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18화 (118/260)

# 118

118화.

“형님, 오감 이거 안 되겠는데요.”

“으으음, 역시 어떻게든 오감 중 하나를 미리 얻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정시우가 오감을 모두 얻을 생각을 했던 것도 라이아의 소신전에서 시각 스킬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시각 스킬의 레벨이 오르며 마나를 눈으로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그로써 나머지 오감을 획득하는 일에 박차가 가해졌었다.

하지만 용세하는 무턱대고 바위에 헤딩만 하고 있는 상황. 제아무리 정시우가 요령을 설명하고 그의 몸에 억지로 때려 박아도, 그의 다른 전투 스킬들만 빠르게 성장할 뿐 오감 계열의 스킬이 생겨나는 일은 없었다.

“저 엄청 강해진 것 같습니다, 형님!”

“강해지긴 했는데…….”

그의 기준으로는 여전히 미달이지만, 근 일주일 용세하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더 빡세게 굴리면 뭔가 될 것도 같았지만 계속 녀석을 수련시키는 데에만 집중할 수도 없는 노릇. 그가 슬슬 밥이나 먹자고 하려던 찰나, 수련장의 문이 비스듬히 열렸다.

[주인님.]

“아, 케이나.”

용세하 하고만 마주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케이나의 기척과 맞닥뜨리니 본능적으로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별로 활약할 기회가 없던 용의 감각이 날카롭게 이를 세웠다. 전신으로 케이나의 정보를 받아들이며 분석하고 본능적으로 이를 박아 넣을 약점을 찾았다.

[무섭다, 주인님.]

“미안, 네가 워낙 강한 녀석이라 본능적으로…….”

그래도 용세하와 함께 수련하며 용의 감각을 숙달한 것이 헛되지는 않아 금세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용세하가 어째선지 모를 좌절감을 느끼는 가운데 케이나가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이제 보니 확실히 알겠다. 그녀는 언데드 따위가 아니었다. 마력으로 살아 움직이는 육신을 지닌 마법 생물, 그것이 그녀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였다.

[베토는 안정을 많이 되찾았다. 당분간 혼자 놔두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어.]

“너는?”

[……나도 마찬가지다. 기다려 주어 고맙다, 주인님.]

베토도 베토지만, 죽어 버린 육신에 갇혀 유구한 세월 흑의 관을 지키며 살아온 베아체의 정신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을 터다. 비록 비틀리고 일그러졌다지만 그녀는 새 이름과 새로운 관계를 얻었고, 지금 보니 제법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부리고 있는 다른 유령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

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지금이라면 나머지 유령들에게도 보다 자유로운 의지를 부여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고 기회가 오면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며 그는 일행과 함께 수련장을 나섰다.

“이제 완전히 끝내신 거예요?”

“응.”

느긋이 마나 수련을 하고 있던 수아린이 그들을 맞이했다. 정시우는 서랍에서 완벽히 수리가 완료된 장비들을 꺼내어 확인하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동안 일 좀 있었어?”

“뭔가 많기는 한데요. 그리고 오빠 폰도.”

일주일 동안 정시우는 아예 바깥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폰도 떨어트려 놓고 있었는데, 수아린으로부터 폰을 돌려받아 확인하니 가장 많았던 것은 세리아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그다음이 마리나, 그 외에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안부 인사 정도. 반면 이서희는 딱 두 건인 것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티를 내면서도 배려를 해 주는 점이 과연 상냥하다.

“드디어 오빠한테 미련을 버렸나 봐요. 빨리 좋은 남자 만나면 좋겠네요.”

“아, 알았어그래.”

그는 끊임없는 견제의 화신 수아린을 살짝 밀어내며 폰을 확인했다. 사실 언급한 이들을 제외하고도 무지막지한 양의 연락이 쏟아져 들어와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생전 처음 보는 번호도 있었고 일단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만 건 이상이었기에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고, 확인할 필요도 없는 쓰레기 문자투성이였다.

그는 오랜만에 한 번 만나자는 메시지도, 귀하의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다는 메시지도 사이좋게 묶어 지우고 정말 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메시지만을 확인했다.

꼴사나운 놈들 한꺼번에 모아 놓고 한 대씩 갈겨 주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정시우는 가진 것을 대놓고 과시하는 취향은 없었다. 힘은 추구해야 할 목표일 뿐 쓸데없이 낭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뭐야, 얘네는 여전히 셋이 잘 뭉쳐 있네.”

세리아는 정시우로부터의 연락이 없으니 일단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지시 사항인 이서희의 서포트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모양이었다.

마리나야 WPRC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는 원래 이서희를 키울 생각으로 만만이었으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자연히 셋이 뭉치게 된 것.

그렇다면 여기에 굳이 뭔가 말을 더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라는 문자를 셋에게 보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뭔가 해내기라도 한 듯 뿌듯한 표정을 짓는 정시우를 수아린은 그저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좋아, 그러면 뉴스나 보자.”

“아마 새로운 정보는 그다지 얻지 못하실 거예요. 아직 세상은 루이노스 리자드에게서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수아린의 말이 맞았다. 뉴욕 UN본부에 나타나 일대를 뒤엎어 놓은 루이노스 리자드 새끼에 관한 기사가 연일 히트를 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키워드는 단연 정시우. 바로 그 몬스터를 압도적으로 짓눌렀으니 스포트라이트를 고스란히 받는 것이 당연했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남자. 그것이 지금의 정시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일단 김하룡의 계획이 완벽하게 무너진 것만은 확실하네.”

“신의 힘을 보다 부각시키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예요.”

김하룡의 작전은 얼추 그럴듯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인간들의 편에 서서, 그것도 최전선에서 활약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 신의 힘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꺾어 누르고, 인간들에게 어느 쪽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목적이었을 텐데…….

“활약은 오빠가 다 했고.”

“신의 힘을 부정한 것도 형님입니다. 아주 재미나게 돌아가는 거죠.”

“물론 놈이 그렇게 당당하게 나타난 것만 해도 신의 힘의 불안요소를 사람들에게 남겨 놓는 일이긴 한데…… 그런데 놈은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오빠.”

수아린은 자그마한 폰 화면 안에서 정시우가 거대 해머로 루이노스 리자드 새끼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장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불의 신의 힘을 다루는 김하룡을 제치고, 이 거대한 몬스터를 갖고 놀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설사 이 몬스터의 등장을 뒤에서 조작했을 신이라고 해도요.”

[루이노스 리자드의 새끼로군. 우리 세상에도 있었다.]

케이나가 거기에 첨언했다.

[성체는 최소레벨 300에 달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덩치가 너무나 거대하기에 홀로 소국을 해치우는 국가 규모의 재난이었지. 단 그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생명력이 약하고, 집중력을 흐트러트리면 방어력을 뚫고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 공략 요지였다. 나도 성체가 되다 만 것을 동료들과 함께 사냥해 본 적이 있다.]

“맞아. 덩치만 크고 어째 체력은 부실하더라고.”

“이 사람들이 진짜…….”

가만히 혼자 놔두어도 재수가 없는 정시우가 케이나를 만나는 바람에 강자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말았다. 기만의 버뮤다 삼각지대가 탄생한 것이다. 그 안에 잘못 끼어들면 자존심이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던전 가죠, 던전.”

“그래, 까짓거 가자고.”

베토를 홀로 남겨 두어도 괜찮다는 케이나의 보증도 얻었고, 용세하의 기초 교육도 얼추 끝났다. 그동안에도 지구 전역에 생겨났을 개미굴 던전들을 최대한 빠르게 클리어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아 전진하리라!

물론 개미굴 던전은 하늘성 던전에서 비롯되는 만큼 지금의 정시우가 무력을 키우기엔 영 못마땅한 것들뿐이겠지만, 그 대신 스스로에게 핸디캡을 주거나 속도 제한을 둔다거나 하면 그럭저럭 수련은 될 것이다.

“이미 인류 최강 수준인데 그렇게 강해져서 뭐가 하고 싶은 거예요?”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야. 거기에 굳이 부가적인 이유를 붙이자면…… 그래,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번거로운 일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하룡이다. 정시우가 약했더라면 최악의 경우 수아린과 용세하를 지켜 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정시우가 직접 친절하게 패 주니까 적어도 정면으로는 덤비지 못하게 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 논리로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면 지금 지구에서 뭔가 깔짝깔짝 일을 벌이고 있는 신이란 놈들도 나한테 쉽게 손을 대지 못하게 되는…… 어라?”

정시우가 그런 말을 하며 휴식처를 빠져나가는 문고리에 손을 얹은 그때, 그의 눈앞으로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여러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 문을 Lv4로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은 비드의 85%를 소모하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문 레벨만 이렇게 높아져도 되는 거야 이거……?”

하지만 정시우는 시기를 놓치는 남자가 아니다. 비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당분간 던전을 돌아 휴식처에 비드를 보충할 생각이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그는 곧장 문을 강화했다. 불과 몇 분이 지나, 바로 옆에 나 있는 거주 지역으로의 문과 흡사하여 고풍스럽게 생겼으나 금장 장식이 추가된 문이 새로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주얼만 보면 중세 유럽 저택에나 있을 것 같은 문이 된 것이다.

“좋아, 이걸로 이제 어디로든 문이 되었을까……?”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오빠…….”

곧 그의 눈앞으로 예정되었던 업그레이드 알림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업그레이드된 문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골 때리는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문이 Lv4가 되었습니다.]

[이미 클리어한 경험이 있는 던전에 한하여, 비슷한 위험도의 던전을 합쳐 통합 던전을 만들어 내어 입장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비드를 소모합니다.]

“뭐……?”

지금까지의 던전 입장이 이마X였다면 지금부터는 코스X코라는 얘기인가! 과연, 휴식처에서의 던전 입장이 물리적인 거리 개념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 너머에 있을 던전 사이의 거리와 규모조차 조정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근래 들어 정시우가 각성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정시우는 그렇게까지 머리를 굴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금 당장 문에 새로 생긴 기능을 시험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그렇게 되었다는데.”

[나는 주인님을 따르겠다.]

“오빠는 이미 어떤 던전에 들어가든 상처 입을 단계는 지났잖아요.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좋아.”

정시우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문고리를 잡으니 그의 망막 위로 선택할 수 있는 위험도가 떠올랐다.

[위험도 ? 매우 낮음]

[위험도 ? 낮음]

“보통 난이도는 없단 얘기예요!? 아니, 조금 낮음도 없잖아!”

“아니면 내가 아직 안 들어갔거나.”

고작 두 가지뿐이라는 게 무척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차례차례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정시우는 매우 낮음 위험도를 골랐다. 그 순간.

[‘위험도 ? 매우 낮음’에 해당하는 개미굴 던전은 현재 지구상에 375,307개 남아 있습니다.]

[최소 2개부터 최대 375,307개의 던전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몇 개의 던전을 통합하시겠습니까?]

“호오.”

그 황당하기까지 한 던전의 숫자를 확인하는 정시우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어렸다. 수아린은 그것을 본 순간 익히 예감을 하고 말았다.

아아, 이 패턴은 이미 질리도록 보아 온 것이다. 이제 그는 저지르고 말 것이다. 누르면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버튼을 발견한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꾹 눌러 버리고 말 것이다.

“375,307개 모두 통합한다.”

“그럴 줄 알았지.”

정시우의 선언에 수아린이 푸욱 한숨을 내쉬는 그때, 문이 동작을 개시했다.

[남은 비드를 모두 소모하여 던전을 생성합니다.]

[‘위험도 ? 보통’의 던전이 생성되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흐히히.”

“오빠는 변태예요.”

“그냥 변태하지 뭐.”

얼마나 큰 격변이 있었으면 위험도가 매우 낮음에서 보통으로까지 격상했을까. 아득한 한숨을 내쉬는 수아린이었으나 정시우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두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공동이 그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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