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115화 (115/260)

# 115

115화.

“거주영역이라는 게 뭐죠?”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용의 감각을 체득했을 때 카오스 테일까지 4레벨로 성장하며, 개미굴의 새로운 시설을 개방하는 조건이 하나 풀렸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던 것은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조건이 지금 바로 달성될 줄이야.

“설마…….”

정시우는 바닥에 누워 있는 어린 금발의 소년, 베토에게 시선을 향했다. 설마 저 녀석을 살렸기 때문에? 그럼 앞으로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하면 추가적인 개미굴 시설을 획득할 수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고.’

정시우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기로 했다. 소년을 살렸다는 행위 자체가 아닌, 자신의 행위로 인해 멀쩡해진 소년이 개미굴의 휴식처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이곳으로 외부인을 들이면 되나?”

“휴식처에는 서포터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대동할 수 없는 것 아녔어요?”

“그랬는데…… 응, 지금도 무리야.”

침착하게 자신의 능력과 휴식처의 마나 흐름을 되짚어 본 정시우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 소년이 어떻게 해서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가가 문제가 되는데, 이 경우 저 아이가 가사 상태로 흑의 관 안에서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정확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즉.”

정시우는 그 소년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을 비로소 입 밖에 냈다.

“다른 세계의 인간은 데려올 수 있는 거지. 그 행동으로 나머지 조건이 달성된 거고.”

“아…… 그럴 지도요.”

무척이나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실제로도 메시지는 거주 지역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거주라니, 정시우에겐 휴식처가 있으니 따로 공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가 아닌 다른 이, 즉 이세계의 인간들을 위한 공간임에 분명했다.

“점점 이 개미굴의 목적이 보이는군…….”

“전 아직 모르겠지만요.”

“나도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 뜻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다른 세상 속에서 신에게 오염되지 않은 아이를 구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정시우에게 있어 제법 뿌듯한 일이었다. 그는 후우, 한숨을 내쉬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한다.”

[거주 지역이 개방됩니다. 거주 지역은 휴식처와 마찬가지로 충전된 비드를 소모하여 확장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거주 지역이 개방된다고 휴식처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휴식처를 나가는 문 옆에 보다 커다란 목제의 문이 하나 생겨났을 뿐이었다. 정시우는 곧장 그것에 다가가려다가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베토의 모습을 보곤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을 위한 공간 같으니 깨워서 같이 가야겠네.”

[이, 이봐.]

“주인님이라고 불러 봐.”

[주인님.]

무척 순종적이었다!

[나는 육체를 원한다. 언데드의 몸이라도 상관없으니 베토에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주인님, 부탁이니 내게 육체를 다오.]

“너…….”

정시우가 결론을 내고 세트나크가 보증해 준 것에 의하면 지금의 베아체는 생전의 베아체와는 다른, 어디까지나 그녀의 사후 남은 강렬한 의지의 집합체에 불과했으나 그렇다 해서 그녀가 베토의 누나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는 그녀에게 필히 알려 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베토 본인이 너를 무서워할 가능성이 있어. 괜찮겠어?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남아 녀석을 지켜보는 쪽이 더 괜찮을지도 모른단 얘기야. 너에게도, 베토에게도 말이지.”

[그것은…….]

정시우의 말은 상냥하게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언데드밖에 남지 않은 세계, 최후의 최후까지 서로에게만 의존해야 했던 남매. 그런데 마지막으로 남았던 누나까지 언데드로 나타난다면 그가 겁을 먹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를 만지고 싶어.]

“그러냐.”

정시우는 그녀가 내놓은 대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었다. 그녀가 베토를 생각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베토가 그녀를 생각한다면 필시 둘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맞이하리라. 정시우도 그들을 보며 영혼이란 무엇인지 보다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전부 엉망진창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도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은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정시우는 아직도 밭은기침을 토해 낼 뿐인 베토를 안아 올려 급한 대로 침대에 누이곤, 녀석만 빤히 바라보고 있는 베아체를 이끌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동생이 눈을 뜨기 전에 돌아오자고.”

[그렇게 간단하게……?]

“그래.”

그곳에 있는 것이다. 재료만 준비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만능의 가마가. ……아니, 실은 도마지만.

[가공을 할 수 있는 재료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신선한 강자의 육신 1,956/500kg]

[마갑의 재료 14,904/2,500kg]

[강자의 혼 1/1]

[데스나이트 케이나의 핵 1/1]

[마감재 5,819/200kg]

[재료를 모두 도마에 올려놓으면 가공이 시작됩니다. 마감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완성도를 높입니다.]

[정말 이런 것으로 데스나이트를 완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주인님?]

“아, 속고만 살았나.”

사실 정시우 본인도 이렇게만 보여 주면 죽었다 깨어나도 믿지 못하리라. 베아체는 한없이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솔선하여 거대한 도마 위로 올라섰다. 정시우는 거기에다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올려놓았다.

가장 먼저 신선한 강자의 사체로는 바로 오늘 처리한 루이노스 리자드의 목을 올렸다.

사체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전에 지녔던 힘과 기록이 중요한 것이기에, 비록 일부라고는 하나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조건이 성립되었다. 아마 지금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재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처음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목을 어떻게 도마에 얹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끄트머리가 도마에 닿는 순간 그것이 저절로 적당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정시우는 자신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완벽히 도마 위에 안착한 루이노스 리자드 새끼의 머리통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마석은…… 그냥 이대로 둘까. 어차피 데스나이트의 능력을 강화시켜 줄 텐데.”

“저 정도 마석이면 오빠 마력이 못해도 10은 오를 텐데요.”

“데스나이트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제 이전보다 더 빠르게 마력을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거든.”

정시우는 용의 감각을 얻은 이후, 이전에도 그랬지만 보다 더 격렬하게 이 세상의 마나를 빨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에 1 정도의 마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자연의 마나와는 다르게 가공된 마나의 결정 마석을 보다 더 적합한 용도로 써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이다.

“그다음은 마갑인가.”

마갑의 재료로는 일찍이 아주 좋은 것들을 얻어 두었다. 바로 그랜드캐니언에서 마주했던 갑각 몬스터들! 인벤토리를 탈탈 털어 흑색의 갑각을 쏟아부은 후, 온갖 마감재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데스나이트 케이나의 핵을 올렸다.

“미리 말해 두지만, 생전의 모습은 찾지 못할 거야.”

[이미 각오하고 있다.]

멍한 눈을 뜨고 있는 케이나의 머리통은 은색의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보랏빛의 눈이 조화를 이루어 무척이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말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핵심이 되는 만큼 외형적인 요소는 베아체가 아닌 케이나에게 맞추어질 확률이 높았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정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도마에서 눈부신 빛이 솟구쳤다. 모든 재료가 순식간에 케이나의 핵으로 빨려 들어가며, 케이나의 핵 또한 한순간에 그 형태를 잃고 그저 순수한 빛으로 화했다.

“데스나이트의 탄생이라니 정말 대단하기는 한데…… 오빠.”

압도적인 마나의 격류! 그 안에서 가다듬어지는 새로운 언데드의 형태를 희미하게 감지하며 수아린이 물어 왔다.

“죽음의 마나가 별로 안 느껴지는데요.”

“네가 죽음의 마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마 세트나크의 마나일 거야. 하지만 기껏 얻은 아군을 세트나크의 종으로 만들어 낼 필요는 없잖아. 내가 지금 만들어내는 데스나이트는 그저 죽음에서 돌아와 움직이는 기사일 뿐이야.”

“음, 모르겠어요.”

정시우는 직관적으로 해설해 주기로 했다.

“세트나크에 의해 탄생한 데스나이트가 아니라, 내 손에 의해 탄생한 데스나이트라는 얘기야. 농X 초코파이랑 롯X 초코파이의 차이지. ……아마도.”

“그것 참 퍽이나 직관적이네요.”

이미 죽은 시체에 유령의 혼이 들어가 움직이니 그것을 언데드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둘을 이용해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세트나크조차 이룰 수 없는 업적, 창조주의 영역일 터였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탄생하고 있는 것은 분명 언데드가 맞았다.

그래야 할 터인데.

“특이한 생기가 돌긴 하네.”

“그러게요.”

데스나이트의 생성은 마치 마법소녀가 변신이라도 하듯 빛에 감싸여 진행되었다. 그러나 마석을 품은 루이노스 리자드의 목이 뼈와 근육과 살점과 피와 피부로 나뉘고, 케이나의 핵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영향을 받아 가공되는 모습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앗, 아앗.”

수천 킬로그램에 달하는 사체가 끊임없이 압축되고 압축되어, 끝내 인간에 적합한 크기가 되어 케이나의 핵과 결합했다. 이어서 베아체의 혼이 뭘 저항해 볼 틈도 없이 그 안에 빨려 들어갔다.

“오, 오빠. 눈 감아욧.”

“아, 정말 이상한 걸로.”

그다음부터 본격적인 조형이 시작되었는데, 문제는 생전의 케이나인지 베아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이 되는 여성의 육신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시체라면 평온하게 볼 자신이 있는 정시우였으나 점차 빛 너머로 드러나는 창백하고 흰 피부며 여성스러운 육신이 지나치게 인간의 그것과 같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정시우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수아린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잽싸게 자신의 손을 뻗어 정시우의 눈을 가렸다. 하여간 귀여운 녀석이었다.

[후…… 하아아…….]

정시우가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인체의 조형이 전부 다 끝나고, 남은 재료가 모두 그녀의 육신에 달라붙어 갑옷의 제조가 시작되었다.

물론 데스나이트의 핵심은 육신이며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지만, 강한 마력을 부여받은 갑옷 역시 데스나이트의 빼먹을 수 없는 필수 무장!

“이제 됐지?”

“앗, 아직 잠깐 조금, 아앗.”

“어라? ……그렇지!”

수아린의 손을 치워 내고 현장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정시우는 그제야 인벤토리에 넣어 놓았던 베아체의 대검에 생각이 미쳐, 곧장 그것을 꺼내어 빛 무리 안으로 던졌다. 다행히도 대검은 순조로이 그 안에 정착하여 갑옷과 동조, 변화했다.

“아, 얼굴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많은 부분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은빛의 기다란 머리칼이나 보랏빛의 눈은 여전했다. 그러나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롭게 변하고, 목이 조금 더 길어지며 콧날이 섰다.

그 눈동자에 초점이 맺힌 다음 순간, 갑각이 그 위를 부드럽게 덮으며 투구를 형성했다. 이어서 갑옷과 함께 변화를 마친 후 자연스럽게 그녀 앞으로 둥둥 떠오른 대검을, 갑옷으로 덮인 양팔을 들어 올린 그녀가 스스로 붙잡았다.

[후우.]

그것으로 모든 변화가 끝났다. 그녀는 스스로 걸어 도마 아래로 내려와 정시우와 마주했다. 세트나크의 데스나이트였던 시절보다도 강해졌다는 것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예리한 기세로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되었군. 하지만 주인님.]

그녀는 투구의 바이저를 위로 올려 얼굴을 드러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이래서야 나는 반생물이다. 데스나이트도 인간도 아닌, 그 중간의 무엇인가다.]

“심장은 안 뛰잖아.”

[그러나 생자의 심장 대신 나의 중심부에 깃든 마력 코어가, 마력이 함유된 피를 만들어 내어 순환시키고 있어…… 그것이 전신과 감응하며 증폭된다. 이건 신의 방식도 인간의 방식도 아냐. 알고 있는가, 주인님?]

정시우는 어쩐지 그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이건 드래곤의 방식이다. 지금의 나는 데스나이트가 아냐. 굳이 말하자면…… 그래. 드래곤나이트다.]

“롯X 초코파이라면서요, 오빠……?”

“……미안.”

초코파이일 것이라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결과 나온 것은,

몽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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