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마리나 비셋에 세리아 윌슨까지 왔어!”
“왔다! 메인 저격수 왔다!”
“이제 이긴…… 이길 수 있다!”
거대 테디베어의 습격에 손도 쓰지 못하고 있던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일행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 이서희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이들 사이에 끼기에는 짬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땅히 불려야 할 메인 공격수의 이름까지 불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우 어디 갔어?”
“어?”
마리나는 그제야 정시우가 그들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극히 당황하여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에게 세리아가 짧게 말했다.
“시우 님은 처음부터 이곳에 우리와 같이 오지 않은 거야.”
“세리아 너 무슨 소리를…….”
“다른 이가 묻거든 그렇게 말해.”
설마 그 정시우가 테디베어…… 강한 몬스터와 싸우기 싫어서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으리라. 세리아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녀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빠르게 정리했다. 처음부터 이곳에는 그녀들만 왔다. 정시우는 던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어 오지 못한 것이다.
“시우는 정말, 왜 항상 나를 빼놓고 움직이는 거야.”
마리나 역시 세리아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괘씸했다. 그녀가 볼을 두툼히 부풀리며 속상해하자 세리아가 드물게도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우리를 믿고 여길 맡기신 거라고 생각하자.”
“위로해 줘도 완전 안 기쁘거든. 흥.”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마침 정시우가 그녀의 권총을 강화도 해 주지 않았던가. 순식간에 몬스터를 해치우고 그를 추궁하리라. 그녀는 굳게 다짐하며 쌍권총을 꺼내어 들었다.
“먼저 간다! 다들 뒤쳐지기 싫으면 빠르게 따라와!”
“저 테디베어, 오래는 못 버티겠네.”
“시우야…….”
세 발키리가 출격했다. 한창 성당이며 중세 시대의 흔적이 담긴 성벽을 신나게 부수고 있던 초거대 테디베어가 그녀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힘찬 괴성을 질렀으나, 마리나는 놈에게 특대 마탄을 먹여 주는 것으로 답할 따름이었다.
그 시각, 정시우는 찰나의 순간 발견한 이세계의 통로로 쏜살같이 돌진해, 그 너머로 넘어와 있었다.
[세상 포투포우에 입장하였습니다.]
[게이트는 앞으로 3분 안에 소멸합니다. 휴식처 입장열쇠를 지니고 있으면 지구의 휴식처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의 영향력이 없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오오, 좋아.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는구나.”
“그것 참 퍽이나 기쁘네요!”
그의 품에서 뛰쳐나온 수아린이 떽떽거렸으나 정시우는 언제나처럼 듣지 않았다. 그저 포투포우라는 세상의 이름과, 휴식처 입장열쇠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여태까지는 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신전이나 마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만 이용했었잖아. 그것들은 모두 신이 직접 강한 의도를 품고 지구로 자신의 종속을 보낸 결과 생성된 게이트였지. 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만큼 유지력도 컸고.”
“하지만 이 게이트는 아녜요. 단지 신의 힘을 미약하게 나누어 받은 이세계의 몬스터들이 지구로 넘어오는 무수한 게이트 중 하나이고, 그런 만큼 게이트의 유지력도 짧으며…….”
“그 동시에 신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휴식처 입장열쇠의 힘…… 다시 말하면 개미굴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명쾌해서 좋다. 정시우는 신전이나 마성 등의 공간을 인스턴트 던전, 그냥 이세계의 통로를 통해 넘어온 이 세상과 같은 공간을 필드 던전이라 부르기로 했다.
“정말 절묘한 네이밍이기는 하네요…….”
“그치? 그리고 여기, ‘지정’도 가능한 모양이야.”
그 말은 정말로 수아린을 놀랍게 했다. 지정이란 휴식처의 문에 딸린 옵션. 정시우는 최대 세 지점을 출구로 지정하여 휴식처의 문을 통해 언제든 올 수가 있었다. 그 말인즉슨…….
“언제든 이 세계로 넘어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잖아요!”
“거봐, 필드 던전 맞지.”
정시우는 그 말을 하며 내친 김에 이곳을 출구의 하나로 지정했다.
휴식처 문의 레벨이 4로 올랐을 당시에는 문이 갖게 된 새로운 기능 때문에 관심도 없고 주목도 하지 않았지만, 레벨 업으로 인해 출구 지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총 다섯 군데로 늘어난 상황이었기에 스톡에도 여유가 제법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이세계로부터 지구로 통하는 출구인 만큼 신의 입김이 닿기는 했을 거야. 지금부터는 그걸 찾는 걸 목표로 해 볼까.”
“여태까지는 신전이든 마성이든 목표물을 부수고 바로 돌아왔으니까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세계 탐험이군요.”
수아린은 미니 모드로 정시우의 품에 대기했고, 용세하는 방패와 랜스를 치켜들고 강림하여 정시우의 곁을 날았다. 정시우는 팬텀바이크에 탄 채 주위를 경계하며 아주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풍요로운 자연 경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여기도 삭막하긴 마찬가지네요.”
“지구도 이 비슷하게 흘러가려나.”
정말 이 모습이 모든 세상이 맞이하게 될 결말에 가까울까. 그건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랐다. 그렇게 바라며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려던 찰나, 정시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마나의 기척을 감지했다.
“어…… 흐으음.”
“오빠?”
“아니, 가 보자.”
바이크의 속도가 빨라졌다. 굳이 은신을 하지는 않았다.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낸 채 질주하며 3분, 그는 지구에서 포투포우로 이어지는 통로에 진입하기 직전 발견했던 테디베어와 완전히 같은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쪽을 쏴! 물러나지 마!”
“아냐, 놈의 상처를 통해 분체들이 솟아나고 있잖아…… 에잇, 제길! 일단 분리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상처를 곳곳에 입혀야 한다고 했잖아!”
“아, 안 돼. 망했어! 망했어!”
그러나 중요한 것은 테디베어가 아니었다. 테디베어와 맞서 싸우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아.”
정시우에 이어 그들의 존재를 깨달은 수아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사람! 사람이에요!”
“그래, 그것도…….”
정시우는 그들의 등 뒤에 돋아난 다양각색의 날개를 확인하며 실로 재미나다는 투로 웃었다.
“플레이어들이야. 아마도 이세계의.”
거기까지 확인한 이상 더는 망설일 것도 없었다. 소수의 플레이어들은 테디베어에게 한없이 밀려나 곤란해진 상황. 설마 지금 나섰다고 스틸이라며 욕을 먹는 일은 없을 터! 정시우는 풀 스로틀을 당기며 신이 나서는 외쳤다.
“기다리던 메인 공격수 왔다! 이제 안심하라고!”
“그런 낡은 개그를!”
그는 곧장 팬텀바이크의 속도를 높이며 동시에 그것을 하늘로 부상시켰다. 그의 목표는 테디베어의 등짝에서 솜 터져 나오듯 튀어나오는 작은 몬스터 개체들!
그가 앞으로 쫙 뻗은 열 손가락에 환한 빛이 머무른 다음 순간, 그 끝에서 발사된 열 발의 크리티컬 불릿이 몬스터들을 꿰뚫어 죽였다. 한 마리의 몬스터의 체내에서 저렇듯 기묘한 방식으로 다른 몬스터들이 나오는 것은 처음 보지만…….
“아주 재밌게 됐는데그래!”
“저, 저자는 뭐지?”
“다른 지역에서 온 저항자…… 아니, 날개가 없잖아!”
“대신 꼬리가!”
“꼬, 꼬리!?”
아무래도 그들의 용어로는 플레이어를 저항자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포투포우의 플레이어…… 저항자들이 정시우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저마다 당황하여 한 마디씩 내뱉는 사이, 정시우는 재차 크리티컬 불릿 십 연탄을 쏘아 내어 테디베어의 분체들을 터트리며 끝내 프론트펜더로 테디베어의 뒷머리를 강하게 들이박았다.
“로드롤러다아아아아아!”
“로드롤러 아니잖아욧!”
[꾸아아아아아앙!]
마나를 프론트펜더의 일점에 집중시켜 만들어 낸 크루얼 차지의 효과는 무척이나 굉장했다! 키가 족히 수십 미터를 넘기는 거대한 테디베어가 일순간 몸통을 갸우뚱 기울어트릴 정도! 자그마한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에 저항자들이 환호했다.
“어디서 왔든 좋아! 이놈을 같이 물리쳐 줘!”
“마석 내 거!”
급한 상황에도 빈틈없이 자기 몫을 주장하며 정시우가 다시 허공으로 부상했다. 테디베어는 머리통에 난 상처로 작은 몬스터들을 꾸역꾸역 토해 내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상처를 입힐 때마다 저렇게 증식할 줄이야, 역시 세상은 넓고 몬스터는 많다.
“저런 게 엘리트도 아니고, 그냥 세상을 활보하고 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에 비해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낮아. 역시 망한 세상이긴 하구나.”
“신의 힘에 넘어가지 않은 이들이 생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디예요.”
“형님, 저는 저 분체들을 쓰러트리겠습니다.”
“좋아, 부탁한다.”
용세하가 쏜살같이 돌진하여 분체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테디베어에 맞서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거기에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저마다 무기를 들고는 테디베어를 피해 분체들과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완벽한 역할분담이 아닐 수 없다.
“덩치가 크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분체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대한 몸집을 이용한 물리력으로 싸울 뿐…… 즉 저건.”
정시우는 드디어 인벤토리에서 망치를 꺼내어 들었다. 몇 가지의 우연과 작정하고 노린 필연, 마지막으로 정시우의 노오오오오력이 더해져 완성된 그의 무기, 마신의 징벌이었다.
“그냥 무수한 작은 테디베어들이 뭉쳐 만들어진 집합체일 뿐이란 얘기지.”
차라리 거대 테디베어의 목숨을 단숨에 끊을 수 있는 급소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저 테디베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작은 테디베어들이기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테디베어가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수밖에 없기에 오히려 까다롭다.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말이다.
“자, 드디어 제대로 된 실전 무대다…… 마징아.”
“그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전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그럼 엠제이.”
“한글을 억지로 영어 이니셜로 바꿨을 뿐이잖아요! 게다가 그 별명은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구요!”
그래, 역시 이렇게 태클이 들어오지 않으면 뭔가 시원섭섭하다. 정시우는 정체불명의 충족감을 느끼며 해머의 첫 번째 옵션, 거대화를 발휘했다.
“거대화, 소.”
그가 속삭이듯 말하며 마나를 주입한 그 순간, 슬레지 해머의 손잡이가 족히 스무 배 이상으로 길어지며 동시에 끝에 매달린 추 또한 수십 배로 증폭되었다. 그 무게 또한 증폭되었지만 정시우는 충분히 버텨 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왜 분명히 ‘소’자를 주문했는데 이렇게 많이 온 거지…….”
“누가 보면 탕수육이라도 시킨 줄 알겠어요.”
만담은 여기까지. 정시우는 해머의 추에 마나를 주입하여 속성, 흑뢰까지 확실히 끌어냈다. 그것은 저주와 번개의 힘을 동시에 담아낸 복합 속성으로, 그것에 닿기만 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죽음에 이르게 될 터였다.
[쿠, 쿠오오오오옹!]
거대 테디베어는 정시우가 꺼내 든 무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뒷걸음질 쳤지만 놈에게 도망갈 구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정시우는 환하게 웃으며 팬텀바이크를 발진시켰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망치가 공격을 위한 죽음의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추가 허공에 검은 스파크의 반원을 그려 낸 다음 순간.
마신의 징벌이 지상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