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100화.
정시우의 마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가뜩이나 적은데 오감 스킬을 만들어 내느라 소모하기까지 했으니 더했다.
물론 그동안 마석을 부지런히 섭취해 120레벨 플레이어 수준으로까지는 끌어 올렸으나, 그의 다른 스테이터스가 200레벨 수준을 아득히 초과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 불균형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터무니없는 양의 마나를 소모하는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을 들고 벌써 네 발째의 레이지 라이플을 쏘아 내고 있었다. 지구에 마나가 차오르게 되면서, 마나를 소모하는 동시에 자연으로부터 마나를 받아들여 회복하는 법을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회복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내가 겁나 특별한가 보지.”
기겁한 수아린의 지적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몬스터 무리를 재조준하는 정시우였으나 실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감 스킬, 보다 정확히는 시각과 촉각 스킬이 있기 때문이었다.
외부의 마나를 내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부. 시각으로 자연의 마나를 파악하고, 그것을 보다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도록 촉각 스킬로 피부에 마나를 받아들이기 위한 통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더니 이것이 의외로 효과가 뛰어났던 것.
피부는 본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내부 육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인 만큼, 위협이 되는 자극과 도움이 되는 자극을 분류해 촉각 스킬로 어느 것을 받아들이고 어느 것을 내칠지 컨트롤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 봤자 미친 놈 취급받겠지.’
아직 촉각 스킬을 만들지도 못한 그들에겐, 피부에 의지를 부여해 마나를 받아들인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재차 라이플을 조준했다. 이젠 가시거리에 놈들 무리가 들어와 있었다.
“대형 잠자리!?”
“하늘성 던전에서는 관측된 적이 없는 종입니다. 어쩌면 지구에서 자연발생 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연발생은 아냐.”
정시우가 단언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는 듯이 피하는 잠자리 몬스터 무리였으나 실로 황당하게도 탄환이 도중에 직각으로 꺾여 두 마리를 동시에 꿰뚫었다.
남은 숫자는 정확히 열두 마리. 그쯤에서 정시우는 라이플을 거두고 거랑의 앞발과 거인의 비명을 꺼내어 쥐었다. 아무리 마나 회복 속도가 빨라도 무한정 쏴 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너무 뻔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긴 한데, 놈들한테서 이질적인 힘이 느껴져.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힘…… 신의 힘이야.”
대부분의 몬스터는 저들만의 신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유독 신의 힘을 강렬하게 품은 이들이 있으니, 이전 설악산에서 싸웠던 제사장이 그랬고 뇌신 라이아의 신전을 지키고 있던 몬스터들이 그랬다.
맹목적으로 파괴와 살육을 추구하는 몬스터들과 달리, 신의 직접적인 명을 받아 움직이는 몬스터들. 그놈들이야말로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좋겠지. 그리고 지금 저 거대 잠자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는 조금 약했지만 확실했다.
“……설마 저희가 하려는 일을 눈치채고 도중에 방해하려고? 대체 어디서 어떻게 알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미 지구에 발을 들여놓은 세력이 제법 있는 모양이지?”
더욱이 이 비행기를 정확히 포착하고 공격해 올 정도라면 인간 중에 그들의 협력자가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유력한 후보도 있지……. 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내가 좌절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실망인데.’
정시우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동시에 두 망치를 거대화했다. 수 톤이 넘는 망치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도 정시우의 균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기가 질린 표정을 짓는 세리아를 뒤돌아보며 가볍게 확인했다.
“세리아, 보조 가능하겠지?”
“무, 물론입니다. 영광입니다!”
“좋아, 먼저 간다. 네 몸은 알아서 지키도록!”
팬텀바이크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질주했다. 그의 급가속에 화들짝 놀라며, 무의식중에 입을 벌려 에너지탄을 쏘아 내려는 선두의 잠자리 괴물의 대가리를 망치로 가볍게 내려쳤다. 끔찍한 굉음과 함께 그대로 추락하는 잠자리!
정시우가 일격을 가한 시점에 이미 주위로 몰려든 잠자리 괴물들이 저마다 입을 벌려 마탄을 토해 내고 있었으나, 비행기 안에 갇혀 있던 때도 아니고 그것을 멍청하게 맞아 줄 정시우가 아니었다.
“흡!”
팬텀 바이크는 단순히 허공을 질주하는 기능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헬리콥터나 가능할 법한 수직하강과 수직상승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크샷!]
[키히이이이이!]
그가 바이크를 조종해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자, 미처 그에 반응하지 못하고 탄을 쏘아 낸 잠자리들이 서로의 공격에 얻어맞아 추락했다. 포위섬멸진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정시우는 놈들의 머리 위쪽에 자리를 잡고,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당황하여 급하게 몸을 돌리는 잠자리 몬스터들을 비웃듯 거대해진 해머 두 개를 동시에 휘둘러 전 방위 강타를 펼쳤다.
[끼이이익!]
[끼이!]
강타가 아니라 허리케인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을 끔찍한 휘두르기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두 마리가 추가로 추락했다. 정시우는 그가 해머를 휘둘러 명중시킬 때마다 수수깡처럼 부러지는 놈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공격력에 몰빵하고 방어력은 내던진 놈들인가.”
“오빠가 지나치게 강한 것뿐이거든요.”
보다 정확히는, 놈들은 마력을 이용한 공방에는 강하지만 물리력에는 손을 못 쓰는 구석이 있었다. 세리아가 빠르게 허공을 질주하며 황금의 에너지 광선을 쏘아 냈지만, 그것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잠자리가 죽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 그런데 오빠가 쏜 마탄에는 죽었잖아요.”
“네 입으로 말했잖아. 내가 졸라 쎄서 그래.”
“아, 재수 없어.”
정시우는 입을 놀리면서도 끊임없이 바이크를 조작했다. 양발만으로 바이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이크의 상승과 하강 옵션을 조작하는 것만으로 실로 능숙하게 허공을 질주하며 적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것이 가능했다.
[키이이이…… 카학!]
“홈런! 한 바퀴 돌아와서 다시 홈런!”
[캬하아아아아아!]
“이 사람은 누가 보면 평생 하늘에서 싸워 온 줄 알겠네.”
“시우 님, 좌측으로 한 발 날리겠습니다!”
“오케이!”
그가 양손에 쥔 거대 해머는 잠자리들의 공격을 견제하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 한 바퀴 크게 돌아와 놈들의 뒤통수를 으깨 놓았다.
잠자리들의 마력 방어력을 대충 파악한 세리아 역시 놈들의 날개를 무력화하거나, 정시우를 향한 공격을 저지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서포트하여 놈들을 빠르게 무력화했다.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얼마 걸리지 않아 잠자리들을 모두 해치우는 데 성공했다.
“떨어진 사체는 제가 모두 수습해 놓겠습니다. 다행히도 샌프란시스코 인근인 것으로 보이니, 제 영향력이 닿을 겁니다.”
“고마워. 그럼 이제 여기서부터 뉴욕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 어?”
정시우는 말을 잇다 말고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본능적으로 팔을 머리 앞으로 뻗었다. 팟, 하는 끈적한 소리와 함께 그의 팔에 무엇인가 달라붙었다. 그것은 기다란 점액질의 혀였다.
[끼히이이이이이이이이!]
“은신 능력…… 이 자식들 봐라?”
그들이 잠자리 몬스터들을 해치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상공의 공백을 채우며 나타나는 몬스터 무리! 조금 전 잡은 것들은 그나마 잠자리와 닮은 면이라도 있었는데, 개구리 얼굴에 독수리 몸체를 지닌 이놈들은 생긴 것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키메라로군요. 그렇다면 아까 그 잠자리도 분명 키메라였을 겁니다.”
“이쪽은 저도 알고 있는 녀석들이네요. 32단계 던전에서 딱 한 마리가 나온 적 있어요. 끔찍한 회복력, 피에는 맹독…… 단지 그게 특징인 몬스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은 그저 그 키메라의 특징일 뿐이었다. 수아린이 이를 뿌득 갈았다. 정시우는 그녀의 말을 듣곤 키메라의 혀에 묶이지 않은 팔을 들어 수아린을 붙잡았다.
“지금부터 조금 어지러워질 테니까 꼼짝 말고 안에 들어가 있어라. 고개 내밀지 말고.”
“제가 전장을 살펴야 오빠를 보조하죠.”
“나도 어지간하면 그렇게 하겠다만…….”
정시우는 혀로 자신을 붙잡고 잡아당기려는 개구리 키메라의 혀를 단숨에 잡아당겼다. 끔찍한 소리를 내며 놈의 혀가 뿌리부터 뽑혀 나왔다. 허공에 녹색의 증기가 분출하는 모습으로 보아, 잠자리 몬스터들과는 달리 놈들은 확실히 피에 독을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끄호오오오오오옹!]
[꾸오오오옹!]
[끼이꾸오오우우우우!]
혀가 뽑힌 키메라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자 그것에 호응하듯 다른 키메라들이 하울링을 했는데, 아득한 너머로부터도 또한 하울링이 들려왔다. 그 의미를 깨달은 수아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이 자식들이 작정한 것 같거든. 질이 아니라 양으로 밀어붙이기로 말이지.”
물론 한 마리 한 마리 레벨 200을 넘기는 몬스터였으니, 질로도 양으로도 현재 세계 어떤 플레이어도 범접하지 못할 몬스터 습격이겠지만 정시우에게는 결국 한 방 감이었다.
“회의에 참가하려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설마 이만한 무리의 습격이 있지는 않았겠지.”
“만약 이만한 레벨과 규모의 몬스터 무리가 지구에 이 이상 머무르고 있었더라면 세계는 그대로 끝장이 났을 거예요. ……하늘성이 없었다면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반대로, 이젠 도저히 하늘성만으로는 커버를 못할 만큼 많은 몬스터와 신의 세력이 지구를 넘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성을 넘어 개미굴, 개미굴을 넘어 지상으로…… 놈들의 침투는 마치 전이되는 암세포처럼 교묘하고 지독하며, 빨랐다. 어쩌면 곧 지구에서 자연발생하는 몬스터들과 이세계에서 침입해 온 몬스터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뭐, 다 죽이는 수밖에 없지.”
“진짜 오빠한테 어울리는 말이네요…….”
정시우는 방금 키메라로부터 회수한 점액질 혀를 채찍처럼 휘둘러 그의 곁으로 접근해 오던 몬스터 두 마리를 한꺼번에 휘감았다. 대체 어디서 채찍질까지 배웠단 말인가, 감탄하는 수아린을 놔두고 그는 놈들을 끌어당기며 망치를 내질러 대가리를 부수어 놓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이!]
“죽이는 건 문제가 없는데…….”
키메라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대체 이만한 숫자가 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궁금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놈들을 다 죽이고 뉴욕까지 가려면…….
“스케줄이 장난 아니게 빡세지겠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을걸!”
“음?”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에 정시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망치를 휘둘러 그의 빈틈을 공격하려는 개구리 키메라들의 머리통을 적당히 으깨 놓은 후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이서희와 용세하, 그리고 마리나의 모습이 있었다.
“너희 엄청 요란하게 싸우고 있는 거 알아? 지금 아래에서 막 구경하고 난리도 아냐!”
“아무리 요란해도 그렇지 넌 어떻게 왔냐!?”
미리 뉴욕에 가 있을 줄 알았던 마리나의 등장에 정시우는 진심으로 놀랐다. 마리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쌍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정시우의 뒤통수를 공격해 오던 키메라들의 머리에 차례대로 바람구멍이 뚫렸다.
“실은 B&Y 뉴욕 지사에도 게이트를 만들어 놨거든! 이런 습격이 있을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너희랑 같이 서울에서 게이트를 타는 거였는데.”
“그런 식으로 매번 의지할 수는 없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래, 신세 좀 지자.”
정시우를 공격하려 한 무리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의 목적은 결코 달성될 수 없으리라. 정시우는 투지를 끌어 올리며 씩 웃었다. 활성화된 전투질주의 마나가 전신을 내달리며 그를 강화시켰다.
“빨리 쓸어버리고 회의하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