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화.
중앙기둥이 아작 나자 정시우의 뒤를 따라 3층이 통째로 붕괴하며 2층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록 그 모두가 정시우 본인이 이끌어 낸 결과는 아니었으나, 3층, 4층, 5층을 이루고 있던 자재들이 일제히 2층으로 쏟아져 내리는 광경이란 실로 장관이었다.
“으아아아아아, 형님!”
“그래, 이쪽으로 와라!”
정시우가 2층에 안착하여 망치를 고쳐 쥐는 사이, 도저히 전투를 속행하지 못하게 된 용세하가 다급히 미니 사이즈로 돌아와 정시우의 품으로 복귀했다.
[크와아아아아아!]
[키륵, 키라라라!]
“흡!”
정시우는 용세하를 받아들인 후, 망치를 휘둘러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건물 자재들만 적당히 쳐 내어 엘리트 몬스터들에게 날려 견제했다.
뇌전이야 여기저기서 날아들고 있었지만 워낙 사방에 방어막으로 써먹을 만한 것들이 많아 정작 정시우는 별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러고도 해소하지 못하는 공격 정도는 뇌전 내성으로도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는 수준!
[캭!]
[캬하아아아!]
[쿠르르!]
그러는 동안 묵직하고 단단하며 날카로운 건물 파편들이 2층을 강타하며 2층에 남아 있던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끝장내었다. 그 숫자만 장장 수천에 이르렀다.
[레벨이 2 올랐습니다.]
“형님, 몬스터 어마어마하게 죽었는데요.”
“아무래도 내가 죽인 걸로 인정되나 보다. 여기저기서 마나 날아드는 거 봐라.”
정시우는 자신이 만들어 낸 참상을 보며 건축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깊어졌다. 자재들과 섞여 떨어지는 과정에서 엘리트 몬스터도 두 마리가 죽었고, 정시우는 종말의 한가운데에 놓인 것만 같은 신전을 질주하며 놈들의 사체를 회수했다.
[신전 파괴율 : 97%]
물론 2층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여기저기서 묵직한 건축 자재가 떨어져 타격을 가하자, 애초에 불안정했던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끝내 2층까지 붕괴되었다!
[키아아아아아!]
[캭! 캬가가가가가가칵!]
추락하며 여기저기 얻어맞는 바람에 중상을 입은 엘리트 몬스터들은 겨우 정시우를 사정거리 안에 넣은 순간 다시 일어나는 붕괴에 짜증과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물론 정시우는 인자한 미소와 파편 스매시로 대답해 주었다. 한 마리가 더 죽었다.
[신전 파괴율 : 98%]
[신전 구조가 헐거워지며 뇌신의 라이플의 마나 흡수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남은 시간 ? 1:28]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4:22]
이미 이 시점에서 정시우의 최초 목적은 거의 달성했다. 이제 신전은 그냥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완전히 붕괴될 터이고, 1분 30초만 더 버텨 강화가 완료된 라이플을 들고 지구로 튀기만 하면 완벽했다. 물론 정시우는 뇌신의 강림체와 싸워 볼 생각이었지만.
“형님, 무너집니다! 떨어집니다!”
“알고 있어!”
2층이 통째로 무너지며 정시우는 끝내 자신이 처음 도착했던 곳, 지하 1층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무사히 대지에 안착했으나 추락 과정에서 엘리트 한 마리가 더 죽고 다른 한 마리도 빈사 상태에 빠졌다.
애초에 정시우와 치고 박고 하며 많이 소모되어 있던 녀석들인데, 3층에서부터 지하 1층까지 떨어져 내리며 지들끼리 부딪히고 건물 파편에 무수히 얻어맞으며 끝내 체력이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크롸아아아아아아아!]
“으아, 어지러워.”
정시우는 불과 조금 전 레벨 업을 했던 주제에 체내의 마나가 가득 차올라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에 놓였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게임으로 치면 경험치 99%, 필드의 슬라임만 잡아도 레벨 업 하는 상황!
“오빠!?”
그때 수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힐끗한 정시우는 자신이 착지한 곳이 지하창고와 무척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곳은 더 이상 지하창고라고 부를 수 없는 공터가 되어 있었지만!
하긴 신전이 통째로 무너지는데 지하 창고라고 안전했겠는가. 다행히 가장 튼튼하게 지어진 장소라 수아린이 다치거나 제단에 이상이 가는 일은 없었지만, 2, 3, 4, 5층이 전부 무너지며 그 파편들이 쏟아진 까닭에 천장과 사방 벽이 시원하게 뚫려, 정시우가 육안으로 제단과 수아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하야, 아린이 지켜라.”
“넵, 형님!”
정시우는 혹여나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수아린을 해할까 염려되어 용세하를 수아린에게 날려 보냈다. 그리곤 이 난리통에도 살아남은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섰다. 일반 몬스터는 신경 쓰지 않는다. 엘리트 두 마리만 처리하면 해결이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사소한 문제가 있었으니 남은 엘리트 중 가장 멀쩡한 놈이 엘리트 중 가장 강력한 갑옷 전기뱀장어라는 사실이었다.
가장 위험한 놈을 제일 먼저 잡았어야 했는데 놈과 제대로 붙고 있다 보면 시간이 왕창 흐를 것 같아 일단 다른 놈들을 죽이는 것을 우선시 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된 것.
“씁.”
[크루루루루루루오오오오오!]
놈이 정시우를 위협하듯 포효를 내지르자 대기가 진동하며 방전을 일으키는 것이 실로 압권이었다. 아무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모양이었다. 그야 스스로 정시우를 도와 신전을 붕괴시킨 셈이 되었으니!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3:03]
“그래도 3분 안에만 죽이면 되겠지 뭐.”
정시우는 심드렁하니 중얼거리며 두 망치를 꽉 쥐었다. 그의 체력과 마력은 연이은 레벨 업으로 거의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화되기까지 했다. 반면 갑옷 전기뱀장어는 산에서 들에서 때리고 뒹구느라 이래저래 소모된 상황.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어…… 갑자기 조금 불안해졌는데 왜지?”
그렇게 정시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린 바로 그 순간, 신전의 사방 벽이 터져 나가며 바깥 세계의 풍경이 드러났다.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 뇌운이 가득한 하늘이 우르릉, 분노로 울고 있었다.
[신전 파괴율 : 99%]
[신전이 거의 완벽하게 파괴되며 뇌신의 라이플로 신전 내 모든 마나가 흡수됩니다. 뇌신의 라이플 각성까지 남은 시간 : 35초]
[신전의 몬스터들이 모두 약화됩니다. 뇌신이 힘의 손실을 감수하고 강림을 앞당깁니다.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17초]
“아니 잠깐잠깐잠깐잠깐.”
이거 설마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고 뻐겨서 일어난 일은 아니겠지! 그야 물론 아니겠지만 그래도 찝찝한 이 기분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더욱이 17초라니, 그 안에 저 갑옷뱀장어를 잡을 확률은…….
[크롸아아아아아아!]
“아, 무리겠네.”
전기뱀장어의 몸통이 짙은 푸른빛에 감싸여 방전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놈의 근처에 있던 엘리트 몬스터를 시작으로, 신전 대붕괴에서도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마나로 화해 놈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마리 한 마리 흡수할 때마다 갑옷뱀장어의 몸통에 난 상처가 낫고 있기까지 했다.
놈의 마나가 보다 사악하고 밀도 높은 무엇인가로 변해가는 것이 정시우에게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제단에서 느꼈던 신의 힘과 비슷한, 음산하고 섬뜩한 마나로 말이다.
“애초에 저놈에 강림하려고 점찍어 두고 있었구나. 이 상도덕도 모르는 자식이……!”
정시우는 이를 뿌득 갈며 분노했지만 지금 상황에 그가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놈이 뿜어내는 번개의 방전량으로 보아 놈에게 덤벼도 그리 상황이 재미있어질 것 같지는 않다. 만화에 나오는 빌런들이 어째서 히어로의 변신 장면을 그대로 놔두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크하아아아아! 나의 것, 돌려받겠다!]
“말도 하잖아!? 혹시 벌써 뇌신이…… 아니, 뭐?”
그런데 놈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난 다음 순간, 아직 강림이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놈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시우를 공격해올 줄 알았으나 놈의 돌진 방향은 달랐다. 놈은 지하 창고, 제단 위에서 푸르게 빛나며 신전의 모든 마나를 잡아당기고 있는 뇌신의 라이플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그건 내 거야 인마!”
[나의 것이다!]
정시우는 다급히 망치 하나를 놈에게 내던지며 크루얼 차지를 발동했다. 마나가 부여된 거인의 비명이 갑옷뱀장어의 머리통을 정확히 가격해 놈의 돌진을 잠깐 멈추었지만, 그것도 1초 정도에 불과했다.
“후.”
[쿠아!?]
그리고 그 1초 사이 놈을 완전히 앞지른 정시우가 거랑의 앞발을 거대화하며 놈을 막아섰다.
“내 거라고 자식아.”
한순간 엘리트 몬스터에 뇌신이 강림하는 것을 보며 포기할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던 정시우였으나, 역시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은 정시우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더욱이 이제 와서 라이플을 포기하고 튀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뇌신이 무리해서 강림하느라 힘이 손실된 덕에 엘리트 몬스터에 강림한 것치고는 놈의 기세가 그렇게 마냥 압도적이지도 않았다. 정시우의 직감이 말하는 것이다. 무척 강하지만 그렇다고 넘어설 수 없는 상대는 아니라고.
[이…… 욕심만 많은 벌레가……!]
갑옷뱀장어의 전신이 파르르 떨리며 어마어마한 양의 뇌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뇌운으로 가득한 하늘이 그것에 응답하듯 놈의 육신에 거대한 번개를 내리꽂았다. 뱀장어의 몸통이 거대해지며 비늘이 완전한 갑각으로 부풀어 놈의 전신을 뒤덮었다.
[뇌신 라이아가 엘리트 몬스터 ‘썬더 서펜트’에 강림합니다.]
[위험도가 ‘매우 높음’으로 상향됩니다.]
“쯔.”
정시우는 거대화한 거랑의 앞발을 양손으로 붙잡고 놈을 겨누었다. 놈이 입을 벌려 거대한 뇌전의 구체를 쏘아 냈다.
피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였을뿐더러, 설령 피한다고 해도 그대로 날아가 제단을 부숴 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정시우는 스톤 스킨을 발동하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뇌전 공격에 당했습니다. 뇌전 내성으로 완전히 저항하지 못해 미약한 마비 상태가 됩니다.]
“으득…….”
[감히.]
미약한 마비 정도는 기합으로 어떻게든 된다. 그는 곧이어 날아든 두 번째 뇌전 구체에 얻어맞으면서도 오히려 한 발짝 더 내딛으며 망치를 사선으로 있는 힘껏 휘둘러 올려쳤다.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공격도 빠르지만 공격을 하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놈의 쩍 벌어진 턱에 보기 좋게 해머가 명중해 입을 강제로 다물게 만들었다.
[카학!]
“겁나 단단하네.”
아무래도 신의 권능은 놈의 마력과 갑각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놈의 갑각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도 정시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아프지?”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망치를 휘두른 정시우 본인의 양팔도 저릿저릿했다. 충격 순간의 반동이 끔찍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얻어맞은 놈보다는 덜하리라. 아무리 갑옷이 단단한들 내부로 전해지는 충격까지는 어떻게 해소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충격이 전달되는 한 정시우는 놈을 이길 수 있었다!
“더 두들겨서 포로 만들어 주지!”
[신의 힘 앞에 언제까지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꾸나!]
뇌전을 전신에 두른 썬더 서펜트가 정시우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해 왔다. 마치 푸른 유성이 지상을 내달리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도, 물리력도 단언컨대 정시우가 상대했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강력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피하면 놈이 제단에 도달할 테니까. 그러니 막아야 했다. 저걸, 정시우가.
“하.”
속도가 너무 빨라 거대 망치로는 두들기기가 힘들다. 그는 해머 크기를 줄여 고쳐 쥐고는 돌진해 오는 서펜트를 향해 크루얼 차지를 발동해 마주 돌진했다. 열차와 인간이 정면으로 충돌해도 이보다는 덜 무식해 보이리라.
[죽어라, 버러지야!]
“죽는 건 네놈이다, 이 뱀장어야!”
그러나 충돌 직전의 순간, 정시우의 전신 근육이 팽창하며 압도적인 힘을 더했다. 파괴자로 전직하며 얻은 스킬 괴력이었다.
이런 비장의 무기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정시우가 앞뒤 생각 안 한다 해도 무턱대고 놈을 막아 낼 생각은 할 수 없었으리라.
[고작 그 정도 미약한 권능으로……!]
“흐으아아아아!”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일었다. 마나가 가득 주입된 망치와 서펜트의 갑각에 뒤덮인 머리통이, 인간과 신이, 마나와 마나가 부딪혔다.
압도적인 충격량이 정시우의 양팔에 전해졌다.
“끄으으으으으으으으!”
자칫 그대로 팔이 부러져 버릴 것만 같은 격통 속에서도 정시우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절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으오오오오오오오!”
[……!?]
그것은 기적이었을까? 그가 전신으로 발산하는 기세에 순간적으로 썬더 서펜트가 움찔했다. 본인도 어째서 자신이 멈추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정시우가 알 바 아니었다.
기회를 잡은 정시우가 전신에 기합을 주며 망치를 앞으로 밀어냈다.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괴력이 담긴 망치가 괴물의 육신을 짓눌렀다.
“흐아아아아아!”
[큭, 네놈, 어떻……!]
썬더 서펜트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괴력 스킬 덕분이겠지, 정시우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달랐다. 놀랍게도 신의 두 눈에 미약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너, 설마……!]
바로 그 순간, 격돌하는 두 존재의 뒤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것을 감지한 썬더 서펜트가 방금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마저 잊고는 절규했다.
[안 돼!]
[뇌신의 라이플의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봉인이 1차 해방됩니다.]
[신전 파괴율 : 100%. 뇌신의 힘이 약화됩니다.]
정시우의 승리가 확정적으로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