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형님, 무기 완성됐습니다!”
“오빠, 괜찮아요!?”
뇌신의 라이플을 품에 안은 용세하와 수아린이 다급히 그 공간을 뛰쳐나왔다. 정시우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뱀장어를 몰아붙였다.
신전이 완벽하게 파괴되어서인지, 아니면 라이플의 각성을 막지 못해서인지 놈의 몸에는 힘이 빠져 있었고, 정시우의 돌진을 막지 못해 바닥에 시커멓게 탄 흔적을 남기며 쭈욱 밀려나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아아!]
“크으으으으.”
[뇌전 내성이 Lv7이 되었습니다. A랭크 이하의 뇌전 공격에는 마비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정시우의 전신에 신의 권능을 담은 뇌전이 흘러 들어왔으나 이제 이 정도로는 그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어깨로 놈을 강하게 들이받아 밀쳐 내곤 그대로 망치를 휘둘러 놈의 콧등을 내려쳤다!
“흐…… 으아아아압!”
[카학!]
파직, 소리와 함께 놈의 갑각이 드디어 일부 파괴되었다! 그 안의 살점은 더욱 엉망진창으로 짓눌려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정시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역시 이길 수 있겠어.”
[거, 거짓육신이라 할지언정 나의 힘이 닿은 육신에……!]
“기대하고 있어. 언젠가 본체에 똑같은 흔적을 남겨 주지.”
정시우는 망치를 쥔 양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는 괴력의 유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전에 놈을 끝장내야 했다!
“오빠, 이걸로 더 약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해!”
[이, 이 버러지들이……!]
놈은 정시우를 놔두고 용세하와 수아린을 향해 돌진하려 했으나 정시우가 내려친 해머에 얻어맞아 덜컥 동작이 멈추었다. 정시우가 이를 드러내며 놈을 거세게 밀쳤다. 이젠 아예 정시우가 힘 싸움으로 놈을 압도하고 있었다!
“어딜!”
“하겠습니다!”
짧은 유예가 주어진 그 순간, 용세하가 뇌신의 라이플의 능력을 발동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썬더 서펜트의 마나가, 섬뜩하고 강렬한 뇌전의 기운이 놈의 육신을 벗어나 뇌신의 라이플로 흡수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내, 내 힘으로 감히 나를…… 나르으으으으을!]
“뭔지는 몰라도 아주 잘했어!”
가뜩이나 약화된 상황에서 힘을 더 빼앗아가니 썬더 서펜트는 처음 흉악하게 등장했던 기세가 무색하게도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정시우는 적의 약점을 공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남자였다.
“뒈져! 뒈져! 뒈져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
그의 괴력을 오롯이 담아낸 거랑의 앞발이 위협적인 불꽃을 토해 내며 서펜트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강타가 거듭될수록 붉은 불꽃 또한 거세게 타올랐다.
해머에 인챈트된 불꽃의 힘은 그리 격이 높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시우의 거칠고 밀도 높은 마나의 영향을 받아 서펜트의 몸통 깊숙이 파고들며 놈의 피를, 뼈와 육신을 태워 버렸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기적이었다.
[신의 힘과 맞닿아 이겨 내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거랑의 앞발에 깃든 화염의 랭크가 영구적으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괴력 스킬이 Lv2가 되었습니다.]
뭔가 눈앞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정시우는 그저 망치를 있는 힘껏 내려찍어 놈의 머리통을 빠갤 뿐이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놈은 어떻게든 정시우를 물어뜯거나 뇌전을 쏘아 내 그를 태워 버리려 들었지만 뇌신의 라이플이 만들어 내는 흡입력에 그 태반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뇌신의 라이플에 모이는 기운이 강력해질수록 놈의 육신에 어린 마나는 약해졌다. 반대로 정시우는 지치지도 않는 것처럼 점점 더 강한 힘으로 놈을 때렸다!
[마리나…….]
그렇게 몇 번을 더 후려갈긴 것일까. 전투의 승리자가 누구인지 가려진 그 순간 라이아가 울부짖었다. 원한과 분노, 억울함에 가득한 목소리였다.
[마리나아아아아아아!]
나중에 마리나 비셋을 만나게 되거든 뇌신을 조심하라고 일러 주어야겠군. 정시우는 막연히 그렇게 다짐하며 있는 힘껏 망치를 내려쳤다.
“뒈지라고!”
[고작 이 정도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뇌신 라이아가 저주하듯이 말을 내뱉은 다음 순간, 정시우의 망치가 지금까지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품고 놈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흉악한 안광을 뿜어내던 썬더 서펜트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났다.
“후, 후우우우…….”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신의 마나는 그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두가 정시우에게 흡수되었다.
[소신전이 파괴되어 지구에 미치는 뇌신 라이아의 영향력이 3.6% 감소합니다.]
[강림체의 파괴로 인해 지구에 미치는 뇌신 라이아의 영향력이 추가로 7% 감소합니다.]
[레벨이 7 올랐습니다.]
[뇌전 내성이 Lv9가 되었습니다.]
[용의 위엄이 Lv7이 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스킬, 시각(패시브)을 얻었습니다.]
[????의 ????가 ????]
“……?”
한꺼번에 많은 레벨이 올라 고통에 몸부림치던 정시우는 순간적으로 그의 망막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고는 극심한 격통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게 진짜 게임도 아니고 버그는 아닐 텐데 대체 물음표라니 무엇이란…….
“으가가가가가.”
안타깝게도 그 순간 괴력 스킬의 유지 시간이 끝났다. 가뜩이나 아파 죽겠는데 신체 격변의 고통에 근육통까지 더해지니 너무 아파 그 이상은 사고를 이을 수가 없었다. 정시우는 확실치도 않은 것은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괴로워하기로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정시우는 다 무너져 버린 신전 지하를 굴러다니며 끔찍한 고통을 버텨 내야 했다.
“오빠, 괜찮아요?”
“……응.”
정시우가 눈을 뜨고 보니 언제나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수아린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한없이 신비롭게 빛나는 눈망울, 틈 하나 없이 매끈한 우윳빛 피부, 도톰하니 생그럽게 피어난 입술…….
‘뭐야, 뭐 이리 예뻐.’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자세히 보여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정시우는 이내 그것이 바로 방금 새로 얻은 패시브 스킬 시각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자각하자 시야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패시브 스킬이긴 하지만 자유자재로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오감은 스킬화할 수 있는 게 맞았어.”
“전투 중에 만들기라도 하신 거예요!?”
“아니, 어쩌다 보니 저절로 얻었어.”
하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시각일까, 생뚱맞은 것도 정도가 있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생뚱맞았기에 그렇게 놀라운 일만도 아니었지만.
정시우는 어쨌든 따로 마나 소모할 일이 줄어들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관이 따로 없었다.
“완전히 폐허가 됐네.”
“신전을 완벽하게 부순 건 좋지만 그 덕에 외부에 노출된 상황이에요. 혹여나 다른 이들이 몰려오기 전에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죠.”
“그래, 그래야지. 혹시 뭐 놓친 건 없지?”
“저 뱀장어의 사체는 챙겨야겠죠?”
맞는 말이다. 신의 마나를 다 회수하기는 했지만, 뇌신 라이아가 강림하는 순간 놈의 육신은 근본적인 진화를 이루어 성질과 강도가 압도적으로 상승했으니까.
정시우는 냉큼 그것을 인벤토리로 들였다. 이곳 신전에 와서 엘리트 몬스터의 사체만 회수했음에도 인벤토리의 80% 이상이 차 있었다.
“형님, 여기 제일 중요한 게 있습니다.”
“아, 네가 들고 있었지.”
용세하가 끙차, 소리를 내며 그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뇌신의 라이플이었다. 가뜩이나 이전에도 거대했는데 지금은 총신이 더욱 길어졌고, 날렵한 총신에 황금빛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어 폼 하나는 끝내 줬다.
정시우는 제단에서 느꼈던 뇌신의 위압감, 기세가 고스란히 라이플에서 느껴지는 것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라이플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의 눈앞으로 믿기지 않는 문자의 나열이 떠올랐다.
[뇌신의 레이지 라이플(봉인)]
[랭크 ? A++]
[공격력 ? 3,100 ? 4,200]
[숙련도 ? 219/2,000]
[옵션 ? 1. 외부 마나를 빨아들여 보다 강력한 일격을 쏘아 내는 ‘차지 샷’이 가능해진다. 뇌전 속성의 마나를 더욱 효과적으로 흡수해, 증폭시킬 수 있다. 2. ???]
[뇌신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 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무구. 무구의 습득 당시 주인의 능력을 고려하여 라이플로 개조되었으며, 형태가 고착되어 다시는 변하지 않는다. 마탄 계열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이 라이플을 통해 마탄을 발현, 보다 강력한 마탄을 발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뇌신의 힘을 보다 많이 흡수하며 아티팩트의 근본적인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1차 봉인이 해제된 상태이다.]
“A++랭크……!?”
레벨 300까지의 몬스터를 상대로 통하는 무기란 얘기가 아닌가! 그야 지금 정시우가 이미 레벨 200을 넘나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용세하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했다.
“마리나 비셋이 이걸 보면 뭐라고 말할까요.”
“뭐라고 말하긴.”
정시우는 이전에 비해서도 두 배가량 무거워진 뇌신의 라이플을 한 손으로 휙휙 휘두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더럽게 무겁다고 말하겠지 뭐.”
랭크가 업그레이드된 만큼 무게도 업그레이드되고, 공격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화되었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옵션이 개방되었다. 마지막 순간, 라이아의 힘을 빨아들인 것은 이번에 새로 개방된 첫 번째 옵션임에 분명했다.
하기야 뇌전 속성의 마나, 그것도 뇌신 본인의 마나라면 빨려 들어가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을 생각해 내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정시우가 놈을 당해 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잘 했어. 절묘한 어시스트였다.”
“그게 없었어도 어차피 오빠가 이겼을 것 같긴 하지만요.”
설마 그 거대한 뱀을 상대로 무식하게 몰아붙여 끝내 힘으로 꺾어 누를 줄이야, 전설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었으리라.
수아린은 아직까지도 그녀의 망막에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거랑의 앞발을 들어 거대한 뱀을 몰아붙이던 정시우의 모습을.
실로 가슴 두근거리는 광경이었다. 분하게도.
“이미 인간이 아니네요.”
“하지만 이 정도론 아직 부족해. 놈의 말이 맞아. 이 정도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놈은 뇌신 라이아의 본체도 아니고, 한낱 엘리트 몬스터에 강림하면서 심지어는 마력까지 손상되어 있던 상태였다. 그것조차 간신히 꺾어 놓은 주제에 우쭐댈 틈이라곤 도저히 없었다.
“더 강해져야지. 더.”
“어째서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정말.”
수아린은 끝내 정시우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그를 따라 웃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정시우는 모르겠지.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기지개를 켰다.
“건질 거 건졌으면 어서 돌아가자. 지쳤다.”
“네, 어서 가요. 어서.”
전직 퀘스트 이후 첫 원정이었지만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흠을 잡지 못할 만큼 완벽한 성공이었다. 정시우는 스스로도 만족하며 지구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활성화했다.
“형님, 장어덮밥이 먹고 싶습니다.”
“좋아, 내가 남자의 요리를 보여 주지.”
“……제가 할게요, 제가. 다들 얼른 들어가기나 해요.”
세 명의 이방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서늘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신의 은총도 흔적도 모두 사라진 폐허, 아마 당분간 그곳에 이계로 통하는 통로가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