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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30화 (130/260)

# 130

130화.

마리나가 절체절명의 위기와 조우하던 그때, 정시우는 막 잠에서 깨어나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처럼 하품을 하고 있었다. 대충 졸음기가 가시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곤 거실로 나왔다. 온 집 안에 향긋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오빠, 잘 잤어요?”

“넌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 그렇게 알고 반응하냐.”

“감이에요, 감. 후흐.”

그보다 먼저 일어나 주방에 들어가 있던 수아린이 고개만 빼꼼 내밀어 그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화사한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어 새댁 분위기가 물씬 났다.

정시우는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냥 이대로 던전이나 몬스터 같은 것은 잊고 평생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털어 냈다.

“세하는?”

“일찍부터 수련장에 박혀 있네요. 플레이어가 되었을 때부터 저렇게 열심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을 텐데. 아, 그리고 아침 메뉴는 일본식 된장국에 연어구이예요. 예전에 사 놓은 게 있더라구요.”

“좋아, 기운이 났어.”

한식도 좋지만 정갈한 일본식도 나쁘지 않다. 정시우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욕실로 들어가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나와 폰을 들었다.

그가 잠든 직후 시간대 즈음에 이제 곧 33단계 던전에 들어간다며 마리나가 보낸 문자가 한 통 있었다.

“그 외에는…… 음?”

메인 포털의 뉴스 하나를 클릭한 정시우는 실로 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하늘성 던전이 소멸하기도 하냐?”

“그럴 리가요?”

“그런데 소멸했대.”

“네……?”

막 연어를 다 구워 낸 수아린이 불을 끄고는 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진짜였다. 인공위성이 관측하고 있던 전 세계 상공의 던전 중 상당수가 사라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모르지. 하늘성에서 나온 플레이어들도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다고.”

어쩌면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을 뿐 하늘성 던전에는 유지기한이 있었던 것인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결국 던전은 이세계로부터 지구로 넘어오는 몬스터의 격리소일 뿐, 그 용량이 다해 사라졌다고 하면 제법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오빠가 통합 던전을 만들어 내어 없앤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도요.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성 던전이 전부 사라지면 플레이어들에게 곤란할 텐데.”

“그건 아닌가 봐요. 원래 저급 난이도의 던전은 상급 난이도의 던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없어지는 것들은 모두 저급 난이도의 던전뿐인 것 같고……. 그냥 균형이 맞게 된 것뿐이에요.”

역시 통합 던전 때문인가. 정시우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답을 줄 이는 없었다. 혹여 이세계로부터의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 내는 하늘성의 힘이 약해졌다거나…… 아니, 이건 아니겠지.

“형님, 보셨습니까!”

그때 수련장에서 용세하가 튀어나왔다. 땀방울이 튀는 것이 생생하게 보여 정시우는 근처의 타월 한 장을 녀석에게 던져 주며 대꾸했다.

“우리도 봤다.”

“보셨습니까! 이제 플레이어들의 지위가 흔들릴지도 모르겠어요!”

“……응?”

아무래도 서로 다른 뉴스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시우가 묻자 용세하가 답했다.

“더 이상 몬스터가 달러를 드롭하지 않는다고 해요. 고레벨 던전에서 나오는 재화까지는 확인을 못했지만…… 그것 때문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는데요!”

“……오오.”

그건 그냥 여태까지가 비정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히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

“예……?”

“달러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동기부여를 해 주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증표였잖아.”

던전이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은 물리적인 강함, 그리고 물리적인 재화다. 그들이 던전에서 얻어 나오는 모든 것이 귀중하지만 그중에서도 직접적으로 그들의 부를 축적시켜 주는 것이 달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돈을 보고 던전에 들어갔을 거야. 그렇게 해서 플레이어들이 성장할 수 있었지.”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어때?”

더 이상 몬스터는 하늘성과 개미굴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 전역에서 몬스터가 나타나게 되면서 플레이어들은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던전에 들어가야 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냐. 정부나 기업, 플레이어들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얼마든지 많지. 굳이 달러로 동기부여를 해 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야.”

“그래서 이제 더는 달러가 나오지 않는다고…… 확실히 그럴싸하네요.”

하늘성 던전들이 사라진 것보다는 훨씬 납득하기 쉬운 사태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현상이 같이 나타났다는 점으로 미루어, 하늘성의 힘이 약화되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답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맞아. 어쩌면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하늘성의 신비와 맞닿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지.”

물론 그들은 모른 척하겠지만 말이다.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휘파람을 불며 일어났다. 던전에서 달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지금까지 쌓아 둔 돈으로 충분할뿐더러, 사실 이젠 굳이 돈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니까.

“플레이어가 자력으로 금전을 획득하기 힘들어졌으니 기업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겠네요.”

“인류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서는 그쪽이 더 좋을지도. ……플레이어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자, 우린 밥이나 먹자.”

“네.”

정시우는 식탁에서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밥을 네 그릇이나 비워 냈다. 그 덕에 수아린도 기분이 흐뭇해져 하늘성에 대한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왠지 지금 무척 기분이 나빠졌어.”

“시원하게 몬스터 대가리를 날려놓고 할 소리는 아니네.”

몬스터들의 말로 마리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 엘리트 리자드맨의 머리통을 단숨에 마탄으로 쏘아 꿰뚫고, 놈이 남긴 조그마한 금조각과 비드를 회수하며 마리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세리아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맞장구를 쳐 주었지만,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도저히 냉정할 수 없었다.

“바, 방금 그 마탄……?”

“포메이션을 조금 바꾸자. 엘리트는 나랑 세리아가 처리할게. 그러니 방패수 몇을 떼서 우리 둘을 중점적으로 보호해 줘.”

플레이어 개인이 만들어냈다고는 믿기 힘든 파괴력의 마탄을 쏘아 낸 주제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는 마리나의 모습에 그 누가 압도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마리나가 특수제작된 마나 포션 겔이 담긴 튜브를 꺼내어 자신의 입천장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이강후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물었다.

“가능할까요?”

“뇌신 라이아의 종속들하고는 많이 싸워 봤어요. 적어도 저놈들은 내가 맡을 수 있어.”

“과연…… 믿음직하군요.”

막강한 물리력과 그에 지지 않는 뇌력. 까다로운 두 가지 힘을 조화시켜 다루는 라이아의 종속들은 모든 플레이어가 기피하는 몬스터 중 한 부류다.

고르고 골라 들어온 던전에서 꽝을 만난 것도 정도가 있는 셈. 처음엔 정보의 부족을 인정하고 물러날 생각을 했던 이강후였으나 마리나의 전문분야라는 말을 듣자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용성 길드의 주도로 던전을 진행했지만, 탐사대의 보고와는 다른 흔적이 여럿 보여 던전의 안전한 공략이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마리나 비셋 양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만큼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앞으로 나아갈지 말지를 정하고 싶습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마리나에게 흑심만 품고 있지 않았더라면 더욱 괜찮았을 텐데. 마리나는 한숨을 쉬며 튜브 끝으로 빠져나온 겔을 핥았다.

곧 의견이 정리되었다. 마리나와 세리아는 처음부터 던전 공략의 주축. 그녀가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 모든 이들이 찬성표를 던져 그대로 던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마리나아아아아아아!]

“읏차.”

[네년의 목을 따러쿠헥!]

“흥, 시끄러운 것들뿐이군.”

마리나, 그리고 불행한 일을 겪은 끝에 그녀 못지않은 능력을 보유하게 된 세리아에 의해 라이아의 종속들이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물론 그녀들의 힘만 있어서는 진행이 불가능할 만큼 던전이 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나머지 일행의 힘으로 충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마스터, A32 클리어입니다. 매복해 있던 뇌력 트랩이 마리나 비셋 양에 의해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마스터, B32도 클리어되었습니다. 세리아 양이…….”

“정말 굉장히 강한 여성들이다…… 실로 내게 어울려.”

이강후는 마리나와 세리아가 여태 제 힘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용성 길드의 주도로 던전이 진행되는 만큼, 무엇보다도 다른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중요한 만큼 다른 이들과 수준을 엇비슷하게 맞추고 있었을 뿐, 그녀들의 힘은 감히 자신과 비교하기도 미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엘리트 리자드맨 한 마리 보고 철수를 결심했던 자신이 우스워질 법한 광경의 연속이지 않은가!

“역시…… 저 둘은 내가 취해야겠다. 그 남자에게 빼앗기기는 너무나 아까워.”

“마스터? 진행을…….”

“그래. 나아간다!”

밝고 붉은 블론드를 휘날리며 전장을 휩쓰는 두 여신의 자태를 보며 이강후의 흑심은 더욱 크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둘은 신나게 라이아의 종속들을 쓸어버릴 뿐이었다.

“세리아, 내가 계속 생각해 봤는데 있잖아.”

“무엇이지?”

새로운 마나 포션 튜브를 꺼내어 세리아에게 건네주며 마리나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들은 처음부터 이 던전에 있었던 녀석들이 아냐.”

“……역시 그런가?”

아까 마리나가 말했던 ‘마나가 나뉘어 있다’는 말을 홀로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세리아 역시 그녀와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응. 설마 두 개의 던전이 합쳐진 건 아닐 테고…… 어쩌면 이 녀석들, 난입해 온 건지도 몰라.”

마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들었다. 섬전처럼 모여든 마나가 번개보다 빠르고 강력한 마탄이 되어 발출하여, 던전 천장에 희미하게 생긴 균열을 타고 나타난 갑각질의 뱀을 쏘아 죽였다. 보기엔 우스워도 레벨 240에 달하는 몬스터였다.

“내가 라이아로부터 받은 라이플을 시우에게 선물한 것 때문에 라이아가 낭패를 봤고, 그 후로 줄곧 내게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어쩌면 그래서 이 던전에 종속들을 난입시킨 게 아닐까.”

“실시간으로? 그게 가능한가?”

“우리가 처음 겪고 있는 것이겠지. 요즘 지구고 하늘성이고 이상하잖아.”

지구의 변화에 맞추어 하늘성이 변해 간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규칙으로 보호받는 던전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앞으로의 던전 공략은 탐사대나 공략본에 의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바로 그거야.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거지.”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마리나의 눈빛은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세리아는 역시 이년은 제대로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후로도 33단계 던전은 두 발키리의 활약으로 무난하게 이어졌다.

“이제 곧 보스 룸…… 큭!?”

“철문이 부서져 있습니다! 마스터, 주의를!”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동안 이어진 33단계 던전의 공략은 끝까지 변수투성이였다. 보스 룸과 일반 던전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는 거대한 철문, 그것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던 것!

“하, 이거 참. 라이아 얘 작정했네.”

요즘 정시우에게 뒤쳐지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 마나 감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마리나가 민감하게 보스 룸 안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혀를 찼다. 세리아 역시 험악하게 표정을 굳혔다.

“파편이…… 신의 힘이 느껴져.”

“비셋 양!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다섯 명의 길드원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다가와 묻는 이강후. 그가 파편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리나는 안 봐도 블루레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속내와는 달리 한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원자만 받아서 한 번 깨 보자!”

그날, 중국의 용성 길드의 선도 하에 33단계 던전이 최초 클리어되었다. 사망자는 용성 길드에서 두 명이 나왔을 뿐이었다.

물론, MVP는 마리나 비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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