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로그인-74화 (74/260)

# 74

74화.

듀라한 케이나의 정수가 특수 가공 재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변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 그에게 갖춰진 재료라곤 케이나의 정수 하나뿐, 나머지는 모두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소울 컬렉트가 이 가공의 키 포인트라는 건 분명하지만, 지금 가진 영혼으로는 아무래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 같고.”

“신의 힘이 깃든 갑옷뱀장어의 비늘과 뼈대가 조금 남긴 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죠.”

“그렇다는 건…….”

케이나의 정수가 이대로 인벤토리에서 길고 긴 휴가를 보내야 한다는 것. 케이나의 악의가 그의 전력을 50% 이상은 상승시켜 주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이번에 뇌신의 라이플이 레이지 라이플로 각성하면서 일반 공격에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것.

정시우도 레벨이 오르고 마석을 섭취해 마력을 제법 많이 얻은 덕에 이전처럼 라이플 한 번 쏘고 빌빌댈 일은 없게 되었다.

“케이나 쪽이 손맛이 있어서 좋았는데…….”

“마리나 비셋이 한탄하겠어요.”

“형님, 그러면 결국…….”

“그냥 던전이나 가야지 뭐.”

정시우는 잔뜩 시무룩해진 얼굴로 던전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좀 강한 던전이나 걸렸으면 정시우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을 텐데 그들을 맞이한 것은 넘버링 300에 가까운 고블린 던전이었다. 정시우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이런 던전에서도 플레이어들이 리타이어한다니…….”

[앗, 아아앗. 사람…… 사람이 왔어……! 무, 무척 강한 사람이!]

“유령도 있네!?”

정시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졌기 때문일까? 원래 세상이나 플레이어들에 대한 악의를 조금씩은 품고 나타나던 유령들은 그를 보며 무척 순종적으로 퀘스트를 내뱉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도 정시우의 몸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들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 흑. 퀘스트를 완벽 이상으로 수행해 주셨으니 저, 저를 드리도록 할게요.]

“아냐, 그런 거 필요 없어. 스킬 내놔.”

[다행히도 이미 영혼을 다루는 스킬을 갖고 계시네요. 흑흑, 어쩌다 내가 이런…….]

“필요 없다고 하잖아!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정시우는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퀘스트를 초과달성했던 남자다. 그런 그가 압도적으로 강해져서 나타났으니 유령들이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지 못할 리가 없었다. 유령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정시우에게 자기 자신을 내놓기에 이르렀고…….

[보유하고 있는 영혼의 숫자 : 84]

“필요 없다니까……!”

“오오, 그래도 점점 문양이 내는 빛이 진해지는 것 같아요, 오빠.”

“착시입니다, 선배님.”

그렇게 짧으면 20분, 길어야 1시간에 하나 꼴로 던전을 정리하며 정시우는 지하로 떨어진 억울한 이들의 영혼을 모조리 거두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가 진정한 소울 컬렉터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무수한 영혼이 당신을 따르고 있군요. 필시 당신은 구원자임에 분명해요.]

“아니라고.”

[하지만 과연 저도 순조로이 거두실 수 있을까요. 이 던전은 무척 까다롭고 벅찬 함정들로 가득한…….]

“……그냥 이것들까지 다 죽여 버릴까.”

눈앞에 금방이라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있으면 인간은 쉬이 멈추지 않게 된다. 정시우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이 퀘스트를 초과달성해 리타이어한 플레이어의 영혼을 수거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일단 퀘스트를 받으면 전력으로 투구하지 않고선 배기질 못하는 것!

그렇게 얼마나 많은 던전을 클리어한 것일까. 정시우는 문득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지금 얼마나 지났지?”

“정확히 사흘하고 두 시간이에요, 오빠.”

“흠.”

정시우는 문양 안에 잠든 영혼의 개수를 확인했다. 99개였다. 모든 던전에서 영혼이 나타나지는 않고,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보상으로 내어놓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놀라운 성과였다.

“벌써 사흘이나 지났단 말이야?”

“아무리 레벨을 올렸다지만 그동안 전혀 쉬지도 않았는데, 오빠는 지치지도 않나 봐요.”

“지칠 만한 일이 있어야 지치지.”

그동안 영혼만 모은 것은 물론 아니다. 정시우의 레벨도 어느덧 99에 이르러 있었다.

마석이 그랬듯이 이제 너무 낮은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해서 쌓이는 경험치 정도로는 레벨 업은 꿈도 꿀 수 없었는데, 개중에 그래도 레벨 100이 넘어가는 몬스터들이 일반 잡몹으로 등장하는 던전이 몇 개인가 섞여 있어 어떻게든 그동안 2레벨을 더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던전도 마찬가지였다.

“이봐, 그래 봤자 이런 놈들인데.”

[키이, 키이이이이이!]

정시우가 가볍게 휘두른 망치에 얻어맞은 거대 원숭이의 두개골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그러자 남은 원숭이들이 키이이이이, 기성을 지르며 그를 경계했다.

놈들은 레벨 140의 악마원숭이로, 기갑 오크만큼이나 플레이어들이 기피하는 몬스터였다.

“오빠야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시겠지만……. 으으으, 아직도 25단계 던전에서 이놈들을 만났을 때의 악몽 같았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그때 거기엔 내가 없었잖아.”

“아오, 재수 없어.”

우락부락한 덩치를 자랑하는 악마원숭이들의 특징은 의외로 마법이었다. 검게 물든 왼손으로 이것저것 속성 마법을 쏘아 내는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다양한 종류의 마법을 쏘아 내기에 플레이어들이 저항하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고.

[키이이이이이이!]

[키키킥, 키키이이이!]

마침 원숭이들의 일제공격이 시작되었다. 날아드는 뇌전, 땅바닥에서 솟아나는 흙의 창, 화염과 바람, 얼음덩어리까지! 하지만 정시우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내 일제히 그의 전신을 뒤덮는 마법의 세례!

[끼기기기기기기기기!]

[키후이이이이이!]

승리를 확신한 원숭이들이 광기마저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직후, 마법의 연쇄폭발이 만들어 낸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망치가 무리의 일단을 가볍게 쓸어버리자 더는 웃을 수도 없게 되었다.

[키익!?]

“마력이 꿈틀하는 느낌도 없어. 역시 이제 더는 내성이 오르질 않는구나.”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정시우의 몸에는 마법에 맞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그의 방어구가 허접한 수준이라고 해도 그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강건해지는 신체, 강력해지는 마력이 그의 육신을 보호하고 있어 악마원숭이 정도의 마법으로는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여러 던전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얻은 각종 마법 내성들까지 더해지니 이건 뭐 맞아도 가렵지도 않은 수준!

[내성 ? 독 Lv10, 화염 Lv6, 저주 Lv6, 뇌전 Lv9, 빙결 Lv3, 바람 Lv4, 대지 Lv3]

“쩝, 빙결하고 대지 내성까지 4레벨로 올려놓고 싶었는데.”

“일부러 맞아서 내성을 올리려는 생각 같은 건 보통은 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가만 보면 플레이어들보다 오빠가 더 게임 플레이어처럼 보여요.”

“게임이라니 무슨 소리야. 기본적으로는 육체의 단련인데.”

“그래요, 그렇게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제일 무서운 거라구욧!”

정시우가 조금 전 원숭이들의 마법에 당해 주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내성을 수련하기 위해서였는데, 아무래도 그의 육신이 너무 강해진 탓인지 내성의 성장도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의 레벨을 낮출 수도 없으니, 방법은 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내성을 수련하는 것. 아무래도 여기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성이 있다면 보스 몬스터!

[끼이이이이이이익!]

“그렇게 됐으니 이제 너희들한테는 볼일이 없게 됐다. 잘 가!”

[킥!]

정시우가 내지르는 망치는 원숭이들의 마법보다도 빠르게, 강력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놈들을 끝장냈다.

한 번 휘둘러 목숨을 끝장내고, 타격의 여파, 잔여 데미지만으로 달러와 비드 루팅을 끝내 버리는 그의 일격은 마치 지나간 자리를 깔끔하게 지워 버리는 기적처럼도 보였다.

[끼이이이이!]

제아무리 몬스터라 해도 정시우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전력 차를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악마원숭이들은 괴로움과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 그에게 달려들었고, 정시우가 내지르는 망치에 허무하게 죽어 갔다.

정시우는 그런 놈들을 죽이며 혀를 찼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이 그를 지배했다.

“죽음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도 그들의 신앙일까.”

“하지만 아직 우린 개미굴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어떻게 나타난 건지도 알지 못하는걸요. 애초에 몬스터들이 가장 먼저 나타났던 건 하늘성이고…….”

“난 하늘성과 개미굴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해.”

몬스터들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하늘성 던전은 클리어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이미 들은 바 있고, 개미굴은 그야 클리어하면 사라지지만, 같은 던전에서 죽은 플레이어에 의해 몇 개고 같은 던전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과연 하늘성과 개미굴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가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정시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던전에서 활동하는 몬스터들은 분명한 실체를 갖고 있는 ‘진짜’였다. 만약 놈들이 진짜가 아니라면, 놈들이 지상으로 풀려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개미굴은 어디까지나 하늘성에서 리타이어한 플레이어들에 의해 생겨나는 던전이잖아요.”

“굳이 플레이어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어. 개미굴이 플레이어들의 힘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니까.”

개미굴 던전이 품고 있는 몬스터와 마력이 어디서 왔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일은 간단하다. 당연히 이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세계의 침략자들은 리타이어하는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지상에 던전을……?”

그쯤에서 수아린의 머리는 한계를 맞이했다. 여태 플레이어들이 굳이 이해하지 않으려 하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대가는 실로 참혹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수아린의 눈을 본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망치를 들어 올렸다.

“난 이미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몬스터들이 어떻건 신이 어떻건, 던전이 어떻건.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그렇다. 전부 부수고 파괴하면 되는 것이다!

“와오!”

대체 지금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 모두를 지워 버리면 만사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늘성과 개미굴을 누가 만들었건, 그놈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건, 이세계에서 쳐들어오는 놈들이 대체 지구의 무엇을 노리고 있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조만간 그들 모두 더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어쩜 이렇게 무식하면서도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걸까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정시우는 두 서포터의 든든한 응원에 힘입어 별 탈 없이 던전을 진행했다. 던전의 보스는 하늘성의 던전에는 나타난 적이 없는 초거대 원숭이로,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왼손으로 무지막지한 마법을 마구 쏘아 내는 괴물이었다.

그러나 레벨 200의 엘리트 몬스터에 달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놈의 마법에 당하면서도 정시우는 환호했다.

“좋았어, 내성 오른다!”

“왜 아니겠어요!”

정시우는 장장 세 시간, 놈의 마력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마법을 모두 받아 내어 기어이 빙결과 바람, 대지 내성을 5레벨로 올려놓은 후에야 원숭이의 한 많았던 삶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다.

[개미굴 에이리어 #121 악마원숭이의 숲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정산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순간 느꼈던 악마원숭이의 힘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이번에 레벨 100이 될 것도 같은데.”

“100레벨 기념으로 쉬어요. 제발.”

“그래, 그래.”

정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수아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던 그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돌연 정시우의 망막을 가득 채우는 메시지가 있었다.

[경험치 정산이 취소됩니다.]

[대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안전을 위해 지상으로 추방됩니다.]

“……뭐?”

정시우가 반문했지만, 당연하게도 그에게 대답을 해 줄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 터무니없는 압력이 가해진 다음 순간, 정시우는 두 서포터와 함께 나란히 지상으로 튕겨 나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이런 경우 없는, 적어도 경험치 정산은 끝난 후…… 뭐?”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올린 정시우의 눈에 살짝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것은 대지가 융기하며 지상의 건물들이 마구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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