 신도라는 것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우우, 이상하게 자꾸 우울해져요.”
“지금은 참아. 휴식처에 가서 토해도 되니까.”
“토 안 할 거거든요.”
처음 이곳에 난입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어쩌면 며칠? 정시우는 무감각하게 몸을 놀리다 말고 은신 스킬이 45레벨을 달성했음을 깨달았다.
케나토가 줄곧 자신을 쫓아오는 것이 느껴져 그 후로 한 번은 더 뒤를 잡히겠거니 생각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은신 스킬이 더욱 가파르게 성장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빠, 그만큼…….”
“그렇지.”
정시우는 처음과는 딴판으로 달라진 전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은 이미 반쯤, 혹은 그 이상 몬스터화하여 서로를 죽였고, 전장에 가득했던 수백만의 인간 중 95% 이상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전장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죽음과 절망의 대지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 군단의 신도 아니고 화염의 신도 아니고, 죽음의 신 세트나크가 가장 좋아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이겨도 당초의 목적을 이루기 힘들 만큼 서로의 소모가 큰 상황. 그만큼 전장에 빈틈이 드러난다. 암살자를 위한 은신처가 줄어든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한계가 보일 정도였다.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지.”
“그래도 여기까지 잘 하셨어요. ……이제 더는 늦출 수 없겠죠.”
“후우…….”
정시우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정시우가 때로는 조심스레, 때로는 과감하게 움직이며 엘리트들을 죽인 덕에 전장은 지금까지도 두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다른 신의 세력을 마무리한 몬스터들이 차차 전장에 끼어들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전력 차는 엇비슷한 수준.
군단의 신이든 화염의 신이든 이 뜻밖의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할 터였다. 마치 중간에 누가 끼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비율로 서로의 세력이 줄어 가는 상황, 그 누구에게도 기껍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오빠.”
“응?”
“저 사람들…… 인간 같은데요?”
“뭐?”
수아린의 뜬금없는 말에 정시우는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들었고, 직후 아주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인간이 아닌 자들을 위한 전장에 정말 인간들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정시우와 안면이 있는 이도 섞여 있었다.
“이대론 정말 이 세상이 신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말 거야. 성물을 모두 부수고 자유를 되찾자!”
“다시 육성소를 되찾는 거야. 할 수 있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놀랍게도, 전의를 불태우며 돌진해 오는 인간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다. 그 숫자가 족히 수십만. 저항자의 숫자는 수만에 지나지 않았으나 다른 이들도 어떻게든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신에게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 저렇게 싸울 용기가 있었으면 그냥 어느 한쪽이 완벽히 끝장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진해 오면 됐잖아?”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리다 말고 가만, 하고 그들의 말을 되짚었다. 그 가운데 분명 그의 마음에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성물을 모두 부수고 자유를 되찾아……?”
“전 알 것 같아요.”
수아린이 살짝 울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신들이 뿌려 내는 마나마저 자기 것으로 확보하실 수 있지만, 저는 오빠에게 보호를 받을망정 놈들의 영향을 아주 조금씩은 받으니까요. 어쩐지 아까부터 자꾸 우울해지고 기운이 없어진다 싶었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정시우를 놀라게 했다.
“아까부터 점점 저의 의지를 무너트리려는 신들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어요. 만약 오빠와 서포터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정신 상태가 위험해졌을 만큼요. 생각해 보면 세트나크의 73마성에서도 그걸 느꼈었죠…….”
“뭐……?”
“그리고 오빠도 예전에 겪은 적이 있잖아요? 성물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신의 목소리가 강해졌었잖아요.”
“그러고 보면…….”
그땐 단순히 신의 파편이기에 그렇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그것 자체가 신의 목적이었다면? 인간을 자신의 휘하로 꼬이게 하는 그 무엇보다도 간단하고 강력한 마법이었다면?
그 간단한 결론을 정시우는 여태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 성물을 내려보내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수족을 강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신의 힘을 떨쳐 인간들을 매혹하는 것. 그리고 신도의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다시 다른 인간들을 현혹하는 거겠죠.”
그도 당연한 일이다. 하나의 성물로 수백만의 신도를 만들어 내고 유지할 수 있다 치면, 그 신도들이 죽었다고 성물의 힘이 줄어드는 것도 아닌 만큼 새로 신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도 않을 테니까.
‘과연, 그래서구나.’
기존의 신도가 죽는 바람에 성물의 힘이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강하게 퍼져 나가, 저들의 자유의지를 위협했다. 두 신의 격돌이 심해지며 전장의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목소리도 강렬해졌다.
그렇기에 저들은 이대로 신의 힘에 휩쓸리느니 차라리 직접 목숨을 걸고 나서 신들을, 성물을 파괴하겠다는 각오로 나온 것이다.
“신의 힘, 내 생각보다 더 골치가 아픈데…….”
“오빠, 저들 중에도 벌써 희생되는 이가 나오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적의 목을 꿰뚫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신의 수족으로 화하는 과거의 동료를 베어 버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저래서야 전염병이나 다름없다. 신이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그것을 보며 정시우는 결심했다.
“좋아, 잘 됐지 뭐.”
“오빠……?”
“어차피 이제 더 숨어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후.”
이미 인간이 아닌 놈들을 베어 넘기는 정도야 크게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사고하던 인간이 변질되고, 동료들이 그들을 베어 죽이는 장면은…… 그리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 나를 따르라!”
“엇……!?”
“저, 저자는!”
“도둑놈!”
정시우는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며 워 크라이를 내질렀다. 전장에 난입해 오던 인간들도, 케나토도, 다른 모든 신의 신도들도 그를 주목했다.
아아, 이제야 비로소 그에게 익숙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래, 응당 모든 이가 그를 주목해야 하리라! 정시우는 전장에 만연한 신의 힘이며 기척이며 마나를 모두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흡수하며,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다시금 외쳤다.
“인간이고 싶은 자는 모두 내 뒤로 붙어! 이 형님이 책임지고 지켜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