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화.
[케이나]
[드래곤나이트]
[Lv308]
정시우는 그녀에게 손을 대어 스테이터스를 확인하고는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드래곤나이트가 되어 버렸네.”
[내가 그것을 입에 담고, 주인님이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 이루어진 일이다. 나를 만든 것은 주인님이지 않은가.]
“내가 만들었다, 라…….”
휴식처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르지만, 그래. 정시우가 그녀를 탄생시켰다는 것은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는 용의 감각을 얻지 않았는가. 그것이 그녀의 육신과 마력의 생성 방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름은 케이나가 되어 있는 거지?”
[죽음 끝에 남은 혼의 찌꺼기와 육체, 둘 중 무엇이 더 우세했는가. 단지 그뿐인 일이다.]
그에게 대답하는 그녀, 케이나의 목소리가 못내 씁쓸했다. 단지 이름일 뿐인 것, 다시 베아체로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던 정시우 역시 이름이 그리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이제 네 동생 보러 가자.”
[알겠다.]
데스나이트…… 아니, 드래곤나이트의 제작 과정은 심히 격렬했으나 무척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시간으로 따져 고작 5분이나 되었을까. 정시우의 침대에 눕혀진 베토는 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베토.]
데스나이트일 때와 달리 약간 높고 새되게 변한 목소리로 동생을 부르는 케이나. 그러나 동생을 만지고 싶다던 말과는 달리 멀찍이 물러나 있는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누나?”
신기하게도 즉각 반응이 일었다. 끙끙대던 소년이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을 뜬 것이다. 눈동자의 색은 머리와 같은 황금.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씻기고 제대로 된 옷을 입혀 놓는다면 굉장한 미소년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마나의 자질도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이젠 제법 어엿한 플레이어가 된 정시우는 소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 자신에게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누나…….”
[베토…… 날 알아보겠니?]
“누나!”
여태까지 누워 있던 것이 거짓말처럼 여겨질 만큼 빠르게 몸을 튕겨 일어난 베토가 곧장 케이나에게 안겨 들었다. 케이나는 갑옷에 부딪혀 아이가 다칠까 염려되어 다급히 몸을 뒤로 물렸지만 베토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나, 누나!”
[……나는 어쩌면 더 이상 네 누나가 아닐지도 몰라.]
“누나!”
저 녀석은 누나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군. 정시우는 그런 판단을 내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쨌든 베토는 멀쩡해 보인다. 정신 상태는 무척 취약해져 있는 것 같지만 여태껏 험난한 일만 겪어 온 저 아이에게 다짜고짜 현실을 들이대고 싶은 생각은 정시우에게도 없었다.
기묘하게 뒤틀어진 존재의 잔해, 신의 힘에 의해 농락당한 끝에 지구에 내동댕이쳐진 아이. 저 둘은 과연 평범한 남매가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저 둘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거주 지역은 우리끼리 먼저 알아볼까.”
“그래요, 오빠.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단둘이서 대화를 나눌 시간을 주는 것이 좋겠어요.”
신파극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도 영 간지러워서 익숙하지 못한 일이다. 정시우와 수아린은 마법생물과 생물이 감격스레 포옹하는 장면을 뒤로한 채 조용히 물러나와, 휴식처를 나가는 문 옆에 생긴 거주 지역의 입구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그곳은 새로운 작은 세계였다.
“이게 뭐야.”
“이게 정말…… 지하 플레이어에게 허락된 공간이란 말이에요?”
“지하 플레이어가 나밖에 없다는 가정 하에는, 내게만 허락된 공간이겠지…….”
외부 환경과 완전히 같느냐,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곳은 지하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금방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환경이기도 했다.
끝도 없이 높은 천장 즈음에는 태양을 대신하듯 찬란한 빛을 뿌려 내는 빛의 구체(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졌다.)가 여럿 날아다니고 있었으며, 어디서 불어오는 것인지 모를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 허공에서 맴을 돌았다.
마지막으로 이제 와선 지상에서도 쉬이 맡기 힘든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완벽하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공간 자체의 넓이는…… 그렇게 넓지 않다만.”
“그래도 어지간한 던전 하나 정도의 크기는 되지 않을까요.”
거주 지역의 구조는 지극히 단순했다. 거주 지역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넓은 공터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놓인 몇 채인가의 석조 건물이 있었으며, 골목도 벽도 없는 원형의 공간은 둘레 3킬로미터 정도의 넓이를 지니고 있었다.
“아, 이건…… 몇 개인가의 던전에서 발견한 적이 있어요.”
기화요초가 만발한 공터를 거닐며 주위를 살피던 수아린이 자그마한 감탄사를 내지르며 조그맣게 피어 있던 자줏빛의 꽃 한 송이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곧 그녀의 눈앞으로 꽃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카레나]
[랭크 ? C+]
[독을 품은 꽃. 향이 좋기 때문에 곱게 갈아 다른 찻잎과 섞어 표적을 확실하게 보내 버리는 독차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이런 정보는 보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
“정보가 이렇게 바로바로 뜨는 거야? 원래 던전에서도?”
“던전에서는…… 아뇨. 감정을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이 공간에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요.”
정시우는 꽃을 몇 개 뽑아다 부엌으로 가져가 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곳에서 포션 제조까지 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포기했다. 꽃은 꽃인 채로 놔두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그렇게까지 거창한 공간은 아닌 모양인데.”
“그래도 앞으로 베토와 같은 이세계인들을 더 데려오게 되었을 때 숙소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게다가 꽃뿐만 아니라 갖가지 식량으로 삼을 수 있는 재료도 자라나고 있고요.”
“그래. 도저히 원리는 파악할 수 없지만 말이야.”
휴식처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하에 있는 폐쇄된 공간이니만큼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 하나로 통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생겼으니 그것만으로도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시골에 땅 사놓고 주말마다 들러서 농사 깔짝 짓고 돌아가는 도시 사람 기분인 건가!”
“아마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거주 지역을 대충 살펴본 두 사람이 슬슬 돌아가려고 몸을 돌린 그때,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더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케이나와 베토였다.
[주인님, 얘기가 끝났다. 배려해 주어 고맙다.]
케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베토를 앞으로 살짝 밀었다. 작은 소년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서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저, 저랑 누나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인님.”
“아니, 나는 네 주인은 아니야.”
“누나가 섬기는 분이니까, 제게도 주인님이에요.”
정시우는 곤란해졌다. 그러나 소년의 의지는 생각보다 완강하여 한두 마디 말을 섞는다고 해서 그리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케이나를 완전히 자신의 누나로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진 바로 그 순간.
[마도 장인의 재능이 있는 주민이 거주 지역에 입주했습니다. 필요 자재를 모아 마도 대장간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것 봐라?”
“네?”
그럼 그렇지, 역시 거주 지역이 평범한 공터일 리가 없었다! 정시우는 자신의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베토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물건 같은 거 잘 만드냐?”
“그, 아버지께서 대장장이셨어요. 어머니께선 마법사셨고…… 두 분께 어느 정도 배운 건 있어요. 저는 마력을 다루는 데에는 적성이 있지만 겁이 많아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그것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배우라고 어머니께서 항상 그러셨거든요.”
“과연. ……그나저나 대장장이 아버지에 마법사 어머니에 기사 누나라니, 참.”
판타지 소설 주인공을 해도 될 법한 화려한 가족구성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 덕에 베토에게 마도 장인이라는, 듣기도 생소한 클래스의 자질이 생겨난 것이니 정시우는 순순히 기뻐하기로 했다.
“좋아, 베토. 나는 네 주인은 아니지만 네가 여기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어. 그러니 나를 위한 일을 조금씩만 해 줬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지 할게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베토의 의욕이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케이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확실히 언데드라기엔 지나치게 생동감 넘치는 표정인지라, 정시우까지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모든 일이 얼추 해결된 셈이네. 그럼 이제 뭘 할까.”
“쉴래요.”
수아린이 단언했다. 세트나크의 73마성으로부터 돌아오자마자 곧장 쉬었어야 할 것을, 흑의 관이며 거주 지역이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추가로 처리하느라 굉장히 피곤해진 것처럼 보였다. 정시우도 그녀의 말을 들으니 갑작스레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 조금 쉬자. 생각해 보면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를 치르고 계속 돌아다니기만 했네.”
“루이노스 리자드 때문에 전 세계가 또 발칵 뒤집어졌겠죠. 오빠는 가뜩이나 유명한데 더 유명해졌을 테고, 신의 힘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을 테고…… 하지만.”
수아린은 흐느적흐느적 날개를 펼쳤다.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말투는 단호했다.
“지금은 그런 거 다 됐으니까 씻고 잘래요.”
“그래, 먼저 씻어라.”
“네, 오빠. 고마워요. 먼저 가 볼게요.”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아린을 먼저 보내 주었다. 한편 케이나와 베토는 여전히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경황이 없어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사항을 모두 정리해 두기로 했다.
“케이나, 너는 앞으로 직접 전선에 서서 나를 도와줘. 너를 개미굴 던전에 데리고 갈 수 있을지는 나중에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가능할 거야. ……아, 하지만 전투에 동원하지 않는 시간에는 베토와 있을 수 있도록 해 주지.”
[고맙다, 주인님. 주인님 덕분에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이런, 케이나의 열의도 베토 못지않게 높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절망뿐이던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면 보통 이렇게 되려나.
딱히 자선봉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벌인 행동의 결과로 저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지금은 베토랑 같이 이곳에서 쉬어.”
“네, 넵.”
케이나와 베토는 서로를 마주 보더니 조심스레 손을 붙잡고 거주 지역에 번듯하게 들어선 석조 건물 중 하나를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은 그중 한 명이 인공적으로 탄생한 마법 생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정다웠다. 그러니 저들을 남매라고 부른다고 누군가 벌을 주지는 않겠지? 정시우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아린이 먼저 보낸 건 실수였나…… 나 먼저 후딱 씻고 나올걸.”
하나 마나인 후회를 하며 휴식처로. 다행히도 씻을 기력도 없었던 수아린이 대충 샤워만 하고 나온 덕에, 그도 금방 씻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운 지 3초, 누구보다 빠르게 잠이 든 그는.
남들과는 다른 용의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