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화.
지금 상황에 제일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이었다.
“뭐지, 지금 저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아까 정시우가 날아가는 걸 봤는데…… 혹시 그 혼자서 저만한 소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멀쩡하던 바다에서 수십 미터 높이의 해일이 치솟고, 끔찍한 마력과 물리력을 동반한 물기둥이 일어나 인어와 몬스터들을 찢어발기고! 만약 저것이 정말로 정시우가 만들어 낸 것이라면 세계는 정시우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아니, 정시우가 아냐.”
물론 마력에 민감한 몇몇 플레이어들은 금세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몬스터들 사이에 내전이라도 일어난 건가? 그게 아니면…… 아!”
“이세계의 몬스터와 지구의 몬스터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군. 확실히 알겠어.”
“그렇다면 지금은…… 찬스다!”
“일단 뭉쳐! 인어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이 기회야!”
상황이 안 좋으면 일단 자신들만이라도 튀려던 플레이어들이었으나, 새로운 변수의 난입으로 그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미 침수된 배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멀쩡한 배를 인어들로부터 보호하며 일단 한곳으로 뭉치게 했다.
“죽일 필요는 없어, 놈들을 저쪽으로 몰아내자!”
“좋았어, 아주 재밌게 됐는데.”
“그렇다면…… 정시우는 지금 저 난장판 한가운데서 대체 뭘 하는 거지?”
배를 보호하며 인어들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체 어째서 몬스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물론 그가 전투를 앞두고 도망이나 갈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정시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 답은 아주 간단했다.
그는 고래 밥을 주고 있었다.
“고래야 밥 먹자!”
고래를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의 공격에 인어를 비롯한 이세계 산 해상 몬스터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차지 어택을 완성시켜 마신의 징벌을 비스듬하게 해표면에 꽂아 넣는다!
그것은 가히 압도적인 파멸의 힘이었다. 순식간에 바다가 수십 미터 깊이로 깎이고, 그 안에서 헤엄을 치던 인어들을 그물망에 걸린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구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것을 거대 고래가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아이고 잘 먹는다 우리 고래! 더 먹자!”
[구오오오옹!]
“오빠…….”
언제 봤다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정시우와 거기에 대꾸하듯 울음을 우는 고래! 그것을 보는 수아린은 모든 것을 포기한 눈으로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인간이 인어로 고래 밥을 준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는 점이 실로 골 때렸다.
[흐압! 파워는 뒤져도 속도로는 뒤지지 않는다!]
뒷좌석에 앉은 케이나도 질 수 없다는 듯 대검을 내던졌다. 그녀와 마나로 연결된 대검은 눈부시게 회전하며 날아가 바다 표면을 강타, 마악 지구산 몬스터들을 공격하려던 이세계산 몬스터들 수십 마리를 기절시키곤 케이나의 손으로 돌아왔다.
정시우는 재차 차지 어택을 준비하다 말고 그것을 보며 흥분해 외쳤다.
“그거 나도 가르쳐 줘!”
[마탄을 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한 5분 정도만 연습하면 될 터이니, 가르쳐 주지.]
“좋았어!”
5분은커녕 1분도 되지 않아 완벽하게 익혔다. 정시우가 액티브 스킬 부메랑을 습득한 순간이었다!
[나머진 마나로 연결된 무기의 투척을 통해 얼마나 복잡한 궤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기에 능숙해지면 대부분의 근접 스킬의 힘을 무기에 담아 원거리로 펼쳐 내는 것도 쉬워진다.]
“오, 오오오오!”
“이 와중에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있어…….”
수아린은 한숨을 쉬며 총을 쏘았다. 지금 그들은 몬스터를 죽이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이세계 몬스터들보다 세력적으로 열세인 지구산 몬스터들이 그들과 싸워 이기기 쉽도록 놈들을 무장해제시키는 일을 집중적으로 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속도 자체는 이전보다 월등히 상승할 수밖에!
“저 몬스터들, 이세계 몬스터들을 먹어 치우며 성장하는 것 같은데.”
[인간들이 취해선 안 되는 방식이다. 일부를 섭취하는 것은 몰라도, 다른 존재의 기록과 마나를 오롯이 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오염시키는 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몬스터들은 원래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이 오염의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케이나가 쓰게 웃으며 재차 대검을 내던졌다. 그녀가 인어와 몬스터들을 기절시키기가 무섭게 지구산 몬스터들이 다가와 그것을 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살점이 뜯기고 피가 분출하는 포식 장면을 보면서도 케이나는 살짝 볼을 붉혔다.
[조, 조금 귀엽지 않은가……?]
“어차피 저것들도 적이긴 매한가지야. 지금은 단지…… 일시적 동맹일 뿐이지.”
지구산 몬스터들은 그리 멍청하지 않았다. 정시우 일행이 그들을 돕는 이유도 얼추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도움이 되니 지금 당장 적대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최종적으로는 두 무리를 다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지.”
[그건…… 그렇긴 하다만.]
실제로 지구 몬스터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인간들과 이세계 몬스터들이 맞붙어 약화되는 순간을 노린 것이 아니던가. 지금 저들을 돕는다고 해서 오, 우린 같은 편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인어들도 어디선가 계속 밀려오고 있어. 어쩌면 전 세계 바다의 몬스터들이 지금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걸까……?”
“이렇게 대량으로 먹이를 주다 보면 지구 몬스터들도 강해지겠지 뭐!”
정시우 일행의 원조는 지구 몬스터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힘이 되었다.
거대 고래를 제외한다면 지구 몬스터들 가운데 그리 강한 놈이 없어 소수의 인어 강자에게 탈탈 털리는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놈들을 기절시켜 먹으라고 던져 주니 지구 몬스터의 숫자는 줄지 않고 인어와 이세계 몬스터들은 빠르게 줄기 시작한 것이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옹!]
고래가 등으로 물줄기를 뿜어냈다. 놈의 마력을 품고 솟구친 물줄기가 마력의 화살이 되어 떨어져 내리며 인어와 이세계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꿰뚫었다. 몬스터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 정시우는 그 끝장나는 대량학살 스킬에 감동했다.
“저런 녀석 하나 기르면…….”
“오빠가 그런 생각할 줄 알았죠.”
“나 쟤 기르고 싶어!”
“닥치고 총이나 쏴라 마리나.”
유감스럽게도 그 장소에는 바보가 둘이나 있었다. 그 둘이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흐아아아압!”
일행이 그들을 타박하는 동안 오직 용세하만 꾸준히 수표면을 향해 돌격해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사실 정시우나 마리나 정도 되지 않으면 이세계 몬스터와 지구 몬스터를 구별하는 것도 힘들었기에 그는 무조건 인어들만 공격하고 있었다.
“내 능력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특화되어 있으니…… 좋아.”
반면 결계 능력이 장기인 이서희는 초강수를 두었다. 바로 이세계 몬스터들을 공격하는 대신 지구 몬스터를 보호하는 결계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몇 달간 가파르게 성장하여 레벨 200을 넘는다 해도 쉬이 깨지 못하게 된 그녀의 결계가 몬스터들을 보호하자, 놈들은 신이 나서는 이세계의 해상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구우우우우우!]
[기이! 기우우우우!]
[인간들이 우릴 돕는다!]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지구산 몬스터(토종)와 이세계산 몬스터(외래종)의 전투, 그 중간에 끼어 박 터지게 싸우는 인간들까지!
이 기묘한 삼파전은 밤이 새고 날이 밝도록 지속되었고, 거기서 다시 밤이 되었을 즈음에야 비로소 결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를 물려! 인어들의 포위망이 뚫렸다!”
“지금이야, 방향을 돌려! 바로 빠져나간다!”
만 하루에 가깝게 치러진 전투 속에서 과연 민간인이라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들 모두 플레이어들과 사이에 발생했던 불화는 잊고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분투했다.
유람선을 선두로 플레이어들의 필사적인 보호 아래 화물선들이 차례차례 인어와 이세계 몬스터들이 형성한 포위망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걸로 끝이 아니야, 놈들이 공멸하도록 놔두고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하지만 복귀하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데…….”
“알아서 쫓아오겠지!”
그렇게 선단은 무사히 삼파전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토종과 외래종의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인어들은 도저히 인간들에게 집중할 환경이 못 되었고, 지원군들은 인간의 선단이 아닌 토종을 공격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놈들이 어째서 저렇게 잘 버티는 거지?]
[이유는 단 하나…… 소수의 강한 인간들이 놈들을 돕기 때문이다!]
[이익, 이이이익……! 놈들을 먼저 죽여!]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은 틀렸다. 정시우 일행은 시어머니와 함께 때리는 시누이였다. 그들이 전장을 활보하며 몬스터들을 무력화하는 모습이 그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구오오오오오옹!]
“그래, 형만 따라와라!”
정시우는 이제 완전히 거대 고래와 혼신의 페어를 이루어 인어들을 싹쓸이 하고 있었다. 자꾸 놈에게 인어들을 떼로 먹여 주다 보니 고래가 정시우의 바이크만 졸졸 쫓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보면 테이밍이라도 한 줄 알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협동 공격이다!”
[구오오옹!]
그렇게 시작된 인간과 고래의 협공에 바다가 들썩였다. 위아래로 들이치는 막강한 연쇄 공격에 감히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자가 없었다. 빠르게 줄어드는 인어들 중 가히 20% 이상이 정시우와 고래의 작품이었다.
“임시 동맹이라고 한 게 누구였더라.”
“일단 상황 끝나면 정리할 거야, 정리.”
정시우는 수아린의 말에 단호하게 대꾸하며 인어들을 공격했다. 만 24시간 이상 전투를 벌였음에도 그에게서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던전에서는 그나마 중간중간 쉬는 장소라도 있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전투지속력과 체력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싸우자! 괴상한 신을 강요하는 저 무리들을 우리의 터전에서 몰아내자!]
[우리가 따르는 신의 존재를 저들에게 알려라!]
“……신?”
그렇게 전투를 벌이던 도중, 문득 한 마리 토종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를 들은 정시우의 표정이 살짝 기괴해졌다.
“순수 토종인 줄 알았더니 이미 믿고 따르는 신이 있었다고?”
그러나 아무리 그가 살펴도 토종 몬스터들의 체내에는 신의 힘과 같은 이질적인 기세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설마 저 녀석들이 인간의 종교와 같은 것을 만들었을 리도 없는 노릇이고…….
“물어본다고 알려 주지도 않을 테고…….”
[구오오옹?]
정시우가 생각에 빠지느라 먹이 공급이 잠시 중단되자 고래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녀석의 울음소리에는 크게 대단한 뜻이 없다. 지능이 낮아 명백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시우는 그 사실에 애석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밥이나 계속 먹자.”
[구엉!]
고래가 환희의 물줄기를 뿜어내 주위 인어들을 또다시 몰살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삼켜 마나와 체력을 회복한다. 가히 무적의 탱크와도 같은 위용! 정시우는 잠시 후 놈을 죽일 때가 되면 대체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면서도 지금은 일단 망치를 들었다.
인간들이 이끄는 선단이 수평선 저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즈음, 드디어 토종과 외래종의 치열한 전투도 끝이 났다.
전투의 승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