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76화 (76/260)

# 76

76화.

[한편 여태껏 하늘성에서 던전을 탐색해 온 플레이어들은 이 사태에 대해 뾰족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몬스터들이 던전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고 하는데요.]

[정부는 이전 산하동 사태 때부터 추진해 오던 플레이어 관리 정책을 보다 본격적으로…….]

[국방부는 대 몬스터 계획의 일환으로 신무기 개발을 추진, 미국과의 기술 제휴로…….]

“좋아. 개판이야.”

정시우는 스마트폰을 훑으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가 뉴 에이지에 돌입하고 하루도 채 흐르지 않았거늘 상황은 아주 순조롭게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반드시 수백 건 이상의 생계형 비리가 일어날 것만 같은 계획도 보였다.

“이래야 인간이지. 몬스터 좀 나타나고 나라에 없던 산이나 강 수백 개쯤 생겼다고 갑자기 위기의식과 정의로운 마음을 각성해서, 다 같이 한 마음으로 나라와 인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리가 없는 거잖아.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반성과 각성이 조금쯤은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들이 눈 가리고 아웅으로만 보이는 것은 수아린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모든 게 받아들여진다고 믿는지 합당한 보상도 없이 플레이어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 어디서 독립 영화라도 보고 온 것인지 자유를 부르짖으며 뒤로는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플레이어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제 이익만 찾으려 애쓰는 아귀의 무리.

그들은 언제나 그래 왔다.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는.

물론 정시우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정시우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정시우가 무엇을 하는가 하면, 물론 마석 확보와 경험치 획득을 위한 몬스터 사냥이었다.

몬스터 비드는 근 사흘 동안 충분히 모아 두었으니 이제 부족한 마력 확충을 위한 사냥을 좀 해 두고 싶었다. 비록 지구의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덕에 마석 확보에는 곤란할 일이 없게 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몬스터로부터 살아남아 좋고, 정시우는 마석을 얻어 좋고. 윈윈 전략이란 이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지금처럼 말이다.

“다, 다 죽었다.”

“그 많던 괴물들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무지막지한 기세로 인간들을 사냥하던 오크 무리가 있었으나 그들 모두 정시우의 손에 깔끔히 정리된 후였다.

“그래그래, 감사할 거면 나중에 돈으로 줘. 그리고 거기 엎어져 있는 너는 혼자 일어날 수 있는 거 다 아니까 알아서 일어나라.”

그는 여태까지 자신이 물에서 건져 온 사람들과 마찬가지 표정으로 그에게서 보따리까지 뺏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휘휘 손을 저어 떨쳐 내며 시크릿 다우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녀석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여기도 없나.”

“그러게요.”

정시우가 탐색기와 시크릿 다우저를 회수하며 중얼거리는 말에 수아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전투가 끝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세계로의 통로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이 녀석들이 지구에서 자연 발생한 몬스터라는 얘기다.

“레벨 100에 달하는 오크 무리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다니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된 걸까요.”

“레벨 200을 넘기는 트롤도 나타나는데 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조우했던 트롤을 제외하고는 그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와 만나는 일이 없었다. 지구의 격변으로 통신망에 문제가 생겨 전국의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넷상으로는 그만한 몬스터의 목격담이 없었다.

“다행이죠. 지금 상황에 트롤 한 다섯 마리만 더 나타나도 도시 하나는 초토화될 텐데.”

“네이팜탄으로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네이팜탄으로 몬스터를 제압해도 도시가 초토화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캬, 내가 고걸 몰랐네.”

그것이 군용무기의 단점이다. 몬스터를 제압하면서 인류까지 제압해 버린다는 것. 정 안 될 경우엔 민간인을 피신시키고 몬스터만 남겨 두고 무기를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민간인이 피신하는 속도보다는 몬스터가 움직이는 속도가 빠를 것이다.

“뭔가 필요하긴 해. 더 이상 주먹구구식으로는 해 먹을 수가 없단 말이지.”

정시우는 바이크에 올라타며 한숨을 쉬었다. 수아린이 그의 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그의 폰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도 그 잠깐 사이에 뭔가 진행이 되고 있기는 한 모양이에요, 오빠.”

“다 같이 망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착한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

“그리고 오빠를 찬양하는 글들도 슬슬 올라오네요.”

“그야 한 사람의 선행을 지극히 일방적인 방식으로 포장해 다른 이들에게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밀어붙이는 것도 국가가 즐겨 써먹는…… 뭐? 나!?”

힘차게 날아오르던 바이크가 삐걱, 허공에 일시정지하며 트위스트를 추었다. 정시우는 수아린으로부터 폰을 받아 들어 각종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기 시작한 이미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트롤의 머리에 있는 힘껏 거랑의 앞발을 메다꽂는 자신의 사진이었다.

“젤나가 맙소사…….”

“오빠의 신앙은 그곳에 있었군요.”

“내가 너무 멋지게 나왔는데!?”

“여기서 왕자병까지 걸리면 슬슬 위험한 수준으로 재수가 없다구요, 오빠.”

그러나 사실은 수아린도 사진이 무척 잘 나왔다고는 생각했다. 힘을 주어 망치를 찍어 누르는 호쾌한 모습은 자신의 폰 배경화면으로 해 놓고 싶을 정도였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투구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얼굴까지 나왔으면 완전 끝장이잖아.”

“지금도 사회적으로는 거의 끝장인 것 같은데요, 형님. 지금 이 순간도 굴욕스러운 별명이 갱신되고 있어요. 고스트 라이더, 뉴클리어 해머…….”

“읽지 마. 읽지 말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그래도 중국집 라이더보다는 낫다며 안도한 자신을 환멸하게 된 정시우였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이네요. 오빠 활약이 좀 많아야죠.”

“아마 형님께서 빠르게 사태를 정리하고, 월등한 기동력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탐색하고 다니는 탓이겠죠.”

플레이어들은 날개를 이용해서 나는 데 마나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모하는 것은 바로 체력이다. 전투 중에도, 이동 중에도 체력이 소모되니 플레이어들은 무턱대고 전투를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타겟을 잡아 날아다닐 수가 없다.

반면 정시우는 얼마든지 충전이 가능한 바이크를 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 숨 가쁘게 전투를 이어 진행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 쉬지 않고 움직이기에 다른 이들이 보기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리가 아니었다.

“투구 길동이.”

“풉.”

“맞는다 너희.”

용세하와 수아린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동안 크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활약해 온 정시우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 괜히 뿌듯하고 기뻤던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들은 엘리트 길드 용오름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플레이어다. 그동안 사정이 사정인지라 얌전히 있었지만, 실은 관심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정시우의 생각을 그들은 정면에서 부정했다.

“아니거든요. 그냥 오빠가 이제야 합당한 평가를 받는 것 같아서 기쁠 뿐이거든요.”

“이전의 제가 대중의 관심을 즐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단지 누구보다도 당당해야 할 형님이 숨어서 활동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정시우는 그들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어떤 식으로든 노출이 되리라고는 스스로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을 피하고 싶었더라면 지금보다는 조심스럽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 굳이 조심하며 다닐 필요는 이제 없겠지. 그렇다고 일부러 투구를 벗고 다닐 생각도 없지만.”

날개가 없는, 하늘성과는 다른 던전에 출입하는, 심지어는 이세계의 통로까지도 열 수 있는 플레이어.

만약 정시우가 지금보다 약했던 때에 그런 사실들을 발각당했더라면 무척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이세계에서 밀려 나오는 몬스터들과 같은 편으로 취급당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따지는 놈들은 다 패 주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시우에겐 그것이 가능했다.

“아무튼 이게 올바른 방향이에요. 오빠가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움직인다 해도 분명히 그것에 구원을 받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감사를 표할 대상에 대해 알 자격이 있으니까요.”

“영웅 뉴클리어 펀치…… 아얏.”

정시우는 용세하와 수아린에게 알밤을 먹여 조용히 시키곤 바이크를 몰았다. 그 후로도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허공을 질주하며 대지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전부 잡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생활권에 발을 들이려는 녀석들만 사냥해도 하루가 부족했다.

“앗, 저 남자! 바이크!”

“후.”

도중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주치는 일도 있었지만, 그들이 놀라며 다가와도 정시우는 상쾌하게 그들을 무시했기에 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저 아티팩트가 뭐지!?”

“젠장, 몇 단계 던전에서 얻은 건지 감도 안 잡혀. 아직 33단계 던전은 클리어가 안 됐을 텐데.”

“빠르다.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어!”

도심에, 도로에, 건물 옥상에, 지하에, 강가에, 다리에, 산속에, 동굴에,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장소에서 레벨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몬스터들 모두 제대로 된 활약을 하기도 전에 정시우에게 쓸려 나갔다.

“이쪽은 이놈으로 마지막인가. 레벨은 계속 안 오르네.”

거대 도마뱀의 머리를 가르고 마석을 빼내며 정시우가 투덜거렸다. 그의 레벨은 여전히 100. 트롤을 잡은 후로 꼬박 하루가 지났는데도 레벨이 그대로였다. 그의 레벨에 비해 높은 몬스터들도 얼마든지 많이 잡았는데도!

“오빠는 평범한 100레벨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몬스터들의 기록과 마나를 흡수해도 성장 폭이 둔화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나도 그 정돈 알아. 그냥 투덜거려 보고 싶었어.”

정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석을 삼켰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을 땐 이렇게 즉석에서 마석을 흡수하곤 했다.

[마력이 1 올랐습니다.]

“마력만은 꾸준히 올라 줘서 다행이네.”

정시우는 레벨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레벨에 비해 마나량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그럭저럭 높은 레벨의 엘리트 몬스터가 남긴 마석을 몇 개 먹으면 꾸준히 마력이 올라 주었다. 이대로만 가면 오감 스킬을 만드는 순간도 머지않았다!

“다행히 용오름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네요. 한국을 아예 떠나 버리는가 했는데.”

“빅 딜이 있지 않았을까.”

정시우는 메인 포털에 떠오른 그의 이미지를 지워 내기라도 하려는 듯 이 바쁜 와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진을 찍고 있는 용오름 길드의 마스터, 김하룡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조만간 나한테 시비를 걸러 오겠군.”

“예지 스킬이라도 익히셨어요……?”

“아니.”

용오름 길드의 활약상이 마치 의도된 것처럼 차곡차곡 업로드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워낙 정시우란 존재의 화제성이 높아 쉬이 밀어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놈들은 분명 그 흐름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뭐, 시비 안 걸어 주면 나야 덜 귀찮으니까 좋고. 만약 시비를 걸면…….”

귀찮게 한 만큼 대가를 뜯어낼 뿐이지. 정시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이크를 몰았다.

그러나 아직 복선 마스터로의 길은 멀고 험한 것일까? 그로부터 이틀, 갑작스러운 변화에 멈추어 있던 문명이 여러 플레이어들과 정시우의 활약 아래 어떻게든 삐걱거리며 다시 굴러가기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정시우는 용오름 길드와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대신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 그를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