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주인님!”
아무리 다른 호칭으로 부르길 권해도 고쳐지지 않는 호칭으로 정시우를 부르며 베토가 달려왔다.
정시우는 베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했다. 베토의 키가 3센티미터 정도 커 있었던 것이다. 신의 힘에 의한 가사 상태가 풀린 후, 베토가 완벽하게 생체리듬을 되찾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있다, 주인님.]
물건 완성은 베토가 했는데, 그것을 들고 나오는 이는 케이나였다. 완성된 물건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리라.
정시우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베토의 덩치만 한 그 물건은 무게가 족히 수백 킬로그램에 이르는 괴물이었다.
“베토의 재능은 정말 놀랍네요. 요정상인들과의 협업을 제안하고 싶을 정도예요.”
“넌 저리 가라.”
비밀상점의 주인으로 안 끼어드는 데가 없는 루타의 참견에 정시우는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물건…… 개틀링의 정보를 확인했다.
[베토 연탄 대형 마포]
[랭크 ? A++]
[공격력 ? 3,800 ? 4,300]
[숙련도 ? 0/2,000]
[옵션 ? 1. 마탄 계열 스킬의 발동 시 약실에 탄환을 5개 복제 2. ???]
[재능 넘치는 젊은이가 마도공학과 현대기술의 조화로 탄생시킨 걸작. 물론 특수한 공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터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물건의 품질을 폄하할 수는 없다. 특수한 마석을 대량으로 사용한 결과 마포에 ‘집단’의 특성을 담아내, 끊임없이 강력한 마탄을 쏘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정시우는 자신의 예상을 조금 벗어나는 결과물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설마 베토가 그때 받은 마석의 특징을 살려 아티팩트를 탄생시켰을 줄은, 그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첫 번째 옵션의 핵심은 약실입니다.”
베토가 여섯 개의 총열과 한 몸이 되어 붙어 있는,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교차되어 그려져 있는 원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탄환을 삽입합니다. 탄환은 어디에 삽입하든 상관없지만, 어쨌든 이 실린더에 하나만 들어갑니다.”
“그럼 쏴 봤자 총열 하나에서만 탄이 튀어나오고 끝이잖아?”
“주인님이 탄환에 마나를 주입하여 마탄 스킬을 발동하는 순간 약실의 나머지 공간에 탄환이 다섯 개 복제됩니다.”
정시우는 실제로 해 보았다. 과연, 텅 비어 있던 실린더 곳곳에 금세 마나로만 이루어진 마탄이 생성되는 것이 보였다. 한 개의 실탄(+마탄)과 다섯 개의 마탄. 그렇게 여섯 개의 탄환이 한 쌍을 이루는 것.
더욱이 놀라운 점은 그 과정에서 그의 마나를 추가로 소모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발사하게 되면 첫 번째 총열의 실탄이 사출되며 총열이 회전을 시작해, 나머지 총열의 마탄이 뒤이어 사출되는 구조예요. 군체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 마탄부터 여섯 번째 마탄까지는 모두 정확히 같은 지점에 명중하죠.”
즉, 첫 번째 탄환을 장전하고 마나를 주입해 쏘아 내는 것까지는 마탄 스킬이 없어도 가능하다. 단 그렇게 되면 마탄 복제 옵션을 발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마포를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첫 번째 총열이 한 바퀴를 돌아오는 순간 두 번째 탄환이 삽입되고, 그때 다시 주인님이 마탄을 발동하시면서 약실의 복제 옵션이 발동하는 거죠.”
더욱 대단한 점은, 이 병기가 기본적으로 마탄 연사에 쓰이는 보조 장치이기 때문에 조금만 숙련하게 되면 실탄이 삽입되는 타이밍에 맞추어 마탄 스킬을 발동할 수 있도록 사용자를 돕는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기능이었다.
“그렇게 실탄과 마나, 정신력의 소모를 줄이면서 마탄의 연사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험을 해 보지 않아 모르지만 분당 3천 발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3천 발…….”
지금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개틀링 건보다는 못하지만, 마나의 위력을 담아낸 개틀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미 기적이었다. 그러나 감격하는 정시우를 보며 베토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면…… 바로 그 여섯 발에 한 발 꼴로 소모되는 실탄이에요. 마석과 금속의 조합으로 만들기 때문에, 최소한 50레벨 이상의 마석이 없으면 만들 수 없어요. 적어도 아직은요. 실탄도 지금은 100발 정도밖에 준비되지 않았고요…….”
가히 돈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1분에 3천 발, 정시우가 1분에 500번 크리티컬 불릿을 발현하는 것에 따른 부하를 이겨 낼 수 있다는 가정하에 50레벨 이상 가는 몬스터의 마석 500개를 소모하는 꼴이지 않은가!
마석은 어디서 펑펑 쏟아지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 중 특히 강력한, 마나가 신체 내부에 고체 형태로 고일만큼 강력한 엘리트 몬스터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산물인 것.
정시우는 얼마 전 대량으로 늘어난 유령 부대를 총동원하여 지구 각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마석을 수거하게 시키고는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하루에 자잘한 마석 수백 개를 얻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루 동안 모아 1분 쏘고 끝.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정시우는 굳은 결심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포투포우를 완전히 정리하고 마석을 수급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이 사람 미쳤어.”
수아린이 중얼거렸으나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정시우는 기껏 획득한 대량 살상 병기를 다시 베토에게 맡기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군체의 특성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있으면, 마석의 소모를 좀 줄일 수 있을까?”
“음…… 가능은 할 것 같아요. 복제되는 마탄의 양을 늘릴 수만 있다면 실탄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그렇게 되면 총열의 양도 늘려야 하고, 무게도 더해질 테고…….”
“좋아, 그렇게 부탁해.”
정시우는 그 말을 하며 품에서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모형 왕관을 꺼냈다. 바로 레드 티베이드 놈들의 부락을 전멸시키고 놈들의 보스인 테디베어 왕에게서 강탈한, 군단의 신 뒤세느의 성물!
“이, 이런 걸 갖고 계시면서 완벽히 통제하시다니 역시 주인님……!”
베토의 눈에 어렸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도 순간이었다.
“이게 있다면 굳이 총열을 늘리지 않아도 마탄의 중첩 복제가 가능할지도 몰라요! 아니, 구경도 더 늘릴 수 있을지도!”
“좋아,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부탁해.”
“그렇군요, 이렇게 해서 현대 무기 공학의 영역을 벗어나는 거네요.”
수아린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정시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베토에게 말했다.
“총열 한 열 개를 만들어도 돼.”
“주인님……?”
“아마 더 가져오게 될 것 같거든.”
총열 열 개를 묶어 들면 얼마나 무겁고 크고 거추장스러울 것인가, 정시우는 그런 문제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냥 들고 조준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그에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발칸포를 인간이 들고 다룰 수 없어 미니건이 나왔다는 사실 따위는 그에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포투포우 정리하러 가자.”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 막 대규모 교전을 시작한 모양이야. 이런 꿀잼 경기를 놓칠 수는 없지.”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으로 가득한 말이었다. 더욱이 그는 항상 애용하던 망치 대신 양산형 장검을 들고 있었다. 어째서냐는 케이나의 물음에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
“해상전과는 달리 이번엔 우리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잖아. 최대한 티가 덜 나게 움직여야지.”
[…….]
일행은 개틀링의 개량을 연구하는 베토를 남겨 두고 포투포우로 향했다. 거주지역의 출구까지 따라 나온 루타는 끝까지 생존자를 거두어 올 것을 부탁했지만 정시우는 언제나처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들은 휴식처 문을 통해 포투포우에 지정해 놓은 출구로 나왔다. 별 특징 없이 무난한 황무지, 그곳의 공기가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정시우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이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진 신의 힘의 흔적이었다.
“인간의 제국과는 제법 거리가 먼 곳인데도 숨이 턱턱 막히네요.”
“형님, 여기까지 전투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이건…… 인간들의 전투가 아니네요.”
그 말대로였다. 세계의 주인이 정해지는 전투에 앞서 군단의 신의 세력과 화염의 신의 세력이 나머지 신의 세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인한 여파였다.
패배를 알고 있다 해도 순순히 세상에서 물러날 수 없는 것이 다른 신들의 입장이고, 군단의 신과 화염의 신은 혹여나 그들의 결전에 다른 신들이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하여 결전 이전에 그들의 세력을 완벽히 세상에서 밀어내는 것.
“군단의 신과 화염의 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암묵적인 규칙으로 자리 잡은 모양인데. ……이 새끼들, 정말 세상을 자기들 놀이터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오빠?”
“무시해야지.”
이미 몇 개월 전에 팬텀바이크와 은신을 응용하여 최대한 걸리지 않게 이 세상을 탐색한 정시우였으나 다른 신의 성물을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군단의 신과 화염의 신의 우세가 명확해진 시점에서, 신들이 그들 힘의 파편을 지상에 내리는 일이 없어진 것이라 해석하면 편하겠지. 하지만 군단의 신의 성물과 화염의 신의 성물은 아직까지 각각 하나씩 이 세상에 남아 있다. 아니, 어쩌면 종속들이 흡수했을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탈이 안 나게 이것들을 모두 회수하려면…… 좋아, 날 지금부터 익명의 저격수A라 불러다오.”
“손에 든 건 검이면서.”
그는 포투포우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물의 투쟁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직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괴물들의 전면전이 일어나는 전장으로 향했다. 신의 종속이 되어 버린 자들에 의한, 진정한 세상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대난전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정시우는 그 과정에서 용세하, 케이나와는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너희는 각각 화염의 신과 군단의 신한테 붙은 종속인 척해. 적당히 급수가 높은 놈들 베어 내고, 마석 수거할 수 있으면 수거하고.”
[그러다가?]
“내가 신호를 보내면 아, 이놈이다 싶은 놈을 공격해.”
[주인님을 공격하란 말이군. 잘 알겠다.]
케이나는 그 말과 함께 대검을 뽑아 쥐고는, 정시우가 정정해 줄 틈도 없이 대초원에서 일어나는 전투의 현장으로 빨려 들듯 사라졌다. 정시우는 뻗었던 손을 거두며 용세하에게 말했다.
“농담이겠지?”
“의지만은 진담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면 저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형님.”
플레이어는 날개를 뽑지 않으면 전력을 낼 수 없지만,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들통 나면 안 되기에 그는 날개를 감춘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약을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이 몇 달간 빠른 성장을 거두었다.
“화염의 신 쪽에 붙어서 싸우다가 적절한 순간 저 대리자 놈을 찌르면 된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형님, 그놈을 제가 죽여 버려도 괜찮겠죠?”
“쓸데없이 불길한 복선 만들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
그런 건방진 말을 할 만큼은 자신감이 회복된 모양이다. 그는 씩 웃으며 용세하의 등을 툭 쳐 밀어 주고는 자신도 마찬가지로 양산형 장검을 쥐었다.
수아린이 품 안에서 자신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어, 정시우는 살짝 폼을 잡아 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조금 토르 같냐?”
“얼른 싸우기나 해요.”
정시우는 마지막으로 은신을 펼쳐 몸을 감추며 거대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전장의 규모에 비하면 그들 셋의 존재감은 더할 나위 없이 미약했으니, 그것이 전장을 뒤흔들어 놓는 핵폭탄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을 아직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