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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로그인-82화 (82/260)

# 82

82화.

마리나가 들어 올린 권총에 특수하게 가공된 마나가 모여들었다. 총신을 지나며 증폭되고 압축된 마탄이 총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마리나는 자신의 마나를 더해 그것을 강하게 밀어내며 스킬을 발동했다.

“파워 샷!”

“그것 참 간단한 이름이라 좋네.”

그러나 결과는 간단하지 않았다. 마탄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자 그곳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모조리 쓸려 나가 파괴된 것이다. 마탄이 지나가는 자리로 미지근한 바람이 몰려들었다.

[마, 막아라!]

[영창이 끝날 때까지만…… 크아아아악!]

“후, 나이스 샷.”

마탄은 힘을 유지한 채 일대를 쓸어버리다가는 목표 지점에 착탄하여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그 결과 막 그들을 향해 해골 지팡이를 휘두르던 스켈레톤 메이지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마리나가 씩 웃으며 총구를 후, 불었다.

“언데드 주제에 마법까지 부리는 귀찮은 것들이 있단 말이지.”

“계속 그렇게만 부탁해.”

듀라한의 머리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근거리와 원거리를 모두 제압하던 정시우는 이제 없다. 물론 하고자 하면 다른 수단으로 원거리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마리나가 있는 지금은 먼 거리에 있는 까다로운 적은 모두 그녀에게만 맡겨 두고 자신은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뛸 수 있었다.

“음음, 우린 합이 제법 잘 맞는걸.”

“흥, 저런 약해 빠진 언데드의 마법으로는 오빠한테 데미지를 입힐 수도 없거든요! 제가 보호하면 되고!”

“너는 벌써 나설 생각하지 말고 네 마나나 아껴 둬라.”

언데드에게 있어 빛의 신 루이오스의 힘만큼이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신성력을 지닌 수아린. 그녀의 힘은 세트나크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위해 아껴 두어야 했다. 수아린 역시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우, 이쪽!”

“흡!”

“좋았어!”

날개를 펼치고 허공중으로 살짝 떠오른 채 사격을 이어 가는 마리나. 그런 그녀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은 모두 정시우의 해머에 의해 박살이 났다.

“역시 우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겠어!”

“이 정도 가지고.”

정시우 덕분에 공격을 받을 일이 없으니 마리나는 자유롭게 사격을 이어 갈 수 있다! 정시우의 실로 마음 든든해지게 하는 활약을 보며 마리나는 전투 와중에도 방긋 미소를 지었다. 수아린의 표정이 더욱 불퉁하게 변했다.

“저 여자가 저렇게 만족스럽게 웃는 꼴이 보기가 싫어요.”

“정말 솔직하시군요, 선배님.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솔직했더라면…….”

“닥쳐요.”

엠퍼러 길드는 그들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언데드를 사냥하고 있었으므로, 수아린과 용세하는 아직 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정시우가 성장함에 따라 이전의 힘을 거의 되찾은 용세하는 그를 도와 활약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근질근질한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 수아린이 더욱 근질근질한 모습을 보이니 참지 못하고 태클을 걸고 마는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선배님.”

“당신의 불행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죠.”

“옙, 조용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짜증을 내는 수아린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용세하가 조용히 가라앉는 동안 정시우는 그 대신 적극적으로 몸을 놀려 언데드들을 때려잡았다.

“갑각 몬스터들의 수장은 없나.”

“이 몬스터들은 지구에서 자연발생한 몬스터들이야, 시우. 던전처럼 보스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하긴.”

그야 확실히 보스는 없었지만, 워낙 넓은 일대에 대량으로 발생했기 때문인지 아까 처리했던 갑각 곰 정도의 강함을 지닌 엘리트 몬스터들은 제법 발견할 수 있었다. 전부 언데드였지만.

“살아 있는 놈도 한 번 잡아 보고 싶은데…….”

“강도를 잃은 대신 보다 강한 마력을 얻은 것으로 보여요. 아티팩트의 재료로서는 이쪽이 더 적합할 거예요.”

아마도 지금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는 최상급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금속의 성질을 띠고 있어 가공이 쉽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였고, 언데드화라고는 하나 결국 신의 흔적의 영향을 받아 변화했기에 그 마력이 남아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이대로 순조로이 재료를 수급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흐아아아압!”

“마스터, 이쪽입니다! 이쪽에서 더 강한 기운이 느껴져요!”

“쯧.”

점점 더 엠퍼러 길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그들이 발하는 소음도 들려왔다. 그야 지금 정시우 일행이 신의 힘이 보다 가까워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서두르자, 시우.”

“그래. 이제부턴 덩치 큰 놈들 위주로 잡아야겠어.”

정시우는 강한 언데드를 찾아 바이크를 몰았다. 강한 죽음의 힘을 품은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그랜드캐니언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세트나크의 힘이 보다 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곧 그 핵심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산 자라면 모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안락하고 편안한 죽음의 기운. 넋을 놓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운. 세트나크의 힘 아래 생물은 모두 힘을 잃고 언데드는 점차로 강화된다.

만약 정시우와 마리나 같은 강자가 아니었더라면 단지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점차 기력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으으, 점점 더 지독한 기운이 느껴져. 언데드로 다시 일어날 기력도 없는 생물들은 그대로 죽어 가고 있어. 하필이면 이런 놈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지구에서 자연발생한 몬스터들이 이에 휘말린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 정시우와 마리나는 협곡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절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로부터 5시간가량이 흘렀을 때, 세는 것도 허무해질 만큼 많은 언데드를 처리한 끝에 정시우는 한 번의 레벨 업을 더 했다. 마리나는 그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번엔 확실히 그에게로 마나가 몰려들어 그를 강화시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너 방금 레벨 업 했지.”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어떻게 레벨이 오른 거야!? 던전의 도움 없이는 레벨이 오르지 않는데! 너 설마 저 몬스터들의 마력과 기록을 직접 받아들인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이었어?”

역시 마리나는 던전의 구조에 대해서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던전 바깥에서 성장을 이룩한 정시우를 보며 놀랄 수밖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에게 따지는 마리나에게 정시우는 대충 대꾸해 주었다.

“아마도 내게만 가능한 것 같아. 넌 이렇게는 못하잖아.”

“못해…… 그리고 시도하지도 않아. 그건 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이야. 순수한 자신이 오염되면 성장이고 뭐고 파탄이 난다고.”

“하지만 난 오염되지 않아. 뭐하면 확인해 볼래?”

“으, 응?”

정시우가 자, 하고 손을 내밀었다. 마리나가 덥석 그의 손을 붙잡더니 얼굴을 조금 붉혔다. 양손으로 붙잡아야 간신히 그의 손을 감쌀 수 있었다.

“손, 크구나…….”

“인마.”

“아, 알았어. ……확실히 순수하고 폭력적인 마나가 느껴지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건 특별을 넘어 유일의 영역인데……. 넌 정말 수수께끼투성이구나. 너무 재밌어.”

“이이익…….”

마리나의 눈동자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따스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며 수아린은 그녀에 대한 경계를 한 단계 더 올렸다. 마리나는 그의 손을 조심스레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씩 웃었다.

“그리고 네 덕에 나도 새삼스럽게 깨달은 게 있어. 여태까지 모든 플레이어는 던전에서밖엔 성장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지.”

“몬스터들의 마나는 빨아들이지 못하잖아.”

“그게 아냐. 나도 그런 시도는 하지 않아. 하지만 마나를 품고 있는 건 이제 몬스터뿐만이 아니잖아?”

“이제? ……아.”

정시우가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두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마리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크게 호흡을 했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던 한순간, 그녀에게로 한 줄기의 순수한 마나가 흘러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격변 이후로 생겨난, 지구가 생산하는 마나였다.

‘아……!’

그 광경을 보며 정시우는 자신의 해머로 자기 머리를 찍은 기분이 되었다. 지구가 변화했다는 것은, 변화가 몬스터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닥쳐오리라는 사실은 그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세상의 마나를 자신이 받아들일 생각은 하지 못했단 말인가!

“후우.”

마나를 성공적으로 흡수한 마리나가 눈을 뜨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얻은 결실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초롱초롱했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여부였으니까.

“역시 지구에 생겨난 순수한 마나를 받아들여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은 가능했어. 지구에 닥친 변화는 단순한 재앙이 아니었던 거야. 플레이어들은, 일반인들도 이제 스스로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거지!”

물론 여태까지 마나를 스스로 다루지 않았던 인간들이 그것에 익숙해지고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리라. 어쩌면 플레이어들이 다른 이들을 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우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할 수 있어. 네가 하는 걸 보니 할 수 있게 됐어.”

“그래도 그렇게 바로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이 묘한 패배감은 대체 뭘까…….”

정시우는 과연 범상치 않은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리나의 호흡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어느덧 그는 전신으로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알게 된 것도 있지.”

본격적으로 ‘마나 호흡’을 시작하면서 가뜩이나 날카로웠던 마나에 대한 감각이 보다 첨예하게 가다듬어졌다. 마리나와는 달리 모든 종류의 마나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일대에 팽배한 세트나크의 기운도 빠짐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그 결과.

“놈의 흔적이 있는 장소를 파악했어. 가자.”

“와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태를 종결시킬 힌트를 얻은 셈이었다. 정시우는 기막혀 하는 마리나를 바이크에 태워 그대로 발진했다. 근처의 언데드 몬스터들은 과감하게 무시하고 핵심을 향해 돌진하려는 것이다!

“너어어어희이이이드으으으을!”

그러나 곧 뒤에 따라붙는 방해꾼들이 있었으니 바로 엠퍼러 길드의 정예들이었다. 정시우는 나지막이 혀를 찼다.

“눈치는 빨라요.”

“어떻게 해, 시우? 정리하고 가?”

“아마 죽여 놓지 않는 한은 따라붙을 거야. 그렇다고 정말 죽여 버리면 의미가 없고.”

뒤를 돌아보니 전력으로 그들을 쫓는 세리아 윌슨의 모습이 보였다. 엠퍼러 길드원들도 무기를 새하얗게 물들인 채, 더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당당히 그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동투쟁이다. 저 녀석들이 어떻게 되기 전에 사태를 정리할 수 있으면 좋은 거고, 안 되면 같이 끝장내 주는 거고.”

“오빠 지금 주인공이 절대 해선 안 될 말을 했어요!”

“요즘은 이렇게 인정사정도 없고 덤으로 싸가지도 없는 주인공이 잘 먹히는 거 모르냐.”

“지금 너희 무슨 얘기하는 거야?”

바이크를 타고 허공을 내달리기를 10분, 곧 눈앞에 말라붙은 강가와 그 옆으로 펼쳐진 협곡이 나타났다.

이전엔 제법 명소였던 듯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지구의 격변 와중 지형이 완벽하게 뒤틀리는 바람에 지금은 도저히 관광을 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찾았다.”

“어마어마한걸…….”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바닥까지 말라붙은 강가에 물을 대신해 흐르고 있는 것은 수만 마리가 넘는 숫자의 언데드의 물결. 적을 포착한 언데드들의 함성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절로 귀가 먹먹해질 법한 광경이었다!

[우리의 본진을 간파하다니…….]

[놈들을 죽여!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갈기갈기 찢어 버리자!]

[세트나크 님께 바치는 공물이다! 그분께서 저들을 원하신다!]

마리나는 언데드의 대군을 보며 설악산에서의 전투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언데드의 레벨이 그때 그 몬스터들에 비해 턱없이 높고, 세트나크의 힘이 그들 곁에 직접 머무른다는 사실이다. 여러모로 이전보다 나쁜 상황이었다.

“찾았다! 죽음의 신의 힘이 이곳에 있어!”

“그, 그런데 마스터. 아까부터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놈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서둘러! 우리가 확보해야 해!”

마침 좋은 타이밍에 전장에 찾아온 마지막 조연들까지! 앞으로 그들에게 일어날 일까지 적절하게 암시하는 것이 아주 그만이었다. 아니,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일단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나쁘지 않을 텐데 꼭 막무가내로 돌진하니까 사달이 나잖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좀 더 챙겨 보고 오라고 일갈하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누르며 정시우는 해머를 들어 올렸다.

“짜증 나니까 일단 다 부수고 보자.”

“항상 결론이 그렇다니까.”

수아린이 맥없이 고개를 떨구는 것과 동시에 정시우는 스로틀을 당겨 최대 속도로 돌진을 개시했다. 바이크로 펼치는 크루얼 차지의 궤적의 끝, 그곳에 그랜드캐니언에 이 사태가 일어나도록 만든 세트나크의 파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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