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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17화 (117/260)

# 117

117화.

사방이 새하얗다. 분명 그것은 구름으로 빚어진 대지이다. 저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세상과는 유리된,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포근한 피신처이다.

그곳에 정시우와 용이 있었다.

“어……?”

정시우는 그 사실을 인식하곤 더할 나위 없이 당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처음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을 땐 또 용의 꿈이겠거니, 이젠 오감도 다 얻었는데 또 뭘 얻을 게 남아 있다는 걸까, 하고 느긋한 생각을 했었는데…….

[꿈이 맞다.]

“하.”

눈앞에 용이 있었다. 정시우의 미약한 힘으로는 감히 손을 대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압도적인 거체를 지닌 용. 수십 미터? 수백 미터? 놈의 육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단위를 재는 척도 따위로 파악할 영역을 아득히 넘어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무서울 텐데 놈은 정시우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의 생각을 읽어 내어 대꾸하기까지 했다.

[나는 너이거늘 네가 나를 객관화하여 이렇게 마주 보고 있으니, 이것은 꿈이 맞다.]

“오, 오…… 개소리 한 번 제대론데…….”

그게 뭔 소리야 대체. 머리가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는 정시우였으나 방금 그 말은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용이 빙긋이 웃으며, 아마도 웃으며 물어왔다.

[어째서 인간으로 태어나 용을 닮아 가는지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없는가.]

“그야 천령의 방울 때문에 꿈을 꾼 게 계기가 되어서…….”

[그것은 불러내야 할 것을 불러내는 도구에 불과하지. 인간이 그것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들의 기원일 따름이다.]

“기원…….”

[혹은 개념이라고 불러도 좋다.]

기원이든 개념이든 상관없었다. 둘 다 못 알아먹으니까.

[그리 대단치 않은 도구는, 그러나 대단한 주인을 만나 기적적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네가 나의 꿈을 꾼 것이 바로 그것이다. 너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용이 그로써 깨어날 수 있었다.]

“내가 전생에 용이었다, 그런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개소리를 하려는 거냐.”

[너는 이미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아.”

정시우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저 커다란 용이 그의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지껄이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생에 용이었다니, 중2병은 이미 졸업한 지 한참 되었는데. 아마도.

“이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정말로 용이란 존재가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것도 대충 짐작은 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 누구도 너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너는 이미 본능적으로 용의 흔적을 쫓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단지 그 사실을 너에게 일깨워 줄 뿐이다.]

“…….”

사실이었다. 용의 거대한 존재감을 동경하고, 용의 마나를 동경하여 정시우는 수련을 거듭했다. 오감을 얻고 직감과 합쳐 용의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그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용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정시우가 대꾸하려던 순간 용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스스로의 능력을 부정할 필요도, 스스로의 노력을 폄하할 필요도, 타고난 축복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하.”

꿈은 꿈이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은밀한 불안감이 저렇듯 적나라하게 토해지다니. 무심코 쓴웃음을 짓는 정시우를 앞에 두고 용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고귀한 용이니, 그저 스스로를 긍정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불신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설마 나를 달래 주는 거냐?”

[…….]

여태껏 잘 떠들던 용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물론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실로 분하게도 놈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정시우는 언제나 호쾌함을 가장했으나, 그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지울 수 없는 불안과 걱정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에게 불합리하게 주어진 힘. 순수한 노력과 경쟁을 부정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재능. 연원을 모르기에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여겼다. 자신의 것이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항상 웃으면서도 불안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타고났기에, 그는 언제나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가 재능이고 어디부터가 노력인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망설이기도 했다.

[너는 용이다.]

그때 다시 용이 말했다.

[망설임과 불안은 용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것을 당당히 취하라. 당당히 나아가라. 네게 있는 모든 것이 정당한 너의 권리이며, 아직 네 것이 아닌 모든 것 또한 곧 너의 것이 되리라.]

“하.”

정시우는 그 말을 들으며 끝내 웃고 말았다. 우습게도 조금 속이 편해졌다.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설령 이 용이 자신의 망상에서 태어난 놈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내 전생이 용이건 아니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용의 거체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난 나야.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어떤 증명도 필요 없어.”

정시우는 스스로를 긍정하고 있었다. 언제나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랑했다.

그는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망설일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살면서 어떻게 불안하지도 않고 고뇌도 없을 수가 있냐. 나는 내가 떠안은 쓰잘데없는 고민이나 불안까지 포함해서 나를 긍정하고 있어. 재능이니 노력이니 하는 단어에 집착하고, 번뇌하고, 타인에 비해 우월감을 느끼다가도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그런 모습까지 전부 포함해서 나라고.”

[…….]

“아무런 고민 없이 전능한 자가 용이라면, 그런 건 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단언컨대, 난 그런 존재가 아냐.”

정시우가 돌아섰다.

“용의 능력을 쟁취했다고 해서 용의 마음까지 가져올 생각은 없어. 난 내 방식대로 나아갈 뿐이다. 당당할 때도 있겠지만 가끔은 비틀거릴 때도 있겠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난 그런 내가 최고로 멋지고 좋아. 다른 놈 따위, 하물며 꿈속에서 몇 번 보았을 뿐인 용 따위 알 바야?”

[그것으로 충분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정시우는 어느덧 자신이 용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렇기에 비로소 용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이 개새끼가 끝까지 용이라고 하네, 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찰나. 정시우는 눈을 떴다.

꿈에서 깬 그의 두 눈 앞으로 몇 줄인가의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고유능력 ‘강탈’을 자각하였습니다.]

[강탈 Lv1]

[한없이 자기중심적이면서도 굳건해 흔들리지 않는 자아에서 비롯된 능력.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정시우]

[파괴자(Breaker)]

[Lv 128]

[근력 ? 464 민첩 ? 429 체력 ? 441 마력 ? 295]

[내성 ? 독 Lv11, 화염 Lv6, 저주 Lv7, 뇌전 Lv9, 빙결 Lv5, 바람 Lv6, 대지 Lv6]

[패시브 스킬 ? 용의 감각 Lv1, 용의 위엄 Lv8, 카오스 테일 Lv4, 무지는 용감 Lv9, 소울 포스 Lv4, 헤비 웨폰 배틀 Lv7]

[액티브 스킬 ? 괴력 Lv4, 부여 Lv41, 강타 Lv41, 전투질주 Lv35, 크리티컬 불릿 Lv12, 워 크라이 Lv16, 스톤 스킨 Lv16, 크루얼 차지 Lv11]

[고유능력 ? 강탈 Lv1]

“……하.”

무척 묘한 꿈이었다. 더욱이 그 끝에 얻은 이 능력에 붙은 짧고 단호한 설명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되게 이기적인 놈이라고 욕하는 것 같아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건 원래 내게 잠재되어 있었던 능력이겠구나.’

여태까지 기합으로 해결하긴 했지만 정시우 스스로도 그 원리를 몰랐던 일이 몇 가지인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의 힘을 제 것으로 만들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고유능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설명이 되었다. 원하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니 신의 마나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잠깐, 그뿐만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플레이어들과 달리 던전 바깥에서 몬스터를 해치워도 그들의 기록과 마나를 흡수하여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고유능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아니, 확실했다. 실로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지금 그가 자각한 고유능력이야말로 그의 강함의 근원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가 지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보다 어쩌면 이것에서 더 나아가…….

“……마음에 안 들어.”

“오빠……?”

정시우가 근원이라는 말에 다시 조금 전 꾸었던 꿈을 떠올려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옆에서 그를 걱정하며 말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침대 맡에 앉아 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수아린이었다.

“아린이 너?”

“조금 전부터 오빠가 끙끙대고 있었어요. 치유 마법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한없이 맑고 투명한 그녀의 두 눈에 순수한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시우를 향한 그녀의 감정이, 여태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정시우를 깊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래. 플레이어니 뭐니 하는 것은 뒤로 조금 미루어두어도 괜찮겠지.

“괜찮아. 그냥 조금 나쁜 꿈이었을 뿐이야. ……고맙다.”

“뭐, 뭘요. 전 그냥 오빠가 자면서 힘들어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정시우는 부끄러워하는 수아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머리 망가진다고 싫어하면서도 그의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절로 히죽거리는 그녀의 입가는 못 본 척 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간 그렇게 있자니 옆에서 빤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용세하였다.

“요, 용세하 씨.”

“……일어나 있었냐?”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일 계속 하시지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 삐졌다. 틀림없이 삐져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까 거주 지역에 들어갈 때도 용세하는 자고 있어 함께하지 않았었다. 케이나를 드래곤나이트로 재탄생시킬 때도 마찬가지.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좋아, 그럼 저번에 말로만 하다 말았던 특훈을 몸으로 해 보자고. 창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마.”

“엇, 지금부터 말입니까!? 아니 형님 굳이 그러실 것까진…… 히익.”

“이이익.”

시선에 에너지를 담을 수만 있다면 수아린의 시선에 의해 용세하는 17등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기껏 좋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눈치 없이 방해하다니!

그러나 용세하도 방향성이 다를 뿐 정시우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수아린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는 수아린의 살의 넘치는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정시우에게 부탁했다.

“그러면 한 수 배우겠습니다, 형님.”

“그래. 나도 달라진 내 몸을 점검할 필요도 있고 하니…… 아린이 넌 쉬고 있어.”

“후우…… 너무 오래 몰두하지는 마세요.”

“그래.”

정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문득 케이나와 베토가 떠올랐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들의 흔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거주 지역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당분간 놔두어도 괜찮으리라.

수련장은 여전히 무척 넓었다. 물론 그 안에 대련을 위한 링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지만, 마음껏 날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시우는 수련장을 이루고 있던 것들을 전부 한쪽으로 치워 버리고 바닥에 그와 마주 섰다.

실은 그가 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치울 수가 있었다. 이제 와 어떤 원리로 구동하는 것인지는 새삼스레 따지지도 않았다.

“좋아, 일단 자유대련을 좀 할까.”

“자유대련 같은 걸 했다간 제 신체가 자유로이 허공으로 비산할 것 같은데요.”

“마력은 쓰지 않을 테니까 안심해.”

그 말에 용세하의 표정이 암담해졌다.

“꼭 그런 대사를 하는 사람하고 붙게 되면 탈탈 털리던데…….”

“당연하지. 이길 자신이 없으면 핸디캡은 두지도 않아.”

“역시나!?”

그러나 용세하는 말과는 달리 열심히 덤볐다. 정시우의 레벨이 오르면서 그도 더욱 강해졌고, 전신의 마나를 활성화하여 펼치는 랜스 차지에는 압도적인 기세가 담겨 있었다.

“꾸엑!”

물론 정시우에게는 털끝만큼도 닿지 않았지만 말이다.

“상대가 피할 여지를 없애야지 무턱대고 돌격만 하면 네가 자멸할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몸에 힘을 빼도 안 되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그런 어설픈 여유를 남겨 두라는 게 아냐. 상대가 쉬이 피하지 못하게 압박감을 주어야지. 강하고 빠르면서도 언제든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

“그게 양립할 수 있는 일입니까……?”

“보여 주지. 조금 아프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용세하와의 대련은 용의 감각을 얻어 달라진 정시우 스스로의 능력을 점검하기에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녀석은 어지간한 샌드백보다는 튼튼한 것이다!

물론 마력과 함께 다루어야만 완전해지겠지만, 순수한 육신과 패시브 스킬의 교감을 확인하며 적응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흘러 서랍에 넣어 둔 두 망치와 방어구가 완전히 회복되고, 용세하가 어느 정도 정시우를 따라올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드디어 케이나가 거주 지역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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