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화.
청각 스킬을 얻는 것은 후각보다 오히려 더 간단했다. 정시우는 원래 귀가 좋은 편인데, 소리를 구분해 듣는 연습을 시작하고 불과 6시간이 지나 외부 소리를 차단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러고 나자 이번엔 신체 내부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해졌다.
정시우는 반나절에 걸쳐 그것을 숙달하고, 내외부의 자극을 동시에 받아들이며 구분하기에 이르러 기어이 귀에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마력을 영구적으로 5 소모합니다.]
[플레이어 스킬, 청각(패시브)을 얻었습니다.]
“……역시 이 스킬도 결국은 내 육체를 보다 잘 다루기 위한 스킬이야. 외부의 자극만큼이나 내부로부터의 자극도 중요하니까.”
그는 옳았다. 오감을 갈고닦는 것만으로 육신은 진일보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강한 육신은 오감의 강화로 섬세함을 얻고, 힘의 정교한 운용으로 결과를 크게 증폭시킨다.
정시우는 차마 자신이 기술의 극에 이르러 있다는 오만은 품은 적도 없지만, 오감의 개방으로 인한 강화 효과는 여태까지의 자신을 비웃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효과는, 감각이 성장하면서 정시우가 어떤 식으로 육신과 마나를 움직여야 할지 깨달아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우…… 너흰 마나의 소리가 들리니? 같은 길로 움직여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마나는 다른 소리를 낸단다.”
“오빠가 점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드는데요.”
“안 들립니다, 형님. 젠장! 저도 마나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용세하 씨는 점점 사이비 신도 같아지네요…….”
용세하는 정시우 곁에서 부지런히 오감 스킬을 따라 수련해 보겠다고 애썼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집중력이 달랐다. 물론 시각 스킬로 체내를 직관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빨랐다.
본래 패시브 스킬이란 것이 라면 끓이듯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아린은 정시우가 10년 전에 플레이어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다가, 너무 무서워져서 관두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생성을 시작한 촉각 스킬이었다.
“이거 내 생각보다 힘든데…….”
“여태 만든 것들과 다를 것도 없지 않나요?”
“커버 범위가 너무 커.”
“아.”
그렇다. 다른 감각은, 그야 다른 기관에도 의존하는 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담당하는 신체 기관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눈과 코, 귀와 혀…… 그런데 촉각은 이 네 기관을 비롯한 육체 전체에 걸쳐 있는 피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마나 장난 아니게 깨지겠는데. 우걱우걱.”
“맛있어요……?”
“보라색 맛 난다니까.”
정시우는 유령들이 모아 온 마석을 쉼 없이 깨물어 먹으며 연이은 스킬 생성으로 빠져나간 마나를 보충하고 키웠다. 그 외에도 지구에서 생성되는 천연 마나를 끌어들여 자신의 마나로 만드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한 톨의 마나라도 더 끌어모아야 할 때였다.
“유령은 얼마나 성장했어요?”
“레벨 낮았던 애들은 거의 대부분 100레벨 넘긴 것 같아. 반면 원래도 레벨이 높았던 애들은 별로 성장을 못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지금 지구의 지상에는 많은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지구에서 자연생성되는 몬스터 외에도 개미굴 던전에서 비롯된 이세계의 몬스터들도 무척 많았는데, 도심에 가까운 지역의 몬스터는 어떻게든 플레이어들의 힘으로 퇴치했기 때문에 새로이 생성되는 놈들을 제외하고는 사냥감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람이 얼마 없는 구역은 그냥 지역 전체를 포기하고 몬스터들에게 내줘 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시우가 부리는 유령들만으로도 토벌이 곤란할 만큼 세력이 컸다.
그나마 세력이 적고 레벨이 낮은 놈들을 골라서 토벌하고 뒤로 빠지는 식으로 사냥했으니, 레벨이 낮았던 유령들은 제법 성장을 한 반면 레벨이 높은 유령들은 그리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이 녀석들은 쉽게 안 지친다는 장점이 있어. 이대로 매크로만 돌리…… 이대로 사냥만 계속시키면 꾸준히 성장해서 결국 전력이 되어 주겠지.”
“역시 형님도 매크로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뭐, 요는 조급해할 거 없다는 거지.”
소울 포스 스킬을 통해 정시우에게 종속된 영혼들은 적어도 경험치 획득 면에서 있어선 그와 완전히 별개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정시우와 그들을 완전히 떼어 놓고 보아야 하는가, 한다면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궁리할 때는 아니다.
[마력이 1 올랐습니다.]
[더 이상 하급 마석으로는 마력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좋아, 기어이 이 순간이 왔군.”
멍하니 생각하며 마석을 닥치는 대로 씹어 먹기를 몇 분, 정시우는 드디어 1차 한계에 부딪혔다. 하급 마석이라는 표현이 실로 애매하기는 했지만 시각 스킬로 마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정시우에게는 하급의 범위를 알아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략 150레벨. 하급이 이 정도면 중급, 상급은 어떻다는 건지…….”
새삼스럽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정시우였다. 앞으로 모습을 드러낼 무수한 몬스터들의 강함에 비교하면 플레이어들이 10년으로 이룩한 경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마리나가 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던전을 혼자 돌파하지 못하기에 정체되어 사태는 이 지경이 되었다. 마리나처럼 특출 난 인재가 딱 한 명만 더 있었어도 그들에 의해 지금 지구의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래도 설마 지구 멸망이나 하겠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그지?”
“그게 복선이란 거죠, 오빠? 정말 지구가 멸망하게 되서 오빠가 막게 되는 그런?”
“난 히어로 노릇엔 취미가 없다만.”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남은 마석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가 흡수할 수 없다고 해서 마석의 용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방에서 마석을 요구하는 아티팩트를 만들든, 팬텀바이크를 충전하든, 그러고도 남으면 어디에 팔아 치우든 하면 된다.
자, 지금부터는 촉각 스킬을 만들 때였다.
“후우…….”
지그시 눈을 감으면 지금 이 순간도 피부에 와 닿는 작은 먼지며 자연의 마나, 공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지금 그가 지니고 있는 촉각만으로는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청각과 후각이 보조해 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굳이 다른 감각을 배제할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오감을 만들려던 것도 다섯 가지 감각의 조화로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모든 감각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교류한다. 그것을 일부러 끊어 놓는 일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어긋난 일이다.
그러니 그가 해야 할 일은 교류하는 감각 안에서 촉각을 재발견하여, 강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쉽게 올 수 있었다.
“후우…….”
문제는 그다음, 스킬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그의 육신을 덮고 있는 피부 전체에 마나를 퍼트려, 새로운 마나 기관으로 만들어 내야 했으니 마나의 양뿐만 아니라 섬세함 또한 필요했다.
‘무리한 일을 시작했나……?’
신체 일부분에만 마나를 집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나마 그가 지닌 액티브 스킬 가운데 스톤 스킨이 있어, 마나를 피부에만 부여하는 요령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시험 삼아 스톤 스킨을 반복적으로 발동해 보고는, 마나를 피부에 부여하는 감각을 완전히 익혔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심장이 품고 있는 순수한 마력을 이끌어 전신 피부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 잡게 했다. 말로 하면 쉽지만 정말 장난 아니게 어려운 일이었다.
“오빠의 피부가 빛나고 있어요…….”
“이미 우리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집중력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분이군요.”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패시브 스킬을 만들기 위해 마나를 일일이 이끌어 피부를 덮어, 새로운 기관을 형성하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의 난이도였다. 그 외의 모든 것을 잊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마력을 영구적으로 25 소모합니다.]
[플레이어 스킬, 촉각(패시브)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순간이었다. 정시우가 무사히 촉각을 완성한 바로 그때, 체내의 무수한 별들이 빛나며 그것과 공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시우는 이내 그것이 자신의 다른 오감 스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감이 교류한다고 느낀 것은 나였지. 그래, 스킬들이 공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읏!?’
그러나 그때, 여태 숨을 죽이고 있던 한 가지 패시브 스킬이 다섯 스킬과 함께 공명을 이루었다. 바로 직감 스킬이었다.
‘이것까진 예상을 못했는데……!?’
직감이 오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공명을 시작할 줄이야!?
스스로를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것은 정시우뿐이었다. 지금 그의 육신은 그가 준비한 조각들을 멋대로 맞추어 그가 모르는 영역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오, 오빠!?”
“괜찮습니다, 선배님. 이건 스킬입니다!”
실로 한심하게도 정시우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용세하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육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렇다. 스킬이다. 스킬이 만들어지려 하는 것이다! 그것도 직감을 포함한 감각 스킬들이 하나로 뭉쳐서!
‘육신이 일그러지는 것만 같은…… 아니, 착각인가. 단지 오감 스킬이 멋대로 이동하고 있을 뿐이야.’
보다 정확히는 그것도 틀렸다. 오감 스킬은 마치 처음부터 그랬어야 한다는 듯, 기껏 정시우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 멋대로 심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기껏 섬세하게 배치한 저마다의 위치를 당연하다는 듯이 배반하고, 직감 스킬과 하나 되려 하고 있었다.
‘맙소사, 그렇다는 건 원래 이 스킬들은…… 음? 이런, 잠깐만. 썩을!’
그러나 정시우가 넋을 놓고 그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던 때, 마나와 스킬의 공명이 갑자기 약해지기 시작했다.
정시우는 당황하여 바로잡고자 했지만 스킬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가 알 턱이 없었다. 변화는 육신이 이끌었고 그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기에. 애초에 그가 의도한 변화가 아니었으니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츰 스킬의 공명이 희미해졌다. 여섯 가지 스킬들이 제자리를 찾아 다시 천천히 이동했다. 눈에, 귀에, 코에, 혀에, 피부에. 그리고 심장에.
공명을 겪지 못했더라면 그것이 바른 위치라 인식했을 터이나, 스킬의 변화를 순간이나마 감지했던 정시우로서는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아냐. 방금 공명은 결코 우연이 아냐. 분명 이다음 단계가 있는 거지. 그리고 그건 아마도…….’
아마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감을 스킬로 만든다는 당초의 목표는 완수했으나 달성 순간 바로 다음 목표가 생겨나고 만 것이다.
“오빠, 괜찮아요?”
“형님?”
“아, 괜찮아. 그냥 날로 먹으려다 배탈이 좀 났을 뿐이야.”
여섯 가지의 스킬이 제자리를 이탈하던 때의 충격이 구역질로 승화할 정도. 사소한 문제다. 그럼에도 그는 방금 느낀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이미 힌트는 얻었다. 다음 찬스는 조만간 온다. 그때 다시 한 번 공명을, 새로운 스킬의 생성을 성공시켜야 했다.
폰이 진동했다. 정시우는 후우, 한숨을 내쉬며 폰을 집어 들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세리아이잖아. 세하야, 혹시 내가 제법 오래 이러고 있었냐?”
“정확히 이틀 지났습니다, 형님.”
용세하의 대꾸에 정시우는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가 열리기까지 이제 고작 하루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