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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93화 (93/260)

# 93

93화.

그 순간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개미굴? 개미굴은 대체 뭐죠? 다른 플레이어도 있나요?”

“정시우 씨, 분명히 말해 주시죠. 그럼 당신은 하늘성의 플레이어가 아닌 겁니까?”

“후.”

정시우는 꼬리를 들어 테이블을 탕, 가볍게 내리쳤다. 테이블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지만 그 덕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테이블이 아니라 어지간한 플레이어가 그것에 맞았더라도 테이블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으리라, 모두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개미굴은 하늘성과는 별개의 공간입니다. 던전의 마력이 지하에 침투하여 만들어진 공간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추측이지만……. 개미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먼저 소개해야 할 사람들이 있어요.”

“소개?”

“사람들? 아무도 없는데?”

그때 그의 품에서 수아린과 용세하가 기어 나왔다. 물론 그들은 은신을 적용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들이 은신을 풀고 강림을 발동하여 인간 크기로 돌아오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경악했다.

“수아린!?”

“용세하잖아! 그러고 보니 저 둘 다 수호석에 이름이 남아 있었어!”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정시우 씨랑…….”

“아린아!”

김하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누가 미처 제지할 새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수아린을 끌어안으려 하자 수아린이 꺅, 소리를 내며 정시우 뒤로 숨었다.

“아린아……!”

“역시 약혼자 맞냐?”

“아니라니까욧! 맹세컨대 손도 한 번 안 잡았어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정시우의 질문에 수아린이 새된 목소리로 외치며 그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하룡은 그야말로 연인을 잃은 남자의 표정인지라, 어쩐지 상대적으로 태연한 안색의 정시우가 되게 나쁜 놈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정시우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정시우 씨, 제대로 설명해 줘야겠습니다.”

김하룡이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그전에, 아린이와 세하는 제가 이끄는 길드의 길드원입니다. 일단 그들을 돌려받고 얘기를 계속하고 싶군요.”

“그렇다는데.”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정시우의 말에 수아린이 샐쭉하니 그를 노려보았다. 반면 용세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김하룡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리타이어하게 되어 인사를 드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스터,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세하…….”

“하지만 저와 수아린 선배님은 시우 형님께 구함을 받았고, 이분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용오름 길드원이 아닙니다.”

확실하고 명백한 거절에 김하룡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혹시 정신계열 마법이라도 다루는 건가?”

“그럴 리가요. 형님은 누구보다 확실한 육체파십니다.”

용세하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김하룡의 시선이 그 옆, 정시우에게 달라붙어 있는 수아린에게 향했다.

“너는…….”

“전 오빠랑 같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부담되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

“뭣.”

김하룡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내 분노는 정시우에게 향했다. 일찌감치 정시우가 예상하고 있던 구도이기도 했다.

이 순간, 상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정시우가 수아린과 용세하의 존재를 공표하는 것을 미루어 두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수아린과 용세하의 의지가 확고하다 해도, 김하룡은 자신의 ‘것’을 앗아 간 정시우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려 할 테니까.

“정시우 씨, 당신은…….”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부터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앉으시죠.”

“큭.”

인내한 보람은 있었다. 정시우는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강해졌고, 격변 이후의 활약상, 특히 그랜드캐니언에서의 무지막지한 위용으로 단숨에 한국의, 아니 세계의 이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회의가 끝나고…… 얘기하도록 하죠.”

설령 한국 최고의 엘리트 길드이자 세계 최초로 32단계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한 용오름의 수장이라 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만큼, 말이다.

“그러면 설명하죠. 어떻게 리타이어한 플레이어가 살아 있는지, 개미굴은 무엇인지.”

김하룡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든 정시우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타이어하여 추락하던 수아린을 발견한 것, 그녀를 구출하여 함께 지하로 들어가게 된 것, 개미굴 던전이 터져 지상으로 몬스터들이 뛰어나오는 것, 늦기 전에 자신이 던전을 클리어하면 지상의 몬스터들을 깨끗이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

“그럴 수가.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를 받아 내? 그런 시도를 우리가 안 해 봤을 것 같아!?”

“쉽게 되는 일이었으면 저 이전에 지하 플레이어가 나왔겠죠.”

“플레이어들조차 받아 낼 수 없었다고!”

“전 그때는 아직 플레이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공간 내 모든 인간의 경악과 의문을 담아 한 사람이 외쳤다. 정시우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난 졸라 특별하거든.”

“뭣…….”

“더 이상 따지려거든 플레이어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 건지 너부터 먼저 설명해 봐. 못할 거면 닥쳐. 지금 이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냐?”

“큭…….”

반말로 따지던 다른 길드의 마스터가 입을 다물었다. 정시우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못 믿어도 상관없고, 당신들이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를 받아 내는 시도를 해 본다고 해도 신경 안 써요. 내가 책임을 안 질 뿐이지. 어쨌든 제 환경은 상당히 특수합니다. 퀘스트와 아티팩트의 보상 체계가 다르다는 걸 이제 납득할 수 있겠죠.”

“그리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리가…….”

“당신, 인간은 맞습니까?”

기어이 그런 질문까지 터져 나왔다. 정시우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인간으로 난 것은 분명해요. 모두의 의문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다 말했습니다. 이걸로 됐겠죠.”

“마리나 비셋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번에도 김하룡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것은 분명한 분노와 질투의 감정. 정시우는 설마 했지만 곧 깨달았다. 아니, 이 자식은 마리나까지 노리고 있었단 말인가! 현대 악역의 필수 요소인 껄떡 스킬을 마스터하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그냥 친군대요.”

“친구라. ……좋습니다.”

“아으, 재수 없어.”

수아린의 중얼거림에 김하룡이 움찔했다. 정시우는 그녀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왜요? 하는 눈으로 마주 보는 그녀를 그냥 쓰다듬어 주고 말았다.

“그 외에 질문들 있으면 지금 미리 해 둬요. 아마 원하는 대답은 못 듣겠지만.”

정시우의 친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밝히지 않겠다는 부분을 건드려 봤자 그와 시비를 붙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으니까.

플레이어들은 명백히 이질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정시우를 배척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으나, 현 시점에서 정시우는 그들이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무력의 소유자일뿐더러 대외적으로 가장 유명한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그간의 활약만으로 정시우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으며, 타국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힘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그를 적대했다간, 한국의 분위기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었다간 까딱 전 세계의 공분을 사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시우가 수아린과 용세하를 데리고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시우의 순수한 무력이나 팬텀 바이크, 일대의 몬스터를 깔끔하게 없애는 특수능력에만 주목하고 있던 이들은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었다. 그의 가장 큰 능력은 다름 아닌 그곳에 있었는데!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를 구할 수 있는 힘, 모든 플레이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리타이어’의 공포를 희석시켜 주는 존재. 정시우의 존재감은 독특하고도 묵직하게 장내의 모두에게 자리 잡았다.

정시우는 더 이상 자신에게 태클을 거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곤 자리에 앉았다. 수아린과 용세하는 다시 미니사이즈로 돌아왔지만, 은신이 풀려 있었기에 회의장 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주기적으로 그들에게 꽂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당당하고 멋졌어, 시우야.”

이서희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정시우의 어깨에 앉아 있던 수아린이 눈을 치뜨며 그 대신 대꾸했다.

“우리 오빤 원래 멋지거든요.”

“그래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나저나 아주머니께 무척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는데.”

“윽!?”

수아린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쳐 온 순간, 정시우가 이서희와 수아린에게 각각 알밤을 먹여 멈추었다.

“아직 안 끝났어, 이것들아.”

회의는 그로부터 30분 동안 더 이어졌다. 하지만 장내의 모든 이의 신경이 정시우에게 쏠려 있었기에 모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의견이 갈릴 만한 의제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러면…… 그다음으로,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에 한국을 대표하여 참석할 플레이어 3인을 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3인? 고작 그 정도란 말입니까?”

누군가가 불만을 토해 냈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에서 세 명이 참석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의 플레이어 정원은 고작 80명인데 그중 3명이라면, 세계 인구 대비로 보면 한국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극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정시우 씨도, 용오름 길드 마스터 김하룡 씨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 명을 뽑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하지만 UN에서 그렇게 통보를 해 왔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안건인 만큼, 당장 결정이 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앞으로 이틀 더 시간을 두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신중히 고를…….”

그때 밖에서 단정한 양복을 입은 이가 한 명 뛰어 들어와 진행자에게 뭐라 속삭였다. 진행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이 미묘해지더니, 당장이라도 흥분해 날뛸 기세인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정시우 씨의 회의 참석 소식이 알려진 모양입니다. UN 신환경 관리본부 측에서 각국 플레이어 대표와 별개로 정시우 씨를 초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는 정시우 씨를 제외한 3인을 뽑게 되었습니다.”

“…….”

“…….”

얼굴에 꽂히는 시선이 따갑다. 주로 32단계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한 길드의 마스터인데도 따로 초대를 받지 못한 김하룡의 시선이 따갑다. 정시우는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는 데에는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런 그도 부담스러울 만큼의 시선이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먼저 지원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큭.”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진행자가 필사적으로 대표 선정을 진행했다. 다른 모두의 시선이 떨어져 나가는 가운데 김하룡만은 끝까지 정시우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정시우가 인벤토리에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해 보관해 두었던 팝콘을 꺼내어 먹기 시작하자 그도 이를 뿌득뿌득 갈며 시선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서희 너는 관심 없어?”

“아무리 내가 빠르게 성장해도,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는 절대 못 들어가는걸. 걱정이 있다면 회의 기간 동안엔 던전에 도전할 만한 파티가 모집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정도야.”

이서희는 자신이 나설 생각보다는 정시우에게 표를 줄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정원 외 선정이 되면서 대표 선정에 대한 미련 자체를 버렸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도 팝콘을 나누어 주었다.

그 후로 수십 분, 누가 한국 대표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걷어차고 싶겠느냐마는 건수가 건수인 만큼 여태까지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잊게 할 정도의 피 터지는 경쟁과 말싸움이 일어났다.

그러나 용오름 길드 마스터 김하룡이 나서서 추천을 하면서 그 경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결국 평소 그와 친화적 관계에 있던 길드의 마스터 둘이 따로 선발되는 것으로 촌극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재밌었다. 여기에 불까지 질렀으면 완벽했는데. 끄윽.”

정시우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작게 트림을 했다. 수아린이 날개를 파닥여 그의 손등을 퍽퍽 때리며 투덜거렸다.

“더러워요, 오빠.”

“뭐 어때요. 귀여운데.”

“제가 아는 안과 소개해 드릴까요?”

숨 막히는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자마자 또 귀신같이 말다툼을 시작하는 이서희와 수아린을 정시우는 이제 그만 방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대표로 선발되지 못해 분을 삭이는 모습을 보며 하품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회의 끝난 거지? 그럼 가자.”

“용케 여태까지 자리에 버티고 앉아 계셨네요.”

“시우야, 우리 점심 먹으러 갈래? 광화문에 끝내 주는 집 있거든.”

그런데 일행이 활발하게 떠들며 자리를 뜨려는 때, 뒤에서 그를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직 우리 얘기는 안 끝난 것 같은데.”

“안 끝났던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돌아서는 정시우! 김하룡은 그의 표정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 더는 존댓말도 아니었다.

“난 아직 아린이와 할 말이 남았어.”

“전 없는데요.”

“네게 없다 해도 내게 있어! 아린아, 예전엔 그러지 않았잖니!”

“히익.”

수아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정시우에게 붙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마구 쏟아졌다.

정시우는 과거 몇 번 이런 일을 겪어 봐서 잘 알고 있었는데, 삼각관계니 하는 치정문제는 으레 지켜보는 사람만 꿀잼이고 당사자들은 짜증만 치솟게 마련이었다. 특히 말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이 정시우는 어머니께 배운 것이다.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로 싸우냐고.

“그렇게나 싫다는데 그냥 물러나지?”

“정시우, 당신…… 대체 아린이에게 무슨 짓을 했지? 내 눈을 보고 똑바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그 어떤 정신 마법에도 당하지 않…….”

“아, 저기 파리.”

“뭐?”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정시우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김하룡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반대편으로 돌아가자, 정시우는 텅 빈 김하룡의 쌍판때기에 있는 힘껏 스트레이트를 갈겼다.

“네 면상이 파리 같다고 새끼야!”

“컥!”

설마 육탄공격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김하룡은 굉음을 내며 날아가 그대로 뒤에 있는 테이블을 부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오빠!?”

“시우야!”

“어, 어…… 그만, 정시우 씨,”

주위 사람들이 뜨악하여 그를 말리기 위해 다가왔지만 정시우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32단계 던전을 세계 최초로 클리어한 엘리트 길드의 길드마스터를 향해 크루얼 차지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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