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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107화 (107/260)

# 107

107화.

“좋아, 그럼 그랜드캐니언으로 가 볼까.”

바이크를 조종하여 높은 고도에 올라와 투명화 옵션을 발동하고, 휴식처 입장 열쇠의 힘으로 은신까지 완료한 직후 정시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수아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몇 시간에 걸친 회의에 그 초거대 몬스터와의 전투까지 있었잖아요. 아까 지쳤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오빠?”

“확실히 조금 지치기는 했는데…… 기왕 미국까지 온 김에 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해 두고 싶었거든. 마침 모두 떼어 낼 기회이기도 했고.”

그랜드캐니언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행이지만, 만약 이세계와의 통로가 남겨져 있다면? 정시우는 자신이 이세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마저 다른 이들에게 알려 줄 필요는, 아직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녀석들도 데리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제법 섭섭해하는 것 같았어요. 꼭 애인한테 버림받은 듯한…….”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웃는 얼굴이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시우는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는 수아린을 무시하고 바이크를 몰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리나에게 이 일을 숨겨야 했던 탓에 그랜드캐니언과 가까운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대로 최대 속도로 가면…… 1시간 반 정도 걸리려나.”

새삼스럽지만 팬텀바이크는 엄청나게 빨랐다. 스포츠카보다도, 플레이어보다도, 제트기보다도 빨랐다.

바이크를 타고 있는 정시우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만약 은신과 투명화를 뚫고 바이크의 모습을 옆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가 있었다면, 허공에 푸른빛의 선이 그려지는 것으로밖엔 보지 못할 터였다.

“그러면 그동안 전투질주 스킬이나 더 숙련해 둘까. 아까 싸울 때 느낀 건데, 역시 탈 것에 타고 있을 땐 스킬과 탈 것을 동조화하는 게 가능하더라고. 그 덕에 아까 망치 메다꽂는 속도도 엄청 빨랐잖아?”

“그리고 저는 멀미를 했죠.”

“전투질주 스킬을, 자신의 육체가 아닌 탈 것과 동조한다…… 팬텀바이크를 육체의 연장선으로 삼으신 겁니까?”

용세하는 역시 질주 계열 스킬을 익히고 있는 돌격병 출신이라 그런지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정시우가 그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덧붙였다.

“이건 어떻게 보면 무기를 다루는 전투의 기본이기도 해. 너도 랜스를 들고 돌격할 때 전신의 힘을 모두 랜스에 집중하잖아? 난 그걸 바이크에 적용한 거야. 힘의 방향성을 잘 잡아내고 바이크와 호흡을 맞추면 얼마든지 가능해.”

“죄송합니다, 형님. 저는 무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잘 모릅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지. 흠, 그러니까…….”

정시우는 잠깐 고민하다가는 그래,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은 네 육신의 컨트롤부터 시작해.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마나의 흐름을 읽어. 단순히 힘을 발출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힘을 어디에 집중시켜야 하는지, 퍼트려야 하는지 생각하는 거야. 사람의 육신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명심해. 하다못해 네 손가락 하나 움직일 때에도, 귀 한 번 펄럭일 때에도 전신의 신경과 세포가 영향을 주는…….”

어라? 정시우는 용세하에게 설명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어마어마한 깨달음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형님?”

“음…….”

그는 용세하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되짚었다. 육신은 유기적, 그야 생물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신체의 일부를 움직일 때 전신의 신경과 세포가 영향을 준다…….

‘일부, 전체…… 아.’

그제야 비로소 그는 뉴욕으로 오던 비행기에서 하던 상념을 되살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가 여태까지 저지르고 있었던 오류, 그것은 오감 스킬을 자신의 신체 일부분에 국한시킨 것이었다. 후각을 코에, 청각을 귀에, 미각을 혀에…….

그의 육신이 지닌 감각은 상호교류하며 모든 정보를 주고받는데, 정작 그것에서 비롯된 오감 스킬은 모두 뿔뿔이 흩어 놓아 상태를 고정시켜 놓았으니 그것을 정상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물론 오감을 깊이 느끼고 마나로 보조하기 위해서는 이런 형태로 스킬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에 멈추면 안 되었다. 오감 스킬의 생성은 단지 하나의 스킬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형님……?”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각자의 영역에 짱박혀 있던 오감 스킬들이 그제야 다시 미약하게나마 공명을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다가 아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직감 스킬과 오감을 모두 연결하지 못하면 진정한 합일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육신에 대한 깨달음만이 아니라 마나와 그로부터 비롯된 스킬, 신체와의 조화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미안하다, 세하야. 설명 다시 해 주마.”

“아, 알겠습니다.”

그것이 지금은 아니다. 직감을 보다 깊이 느끼고 오감과 공명하기 위해선 치열한 전투가 필요했다. 김하룡을 띄워주기 위해 얼간이처럼 등장하여 얼간이처럼 죽어 버린 덩치만 커다란 괴물과의 전투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순간 목이 날아갈 것만 같은 전투가.

정시우는 용세하에게 전투의 감각에 대해 가르쳐 주는 한편 전투질주를 발동하여, 팬텀바이크를 보다 빠르게 모는 데에 집중했다.

뉴욕에서 그랜드캐니언까지는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압도적인 간격이 있었지만, 정시우는 고작 1시간 17분 만에 그 거리를 가로지르는 데에 성공했다.

“플레이어의 강화된 육신이 아니었다면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추워요, 오빠…….”

“안으로 들어와 있어.”

“네에.”

수아린은 기본적으로 그를 치료하거나 보조하는 서포터 역할이기에 그의 품 안에만 있어도 사실상 별 문제가 없다.

레벨이 빠르게 오르면서,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마나를 받아들여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되면서 바깥에서도 몇 시간 정도는 인간 모습으로 아무런 무리 없이 버틸 수 있게 된 수아린이었으나 그녀는 굳이 강림하지 않았다. 그것이 숙고 끝에 그녀가 택한 그녀만의 경쟁 방식이었다. 무엇과의 경쟁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있을까요, 형님?”

“세트나크의 파편이 개미굴에 얌전히 잠들어 있다가 튀어나왔을 확률은 무척 적을 거라고 봐. 즉…… 그건 하늘성이나 개미굴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하늘성이나 개미굴로도 미처 막지 못한 연결 통로에서 튀어나왔을 거야. 오타루의 신전도 마찬가지지. 확률은 있다고 본다.”

“미처 막지 못한 연결 통로…….”

용세하의 목소리가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여태껏 하늘성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을 거대 몬스터가 뉴욕에 등장했던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성에 나타난 적이 없으니 개미굴도 아닐 터, 놈은 새로이 지상에 뚫린 통로를 통해 나온 것이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하늘성만으로는 침략자들을 막아 낼 수 없다. 개미굴의 백업으로도 모자라다. 놈들은 지구의 지상을 직접 노리기 시작했다. 이 모두 정시우가 파괴자로 전직할 때 이미 접한 정보이지 않던가. 새삼스러울 일은 없었다.

“그런데 형님, 그렇다면 루이노스 리자드가 나타났던 통로 또한……?”

“그게 뉴욕에는 통로가 남아 있지 않았단 말이지. 놈에겐 신의 흔적이 그리 진하게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 때문일까.”

놈의 강대한 덩치와 레벨에 비해 놈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신의 가호를 받은 놈과 받지 않은 놈, 놈들의 생명력과 마력은 그 부분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

“신의 흔적…… 단순히 레벨의 고저나 마나의 양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 통로를 오가는 신의 힘에 따라 통로의 존속 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씀이군요.”

“거기까진 몰라. 아직 케이스가 적으니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단지 지금 상황이 두더지 잡기랑 비슷하다는 생각만은 드네.”

지구의 이곳저곳에서 몬스터며 신의 흔적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중 이세계와 이어지는 통로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니 정시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이는 대로 다 때려 보는 수밖에.”

“잘도 그렇게 전투적인 결론이.”

수아린이 감탄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시우는 딱히 지구를 지키겠다는 숭고한 일념으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단지 강한 적이, 그의 성장을 위한 보상이 그곳에 있기에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지금 지구를 둘러싼 사태가 아리송해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아도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찾아서 보이는 대로 때려 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이건 빡세네.”

“그렇지요…….”

정시우는 빠르게 바이크를 몰아 일전 세트나크의 파편, 그것을 지키고 있던 언데드들과의 전투가 있었던 현장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 세트나크의 냄새가 남아 있을 뿐 이세계와의 통로는 없었다.

“하긴 여기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바로 잡아냈겠지만…….”

그는 고개를 들어 한숨을 쉬었다. 통로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쉬이 찾기 힘들 만큼 난해한 마력을 지니고 있고, 그렇다고 일일이 수색하자니 그랜드캐니언이 터무니없이 넓었다. 차라리 없으면 없다고 누군가 확답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좋을 텐데…….

“역시 돌아갈까요?”

“아니.”

그는 수아린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찾기 힘들다 뿐이지 통로는 분명히 있어. 그것도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아. 내 직감이 그렇게 고하고 있어.”

“그놈의 직감…… 알았어요, 그럼 시작하죠.”

“그러자고.”

그는 일대를 세밀하게 탐색하기 위해 일단 팬텀바이크에서 내렸다. 그 후 품에서 이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추적하는 능력을 갖게 된 2레벨의 탐색기를 꺼내어 들고는 탐색을 시작했다.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확장되면서 어지간한 비밀 정도는 혼자 힘으로도 찾아낼 수 있게 된 그였으나 이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는 오직 그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는 특급 비밀. 탐색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역시 그때 내가 알차게 빨아들였어. 아주 미약하게 구린 냄새가 남아 있을 뿐, 신의 힘 그 자체는 별로 없네.”

“신의 힘에 냄새도 있어요? 여기선 시체 썩는 냄새밖에 안 나는걸요.”

“신의 파편은 완전히 없앴지만, 이 넓은 자연공원 안에 언데드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잠깐.”

일행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수색하기를 세 시간여, 사소한 대화에서 정시우는 힌트를 얻었다.

후각 스킬을 얻고 그는 마나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냄새를 탐지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후각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탐지할 수 있다. 미약하게나마 남은 신의 흔적이라고 해도!

“그거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후각 스킬을 최대로 활성화하여, 세트나크의 힘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구린내가 가장 강한 곳을 탐색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빌어먹을, 아직 후각 스킬의 레벨이 1이어서 그런지 냄새의 농도를 구분하기가 힘들어…….’

코를 이리저리 벌름거리며 냄새를 탐색하고, 신중하게 걸음을 내딛는 정시우의 모습은 조금 해괴하게까지 보였다. 그러나 그 태도가 워낙 진지해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전신으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용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거야.’

신체의 일부 기관에 의지하지 않고 전신을 이용하여 감각을 느끼고 행동하는 용이었더라면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내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다. 스킬화한 지금도 그렇다. 오감을 합일하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러나 정시우가 쓴웃음을 짓던 그때 우연히도 탐색기가 진동했다.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지상이 아닌 지하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정시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도 신이 나를 버리지는 않았네.”

“지금 신의 흔적 부수러 가는 거잖아요.”

“그랬던가? 뭐 아무렴 어때.”

그는 히죽 웃으며 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젠 꼬리로 땅을 뚫는 것에도 어지간히 이골이 난 상태다.

“얼마나 파야 입구가 나올지 내기할래?”

“아뇨, 됐습니다.”

정시우는 그로부터 다섯 시간 동안 죽어라 땅만 팠다. 땅을 파면 팔수록 더욱 짙어져 가는 구린내에 환호하며 방향을 그때그때 재설정했다.

그는 무려 3킬로미터를 파낸 끝에야 간신히 이세계로의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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