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92화 (92/260)

# 92

92화.

“중국집 라이더!”

“라이더!”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한국은 물론이고 타국의 플레이어들 모두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혼자서 거기까지 성장한 거죠?”

“미국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니언에서 대활약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플레이어 마리나 비셋과는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미국 귀화 계획이 있습니까?”

정시우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너무 깔끔해서 당한 이들도 감탄할 만큼 완벽한 무시!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직원을 향해 물었다.

“이제 입장해도 됩니까?”

“그, 그전에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인벤토리에서 팬텀 바이크를 꺼내어 놓자 다시 한 번 사방에서 플래시가 빗발쳤다. 여태까지보다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정시우는 그것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상큼하게 무시했다.

“들어가도 되죠?”

“드, 들어가세요.”

팬텀 바이크를 곧장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사람들이 터 주는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던 때.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정시우 씨…… 맞습니까?”

“…….”

고개만 뒤로 돌리니 아니나 다를까, 김하룡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용오름 길드 마스터 김하룡입니다.”

30대 초반의, 깔끔한 인상을 주는 남자. 랭크가 상당히 높아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손질을 얼마나 잘 한 것인지 윤기가 흘렀다.

그렇구나, 플레이어니까 플레이어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와도 별문제가 없었겠구나. 정시우는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괜히 정장을 차려입은(비록 청바지에 드레스 셔츠 하나 걸친 것이라곤 해도 정시우에겐 그것이 정장이었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아, 네. 반가워요.”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무척 궁금한 점이 많았거든요……. 특히 비셋 양과의 친분이라든가, 그 바이크도 그렇고.”

“큿…….”

무척 정중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정시우의 전신을 핥듯이 징그러웠다. 수아린이 그의 품 안에서 옷깃을 꽉 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의 존재를 공표할 때가 아니다. 정시우는 옷깃을 다듬는 척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며 달랬다.

그리고 자신을 살피는 시선을 보내는 김하룡에게 대꾸했다.

“목소리 참 재수 없네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죠?”

“네?”

“길 막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오게 터 줘요. 먼저 들어가죠.”

“…….”

일대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설마 자신에게 한 말인가, 하는 생각에 김하룡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고, 정시우는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수한 숫자의 카메라가 그 뒤를 쫓다가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혔다.

“흠.”

면전에서는 태연하게 무시한 것과는 달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정시우의 표정은 살짝 곤혹스럽게 굳어 있었다.

“신의 힘 안 느껴지는데? 너희가 하도 복선을 뿌려 대길래 영락없이 불의 신의 파편이랑 한판 떠야 하는 줄 알았는데.”

“김하룡은 강한 불의 힘을 다뤄요. 불의 신의 흔적과 조우한 적도 있구요. 하지만 축복을 받는 순간을 저희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라서…….”

“어디까지나 그런 얘기가 있을 뿐이었죠. 형님이 신의 힘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연달아 조우한 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겁니다. 신의 힘을 아무나 다 갖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말이죠.”

“쳇, 불의 신의 힘도 보고 싶었는데.”

정시우는 못내 아쉬워 투덜거렸다. 대충 그런 이유일 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어이가 없었다.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아, 예.”

회의장에 들어서자 바깥에서 일었던 소란 덕에 금세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자리로 안내했다. 회의장은 50석 가까이 되었는데 정부와 기업 인사들을 제외하면 플레이어가 앉을 만한 자리는 20석이 채 되지 않았다.

“레벨 200을 넘는 플레이어가 이렇게 없다고……?”

“아, 같은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은 회의 참석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뒤에서 답을 해 오는 이가 있어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처음 보는 이였다. 플레이어가 아닌지 정장을 차려 입고 있는 그는 정시우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정시환 님께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아드님 맞으시지요?”

“어…… 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로군요. 어머님께서도 곧 오실 겁니다.”

“아, 고생이 많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명백히 정부 인사로 보이는 이가 그에게 아는 척을 하니, 자리를 채우고 앉은 플레이어 몇몇이 그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중국집 라이더가 이미 정부와 연결되어 있었다느니, 처음부터 정부가 작정하고 키운 인재라느니 하는 얘기가 그의 귓가로까지 들려왔다. 청각 스킬이 없어도 이 정도는 쉽게 잡아 낼 수 있다.

“하늘성에 들어가는 인간을 정부가 무슨 수로 키운다는 거야.”

“저 인간, 얄밉네요. 분명 처음부터 이러려고 작정했던 게 분명해요. 오빠가 정부와 친화적인 것처럼 포장해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고…… 아, 오빠 부모님을 부정하려는 말은 아니고요!”

“무슨 뜻인지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마.”

수아린의 걱정은 무의미했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사업가였지 정부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단지 이번 일에 관여하고 있을 뿐 그들이 정부와 친한 것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건 정시우가 부모님을 생각해서 한국 정부에 숙이고 들어갈 인간은 아니었다.

“내가 이런 분위기 신경 쓰는 사람인 것 같아?”

“아, 그렇죠 참.”

수아린이 간신히 진정했다. 장내 분위기가 묘해진 가운데 드디어 마스터 김하룡을 포함한 용오름 길드의 핵심인사 셋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TV에서 몇 번씩 봤던 정부 인사들과 기업 중진이 차례차례 들어와 착석하고, 나머지 빈자리에도 곧 플레이어들이 찾아와 앉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플레이어가 어째 낯이 익었다.

“서희……?”

“아.”

어딘가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들어온 이서희가 정시우를 발견하곤 화색이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한 정시우였으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나가 심상치 않은 것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음에 분명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족히 레벨 20, 혹은 그 이상 급성장한 것으로 보였다.

“저 정도면 보통 몇 년 걸리냐?”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해서 살아남는 용맹한 플레이어라면 한 달 안에라도 가능은 하죠. 어, 그러니까 오빠 같은 사람이라면요. 물론 저는 그런 경우를 오빠 말곤 못 봤어요. ……그리고 방금 한 명이 추가된 거죠…… 으득.”

수아린이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갈고 있자니 이서희가 그들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 비어 있는 옆자리를 확인해 보니 확실히 ‘이서희 님’이라는 간이 명패가 놓여 있었다.

누가 이런 좌석 배치를 해 놓았는지는, 그야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이 아줌마가.”

“으으으, 이렇게 배신하시다니……!”

어머니의 쓸데없이 상쾌한 미소가 머릿속으로 금세 그려졌다. 이서희와는 서로 미련을 갖지 않기로 약속까지 하고 헤어진 사이인데, 이 아줌마는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나중에 확실히 말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시우야.”

“엉.”

정시우는 바로 근처까지 다가와 조심스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서희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대꾸해 주며, 그녀 자리의 의자를 빼 주었다. 이서희의 표정이 풀어졌다.

“다행이야. 아주머니께 얘기를 듣긴 했는데, 혹시나 없을까 봐 초조했었어.”

“어라아…….”

얼굴을 붉히는 이서희의 모습을 본 수아린이 금세 전투태세로 전환했다. 홀로 서겠다느니 뭐라고 지껄여 놓고 이 태도는 무어냔 말인가!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어필할 사이도 없이 정시우가 그녀를 품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엔 냉정한 것 같으면서 꼭 이런 때만 흥분하는 수아린을, 정시우도 이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많이 강해진 것 같은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무리해야지. 빨리 강해지려면 이 방법밖엔 없으니까. ……하지만 절대 죽지는 않을 거야. 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은 자신 있거든.”

이서희가 양손으로 크리스탈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작게 웃었다. 이내 그보다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도 안 될 땐, 시우가 구해 줄 테고.”

“글쎄 언제 어떤 던전으로 들어가는지 말만 하면 구해 준다니까.”

“응, 정말 위험할 것 같으면 그럴게.”

둘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회의장 내 인사들이 기이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정시우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아니, 실은 알면서도 개무시하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그,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시우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모든 이가 영향을 받아 꿈틀거리거나 귀를 기울이거나 하고 있을 때, 단상에 누군가 서서는 그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놀랍게도 아까 정시우에게 인사를 하러 왔던 그 남자였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이 자리는 최근 지구에 닥쳐 온 거대한 변화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이며, 동시에 이제 곧 열리는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한국 대표 플레이어를 선정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무척 중요한 사안인 만큼, 참석자 여러분의 신중한 발언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회의장에 정숙이 찾아왔다. 정시우는 드디어 사람들의 주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서희와 쓴웃음을 주고받는 정시우를 수아린이 째려 봤지만 안타깝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회의는 대충 정시우가 예상했던 방향에 맞추어 흘러갔다. 모두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득만을 바라서는 망해 버린다는 사실을 대충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번 일은 최대한 공평하게 사업권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는 것이 주 요지. 정부 또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대한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배려하겠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들을 우선으로 놓고 진행했으며, 무엇보다도 정부와 기업 사이에는 이미 말을 맞춰 놓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는 무척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이건 회의가 아니라 마치 보고회였다. 이렇게나 많이 준비했으니 잘 봐달라고 하는 보고회! 정시우는 절로 웃음이 났다.

“기업이고 정부고 이렇게까지 수그리는 걸 보면…… 이미 많이 빠져나갔나 보지?”

“정답…… 제가 알던 유명 길드가 두 개, 안 보여요.”

씁쓸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수아린. 옆에 앉아 있던 이서희는 그가 혼잣말을 했다고 생각해 고개를 갸웃하다가는 이내 수아린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녀가 이전에 수아린을 소개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끝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같이 왔구나.”

“뭐, 오늘 공표해 둘 생각이야.”

지금은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마 준비된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얼추 끝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샛별처럼 등장한 강자인 정시우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말이다. 정시우는 그것에 대해 어디까지 답해 둘지 이미 정해두고 있었다.

‘내게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를 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개미굴 던전을 출입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즉 몬스터 무리의 근원을 뽑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려둬야 하겠지. 뭐, 지구가 몬스터를 자체 생산하기로 한 지금에 이르러선 별 의미가 없게 된 능력이긴 하지만.’

이세계로 넘어가는 능력에 대해서는 밝힐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밝히기로 결심한 내용만 해도 터무니없다.

“정시우 씨, 정시우 씨는 마법과 현대 기술이 결합된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때마침 그의 개인적인 사정을 건드리는 질문이 들어왔다. 물론 그 의도는 충분히 파악이 되었다. 정시우의 대답 여하에 따라 한국의, 아니 세계의 발전 속도와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개인이 끌어안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시우도 그렇게 생각했다.

“퀘스트 보상입니다.”

“네?”

“그래서 저도 원리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팬텀 바이크는 정시우의 능력이 아니라 휴식처의 능력으로 탄생시킬 수 있었던 귀물. 정부와 기업이 바라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일일이 정시우가 기술과 마법의 결합물을 휴식처에서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그 아티팩트를 연구할 수 있도록…….”

“제가 계속 쓰는 물건이니 그건 안 됩니다. 대신 나중에 또 그런 물건을 얻게 되면 빌려드릴 수는 있겠네요.”

정시우의 대답은 가차 없이 단호했다. 반문을 허락하지 않는 대꾸에 질문자가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때 다른 방향에서 질문이 날아들었다.

“묻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퀘스트를 통해 그것을 얻게 되었는지, 아니, 애초에 정말 플레이어는 맞는지.”

김하룡이었다. 모두가 뒤로 미루고 있던 문제를 정면에서 지적해 올 만한 이는 과연 그 정도겠지. 정시우는 회의 진행자를 일별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사항은 대충 합의가 되었다. 이제 다음 의제, 세계 플레이어 대표 회의에 나갈 한국 대표를 뽑는 것에 대해 다룰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시우의 얘기가 빠질 수 없었다.

“좋습니다.”

진행자의 허락에, 정시우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제 이야기를 잠깐 하죠.”

정시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과 타이밍을 맞추어 그의 엉덩이 위, 꼬리뼈 부근에서 검고 굵은 도마뱀 꼬리가 불쑥 솟아났다. 그것을 본 이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다.

“우선 말해 두자면, 저는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지하 플레이어죠.”

“그건 대체……?”

도마뱀 꼬리가 살랑거리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보며 정시우는 히죽 웃곤 말했다.

“하늘성이 아닌, 개미굴을 탐험하는 플레이어입니다.”

특별하며 유일한 한 남자의 존재가 세상에 공표되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