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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36화 (136/260)

# 136

136화.

“그 후로 두 번이나 더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니까.”

“농담처럼 이런 말이 떠돌고 있어. 대 레이드 시대가 열렸다고 말이지.”

레이드, 그 원뜻과는 별개로 언젠가부터 한 마리의 보스를 여럿이서 돌격해 사냥하는 것을 뜻하는 게임 용어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단어. 그런데 그것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재밌네. 그러면 막 공대도 구성되고 그러냐.”

“어떻게 알았어? 주로 던전 공략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놀이를 하고 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부류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거야.”

“지금의 이 세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 던전 공략보다도 오히려 거대 몬스터의 출몰만을 기다리는 무리도 그 가운데에는 많거든.”

이서희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공교롭게도 지금 그들이 모인 장소는 이전 독일에 거대 테디베어가 나타난 바로 그날 일행이 모여 차를 마셨던 바로 그 카페. 멤버 구성도 똑같았다.

“물론 우리가 잡았던 그 테디베어 비슷한 녀석은 특수한 케이스이긴 했는데, 그 후로 나타난 녀석들은 확실히 사체도 마석도 제법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이었거든. 이게 인류에게 있어 저주가 아닌 축복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법 나오는 중이야.”

마리나의 말에 정시우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것들 모두 각종 신이 지구에 한 번씩 날려 보는 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별로 변하지 않겠구나.

“그 덕에 서희 몸값만 왕창 올랐잖아. 중요한 건물 보호하는 데 결계 능력이 짱이야.”

“부, 부끄럽게 왜 그래.”

그러나 이서희는 마리나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결코 나쁜 기분이 아니다. 정시우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시우가 흐뭇한 눈으로 이서희를 보고 있자니 질투라도 난 것인지 세리아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거대 몬스터들이 세계정세에 위기감을 안기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희는 그럭저럭 합이 맞는 덕에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시우 님이 무사하셔서 안심했습니다.”

“독일에서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알려 줄 거지?”

“오, 어떻게 알았냐?”

“미워!”

정시우는 마리나의 말을 깔깔 웃으며 넘겨 버렸다. 그녀들을 이세계로 데려갈 수도 없는 이상 굳이 깊은 사정을 얘기해 줄 마음은 없었다.

“몬스터의 습격에 버틸 수 있는 설비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인공섬 건설에 참여한 기업들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고…….”

“지구가 변해 가는구나.”

당장 한국에서도 정부 주요 시설을 시작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더 이상 던전에서 달러를 얻을 수 없게 된 플레이어들은 각종 인물과 시설들을 보호하는 아르바이트를 뛰게 되었다. 어차피 계속 던전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문명을 놓을 수는 없겠지…….”

“시우,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시우 스스로는 포투포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고 생각했지만, 몬스터들의 출몰과 그에 맞추어 변화해 가는 지구의 모습을 보며 절로 그 세상의 절망적인 풍경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다들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야. 이만 일어나 볼게.”

“난 시우랑 좀 더 데이트하고 싶은데.”

“데이트는 나중에.”

“나중에!”

마리나가 그의 말꼬리를 물었다. 푸르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정시우는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래저래 외부에서 자극을 많이 받으니까, 당분간은 여유롭게 쉬기보다는 성장에 집중하고 싶어.”

“여유롭게 쉰 것치고는 그 짧은 시간에 더 강해진 게 눈에 보이는데…….”

“단순히 나 자신만의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니야.”

요즈음 들어 정시우는 다종다양한 타입의 적과 적대하는 일이 많았다. 직접 맞붙은 것은 아니지만 이세계에서 신을 따르는 인간이 세운 세력의 일부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와 반대 측에 서서 멸망해 가는 소수 인간의 무리를 보기도 했다.

그들을 보고 정시우가 한 가지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시우 혼자만 강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랬다간 언제고 지구는 반드시 포투포우의 전철을 밟게 될 터였다.

‘딱히 인간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문명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에 의미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 내 눈앞에 있는 애들이 죽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을 영웅의 각성이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다. 정시우는 선하지도 않고 사명감도 없으며, 어떤 숭고한 결의도 희생의 각오도 없었다. 다만 혼자만 남게 되어 봤자 심심하다는 생각은 그를 보다 멀리 보고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가벼운 생각과 행동방침의 수정만으로도 그는 능히 구원자가 될 능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시우도 같이 하늘성을 클리어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매일매일이 신날 거야. ……덤으로 던전 공략 속도도 지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겠지.”

“그것도 생각은 해 봤는데 말이지.”

사실, 정시우는 포투포우를 떠나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한 가지의 실험을 해 보았다.

그것은 이전 그가 품었던 생각의 실현. 팬텀바이크를 타고 하늘성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것 자체는 어려울 일이 없었다. 팬텀바이크는 무엇보다도 빨랐고, 높이 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하늘성에 도달하여, 그가 하늘성의 발판을 두 손으로 붙잡는 순간.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한 반발력이 일어 그를 지상으로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았다.

[순수한 자신의 능력만으로 도달해야 합니다.]

끔찍한 힘으로 지상에 내팽개쳐지는 그의 망막에 남은 메시지는 오직 반칙을 쓰려 한 그를 따끔히 혼내는 것만 같은 하나의 문장.

그것으로 그는 인지했다. 하늘성은 아직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가지 확신한 것이 있다면, 하늘성은 언젠가 반드시 그에게 성문을 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코 완전한 거부가 아니었어. 바르게 오지 않은 것을 질타했을 뿐, 왔다는 사실 자체를 꾸짖지는 않았으니까.’

단순히 정시우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착각이어도 상관없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정시우는 필히 플레이어의 자격을 손에 넣을 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시우는 정말 수수께끼가 많아.”

“시우 님, 그러면 제 행동방침은…….”

“응.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지금처럼 부탁해.”

“알겠습니다.”

세리아도 예전처럼 마리나를 질색하지는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루이오스의 힘을 떨쳐 낸 이후로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져 가는 것이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그럼 해산하자.”

“다음엔 내 문자에 답장 좀 더 길게 해 줘야 해.”

“그래그래.”

그는 강아지처럼 달라붙는 마리나를 적당히 상대해 준 후 카페에서 나왔다. 비교적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수아린과 용세하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물어 왔다.

“오빠, 그러면 이제.”

“형님.”

“그래.”

정시우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식처 레벨을 올리러 가자.”

그들은 곧장 휴식처를 찾았다. 실은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정시우가 하늘성을 향해 돌진했다가 낭패를 보고, 그런 후에는 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걸려 온 마리나의 연락에 응답해야 했던 탓에 휴식처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휴식처의 레벨을 6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소유하고 있는 비드의 2.2%를 소모해야 합니다.]

“가능한 만큼 전부 성장시켜 줘. 그리고 부속 가구들도 가능한 만큼 전부.”

[현재 개방된 조건으로는 휴식처의 레벨을 7까지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부속 가구들을 모두 업그레이드하는 비용까지 합쳐 소유하고 있는 비드의 11%를 소모해야 합니다.]

“좋아.”

정시우가 통합 던전에서 벌어들인 비드가 얼마나 많은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휴식처를 7레벨까지 성장시키는 데 11%라니! 일단 휴식처를 8레벨로 성장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비드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곧 휴식처에 저축된 비드 일부가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휴식처 전체에 둔중한 충격이 닥쳐왔다. 휴식처를 성장시킬 때면 언제나 느꼈던 진동이지만, 이번처럼 큰 충격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그의 망막에 차분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휴식처 업그레이드 진행 중…… 1%]

“게임 업데이트 하냐!”

그만 본능적으로 메시지에 태클을 걸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업데이트…… 휴식처 업그레이드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이전 그랬듯 휴식처를 구성하던 가구들이 모두 크게 변화하며 독립된 공간이 생겨나거나 그 공간이 넓어지거나 했다.

[휴식처 업그레이드 진행 중…… 5%]

“앗, 우리 휴식처가 타X팰리스보다도 커지고 있어요!”

“너도 확실히 일반 가정 출신이구나, 아린아…….”

변해 가는 휴식처에서 처음의 단칸방 같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끊임없이 확장되더니 기어이 층이 하나 더 생기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굳이 현대식 건물 구조를 유지하고 있을 필요도 없을 텐데 왜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 침실이 몇 개나 추가되었어요!”

“이제 더 이상 인형의 집이나 아기용 침대에서 잘 필요는 없게 되었군요!”

용세하의 감탄사가 조금 서글펐기 때문에 굳이 답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흐를 즈음엔 진동도 잦아들고, 90% 후반을 달리던 업그레이드도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휴식처 업그레이드 진행 중…… 99%…… 완료.]

[휴식처가 7레벨이 되었습니다. 거주지역이 보다 넓어집니다. 외부인을 휴식처 안으로 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엇…….”

설마 했던 조건이 추가된 순간. 정시우는 그 문구를 보며 순간적으로 깊이 고민했다. 혹시 이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의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닐까. ……아니,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 정시우가 깊이 생각한 것이리라.

“요즘 쓸데없는 고민이 많아졌어. 나도 늙었나.”

“그런 불특정다수를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는 말은 그만둬욧!”

이건 단지 휴식처 자체의 기능일 뿐, 부속 가구들의 능력은 아직 공개도 되지 않았다. 정시우는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모두 확인했다.

[휴식처 Lv7 ? 외부인 출입가능]

[침실 Lv4 ? 숙면 가능. 휴식 시 체력과 마력 회복 효율 40% 증가. 모든 스킬의 숙련도가 제법 빠르게 증가. 지병과 치명적인 상처의 회복.]

[서랍 Lv4 ? 물건 보관 가능. 아티팩트의 치명적인 손실까지도 회복. 소모품의 사용회수 충전.]

[문 Lv4 ? 바깥으로 나가는 문. 비드를 소모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던전에 바로 입장가능. 휴식처 출입 열쇠를 통해서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를 5군데 지정하여 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욕실 Lv3 ? 목욕 시 모든 내성 스킬의 영구적 능력치 향상. 신체에 남은 독과 저주, 그 외 부정한 기운을 해소. 미약한 축복을 부여.]

[냉장고 Lv4 ? 식품 보관 가능. 10시간마다 3병씩, 랜덤한 능력의 중상급 포션을 생성.]

[탐색기 Lv3 ? 휴식처에 저장한 비드를 소모하여 반경 250킬로미터 내의 던전을 탐색하는 것이 가능. 침입자들의 통로를 탐색하는 것이 가능.]

[주방 Lv3 ? 요리 가능. 주방에서 조리된 모든 요리에 긍정적 효과 부여. 아티팩트 가공과 업그레이드 가능, 아티팩트의 열화 복제 가능.]

[수련장 Lv2 ? 수련 가능. 이 안의 물건들은 절대 파괴되지 않음. 성장속도 20% 증가.]

“음.”

정시우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지상낙원이군.”

“자각은 있었군요…….”

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속 가구의 레벨이 올랐다. 그 결과 모든 지구인이 부러워 마지못할 환경이 완성되고 말았다! 그리고 외부인을 이 안에 들일 수 있게 된 만큼, 단순히 그 혼자만의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효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리라.

[주인님?]

그때 거주지역과 통하는 문이 열리고 케이나가 휴식처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단숨에 2레벨이 오르는 바람에 이전과는 완벽히 달라진 휴식처를 멍한 눈으로 보던 케이나는 곧 정시우를 발견했다.

[역시 거주지역이 넓어진 것은 주인님 때문이었는가……. 무사히 돌아와 준 것은 다행이지만, 적어도 인사는 해 줬으면 했다.]

“흐…… 다녀왔어.”

[늦게라도 해 주니 고맙군. 그보다도 마침 잘 되었다.]

케이나는 그의 능청에 피식 웃어버리곤 덧붙여 말했다.

[베토의 첫 작품이 이제 막 완성되었다. 와서 봐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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