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105화.
정시우는 한 가지 오산을 했다. 그것은 바로 괴물이 대지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으면 UN본부 빌딩들은 사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무너진다! 전부 무너진다!”
“저 괴물 새끼 덩치가 얼마나 크기에…… 아니, 미스터 정은 정말 인간이 맞는 거냐!?”
“민간인 다 죽겠다 이놈들아!”
그러나 정시우와 괴물이 정면으로 충돌하여 괴물이 일방적인 데미지를 입고 몸부림치며 기어이 총회 건물이 상큼하게 아작이 났다. 마지막으로 민간인들을 데리고 건물을 빠져나오던 플레이어들이 고래고래 욕설을 내뱉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자기 실수로 입천장을 깔끔하게 태워 먹은 거대 괴수가 분을 이기지 못해 마구 굴렀다. 놈을 억제해야 할 플레이어들도 일단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거친 진동이 일대를 뒤덮고, UN본부는 물론 일대 공원과 도로 곳곳에 쩍쩍 금이 일기 시작했다.
정시우는 그런 광경을 남일 바라보듯 하며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아, 이건 글렀네.”
“퍽이나 일찍도 깨달으셨네욧!”
이젠 조금 정겹게 들리는 수아린의 태클을 언제나처럼 가볍게 받아넘긴 정시우는 바이크를 조종해 다시 괴물에게 돌진했다. 놈의 괴팍한 난동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난 것과는 정반대 움직임이었다.
“너……!”
“오, 안녕.”
그런 그의 옆으로 김하룡이 날개를 펼쳐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계속 전신을 불태우기는 힘든 모양인지 자신이 들고 있는 대검에만 불꽃을 태워 올리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강하게 진동하는 신의 마나가 정시우의 심기에 무척 거슬렸다.
하지만 지금은 놈과 시비를 틀 때가 아니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건 당장 눈앞의 저 끔찍한 괴물을 해치운 후에 알아볼 일이었다.
“자, 협력해서 멋지게 잡아 보자고!”
“협력? 머리가 돌아 버린 건가?”
우X르도 울고 갈 태세전환에 김하룡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시우는 다음 순간 허공에서 멈춘 김하룡을 쿨하게 지나쳤다.
그러나 정시우의 해머가 길게 허공을 가르며 재차 괴물의 면상을 가격하려던 그때, 괴물이 괴성과 함께 기어이 대지에 박혀 있던 팔을 뽑아 올려 정시우에게 휘둘러 왔다! 놈의 팔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검은 오러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 그의 육신이 분쇄될 것이라 확신케 했다.
[쿠오오오오오오!]
“흡!”
그러나 충돌 직전 팬텀바이크가 생명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기민하게 그것에 반응했다. 정시우는 거세게 휘두를 기세였던 해머를 빠르게 인벤토리에 수납하며 바이크와 함께 허공으로 치솟았다.
직후, 그가 있던 자리를 가르고 지나간 괴물의 팔이 대지에 직격하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카하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악!”
여파가 대지를 타고 퍼지며 기어이 인근 도로를 모두 강으로 침수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놈의 오러가 마치 물감처럼 물 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거 독이잖아!”
“오, 제길…… 강으로 퍼지고 있어!”
[쿠와오오아아아아아아!]
몬스터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뉴욕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되어 닥쳐왔다.
더 이상 몬스터의 난동으로 인한 직접 살상이 문제가 아니다. 단지 한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나 날뛰는 것만으로 강에 독이 퍼지고, 도로와 건물이 무너진다. 몬스터의 위협 수준이 자연재해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쿠, 쿠극…… 쿠그오오오오!]
인간의 절망에서 우러 나오는 냄새를 맡기라도 한 것일까? 놈은 팔을 하나 꺼내든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목에서 이어지는 어깨를 쑥 바깥으로 내밀고는 팔로 대지를 짚고 안간힘을 썼다. 완전히 바깥으로 빠져나오려는 것이다.
신체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UN본부 빌딩을 부숴 먹었는데, 만약 놈의 몸통이 전부 빠져나온다면 농담으로는 끝나지 않게 될 터. 심각성을 깨달은 플레이어들이 다시 놈에게 몰려들었다.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 피해를 이 이상으로 늘리지 마…… 자, 잠깐.”
[콰하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악!”
“이, 이럴 수가…… 시몬! 시모오오오오온!”
그러나 아무리 베어도, 때려도, 마나를 퍼부은 마법을 날려도 놈은 꿋꿋이 몸을 움직였다. 오히려 놈이 전신으로 발사한 검은 오러의 바늘에 재수 없이 관통당한 플레이어 몇이 죽기까지 했다.
그들 모두 오늘 초청된 80명의 플레이어 대표는 아니나 그들과 행동을 함께하는 길드나 파티 멤버들, 즉 충분한 수준의 정예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턴킬 당한 것이다!
“저 빌어먹을 자식 대체 레벨이 몇인 거야!”
“만약 이런 몬스터가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면 지구는 끝장이야. 빌어먹을, 제기랄……! 신이 정말로 지상에서 인간을 지워 내려 작정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김하룡이 불꽃에 휩싸인 대검을 휘둘러 몬스터가 쏘아 내는 검은 오러의 비늘을 막아 내는 불꽃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길드원들을 부려 상처를 입은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물러나게 하며 그가 당당하게 외쳤다.
“어쨌든 놈은 상처를 입고 있어! 덩치에 비해서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몬스터다!”
정시우의 활약으로 잠시 기가 죽었던 김하룡이었으나, 그는 이내 기운을 차리고 다시 플레이어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망치로 한 대 치고 하늘로 튀어 버린 정시우와, 지상에서 플레이어들과 함께 싸우는 자신. 누가 더 영웅에 어울리는지는 명백하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플레이어들은 여태까지 던전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싸워 왔기에 거대한 몬스터와 싸워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덩치가 크든 작든, 결국 강함의 본질은 레벨에 좌우되는 것. 놈의 레벨이 덩치만큼 압도적이었더라면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을 터이다.
“하지만 우리가 10년간 쌓아 올린 격은 분명 놈에게 통하고 있다! 놈은 상처를 입었고, 피를 흘리고 있잖아! 우오오오오오오오!”
실로 감동적인 연설에 이어 그가 직접 몬스터에게 돌진했다. 플레이어들은 용맹하게 괴물에게 돌진해, 놈이 발산하는 검은 오러의 파장을 불꽃으로 태워 없애며 동시에 검을 휘둘러 놈의 몸통에 길게 화상 자국을 남기는 김하룡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기운을 얻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활약으로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인간이 재앙에 맞설 용기를 얻은 바로 그 순간,
“으랏차아아아아아아아!”
[쿠하아아아아악!]
“뭣!?”
몬스터의 반격을 받고 모습을 감추었나 싶었던 정시우가 돌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며 괴물의 머리통에 재차 거대 해머를 때려 박았다. 모두의, 괴물의 신경마저 김하룡에게 집중된 바로 그 한순간의 공백을 이용한 절묘한 공격이 치명타로 명중했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정시우!”
“저 자식이 또!?”
또다시 그에게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기게 된 김하룡이 이를 악물었다. 물론 정시우는 그렇게 될 것을 노리고 한 일이 맞았다. 몬스터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하룡을 쩌리로 만드는 일이 그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실로 사악한 일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큭!”
“꽉 붙잡아, 대지가 갈라진다!”
해머 강타가 불러일으킨 충격은 지대했다. 실로 압도적인 파괴력, 압력! 한 명의 인간이 만들어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파괴력에, 조금씩 대지 바깥으로 빠져나오던 놈의 몸뚱이가 다시 대지 깊숙이 파묻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쿠화아아아앙!]
괴물은 덩칫값도 못하고 처량하게 울부짖으며 마구 머리를 흔들었으나 이미 짓이겨지다 못해 박살이 난 놈의 머리통에서 튀어나오는 핏줄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덤으로 해머에 타오르던 불꽃도 놈의 머리통에 옮겨붙었다. 급수로 따지면 김하룡의 그것에 비해 한참은 낮을 터인 해머의 불꽃, 그것이 정시우의 기백 탓인지 괴물의 피부가 터져 속성 저항력이 낮아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쉽게 옮겨붙어 놈에게 무시할 수 없는 지속 데미지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키힉, 키흐아아아아!]
“좋아해 주니 나도 참 기쁘다!”
한편 거대화한 해머를 쥐고 있는 정시우의 양팔 근육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민간피해가 더욱 커지기 전에 괴물을 정리할 요량으로 괴력 스킬을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스파크를 튀기며 허공을 가르는 팬텀바이크와 그 위에 앉은 비정상적인 거구의 정시우, 그 손에 들린 거대 해머까지. 그가 발하는 존재감은 어딘가 인세를 벗어난 듯 초월적이었다.
그러나 그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사만은 실로 저렴했다.
“그럼 한 방 더 먹어라!”
[캭!]
끔찍한 크기의 거대 해머가 부드럽고 빠르게 위로 치솟았다가, 한순간 번개처럼 떨어져 내렸다. 아직 타격을 먹은 순간의 데미지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던 괴물은 무방비하게 두 번째 강타에 얻어맞았다.
“좋아, 잘 들어가네! 지금부터 연속으로 간다! 흐아아아아아!”
[쿠…… 쿠아아아아아!]
괴력 스킬을 구사하고 있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조금도 없다! 정시우는 호쾌한 함성을 내지르며 망치로 연달아 놈의 머리통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수십 미터 길이에 이르는 거대 해머가 뿅망치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키…… 키히이이이!]
“어딜!”
놈은 너무 아파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저항을 하겠답시고 플레이어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그 검은 오러의 바늘을 쏘아 내 보기도 했지만, 바늘은 그의 육신을 꿰뚫기도 전에 신성한 힘을 품은 방어막에 가로막혀 좌절되었다. 정시우의 레벨이 오르면서 만능 사제로서의 위엄을 되찾은 수아린의 서포트였다.
“하…….”
“이건…….”
그 거대한 덩치의 괴물이 망치에 연달아 얻어맞으며 맥을 못 추는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기껏 다시 불태웠던 전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그저 정시우가 괴물을 두들겨 패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저런 괴물이 다섯 마리 더 나타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정시우…… 어쩌면 저 사람이야말로 주께서 우리를 위해 내려 주신 그분의 대리자가 아닐까.”
“농담도. 저런 천사가 지키고 있는 천국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것은 여유였다. 저렇게 거대한 몬스터가 도심에 나타났는데 이런 평온을 느낄 수 있으리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다. 꼭 슈퍼맨의 활약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심정이다.
플레이어로 살아온 10년, 그들 모두 자신이 특별하다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정시우를 보면서는 질투감조차 일지 않았다. 이미 자신들과 정시우는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쉴 거야!? 다들 시우 도와!”
그렇게 때 아닌 평온을 되찾은 플레이어들을 향해 마리나가 윽박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가 쏘아 낸 강력한 마탄이 정시우의 연속된 타격으로 인해 저항력이 약해진 괴물의 피부를 제법 손쉽게 뚫고 들어가 놈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다른 플레이어들도 사탕에 개미가 달려들듯 우수수 달려들어 몬스터를 공격했다. 놀랍게도,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던 조금 전과는 달리 그들의 공격에 괴물의 육신이 진동하며 피를 토해 냈다.
그들 모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괴물은 전신 피부 위로 마나를 흘려 방어력과 저항력을 극한에 가깝게 끌어 올리는 방어 스킬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정시우의 끔찍한 공격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스킬이 풀리는 바람에 플레이어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된 것!
“뭐야, 우리 공격도 제대로 들어가잖아!”
“정시우가 놈을 맞상대하고 있기 때문이야! 혹시나 놈이 방어력을 되찾기 전에 확실히 끝내야 해!”
“마리나의 말이 맞았어. 그에게만 모두 맡겨 둘 수는 없지……! 아주 조금이라고 해도 거들자!”
“우리는 세계 플레이어 대표다!”
정시우에게 맞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마리나, 세리아를 필두로 한 플레이어들의 고화력의 폭격이 쏟아졌다. 처음의 압도적인 기세가 거짓말처럼 여겨질 만큼 괴물은 무력하게 침몰해 갔다. 놈의 저항도 갈수록 미비해져, 종래엔 대지에 몸을 누이고 부들부들 몸을 떨 뿐이었다.
“좋아, 이제 숨통만 끊으면 되겠어!”
정시우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괴물을 두들기고 있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 안심하고 있었다. 괴력 스킬은 어디까지나 유지시간에 한도가 있는 스킬, 그 시간 안에 놈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나가 적절한 타이밍에 플레이어들을 선동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주 조금 일이 귀찮아졌을 것이다.
“개, 씨X…….”
한편 주연 자리에서 단숨에 엑스트라B로 전락한 김하룡은 죽어가는 몬스터를 보며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거대 몬스터를 용맹과감하게 공략하며 신의 힘을 지니고 인간을 돕는 강한 전사이자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더 센 놈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젠장!’
그러나 아무리 욕설을 내뱉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정시우를 주목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다못해 플레이어들을 선동한 마리나의 역할이라도 뺏어왔어야 했는데 완벽하게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해서 UN본부를 깔끔하게 무너트린 거대 몬스터와의 사투는 인간 측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하 플레이어, 파괴자 정시우가 전 세계인의 뇌리에 새겨지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