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주방은 상당히 넓은 내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호텔 레스토랑의 주방만 한 크기에, 온갖 냄비며 오븐에 찜기, 정시우가 상상할 수 없는 조리도구와 기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사용하는 가스며 전기는…… 그렇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리 뜯어 봐도 작동구조를 알 수 없는 점이 변함없는 휴식처 퀄리티였다. 그는 대충 주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제, 그러니까 주방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심상치 않은 마력을 뿜어내는, 실로 거대한 크기의 도마가 놓여 있었다.
“너 대체 뭘 건드린 거냐?”
“그냥 요리를 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무슨 가공이 가능하다면서 덜컥 저 도마가!”
어쩌면 그것은 정시우가 팬텀스티드의 마석을 꺼내 든 것과 무엇인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정시우는 조용히 그 마석을 거대한 도마 끄트머리에 올려놓아 보았다. 그러자 마석이 도마와 반응해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곧장 그의 망막 위로 믿기지 않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탑승형 아티팩트(중형)에 적합한 마석을 확인했습니다. 적합한 재료를 더해 가공할 수 있습니다.]
“……그냥 마석 가공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메시지에 반문하듯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탑승기구 1/1]
[소재 2,364/500 kg]
[마감재 596/50]
[재료를 모두 도마에 올려놓으면 가공이 시작됩니다. 마감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완성도를 높입니다.]
“심지어 이미 재료를 전부 가지고 있다고?”
“어……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오빠?”
“조금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한테 요리를 시키려는 모양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마석 가공이 아니라 아티팩트 제작이었다. 이렇게 사람을 놀리다니 분하긴 했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개이득이라는 생각이 더욱 컸다.
“다른 것도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네.”
“이미 형님이 다 드셔 버렸으니 말이죠.”
“쩝, 앞으론 마석을 먹기 전에 일일이 확인해야 하나.”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주방의 특수기능은 특정한 마석에 반응하며, 마석에 더해 적합한 재료를 더하는 것으로 테마에 맞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했다.
정시우는 아까 자신에게 기술이 없어 안 될 것이라느니 뭐라느니 이야기를 줄창 늘어놓았지만 실은 현 지구상의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아티팩트 생산 시설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휴식처를 업그레이드하며 얻은 기능이니 엄밀히 말해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면 형님, 나머지 재료들은 어떻게 확인하는 겁니까?”
“대충 감은 가. 어디 보자, 그러니까…….”
정시우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역시나, 그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들이 보였다. 완벽하게 해체한 갑옷뱀장어의 비늘과 뼈대, 가죽. 아마도 이것들이 소재며 마감재인 모양이었다. 어느 것이 소재이고 어느 것이 마감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유일한 난관이었다.
“그리고 탑승기구라는 건 역시…… 아, 그래.”
무엇을 감추리, 바로 정시우의 바이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던전에서는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었던 바로 그 바이크 말이다.
“이럴 수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막상 그것이 도마에 반응하듯 빛을 뿌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시우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지금,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두 문명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광경을 최초로 목도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피자 위에 파인애플 토핑을 얹은 요리사가 이런 기분이었을 것인가. 아, 이건 아닌가.
“이 바이크를 봐줘. 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해?”
“크고 멋집니다, 형님.”
“용세하 조용히 해.”
“넵, 형님.”
“저는…….”
수아린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도마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을 음미하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가는 후우, 깊은 숨을 토해 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봐요.”
“좋았어, 지르자.”
정시우는 수아린의 답을 듣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음은 기울어 있었다. 스스로의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을 도마 위로 올렸다. 갑옷뱀장어의 살을 발라내고 남은 단단하고, 가끔씩 스파크를 튀기는 뼈대도, 놈에게서 나온 비늘과 가죽도 모두 깔끔하게 부어 버렸다.
“잘 됐지 뭐. 버리기엔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마땅한 용처도 없었고.”
“차라리 놔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아티팩트를 만들기에 적합한 마석을 얻게 되면 그때 쓰는 게 어떨까요?”
“그땐 또 다른 신의 흔적을 얻어 올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멋지십니다, 형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남겨 둘까.”
소재와 마감재를 먼저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법 신세를 졌던 바이크를 도마에 올렸다.
그러자 도마 위에 올라간 모든 재료가 공명을 일으키며 한 군데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물질과 물질의 경계가 사라지고, 마나와 마나가 아닌 것이 하나로 녹아내리는 것이다!
“정말 성공적으로 융합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좋아, 이걸로 내 턴을 종료한다.”
“대체 누구랑 듀얼을 하고 계신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도 설마 했던 수아린과 정시우가 제각기 안도의 마음을 담아 제법 안정감 있는 만담을 나누는 동안, 용세하가 실로 기대된다는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한 기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형님, 그런데 만약 저게 성공적으로 제작이 된다고 치면, 그걸 던전 안에서도 타고 다닐 수 있을까요?”
“아티팩트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 저 과정이야말로 바이크를 던전에 맞게 리폼하는…….”
그 순간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일행의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정시우는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빛 무리의 폭발 안에서 변화하는 물질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지나친 광량에도 아무런 손상을 받지 않고 버티는 것, 시각 스킬의 또 다른 효용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런 거였나.’
바이크의 원래 소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탑승기구가 필요했던 것은 오직 바이크를 이루는 구조와 기술, 형태를 본뜨기 위해서였다. 단지 그뿐, 바이크를 이루고 있는 물질은 제작 과정에서 모두 부정되었다.
“으으으.”
“왜 이렇게 중요한 때에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이래선 마치 조연 같잖아요!”
“얘도 이상한 데 집착을 하네.”
바이크의 뼈대를 갑옷뱀장어의 뼈가 대체하고, 바퀴며 외장은 놈의 가죽과 근육이 대신했다. 신의 힘이 가득 깃들어 강화된 비늘은 그 모두에 녹아들어 내구도와 성능을 강화시켰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이 앞바퀴와 프론트 펜더, 앞 유리에 집중적으로 흡수되었다.
‘완벽해. 완벽하게 엉망진창이야.’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물질과 마나의 변화에 대해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 엉망진창이라는 정시우의 감상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것들이 만나 이루어 내는 상승작용만은 뚜렷이 읽어 낼 수 있었으니,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걸렸다.
저것은 완전한 아티팩트다. 던전에서 저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정시우 본인이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대 기술과 마나의 만남이라고? 천만에, 저것은 마나가 기술을 흡수해 독자적인 술식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저것은 기술이라기보다, 마법이라고 부르는 쪽이 옳았다.
정시우가 그렇게 결론 내리는 바로 그 순간, 바이크의 연료탱크에 해당하는 부분에 팬텀스티드의 마석이 안착하며 더한 빛을 내뿜었다.
단지 형태를 이루었을 뿐 마도구로서 기능하지 못하던 바이크의 모든 부분이 그것에 공명하며 하나로 합쳐져, 끝내 온전한 형태를 이루었다. 앞 유리와 프론트 펜더, 바퀴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그로써 제작이 끝났다.
[썬더스케일 팬텀바이크]
[랭크 ? A++]
[숙련도 ? 0/2,500]
[옵션 ? 1. 투명화 2. ???]
[뇌신의 힘이 깃든 용의 소재와 팬텀스티드의 기원이 담긴 마석이 만나 탄생한 탑승형 아티팩트. 마력으로 구동하며, 팬텀스티드의 기원을 지니고 있어 기본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하다.]
“쩐다!”
“쩐다!”
남자 두 명이 일제히 외쳤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을 굉장히 바보처럼 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알까? 아니, 아마 알아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의 바이크의 형태를 그대로 따온 날카로운 검은 금속질의 몸체, 조금씩 스파크를 튀기는 푸른빛의 바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차체! 정말로 유령마와 번개와 바이크를 한데 섞어 놓으면 이런 게 나올 것 같다 싶은 녀석이 이곳에 있었다!
“너무 멋집니다 형님!”
“말 잘 들으면 너도 태워 주마.”
“형님만 평생 따르겠습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바이크의 랭크가 무려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과 같은 A++라는 것도, 투명화 옵션을 비롯해 대단한 요소가 많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바이크의 외관이 개쩐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남자는 나이를 얼마나 먹든 아이다. 그런 진리를 새삼스레 되새기며 수아린이 말했다.
“이제 일 다 해결되셨으면 나가세요.”
“응?”
“요리하게, 나가시라구욧.”
수아린은 아예 바깥으로 나가 바이크를 시험하고 오는 것도 좋겠네요, 하고 말하며 두 남자를 주방에서 쫓아냈다. 정시우와 용세하는 잠시 멍해져 있었지만 이내 수아린이 말한 대로 휴식처를 뛰쳐나왔다. 실은 아주 신이 나 있었다.
“형님, 이 투명화 기능은 설마 제가 상상하는 그 기능일까요?”
“직접 써 보면 명백해지겠지.”
커다란 안장에 올라탄 정시우가 곧장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연료탱크에 가득 차 있던 마력이 아주 조금씩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이런 식으로 구동하는 것인가. 정시우 본인의 마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연료탱크에 마석을 넣어 마력을 보충해 줄 수도 있다. 적어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 타고 다니는 데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투명화.”
옵션을 발동하자 또 연료탱크의 마력이 소모되었다. 그렇게 되자 바이크만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이크에 앉은 정시우의 모습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용세하가 예상했던 바로 그대로의 기능이 맞았다!
[투명화 지속시간이 풀리면, 혹은 물체와 맞닿으면 투명화가 해제됩니다.]
“형님, 기척만 감추면 기습 공격도 가능하겠는데요!”
서포터들이 지닌 은신 능력과 조화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투명해진 바이크에 탄 채 일대를 질주하며 재탄생한 팬텀 바이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지, 승차감이 얼마나 끝내 주는지를 확인했다.
“형님, 이륙해 보죠. 이륙.”
“후.”
그리고 드디어 바이크가 지닌 또 다른 기능을 시험해 볼 순간이 왔다. 정시우는 용세하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교환하고는 그립을 있는 힘껏 쥐며 바이크에 의념을 전달했다.
팬텀스티드가 엄연히 사고하며 움직이는 몬스터였던 만큼, 그 마석이 적용된 팬텀 바이크 역시 그의 의사를 전달받아 평범한 바이크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가속을, 끝내는 비행까지도 해내는 것이다!
“떴다!”
“뜹니다!”
바이크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외계인을 태운 자전거가 하늘을 날아도 지금 이 순간보다는 덜 감격적이었으리라! 정시우는 그렇다 치고 등에 멋진 나비 날개가 달린 용세하조차 그것을 즐겼다. 원래 요리사도 자신이 한 요리보다 남이 해 준 밥을 더 맛있게 먹는 법이다.
“이거 정말 쩌는데…….”
정시우는 발 아래로 펼쳐지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감격에 젖어 중얼거렸다. 지하 플레이어가 된 후로 많은 신비한 일들을 겪었지만, 단언컨대 지금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그는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이 바이크를 타고…… 하늘성까지 날아오르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거지……?’
고개를 들면 구름 저 너머로 보이는 하늘성. 순간적으로 궁금증과 욕망이 치밀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투명화가 풀리기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어, 망했다.”
“빨리 내려가시죠, 형님! 빨리!”
그렇게 정시우는 한순간 피어난 작은 소망을 일단 접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도달해 보이리라,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