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68화.
[크화아아악!]
[키랏!]
뇌신 라이아의 소신전에는 리자드맨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와 1층, 2층에는 리자드맨만이 있었지만 3층과 4층, 최상층인 5층으로 가게 되면 날아다니는 몬스터도 제법 되었다. 날개를 부딪쳐 번개를 만들어 내는 거대 벌들, 그리고 입으로 번개를 쏘아 내는 거대 새!
[삐빗!]
[삐이이이이이!]
“날개는 나도 있거든!”
용세하는 그런 몬스터들 틈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나비 날개가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용세하의 등을 강하게 떠민 다음 순간에는 그의 랜스가 몬스터들의 몸통을 꿰뚫고 있었다. 아직 힘이 조금 부족해 둠 나이트의 스켈레톤 랜스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으나, 지금 그의 능력으로도 몬스터 무리를 헤집어 놓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우오오오오오오!”
[키랏! 키라랏!]
“흡……!”
용세하에게는 정시우와 같은 뇌전 내성이 없다. 대신 그에게는 방패가 있었다. 속성 공격의 데미지를 줄여 주고 상태이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능력을 지닌 라운드 실드.
과거 그가 리타이어하는 과정에서 방패의 능력도 줄어들었었는데, 레벨이 오르며 다행히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가 뇌전에 얻어맞으면서도 꾸준히 돌격할 수 있는 이유였다.
“다 덤벼!”
본디 용세하는 파티의 선두를 담당하던 전사! 도발 스킬을 마음껏 흩뿌리며 신전의 몬스터들을 처단하는 그의 모습은 과연 엘리트 플레이어다웠다. 다만 그것은 리타이어 이전 그의 전투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우오오오오오오오! 랜스 차지!”
[캬학!]
[캬오오오오!]
그가 한창 길드에서 활동할 때, 그는 언제나 리타이어를 두려워했으며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도 언제나 자신의 움직임에 일말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었다. 돌진 와중에 자신이 피할 수 없는 공격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 방향을 틀거나 멈추어 설 여력을 남겨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돌진의 위력은 덜할 수밖에 없었고, 스킬로서는 완성되어 있는지 몰라도 실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끝내 그를 리타이어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리타이어 이후, 정시우의 서포터로서 그와 함께 하면서 용세하는 그의 앞뒤 가리지 않는 파괴적인 돌격과, 자신이 발한 힘의 반동을 이용해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탁월한 배틀 센스를 옆에서 지켜보며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돌진에는 망설임이 있어선 안 된다. 애초에 돌진은 상대를 죽일 기세로 하는 것이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부터 실패를 대비하고 있어선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 죽이지 못한다면 그때 반응하면 되는 것, 힘을 남겨 두어 봤자 적이 살아날 확률만 높여 주는 셈이다.
물론 그만큼 스스로를 믿고 움직이는 과감함과 몸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센스가 필요했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정시우의 움직임을 바로 옆에서 보아 온 용세하는 이제 어설프게나마 그를 따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기동력을 받쳐 주는 날개가 있지 않은가! 정시우가 부러워 죽으려고 하는 이 강력한 무기를 두고 여태까지 대체 무엇을 겁을 내고 있었는지 리타이어 이전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후오오오오오오!”
[캭!]
[키아카가각!]
“좋아, 잘 하고 있다, 세하야.”
용세하가 용맹무쌍하게 신전을 활보할 동안 정시우 역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몬스터들을 일일이 짓밟기보다는 돌파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그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엘리트 몬스터들을 처단하는 것.
여타 몬스터에 비해 족히 두세 배 이상 강력한 엘리트 몬스터에 뇌신이 강림하게 된다면 정말 농담으로는 끝나지 않게 된다. 굳이 용세하를 싸우게 한 것도 그가 조금이라도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어 주길 바라서였는데, 다행히도 무척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 망할 놈의 엘리트 몬스터들이 신전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칫, 이게 무슨 소신전이야. 넓기만 더럽게 넓어 가지고……!”
[쿠하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시우가 사방의 마나를 탐지하며 정신없이 몸을 놀리던 그때, 몬스터의 함성이 정시우의 몸에 충격을 주어 멈추어 서게 만들었다.
전신을 날카롭고 단단한 비늘로 뒤덮고 있는 리자드맨. 다만 놈은 여타 리자드맨에 비해 족히 두 배는 어깨가 넓었을뿐더러 골리앗마냥 거대한 키의 소유자였다.
“너도 엘리트구나!”
[신의 음성이 나를 부른다. 네놈이 감히 우리의 신을 모욕한 시건방진쿠악!]
놈이 혀를 날름거리며 말을 늘어놓던 도중 정시우의 용서 없는 크루얼 차지가 놈의 몸통을 터트렸다.
어딜 감히 엑스트라 따위가 대사를 길게 치려고! 설령 찰리 채플린이 놈을 용서한다 해도 자신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러면…….”
그는 놈의 사체도 바로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이서희로부터 몬스터의 사체에 가치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신경이 쓰여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엘리트의 사체에서 마석을 뽑아내기 위해 뒤적거릴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15:18]
이제 겨우 엘리트 몬스터를 두 마리 죽였을 뿐인데 3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있다니! 남은 엘리트 몬스터의 숫자는 얼추 열 마리, 개중에는 거대 전기뱀장어를 뛰어넘는 마력을 지닌 놈도 한 마리지만 있었다.
“쩝.”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간단했다. 몸으로 뻐기면 되는 것이다. 그의 뇌전 내성은 4레벨. 거대 전기뱀장어의 뇌전에 얻어맞고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하니까…….”
정시우는 인벤토리에서 몇 개인가의 유리병을 빼내어 품에 보관하고, 또 몇 개인가는 손에 쥐었다. 품에 넣은 것이 체력 포션과 마력 포션, 그리고 손에 쥔 것이…….
‘마침 엘리트 한 마리 보이네. ……일단 가볍게 하나.’
정시우는 손에 쥔 유리병 하나를 있는 힘껏 내던졌다. 도중에 그것을 발견한 거대 말벌 엘리트가 날개를 파르르 비벼 강력한 뇌전을 만들어 내어, 유리병에 얻어맞기 직전 쏘아 내 명중시켰다!
[키라라라라라라라!]
그러자 폭발 포션이 성대한 폭발을 일으켜 놈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놈은 순식간에 두 날개가 타들어 가 바닥에 떨어져, 비비비빅,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하급 포션의 폭발력이 아닌데!?”
[냉장고에서 생성되는 포션은 휴식처의 주인이 되는 플레이어의 기본 능력에 영향을 받습니다.]
[폭발 포션의 폭발력은 포션에 자극을 준 충격의 속성과 강도에 영향을 받아 더욱 강해집니다.]
“아, 네.”
이렇게 되면 점점 더 중급 포션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지 않는가! 정시우는 마침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신전 파편을 망치로 후려쳐 말벌의 목숨을 끊어 버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날뛰어 볼까!”
남은 폭발 포션이 4개, 빙결 포션이 3개, 중독 포션이 2개. 그는 일단 과감하게 중독 포션과 폭발 포션을 동시에 깨트려, 독을 머금은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일대 몬스터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한 마리 더 찾았다!”
[크롸아아아아!]
정시우는 한 명의 폭탄마가 되어 신전을 활보했다. 독 폭발뿐만 아니라 빙결 포션과 폭발 포션을 동시에 내던져 얼음 파편의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고, 거대 전기뱀장어와 비슷한 수준의 뇌기를 품고 있는 거대 뇌조의 뇌전을 얼음 방어벽으로 막아 내기도 했다.
[크루루루루루루…… 끼이이이익!?]
“핫! 차!”
뇌조는 얼음 방어벽이 정시우의 해머 강타로 인해 일제히 비산하며 날아드는 턱에 화들짝 놀라 날개를 퍼덕이다가는 빙벽 너머로 날아든 정시우의 해머에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쓰러졌다. 정시우는 뇌조의 사체를 회수하며 최고로 High한 기분이 되었다.
“이거 재밌잖아!?”
그에게 포션을 한꺼번에 써 대지 말라고 충고해 줄 수아린도 지금은 지하 창고를 지키고 있는 상황!
태클을 걸어 줄 이가 없으니 정시우는 마구 폭주했다. 순식간에 엘리트 몬스터 다섯 마리를 더 죽인 후에야 정시우는 더 이상 내던질 포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9:28]
“아.”
아린이가 옆에 있었다면 진즉 혼났겠군. 정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적은 시간 안에 많은 숫자의 엘리트 몬스터를 죽일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시우 본인의 마력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캬하아아아아아아!]
“오, 좋은 타이밍.”
정시우가 더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게 되고 나서야 그에게 돌진해 오는 엘리트 몬스터가 한 마리 있었다. 이 신전 내에서 가장 많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 엘리트 몬스터!
생긴 것만 보면 전기뱀장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보다 갑각이 두터워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모양이었다.
“혹시 너도 제단 같은 거 지키고 있었니?”
[캬아아아아악!]
놈은 대답 대신 뇌전의 폭우를 쏟아 냈다. 정시우는 다급히 망치로 근처 벽을 부숴 무너트려, 그것으로 자신을 덮쳐온 뇌전의 위력을 감소시키며 혀를 찼다. 그런데 그 순간 공교롭게도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전 파괴율 : 72%]
[신전 구조가 헐거워지며 뇌신의 라이플의 마나 흡수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남은 시간 ? 9:11]
“이런 얘기는 또 처음 듣는데.”
[갸아아아아아아! 키르르르르르르르!]
너무 놀란 나머지 몬스터가 재차 쏘아 낸 뇌전을 피하지 못하고 맞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정시우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렇다. 그는 그저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신전을 부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시작해 보실까!”
[캬르르르르르르르!]
“오, 너도 도와주겠다고? 고맙구나!”
그 순간부터 정시우는 엘리트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한편으로 신전을 부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도 신전을 부수고 있었지만 보다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신전을 부수었다!
그러는 바람에 갑각뱀장어를 제외하고도 초거대 말벌, 초거대 리자드맨 등의 엘리트 몬스터가 그의 뒤를 따라붙었지만 놈들이 난리를 피울수록 신전의 붕괴가 가속화될 따름이니 정시우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울 뿐!
[신전 파괴율 : 77%]
[신전 파괴율 : 81%]
[신전 구조가 헐거워지며 뇌신의 라이플의 마나 흡수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남은 시간 ? 5:13]
[강림이 이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 ? 7:36]
그러던 중, 드디어 라이플이 완성 요구 시간이 뇌신의 강림 요구 시간보다 줄어들었다! 이제 최악의 경우에도 강림한 뇌신을 상대할 것 없이 라이플만 들고튀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정시우가 파괴 행각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4층과 5층은 완벽히 무너져 내렸고, 3층을 지지하는 기둥만 무너트리면 그대로 모든 자재가 2층으로 무너질 것이다. 한꺼번에 그 많은 파편이 쏟아지면 당연히 2층도 버티지 못할 것이고, 이미 1층은 지하와 통합되었으니 그것으로 신전 내부는 초토화가 되는 셈이었다.
그 광경을 상상하니 절로 전율이 일었다. 하나둘, 그가 일으킨 소소한 파괴가 중간에서 맞물려 대파괴를 일으키는 광경! 자신이 지닌 힘 이상의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건축학을 진지하게 배워 볼까.’
그래야 건물을 부수는 요령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파괴자였음에도 정시우는 끊임없이 정진하고자 하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실로 기특한 일이었다.
[갸아아아아악!]
[구에에에에에에에!]
“녀석들, 이쪽이다!”
정시우는 크루얼 차지를 발동해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내달리며 엘리트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유도했다. 이미 분노에 눈이 뒤집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된 몬스터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생쥐처럼 맹목적으로 정시우의 뒤를 쫓았다.
“좋아, 이거다…… 흡!”
사실 신전 중앙기둥은 뇌신의 라이플이 공명을 시작한 순간 이미 크게 비틀려 있었다. 그러나 워낙 굵고 거대하다 보니 아직까지 겉으로는 건재해 보였던 것.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였지만, 정시우는 그 시간마저 단축하고자 했다.
“후…… 흐아아아아아압!”
정시우는 기둥 앞에 도달한 순간 발을 멈추며, 그 힘과 자신의 마나를 모두 거랑의 앞발에 담아 넘어지듯이 해머 강타를 내질렀다! 타격 순간 어마무시한 소리가 나며 기둥의 중심부가 그대로 틀어졌다.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스윙이었다.
[신전 파괴율 : 88%]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다음 순간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놈들은 정시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모르고, 그저 눈앞에 그가 보이니 한꺼번에 뇌전을 퍼붓고 몸통박치기를 하며 공격했다.
물론 정시우는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고, 공격이 쇄도하는 바로 그 순간 해머로 바닥을 거세게 내리쳐 부수며 먼저 2층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 어리는 잔혹한 미소!
[키라라라라라!]
[크루오오오오옷!]
당연하게도 목표물을 잃은 놈들의 공격은 정시우 코앞에 놓여 있던 3층 중앙기둥에 모조리 쏟아졌다. 정시우의 해머에 의해 틀어진 기둥은 일제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깔끔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신전 파괴율 : 91%]
[신전 파괴율 : 92%]
[신전 파괴율 : 93%]
[신전 파괴율 : 95%]
그리고, 기어이 신전 대붕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